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박원상 (2)
“3시 방향. 군인 셋에 박원상 합류했습니다. 나머지 무리는……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제압 사격해.”
“흩어지지 않으면……?”
“죽여야지, 별수 있나.”
“네.”
팀원들까지 해 봐야 김태평 일행의 수는 고작 다섯이었다.
그러나 이미 고지를 선점한 데다 건물 세 군데로 나뉘어 있다 보니 병사들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타다다당
일단 대위가 죽고 시작한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지휘관이 아무것도 못 하고, 아니, 자신이 죽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가 버렸으니 뭘 어떻게 하겠나.
심지어 그 후로도 섬뜩한 저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컥…….”
중사도 쓰러졌다.
김태평이 그를 지목한 탓이었다.
오예리 형사는 아무래도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저녁하는 데 있어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한 가지 생각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교수님이었다면 망설이지도 않았어.’
돌이켜 보면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일이 전부 옳은 일이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나.
대의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의 그 자체인 느낌 또한 결코 아니었다.
특히 현경과 박재한, 이진호 형사의 일이 그러했다.
‘필요한 일이야.’
그러나 합리적인 선택이었고, 돌이켜 보면 필요한 일이었다.
탕그렇게 오예리 형사가 대위를 암살하고 두 발을 더 쐈을 때, 나름 구심점이 되어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모아 무리를 이루고 있던 중사와 선임 병사 하나가 각각 쓰러졌다.
하나는 아예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좋아. 잘하셨습니다. 이거, 특수 부대보다 나은데요?”
김태평은 흡족한 결과에 미소를 지었다.
구심점을 잃은 병사들은 혼비백산한 채 주변 폐건물 등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라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희생되는 것까지 고려하기는 어려웠다.
지금 당장은 박원상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자리 지키고 계십시오. 저격하다가 가까이 오는 거 못 보고 당하면 낭패니까……. 소리 잘 들으시고. 제가 이거 남겨 놓고 갈 테니, 누가 오면 꽤 시끄러울 겁니다.”
“네, 팀장님.”
“그럼.”
김태평은 박원상이 속한 무리를 쫓기 위해 급히 달려 내려갔다.
옥상으로 통하는 길목에 센서 알람을 남겨 놓은 채였다.
레이저로 일정 크기 이상의 생명체가 접근이 감지되면 부저가 울리는 형태의 물건이었다.
남들이 들을까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오예리 형사가 끼고 있는 이어폰에서만 울릴 테니.
‘여차하면 나도 오지.’
오예리 형사는 박원상보다 중요한 인물이었다.
단지 유현이 아끼는 이라서는 아니었다.
오늘 보니 확실해졌다.
전장에서 이만한 저격수가 있다는 건, 거의 사신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이런 식의 전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 더더욱 그럴 터였다.
탕탕김태평과 다른 팀원 둘이 박원상 일행을 쫓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나머지 팀원 하나가 총을 지속적으로 갈기고 있었다.
발치에 갈겨 대는 통에 병사들은 총을 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쫓기고 있었다.
“으, 으!”
박원상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용케 병사 하나의 팔을 쥐고 뛰고 있긴 한데, 이미 다리가 풀려서 속도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거, 이것 놔! 이 시발놈이!”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니었다.
대위가 죽고 이제 불과 1, 2분이나 지났을까?
패닉에 빠진 병사는 그런 박원상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어, 어!”
“야! 저 인간 데리고 와야지!”
“네가 데려오든가, 시발!”
앞서가던 병사가 뭐라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기실 그 또한 책임질 생각 따위는 전혀 없어서 더더욱 그랬다.
게다가 방금 발길질을 해 댄 병사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따르던 대위가 죽어 나가고, 이후에 날아오는 총탄 때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들이 제아무리 지금까지 전투를 많이 겪어 왔다고 해도, 그건 라드와의 싸움이었으니까.
“잘됐군.”
끌려가다시피 하던 박원상은, 다리가 풀린 데다가 발길질까지 당한 마당이다 보니 아예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으, 으으!”
물론 겁이 많고, 또 생존 본능이 강한 사람답게 그 와중에도 바닥을 기긴 했다.
별 소용은 없었다.
탕탕요원들은 박원상을 멀리 에워싸는 형태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멀어져 가는 병사들에게 총을 쐈다.
방향이 김태평까지 하면 무려 셋이나 되어서 병사들은 대응 사격을 하면서도 좀체 적의 규모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대체 시발! 뭐야!”
“이거……. 설마 김선태 그 새끼 쪽은 아니겠지?”
“그 인간? 그 인간이 왜?”
“모르지 시발! 근데 아까 대위님, 중사님 한 방에 가는 거 봤어? 그거…… 특수 부대 아니겠냐?”
“이런 미친…….”
정체 또한 오리무중이었는데, 전혀 엉뚱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들이 대체 왜 여길 치겠나?
비합리적인 생각임을 넘어 아예 말이 안 되는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제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패닉이 그들을 몰아세우고 있어서 그랬다.
“박원상 교수님?”
덕분에 총격이 세 방향에서 두 방향으로 줄었다는 사실도, 또 총격 빈도 자체도 줄었다는 사실 또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몸을 폐허 뒤에 숨긴 채 아무 데나 총을 쏘고 있을 따름이었다.
물론 그것도 위협적이긴 했다.
눈먼 총알이라고 해서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어. 어?”
“일단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해서 김태평은 몸을 숙인 채 버려진 차 뒤로 박원상을 데리고 왔다.
제대로 살핀다면 충분히 시야에 들어올 만한 거리에 병사들이 있었지만, 전혀 고려치 않아도 될 사안이었다.
병사들은 잔뜩 겁먹은 채 자라 새끼처럼 이따금 총구만 내밀 뿐이었다.
그것만 해도 솔직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저격을 목도하지 않았나?
실제로 오예리 형사가 살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미 병사들은 전멸했을 터였다.
“박원상 교수님.”
“누구…….”
“저는 김태평이라고 합니다. 국정원 소속 요원입니다.”
“아…… 국정원……. 아, 아!”
그사이 박원상은 차 뒤에 숨어 김태평의 얼굴을 확인했다.
처음엔 워낙에 경황이 없어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라서 그랬다.
마치 짐승 잡아 오듯 죄수들을 끌고 오던…….
다시 말해 실험체를 잡아 오던 이 아니던가.
어느 순간 시야에서 사라져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날 줄이야.
“저는 마트에 있었습니다. 강변…… 테크노 마트요.”
“거기……. 혹시……. 제 아내를…….”
“네, 봤습니다.”
“아.”
박원상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테크노 마트 얘기를 듣자마자 아내부터 물었다.
소문난 애처가이지 않았나.
세상 무엇에도 일정 이상의 정을 주지 않는, 일종의 소시오패스인 그에게 아내는 퍽 특별한 존재였더랬다.
“여기. 저와 함께 있었죠.”
“저, 정말 그렇군요. 가, 감사합니다.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다…….”
김태평은 왈칵 눈물을 쏟고 있는 박원상을 내려다보다가, 사진을 보여 주었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었는데, 솔직히 그리 보기 좋은 사진들은 아니었다.
구출했을 때부터는 이미 현경의 정신이 나가 있어서 그랬다.
그 후로는 뭐…….
말해 뭐 하겠나.
라드가 되어 버렸는데.
“지, 지금 아내는 어디에 있습니까?”
박원상은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그러곤 답도 듣기 전에 말을 이었다.
“제가……. 저도 데려가 주십쇼. 여긴……. 여긴 진짜 지옥이에요.”
절박해 보였다.
진심으로 보이기도 했고.
‘널 내가 왜 지금 데려가겠냐.’
물론 김태평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얘기일 뿐이었다.
아니, 유현이 여기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애초에 유현과 김태평 둘이 세운 계획에 박원상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그저 이용해 먹을 생각뿐이라고 하면 좀 그렇겠지만, 실제로도 거의 그렇긴 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 현경 씨는 치료 중에 있어요.”
“네? 치료요? 어디 다쳤습니까?”
“아뇨. 그건 아니고……. 김선태……. 그 인간이…….”
“김선태? 그 사람이 뭐요?”
박원상은 김선태의 이름만 듣고도 바들바들 떨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긴 했다.
그가 여태 저질러 온 짓이 있지 않나.
김태평은 때문에 딱히 뭐라 하는 대신 그냥 하고자 했던 말을 이었다.
“모르셨군요? 하긴 알고 있었다면…… 방송에 계속 나오지 않으셨을 거 같습니다.”
박원상이 나오는 방송은 수원 인근에도 방영이 되고 있었다.
끝없는 프로파간다의 연속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노골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통령과 그의 행적을 무슨 용비어천가라도 되는 듯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희망을 심어 주었는데, 이 사태가 곧 ‘정부의 손’에 의해 끝날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러니까 방금 김태평의 말은 진심이었단 얘기였다.
“뭘…….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트……. 그거 김선태가 무너뜨린 겁니다.”
“네에? 라드가 아니라요?”
“정확히 말하면 라드를 끌고 왔습니다. 그 라드의 우두머리를 잡기 위해서였죠.”
“허……. 허……! 어찌……. 어떻게……!”
이것도 반은 진실이었다.
김선태도 마트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를 하긴 했지 않나?
물론 생판 거짓말이라고 해도 김태평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저는 봤습니다. 김선태, 그 인간이 아내분을 알더군요.”
“네?”
“놈이 라드를 풀었습니다. 부인분을 향해서요.”
“아니, 그럼…….”
“결국, 물렸어요. 그걸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
박원상은 잠시 혼절할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아니, 아마 그대로 두었으면 혼절했을 터였다.
김태평은 시간이 없기도 하고, 이 자리에 계속 있는 것이 위험하기도 해서 박원상의 어깨를 툭 하고 내리쳤다.
“일단 치료 중에 있습니다.”
“치료? 이게 치료가 된답니까?”
“뭐……. 여느 라드랑 다르긴 합니다. 말도 통하고요. 가끔 이성을 잃긴 하지만…….”
“뭐……라고요? 대화가……?”
“네. 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하려면 남산 설비가 필요합니다.”
“누가……. 그걸…… 대체 누가.”
“정유현 교수님입니다.”
“아……. 유현이…….”
박원상은 뿌연 눈이 된 채 정유현이라는 이름을 몇 번인가 되뇌었다.
“녀석이라면……. 믿을 수 있죠. 친구니까.”
비록 몹쓸 짓을 저지른 마당이지만, 애초에 그런 걸 자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했겠나?
그에게 유현은 여전히 친구였다.
‘이럴 거라고 하더니……. 진짜 이러네? 미친.’
김태평은 어이가 없어 속으로 혀를 차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남산이 필요합니다.”
“남산……. 거기 꽤 삼엄한데……. 어떻게 뚫으시려고요?”
“교수님이 도와주셔야죠. 자, 이거 가져가십시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져온 물품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