196화 영철 (1)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네……. 그 후로는 진짜…… 휴…….”
현정은 헝클어진 머리와 지저분한 얼굴과는 별개로, 연약한 한숨이 툭 내뱉었다.
아까까지 보여 주었던 날카로운 모습은 아무래도 상황이 만든 모습이었던 듯했다.
하긴,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긴 할 터였다.
‘나조차 이러진 않았지.’
유현은 연신 뒤를 돌아보면서, 현정이 해 주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곽근영이라고 이름을 밝혔던 사내.
그가 저 무리의 핵심 중 하나인 듯했다.
이름 모를 저 인상 더러운 사내 또한 그런 것 같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저 새끼들이 문제지…….’
뒤를 돌아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디론가 숨어든 모양이었다.
도망가진 않았을 것 같았다.
멀리서나마 보였던 그 모습 그리고 현정이 말해 준 모습 등을 미루어 볼 때, 절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도착하면 바로 수원 측에 도움을 청해야 할 수도 있어.’
얘기를 들어 보니 당시에는 총이 없었던 듯했다.
그저 칼을 비롯한 냉병기로 사람들을 쓸었던 것 같은데…….
그 정도 수준의 무력이라면 지금도 대항이 가능하긴 할 터였다.
다만 피해를 피할 수는 없을 테니, 아예 군의 도움을 받는 게 합리적인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저기 보이는군요.”
속내와는 달리 유현은 여상한 얼굴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야산 쪽을 가리켰다.
안쪽으로 나 있는 길을 통해 들어가면 본부가 나올 터였다.
의도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보면 천혜의 요새가 따로 없었다.
놈들이 전에 무리에 섞여 들어갔듯, 첩자를 보냈다면 또 모르겠지만 대비를 하고 있다면 당장 어떻게 될 일은 없어 보였다.
“아……. 저기예요?”
“네, 그렇습니다.”
유현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대원이 입을 열었다.
“이분은 어떻게 하죠?”
등에 들쳐 메고 있던 시신을 가리키면서였다.
이대로 들고 가기가 좀 그런 모양이었다.
안에는 노약자들도 있지 않나.
“우선 근처까지는 가죠. 그리고 본부장님하고 얘기를 더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그럴까요?”
유현을 비롯한 인원은 따라붙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아무리 살펴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한 명이다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유현은 이런 모습을 보며 사내의 조심성이 더더욱 수그러들길 바라고 있었다.
‘규모가 엄청 큰데……?’
그런 바람과는 별개로 영철은 일행과 꽤 가까이에 있었다.
겨울이라 바람이 불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럴 땐 생각보다 가까이 가도, 소리 때문에 들킬 일은 적다는 걸 영철은 경험적으로 알았다.
무리는 잠입에는 주로 곽근영을, 이런 식의 추적에는 영철을 사용했기에 그랬다.
둘 다 그런 걸 즐기는 편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저놈이 리더 같은데……. 맛있겠어.’
영철의 시선은 유현에게 꽂혀 있었다.
운동을 아주 열심히 한 몸이었다.
타고나기도 잘 타고난 것 같고.
아마 맞서 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다리에 작살 하나 먼저 꽂고 사시미를 휘두르면 얼마든지 요리가 가능할 거라 믿었다.
지금껏 늘 그러하지 않았나?
‘하여간 따라가 볼…….’
영철은 그렇게 움직이는 일행을 뒤따라가다가 스산한 느낌에 발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러곤 동시에 버려진 폐가 뒤로 몸을 숨겼다.
드문드문 드러난 모습을 보니, 본부 규모도 거대해 보였다.
물론 숨은 건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뭐지? 느낌이 더러운데.’
스스로 벗어던진 인간성이 자리했던 곳에 본능이 자리 잡은 탓일까?
그의 직감은 지금 위험을 말하고 있었다.
“저 새끼……. 뭐지? 감이 좋은데?”
정확히 들어맞기는 한 셈이었다.
옥상 위에 올라와 있던 김태평이 그를 마침 바라보고 있던 참이었다.
맨눈도 아니고, 망원경으로.
“훈련받은 놈일까요?”
“아니, 그런 것치고는 움직임이 투박해.”
김태평은 방금 훅 하는 느낌과 함께 숨어 버린 영철의 움직임을 복기했다.
배운 몸놀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저런 놈이 더 위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능숙해. 추적을 하루 이틀 해 본 놈이 아닌 거 같은데…….”
“일단 망원경으로 보는데 숨었다는 거 자체가 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오로지 실전으로만 쌓아 올린 실력으로 보였다.
그 실전이라는 건, 이런 세상이 아니더라도 살인을 의미했다.
“근데 어디서 저런 새끼가 붙은 거야? 교수가 설마 아예 모르나?”
“그런 거 같진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평소보다 빈번합니다.”
“하긴, 그렇겠지. 저 인간도 정상은 아냐. 그래도…… 저건 위험한데. 오 형사님.”
살인에 능숙한 인간.
김태평이 동류라 알았다.
저런 놈을 방치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죽일 수 있다면 죽이는 게 좋았다.
“아, 네.”
그의 부름에 마찬가지로 옥상에 올라와 쉬고 있던 오예리가 답했다.
말이 쉬고 있었던 것이지, 언제든 사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총을 들고서 김태평에게 다가왔다.
그런 오예리에게 김태평은 손가락으로 산기슭 어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보입니까?”
“안 보여요. 그냥 집만 보이는데.”
“아, 그래요. 그 집. 거기 혹시 표적이 있으면 쏠 수 있겠습니까?”
망원경으로 봐야 보이는 거리였다.
육안으로는 집이라고 들어야 집으로 보일 정도였다.
“음……. 움직이는 거면 못 할 거 같아요. 왜요?”
“웬 놈이 무장하고 교수님 일행을 뒤쫓고 있는데.”
“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아니, 지금은 멈췄어요.”
오예리는 유현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에 다시금 총을 겨누어 보았다.
하지만 시야도 가려진 데다가, 일단 거리가 너무 멀어서 역시나 뭘 맞히는 건 어려워 보였다.
“역시 안 되겠어요.”
“그런가요. 일단은 보죠. 놈도 멈춘 거 같으니……. 제가 내려가서 교수님께 물을 테니, 좀 더 지켜봐 주십쇼. 거리가 가까워져도 맞힐 수 있는 건 형사님뿐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런 오예리를 두고 김태평은 아래층으로 향했다.
산길에 접어든 유현이 일부러 더 속도를 냈기 때문에, 곧 둘은 만날 수 있었다.
동시에 김태평은 일행 중 나가기 전엔 없던 셋이 끼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는 죽어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슨 일입니까?”
그렇다고 그 이상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질문을 던졌다.
“안으로 들어가죠. 이분들 너무 지쳐서요.”
유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부축하고 있던 현정을 가리켰다.
재원과 다른 대원은 사내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김태평이 보기에도 저 둘이 여기까지 걸어 올라온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 여겨져서, 우선은 안으로 들였다.
3층에 다다르자 나름 후끈한 열기도 느껴졌다.
사방이 산인 데다가 구성원 중에 젊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무는 남아돌아서 그랬다.
그래 봐야 난방이 가능한 곳은 연기길 때문에라도 한정되어 있었지만, 하여간 현정과 사내는 나름 집에 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고, 고생하셨네.”
“어쩌다 이렇게.”
따뜻한 공간에 더해 반겨 주는 이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친절해서 그랬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김태평은 여전히 냉혹하게까지 보이는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가 말씀드리죠. 일단은 좀 쉬게 두고요. 본부장님도 잠시만.”
“네네.”
“네, 교수님.”
답은 유현이 했다.
상황이 이미 대강 정리된 덕이기도 했거니와, 따라붙은 놈에 대한 얘기도 해야 해서 그랬다.
거기에 더해 이미 죽은 이에 대한 논의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따로 이어진 대화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렇게 흉악한 놈들이 있다고요?”
“제가 목격했던 놈들과 같은 놈들일 수도 있겠군요.”
우선 꺼낸 얘기는 롯데타워 쪽 생존자 무리가 무너졌던 일이었다.
순박한 인상의 사람을 먼저 앞세워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싹 잡아간다니.
숫제 도시 괴담 같은 소리였다.
본부장은 도무지 믿기 어렵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었다.
“하긴……. 이제 와 무슨 일이 불가능할까요.”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간에 관계없이 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마당 아닌가.
말마따나 무슨 일이건 간에 가능하긴 할 터였다.
“문제는 놈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았다는 겁니다.”
“그렇죠. 한 놈이 따라붙었어요. 한 놈이니 당장 공격하지 못하겠지만……. 위치를 알았으니 언제고 오기는 할 거 같습니다.”
유현의 말에 본부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습격을 온다는 소리 아닌가.
운이 꽤 좋은 편이라, 좋은 곳을 선점할 수 있었고 이렇다 할 위협도 크게 느끼지 못한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큰일이군요……. 어째야 할까요?”
다행이라 할 만한 일이 있다면, 그의 눈앞에 있는 유현과 김태평이 별의별 일을 다 겪은 이들이란 점이었다.
“우선 수원에 지원 병력을 요청하도록 하죠. 총 든 병사가 몇 명만 더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경계도 확충해야 합니다. 당장 먹을 건 문제는 없으니까…… 무리는 쪼개지 말도록 하죠.”
“아……. 네네. 그래야겠군요.”
“수원으로 가는 일행은 최소한으로 꾸리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무장은 갖추는 게 좋을 겁니다. 혹 놈들의 근거지가 수원과 우리 본부 사이에 있거나 적어도 그 가까이에 있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밤에 경계하려면 불빛이 있어야 할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쓸모 있는 조언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툭툭 쏟아지기 시작했다.
본부장도 열린 사람인 데다가, 둘의 대단함을 십분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기에 조치가 취해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찰나라 해도 좋았다.
곧 일행이 꾸려졌다.
유현은 이미 한번 나갔다 왔고, 김태평과 오예리 등은 남아서 할 일이 있었다.
해서 수원으로 향하는 인원은 김현철과 이순규 그리고 대원 네 명을 더한 여섯으로 결정되었다.
“조심해.”
유현은 그런 일행에게 가, 둘의 어깨를 두드렸다.
짧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걱정이었다.
“별일 있겠어? 차도 큰데. 그보다 이진호 형사 잘 봐 봐. 확실히…… 나처럼 되고 있어.”
“나갔다 온 사이에 이벤트가 있었어?”
“몇 번 액팅 아웃하긴 했는데, 여전히 이벤트 지나면 대화가 가능해. 덩치야 빠르게 커지고 있긴 한데……. 기껏해야 나 정도나 되려나.”
“정확히 경과가 같네. 흠…… 알겠어, 일단 볼게. 개새끼들. 이게 뭔 일이야.”
이순규는 일부러라도 밝은 모습으로 떠났다.
유현도 마지막에는 밝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언제고 마지막이 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침울하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 형사님.”
이진호에 대한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유현은 일단 그에게 재원을 보내고 자신은 옥상으로 향했다.
신경이 온통 인상 날카로운 사내에게 쏠려 있어서 그랬다.
“아, 네.”
유현의 말에 오예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답했다.
놓쳤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그랬다.
“좀 어떻습니까?”
“아직 모르겠어요. 안 보여요.”
“그렇군요.”
유현은 그 말을 들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