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90화 (190/323)

190화 박원상 (3)

타다닥

홀로 남게 된 박원상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으…….”

자연스레 신음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붉게 물든 왼쪽 팔과 역시나 왼쪽 옆구리께가 눈에 들어왔다.

김태평이 총을 쏴서 그랬다.

귀신같이 쏴서 관통이라기보다는 그저 스쳐 지나간 축에 가깝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다.

피가 줄줄 새어 나올 정도의 상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찾았다.”

“죽었나? 그럼 곤란하긴 한데.”

“아니. 살아는 있는 거 같은데…….”

“그럼 다행이지 뭘. 일단 보자고.”

그런 박원상의 눈앞에, 아까 총에 쫓겨 도망갔던 병사들이 돌아왔다.

어찌나 놀랐던지 여전히 혼비백산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마 앞장서서 온 병사가 침착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주변을 배회하다가 싹 전멸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누가 뭐래도 이 주변에는 라드가 여전히 있지 않나.

게다가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는 생존자 사냥꾼들도 문제였다.

“일어날 수 있어요?”

병사 하나가 박원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대위나 중사쯤 되면 박원상의 처지를 알다 못해 그의 소인배적인 진짜 얼굴까지 아는 이들은 대놓고 무시했어도, 어린 병사들까지 마냥 그러진 못했다.

뭐가 되었건 나이도 많고, 또 교수지 않나.

게다가 박원상은 외적으로 볼 때 꽤 훌륭한 인간이었다.

외모도 그렇고, 목소리나 말투도 그렇고.

“아, 네. 으.”

“다행이네. 이쪽으로 가죠.”

“대체 어떤 놈들인 겁니까?”

“모르겠어요. 하씨……. 저기 대위님 있네. 아……. 시발.”

해서 박원상은 나머지 병사들과 함께 일단 차 있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자리엔 대위와 중사 그리고 병장의 시신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일단…… 일단 수습하자.”

“어? 여기서? 이제 곧 날도 저물고……. 위험할 거 같은데.”

“그럼 어째. 그냥 도망가?”

“도망가는 게…… 낫지 않나.”

“도망이라…….”

병사들은 그 시신들을 이리저리 끌다가, 누구 하나가 손을 탁 놓던 순간을 기점으로 해서 전혀 다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단 잔해를 밀고, 도망가자는 것이었다.

누가 공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제는 총격도 없지 않나?

확신이 설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나온 참인 데다, 뭐가 되었건 대로에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던 박원상도 총알에 두 번 꿰이긴 했을지언정 살아 있다 보니 그쪽은 오히려 안심이었다.

“도망가야 해. 어두워지면 어디든 위험해.”

“그건 그렇지, 시발.”

그렇다면 남은 위험은 이제 라드와 생존자 무리였다.

생존자 무리야 잔인한 놈들이긴 해도 같은 사람이니만큼 밤에는 움직이지 않겠지만…….

라드는 좀 달랐다.

녀석들은 밤에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한 놈들이었다.

그리고 한둘만 제대로 달려들어 부딪쳐도 일행은 몰살이었다.

“그럼 밀어! 이봐, 교수님. 밀 수 있어요?”

“어…… 네네.”

“그럼 좀 도와줘요. 알잖아요. 여긴 너무 위험해.”

“네네.”

박원상은 품 안에 담긴 물품을 저도 모르게 한번 바스락거리곤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잔해를 밀기 시작했다.

티 나는 행동이지만, 병사들도 경황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정신없이 잔해를 치우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왜 아무도 안 와?”

“설마 우리뿐인가……?”

그렇게 20, 30분가량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대화가 재개되었다.

슬슬 잔해 치우는 것이 끝나 가는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름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가는 시점이라는 얘기였다.

그러고 나서야 슬금슬금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분명 여기서 죽어 나간 것은 셋.

그리고 남은 것이 넷이니…… 남은 이들이 여섯이라는 건데 아무도 남아 있질 않았다.

“다 죽었다고?”

“어디 있을 수도 있어.”

“그렇다고 찾아봐……?”

“아니, 그건 안 돼.”

인간들의 세상이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은 어느 정도 회복된 마당이었다.

서울 한복판임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넘어가는 석양이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미세 먼지?

근처에 부유하는 먼지 말고는 보이는 게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해가 지고 있어……. 이대로 차 타고 바로 달려도 위험할 수 있다니까? 잔해가 여기뿐일지 어떻게 알아. 그런 보장이 있냐?”

“아……. 그렇지.”

“차라리 빨리 복귀해서 지원 요청을 하는 게 나아.”

“상암으로 가는 건?”

“시발. 우리 총으로 당했어. 처음에 저격 그거…… 그게 민간인 같냐?”

“저쪽도 못 믿는다……. 그래, 도망가자.”

박원상은 병사들의 대화가 다른 방향으로 튀면 끼어들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김태평이 의도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어서 그냥 잠자코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교수님. 교수님도 뭐 다른 의견 있는 건 아니죠?”

“아, 네. 저도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선태가 나섰을 수도 있어요.”

“대체 왜…… 이 미친.”

“저번 소문이 사실이었나?”

“뭐.”

“수원 폭격하네 어쩌네 했었잖아. 대통령이…… 견제한다고.”

“그게 말이 되냐? 그리고 그런 얘기가 돈다고 치자. 그게 어떻게 우리 같은 말단한테까지 내려와.”

물론 살짝 운을 띄우긴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딱히 대세에는 지장이 없어서, 일행은 곧 차에 올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운전하는 이를 포함해 모두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부우웅

그렇게 멀어져 가는 차량을, 김태평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병신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려?”

“쫄아서 그렇죠. 대뜸 총 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퇴각하는 신호 확실히 보냈잖아? 대위 수급도 잘라 왔는데. 딱 보면 목표가 대위인 줄로 알아야지.”

“그게……. 뭐. 이제 와서 정예 노릇 하는 거지, 원래 정예였겠습니까? 기껏해야 라드랑 싸우는 애들이죠, 뭐.”

김태평은 쯧 하고 혀를 차다가, 이내 다른 쪽을 돌아보았다.

다른 병사들이 도망했던 방향이었고, 이쪽은 그야말로 전혀 다른 양상의 폭력이 펼쳐졌더랬다.

“근데 아까 그 새끼들…… 사람이었지?”

“네.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실제로 그런 놈들이 있을 줄은…….”

“그러니까 말이다.”

“처리할 걸 그랬을까요?”

“아니, 됐어. 어차피 이 근처는 정부 영역이야. 혼란이 벌어지면…… 우리로서는 나쁠 것도 없지.”

말 그대로 인간 사냥이 펼쳐졌다.

총 든 병사들이 헐레벌떡 도망가다가 생존자 하나를 조우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누가 봐도 선하게 생겼던 그는 도망갈 길을 제시해 주었고, 병사들은 의심할 새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당연하다고 하면 좀 너무하긴 한데…….

그곳엔 낙원이 아니라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꽤 역겹더구만.”

“총까지 습득했으니 위협이 될 겁니다.”

“그래. 잘 먹어서 그런가 통통하더라고. 어지간한 군인들보다도 더.”

“네. 거참. 세상이…….”

“일단, 1차 목표는 달성했으니, 돌아간다. 나머지는 박원상에게 달렸어.”

“네, 팀장님.”

사람이 사람을 먹기 위해 사냥하는 현장이라니.

나름대로 험악한 삶을 살아왔고, 따라서 험악한 꼴을 많이 보아 왔다 자부하는 김태평조차 저런 건 처음이었다.

미친놈들.

사람을 사람이 그런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 살을 탐하는 눈이라니.

‘에이, 시발.’

김태평은 고개를 젓다가, 이내 준비해 왔던 다른 차량을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본 게 있어서 그런가, 그를 포함한 모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후우…….”

한편 남산에 도착한 박원상은 취조 아닌 취조를 당하고, 방에 돌아왔다.

그러곤 김태평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라드의 수명에 대해 언급하시고, 그걸 가속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고 말해 보시죠. 그럼…… 저들도 솔깃해할 거라고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유현의 말이었다.

확실히…… 괜찮은 말이었다.

아니, 당연한 말이었다.

라드의 수명…….

줄어드는 게 당연했다.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신진대사가 급속화되었을 뿐더러 애초에 남성 호르몬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오랜 생존에 그리 적합한 물건이 아니었다.

‘남산은 그걸 모르지.’

이런 인사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박원상에 대한 대우도 더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꽤 괜찮은 취급을 당하다가 연구에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이런 꼴이 되지 않았나?

‘망할…… 망할 새끼들.’

박원상은 방을 돌아보았다.

말이 방이지, 함께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 그냥 개판이었다.

원래 독방을 썼다는 걸 생각하면 기막힌 추락이었다.

“저, 김조은 박사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박사님께?”

하여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박원상은 김조은에게로 향했다.

“기다리라는데.”

박원상은 김조은 아니라 남산의 다른 누구도 딱히 바쁘지 않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연구?

실험?

여기서 뭘 어떻게 한다고.

그저 대통령에게 보고할 거리를 찾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마…… 태반은 거짓말일 터였다.

그러니까 기다리라는 말은 그저 모욕감을 주기 위함이라는 얘기였다.

‘그래, 안 된다고 안 한 게 어디냐.’

다만 처지를 잘 알고 있고 또 이미 마음속에 다른 뜻을 품어 버린 지 오래인 박원상은 참을 수 있었다.

별로 괴롭지도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다 갚아 줄 수 있을 테니.

김태평이나 유현의 계획에 그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다는 걸 전혀 깨닫지 못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 또한 소시오패스적인 기질에 기인한 오인이었으니, 다른 이를 욕할 것도 딱히 없었다.

“들어오라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릴없이 몇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박원상은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아, 박 교수. 웬일이지?”

김조은의 연구실은 여느 대학 병원 교수 연구실과 다름없어 보일 정도로 깔끔했다.

여전히 캡슐 커피가 보급이 되는지, 방에는 은은한 커피 냄새마저 배어 있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어떤?”

“라드의 수명에 대해서입니다.”

“라드의 수명……?”

김조은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유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지 임상을 다루는 의사는 아니지 않나.

때문에 미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러니까 라드화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자체는 잘 봤지만, 도리어 라드는 잘 몰랐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겠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라드는 결국 사람입니다. 난폭해지고 거대해진 사람이죠. 그들의 수명은…… 아무래도 정상인에 비해 훨씬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얘기를 딱 들었을 때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 것은 또 아니었다.

“더 얘기해 보게.”

박원상은 반짝거리기 시작한 김조은 박사를 보면서, 그와 마주 앉았다.

이전 같았으면 꺼지라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커피까지 권해 오고 있었다.

‘통하는군…….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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