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생존자 무리 (4)
“괜찮으세요?”
환자를…… 아니, 시신을 옮기는 것은 대원들의 몫이 되었다.
유현 또한 타고난 용력도 그렇고 운동으로 단련도 했기에 만만치 않은 힘을 지니고는 있었지만, 그 힘을 어떻게 쓸 줄 아는지는 완전히 다른 얘기여서 그랬다.
이들은 누군가를 구조하고 옮기는 데 있어서는 완전한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네? 아, 네. 별로 무겁지도 않은걸요.”
“그건 다행이군요.”
유현은 예의상 물은 후, 주변을 살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대원이 짊어지고 있는 시신은 원래 입고 있던 옷이 나풀거릴 정도로 말라 있었다.
원래도 체격이 그리 크진 않았었겠지만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더더욱 마르게 된 모양이었다.
“뭐 보이는 거 있어?”
“네? 아, 아뇨. 없어요. 분명 하나 남았다고 했죠?”
“그래. 다른 분들은요?”
해서 유현은 그쪽에 신경을 끄는 대신 아까 남았던 사람을 찾고 있었다.
분명히 따라붙었을 터였다.
그건 확실한데. 보이질 않았다.
‘별로 조심성 같은 건 없어 보였는데…….’
적어도 마을 밖에 있을 땐 그렇게 보였더랬다.
누군가를 추격하기엔 부적절한 모양새지 않았나?
철제로 된 무기를 무언가로 감싸지도 않아서 반짝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일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오판이야……. 아까 그냥 쏴 볼걸.’
총이 있다는 걸 상대가 알아차리는 한이 있다고 해도, 또 그게 빗나가서 녀석이 근거지로 돌아가 이쪽의 무장 상태를 알리는 계기가 되는 한이 있다고 해도 쏴 볼 걸 그랬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 주변에 들러붙어 있다면 총 정도는 알아차렸을 테니까.
“일단 주변 계속 경계해 주세요. 혹시 몰라요. 공격해 올 수도 있어요. 이 사람도……. 창에 당했다고 하니까요. 맞으면 누구라도 크게 다칠 겁니다.”
“네, 교수님.”
“네.”
뼈저린 후회였지만 동시에 무용한 후회이기도 했다.
때문에, 늘 그러하듯 유현은 지금 당장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
덕분에 주변에 있는 이들은, 재원조차도 그의 당황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아까처럼 주변을 돌아볼 따름이었다.
그렇게 경계를 더 단단히 한 후, 유현은 합류한 사람 둘에게 다가갔다.
“아까 이름이……. 현정 씨라고 했죠?”
“그……. 네.”
둘은 일단 안정된 상태였다.
가까이서 본 일행들, 그중에서도 재원이나 대원들은 누가 봐도 좋은 사람들 같아서 그랬다.
심지어 언제라도 돌변해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여럿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행은 그저 걷고 있을 따름이었다.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했다.
이들은 이 둘 정도라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언제든 제압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남은 거리는 대략 4킬로.
차 타고 가면 금방이겠지만, 걸어서 가면 대략 1시간은 걸릴 만한 거리였다.
그럼에도 차를 두고 나온 건 작은 마을로 향하는 길목 여기저기가 주인 잃은 차량이나 경운기 또는 기타 구조물 때문에 막혀 있어서 그랬다.
걸어서는 충분히 이동이 가능했지만, 차는 어려웠다.
물론 그렇지 않은 길목도 있기야 할 텐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에, 이 근방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한 탓도 있었다.
하여간, 그러한 연고로 유현은 가볍게 파악이라도 할 겸 질문을 던졌다.
“그…….”
여자는, 그러니까 아까 이름을 현정이라고 밝혔던 이는 시신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저희는 원래 강변에…….”
“강변? 테크노 마트요?”
“아, 네. 강변역 근처예요.”
“아하.”
무너질 때 도망갔던 이들인가.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이 많은 리액션을 보이진 않았다.
더 자세한 얘기는 순규가 있을 때 해 볼 참이어서 그랬다.
명색이 정신과 의산데 자기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무튼……. 원래 거기 있다가…… 갑자기 라드들이 들이닥쳤어요.”
현정은 얘기를 하다 말고 또 다른 일행을 살폈다.
그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다른 남자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를 위협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고통의 흔적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이번에도 유현은 쓸데없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도망치다 보니까 어느새 다리를 건넜는데……. 운이 좋았어요. 롯데타워 아세요?”
“알죠.”
“거기에 생존자 무리가 있었어요. 거기에서 저희를 받아 줬습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누구에게라도 너무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정은 끊임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경계하고 있던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한 2주? 그래……. 2주는 좋았어요. 강변에서보다 오히려 더 안전했고 먹을 것도 많았고……. 옷도 따뜻하게 입을 수 있었고요.”
옷 얘기가 나오고 나서야 유현은 현정이 걸치고 있는 옷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함부로 굴린 탓에 여기저기 낡고 헤져 있었지만, 그럼에도 옷감은 꽤 좋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마 꽤 비싼 브랜드였겠지.
“그러다…… 일행이 또 다른 사람들을 받아 줬어요.”
“다른 사람……?”
“네. 정말 오래 떠돌았는지 옷이 진짜 낡아 있었어요. 근데 체격이 좋았어요. 살집도 통통했고. 그때……. 그때 이상한 거 같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현정의 등이 살짝 들썩였다.
눈물은 사태가 터지고 다 흘려보냈을 테니, 얼굴은 여전히 말라 있었지만.
뭐가 되었건 울고 싶어 보였다.
그렇지 않겠나?
이런 상황에 어찌 멀쩡할 수 있을까.
유현은 여태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진짜로 궁금해졌다는 점이었다.
‘뭔 일이 있었지?’
혼자 일행에 들어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내부의 적이 아무리 무섭다고는 하지만…….
혼자잖아?
불이라도 질렀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현정이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일주일인가 지났나……? 붙임성이 되게 좋았어요. 그리고 아시잖습니까?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해서 뭘 안 시킬 수 없다는 거.”
“그렇죠. 모든 것이 부족하니까요.”
“그 인간이…… 자원하더라고요. 주변 수색하는데…… 자기가 떠돌다가 본 작은 구멍가게가 있는데 거기 문이 잠겨 있었다고. 열면 뭐가 엄청 많을 거 같다고…….”
“아.”
“그때 남자들……. 6명인가…… 7명이 같이 갔어요. 다들 열심히 하던 분들인데…….”
살집이 통통했던 사내의 이름은 곽근영이라 했다.
물론 이제 와서는 그게 실명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었다.
하여간 그는 일행과 함께 타워를 빠져나와, 무리에 섞인 채 걸었다.
주변을 한번 훑어보긴 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일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이제 세상은 인간에게 절대로 호의적이지 않았으니.
‘저깄군.’
그렇게 곽근영은 거울을 찾을 수 있었다.
반사되는 빛이 워낙에 특징적이다 보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털어 먹은 무리가 한둘이라던가?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곽근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임으로써, 신호를 보낸 후 구멍가게가 있노라고 안내했던 곳으로 일행을 끌었다.
“네? 하하. 확실치는 않습니다. 아시잖습니까, 제가 좀 덜렁대는 거. 진짜로 운이 좋았어요. 물론 이 그룹에 들어온 게 진짜 천운이죠.”
“그래, 나도 곽 씨가 여태 살아남은 게 진짜 대단하다고 여겼지. 하하.”
일행은 여럿이었고, 모두 이런저런 일을 겪어 온 사람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곽근영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간 보여 준 모습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엎고, 오락가락하는 그는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이일 뿐이었다.
심지어 웃는 얼굴은 귀엽게 느껴질 만큼이나 호감상이었다.
‘이번 일행에는 애도 있어. 맛있겠구만…….’
속으로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는 인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그랬다.
“여기 어딘데……?”
그렇게 곽근영은 웃는 낯으로 일행을 타워 뒷골목 어딘가로 이끌었다.
“옳지, 저기네.”
그가 말했던 대로 문이 잠긴 작은 가게가 거기 있었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 위에는 홍일슈퍼라는 간판이 놓여 있었다.
“오, 슈퍼!”
“저 안에 진짜…….”
“오오.”
슈퍼라는 간판은 모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필 슈퍼가 골목의 끝에 위치해 막다른 골목에 있다는 건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심지어 간판도 자세히 보면 어딘지 모르게 조악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투두둑
근처 지붕에서 돌 조각이 툭 하고 떨어졌을 때조차, 일행은 그저 간판만 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 저 셔터를 어떻게 하면 부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비켜 봐.”
일행 중 덩치가 제일 큰 이가 등에 메고 온 오함마 비슷한 것을 두 손으로 쥐었다.
지금껏 이런 식으로 잠긴 문 몇 개를 해 먹은 적이 있던 이다 보니 다들 신뢰감 넘치는 얼굴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퉤.”
그는 손에 침을 묻혀 마찰력을 확보한 후, 자루 쪽을 고쳐 쥐고 셔터를 후려쳤다.
쾅정말로 힘이 좋은 사람이라, 사방으로 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교통사고라도 난 듯한 소리였다.
그걸 보고 있던, 곽근영의 원래 일행이 빙그레 웃었다.
“저 새끼 맛있겠네.”
지금 유현의 일행에게 따라붙은 이와 같은 이였다.
실력은 좋지만 얼굴 자체가 너무 비열하게 생긴 데다가, 좋은 사람인 척도 못 할 만큼 인성이 무너진 이다 보니 이런 식의 일만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진짜 취향 특이해. 근육 많으면 질기기나 하지.”
“씹는 맛이 있다니까.”
“조용. 한 번에 덮쳐야지.”
“아, 네.”
“네네.”
그런 이를 말로 제압한 이 또한 유현이 본 적 있는 이였다.
등에 총을 짊어졌던, 그러나 이땐 아직이었다.
그저 투척용 창을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콱몇 번이나 내리쳤을까?
지금까지는 주변으로 흩어지던 충격이 더 많았었는데, 어느 순간 셔터가 안으로 움푹 패면서 아예 박살이 나 버렸다.
“오!”
“안에!”
“불 좀 비춰 봐!”
그 순간 나머지 일행 또한 그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곽근영이 슬쩍 뒤로 빠졌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동시에 골목 어귀에 낯선 이들 몇이 나타나는 것도.
그리고 그 셔터 문이 달린 건물의 바로 옆 건물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도.
“던져!”
그건 그저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떤 신호를 시작으로 창과 돌, 조악한 화살 등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억!”
“뭐……. 뭔…….”
“이게 뭐야!”
모두 모여 있던 만큼 좋은 표적이 되었다.
삽시간에 절반 이상이 쓰러져 버렸다.
다행이라면 오함마 들고 있던 이만은 건재했다는 건데, 그때 비열한 인상의 사내가 나섰다.
“컥…….”
허리를 활처럼 휘게 만들었다가 앞으로 솟구치는 듯 당기면서 던져 버린 작살은 사내의 허벅지를 길게 꿰었다.
“또 지랄이네. 충분히 목 맞힐 수 있었으면서.
“이렇게 천천히 피를 빼야 맛있지.”
그는 그와 동시에 소름 끼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바닥으로 향했다.
이제는 작살 대신 날이 선 사시미를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