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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93화 (193/323)

193화 생존자 무리 (3)

“어, 어! 오지…… 오지는 말고! 너, 너네도 한패지!”

잔뜩 헝클어진 머리, 잘 보면 머리카락 사이로 핏자국이 있었다.

‘뭐……. 저 차 타고 있었으면 머리 갖다 박았겠지…….’

죽지 않은 게 용했다.

암만 봐도 아무렇게나 달리다가 갖다 박은 것 같았으니.

“한패가 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아까 말했듯 본부 소속입니다.”

“거짓말하지 마……. 너 그 총……. 그거…….”

“총? 상대가 총이 있어요?”

“오, 오지 마.”

여자는 칼을 들고 있었다.

말이 칼이지, 어디서 주워 온 것으로 보이는 커터 칼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커터 칼로 사람 죽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겨울처럼 옷이 두꺼운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의미 있는 손상을 입히기 전에 칼이 툭 부러질 터였다.

“이 새끼들…….”

밖이 좀 더 소란스러워지자, 더 정확히 말하면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안에서 사람 하나가 더 나왔다.

남자였는데 체격이 작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리 위협적이진 않았다.

정상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확실히……. 수도 적고. 엉망이야. 위험하진 않겠어.’

아닌 게 아니라, 유현은 육박전에 자신이 있는 편 아닌가?

그가 소싯적부터 섭렵해 온 격투기 종류만 해도 적지 않았다.

총이야 오예리 형사가 훨씬 잘 쏘겠지만 가까이에서 사람 상대하는 건 유현이 일행 중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목숨을 빼앗아야 한다면…… 김태평을 위시한 요원들이 더 나을 수 있겠지만 제압에 그쳐야 한다면 유현이 더 나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나쁜 사람들 아닙니다.”

유현은 지민이가 있었다면 일이 더 쉬웠겠다 라고 생각하며 가까이 갔다.

이제 이 일행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일행을 이렇게 만든 이에 대한 궁금증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극도의 공포에 떨고 있지 않나?

뭐 원래 사람이라는 게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공포에 떨기 마련이라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 사람들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지.’

어디 잘 숨어서 버텼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하루 이틀이었다.

대개의 사람이 준비할 수 있는 물자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유현 일행만 해도 은신처를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원치 않았던 손실도 지속적으로 입었고.

심지어 멤버가 아주 좋았음에도 그랬다.

‘어지간한 일로는 이렇게 안 될걸…….’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저 온화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희 진짜 해칠 생각이 없어요. 저희와 가시죠. 여기……. 오래 지내기에 좋은 곳이 아닌 거 같습니다. 게다가, 쫓기는 몸 같은데……. 라드 놈들이라면 걱정 마십쇼. 그놈들 처리하는 거 도가 텄거든.”

환자 보면서 단련된 표정이었다.

다시 말해 상대를 안심시키는 데 있어 최적화된 얼굴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

딱히 소용은 없었다.

‘순규가 있었으면 좀 나았으려나? 아닌가?’

유현이 순규를 떠올리려는 찰나, 밖에서 소음이 일었다.

바람 소리 따위는 아니었다.

부아아아아앙

거친 차 엔진 소리였다.

배기음…….

그것도 꽤 큰 차였다.

한두 대도 아니었고.

“어, 어!”

“왔어! 시발……. 왔다고!”

일행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대치 중이었던 여자와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낡은 경첩이 내는 비명 소리와 함께 문을 덜컥 닫았다.

달각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잠그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지?”

“이 사람들을 공격했던 놈들 같은데.”

“공격……. 설마 김태평 팀장님이 말씀하셨던 그놈들일까요?”

“모르겠어요. 그놈들이면 안 되는데.”

군인들에게조차 사냥당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큼이나 사람 상대하는 데 도가 튼 놈들이라고 하지 않았나.

놈들이 상대라면…….

‘이쪽이 무력하게 당할 거 같진 않지만…….’

전면전은 언제나 그러하듯 피해를 수반하는 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당이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안으로! 여기 안에서 공성전으로 싸웁시다. 만약 싸우게 된다면요!”

“아, 네! 안으로!”

유현과 박해상 대원의 말에 골목길에 머물러 있던 이들까지 싹 다 안으로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딱히 뭘 숨기려고 노력조차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행은 방금 도착한 이들에게 고스란히 노출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상대는 일행이 움직이는 것을 다 보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저것들은 뭐지?”

“글쎄……. 대체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잘된 거 아닙니까? 저것들 다 잡으면 한 달은 먹겠네.”

픽업트럭에 타고 있던 셋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말을 나눴다.

셋은 모두 새총과 창 같은 것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트럭 위에도 멀리 던질 수 있는 류의 무기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다 잡아? 저렇게 많은데?”

다른 차에 타고 있던 이가 그들의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등에 짊어지고 있는 건, 총이었다.

군에서 쓰는 k2.

피가 묻어 있었는데 굳이 닦지는 않았는지 말라서 색이 옅어진 느낌을 주었다.

총기의 성능을 생각한다면 무식한 짓이겠으나, 적어도 모르고 보기에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총이 있지 않습니까.”

“이건 너무 시끄러워……. 라드 놈들 꼬이면 골치 아파.”

“아.”

“게다가 총알도 별로 없어, 이거. 사람 상대로는 위협용으로 써야지, 사냥용으로는 좀 그래.”

“아쉽게 됐네요…….”

총 든 이는 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입맛을 다시고 있는 놈을 보면서 속으로 한탄했다.

‘시발……. 원래도 저랬나?’

처음부터 일행이 이랬던 건 아니었다.

계기가 있었다.

배고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동료들이 죽어 나갔다.

그 길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던 몇이 그 시신을 먹었다.

맛은 솔직히 지금도 적응이 안 될 만큼 비리고 역했다.

하지만 배가 불렀다.

그 충족감은…….

“일단 돌아간다. 오늘 어차피 꽤 잡았어.”

총 든 사내는 자신이 타고 있던 트럭 뒤를 돌아보았다.

세 명의 사람이 재갈이 물린 채, 온몸이 결박되어서 묶여 있었다.

여기서도 그랬지만 오면서도 이쪽 일행이 전혀 조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운명을 자각하고 있었다.

잡힐 때 죽음 정도는 각오했지만 설마하니 잡아먹히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모두 떨고 있었다.

“그…….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나쯤 남아서 추이를 볼까.”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넌…….”

총 든 사내는 조금 전까지 입맛을 다시고 있던 놈을 바라보았다.

미친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람을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 이럴 놈이었는데 몰랐던 건가.

‘뭐……. 몰랐던 것도 우스운 일이지.’

처음부터 알고 지냈던 것도 아니지 않나.

‘경솔한 놈이지만 실력은 좋아. 여기서 잘못되어서 죽는다 해도…… 상관없겠지.’

은신처를 분다?

그럴 것 같지도 않긴 했지만…….

분다고 해서 찾아올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찾아오면…… 뭐 그건 그것대로 좋고.’

수가 많아도 거기서 싸우면 다 잡아 죽일 자신이 있었다.

그 아수라장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그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그로테스크한 곳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라드들조차 그쪽으로는 접근을 안 하겠나.

아마 주변부에 있는 것들에게는 그 종을 막론하고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을 터였다.

“그래, 네가 남아. 혼자 올 수 있지?”

“네, 뭐.”

남기로 한 사내는 그저 칼과 창 그리고 새총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훌륭한 무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이런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는 정도인가?

두려움부터 느껴야 정상일 것 같은데…….

그는 떨기는커녕 그저 흥분해 있을 뿐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는 돌아간다! 가자!”

총 든 사내는 그런 상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차 문을 두드렸다.

그것을 신호로 해서 세 대의 트럭이 뒤로 돌아 나갔다.

“읍!”

“으읍!”

덜컹거리며 달려 나갔기 때문에 뒤에 있던 이들 중 몇 명이 비명을 질렀다.

재갈을 물고 있어서 비명이라기보다는 신음에 가까운 소리만 들려올 뿐이긴 했지만…….

“간다.”

지붕 위에 올라 총을 겨누고 있던 유현은 그러한 상대의 동태를 고스란히 살피고 있었다.

그런 유현을 차마 따라 올라가진 못하고, 밑에 서 있던 재원이 물었다.

“가요? 정말이죠?”

“속고만 살았나. 근데 하나가 남긴 남았어.”

“아. 하나요?”

“응. 하나만. 지금 계속 보고 있는데 진짜 그냥 가네, 나머지는.”

재원도 그렇지만, 유현도 이 광경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만 달랑 남기고 가……? 버린 건가? 아닌데……? 나름 무장을 했어.’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보니 뭘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햇빛을 연신 반사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철제로 된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쪽에서 이만한 파악이 가능하다는 건, 저쪽에서도 이 정도는 가능했을 거라는 걸 의미했다.

그러니까 지붕 위에 있는 놈이 철을 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된다 이 말인데…….

‘흠……. 뭐지, 찝찝하네.’

그냥 지금 쏴 버릴까?

상대가 사람이니만큼 쏴도 좀 찝찝하긴 하겠지만…….

유현은 어느새 총으로 상대를 겨누고 있었다.

‘에이…….’

그러나 관두긴 했다.

쏘는 게 좀 그래서는 아니고, 명중에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오예리라면 모를까 유현에게는 무리였다.

“갔어요. 나오세요.”

대신 유현은 위에서 내려온 후, 안에 있던 이들을 불러냈다.

“가, 갔다고?”

문이 열리는 대신 말만 들려왔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덜커덕

딱히 방음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집이니만큼 차량이 떠나는 소리 정도는 다 듣지 않았겠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예의 그 남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유현은 총을 뒤로 둘러메며 말했다.

그래 봐야 뒤에 있는 이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것이 어떤 신호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이 상황에 지쳤거나.

“의사가…… 있다고 했죠?”

“네.”

“환자가……. 환자가 있어요.”

여자는 여전히 공포에 질린 얼굴로, 그러나 지쳤다는 기색 또한 내비치며 안을 가리켰다.

무장은 없었다.

그러나 유현은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데리고 나오시죠.”

“그……. 네.”

해서 밖으로 나오게 했고, 그렇게 핏자국의 장본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이미 죽었다고 봐야 하는데……?’

유현은 환자를 보고, 다시 나머지 인원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극도의 공포감과 주린 배는 사람을 얼마든지 이렇게 만들 수 있는 법이니까.

사실 섬망이라는 것도 극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신병증이지 않나?

그렇게까지 액팅 아웃하고 있는 건 아니니, 이쯤 되면 차라리 강한 사람들이라 봐도 좋았다.

“일단 가면서 살피죠.”

유현은 굳이 여기서 안 좋은 말을 하는 대신 돌아가는 걸 택했다.

식량 찾으러 왔다가 혹 달고 가게 생긴 마당이긴 하지만…….

실재하는 위협을 봤으니 뭐라도 알아낼 게 있다면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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