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박원상 (1)
“박원상 교수.”
박원상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말에 어폐가 있었다.
사실 눈을 뜨고 있었다.
제대로 잠든 지, 꽤 오래되었다.
“네, 네.”
불안과 공포 때문이었다.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 보니, 더더욱 그렇게 되고 있었다.
이제 이들은 필요 없는 이들을 가차 없이 쳐 내고 있었다.
특히 마트에서 온 인원들은 같은 사람으로도 보고 있지도 않은 듯했다.
“가야지.”
“아……. 네. 준비했습니다.”
“좋아. 그래도 생긴 게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지, 안 그래?”
“네, 대위님.”
그렇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쓸모를 입증해야만 했다.
그것이 아무리 굴종을 강요하는 방식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타.”
“네.”
남산 기지에서는 방송이 불가했다.
이쪽은 애초에 지하 기지인 데다가 처음부터 이쪽으로 이전한 이유 자체가 보안 때문이지 않나.
돌이켜 보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느낌으로 괜히 도망 나온 것이긴 한데…….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 전역에 무언가를 송출하는 건 불가능한 곳이었다.
부우웅
그렇다 해서 청와대 측에서 프로파간다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정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여론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아 그랬다.
더욱이 모든 것이 무너진 지금,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것은 거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지 않겠나.
게다가 이미 중구를 비롯한 주변 지역을 수복해 낸 청와대에게 디지털 미디어 단지까지 길을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 새끼들 또 저 지랄 쳐 놨네. 내려!”
물론 어렵지 않다는 건 통수권자, 즉 명령을 내리는 이에게 국한된 얘기이기는 했다.
실제로 그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더럽게 어려운 일이었다.
“시발, 대체 이 새끼들 이게 뭔 수작이지?”
“길 막고 매복했다가 치려는 거 아니겠습니까?”
“라드가?”
“아시잖습니까? 요새 좀 심상치 않아요.”
“심상치 않긴……. 시발. 그런 말 좀 하지 마. 여기서 더 X 같아진다고?”
“그건……. 그렇게는 생각하기 싫긴 하네요…….”
일단 길을 뚫어 놓긴 했는데, 그 길이 항상 뚫려 있는 건 또 별개의 일이었다.
이 망할 놈의 라드들 때문이었다.
간혹 잔해들이 길가에 다시 널려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냥 그렇게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생존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차의 잔해와 핏덩이들이 보일 때가 있었다.
때문에 대위 또한 말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지만 정황상 파악은 하고 있었다.
라드 놈들이 지능적으로 ‘사냥’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그것도 함정을 파서.
‘대체 여기를 어떤 놈들이 오가는 거야……?’
청와대는 여전히 상당히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특히 김선태 소장으로 대표되는 특수 부대는 제법 강력해서, 도저히 라드로는 대적이 불가할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놈들을 잘만 이용하면 이 길을 완전히 깨끗하게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청와대는 차근차근 주변부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 위성 기지라 할 수 있는 남산이나 상암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는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심상찮은 소문이 있긴 하지…….’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상암이나 남산 기지로 무작정 찾아오는 난민의 수도 적지 않았다.
특히 상암이 그러했다.
남산은 기지 특성상 숨겨져 있는 곳이다 보니 일반인들로서는 거기 뭐가 있는지 당최 알 수도 없는 것에 반해, 상암 기지는 나름 프로파간다를 위해 세워진 곳이다 보니 꽤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랬다.
‘생존자를 사냥하는 생존자들이 있다지……?’
세상이 망해 버렸다, 망해 버렸다 하긴 했는데…….
진짜로 망한 모양이었다.
사냥이라는 게 진짜로 사냥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하는 상황인데, 지들끼리 잡아 먹고 있다니.
‘어쩌면 이게 라드가 아닐 수도 있어.’
대위는 총 든 병사들 사이에 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색이 프로파간다를 위한 부대다 보니 나름 수가 많았다.
잔해물을 치우기 위한 공병을 제외하고서도 물경 열은 넘어갈 정도였다.
그냥 장정 열 명만 있어도 적지 않은 무리일 텐데, 총으로 무장을 하고 있다 보니 습격 따위는 아예 상정하고 있지 않았다.
생존자 무리건 라드건 간에 훈련받은 군인들이라면 쓸어 버리고 도망갈 수 있지 않겠나.
“다 됐습니다.”
“좋아. 가지.”
“근데……. 이렇게 매번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겁니까? 저 인간 그냥 상암에 처박으면 안 되는 거예요?”
잔해물 치우느라 흙이 묻은 손을 훌훌 털어 내던 중사의 말에 대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에서 그렇게 하라잖아. 뭐……. 저 인간이 가끔 연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니……. 상암에 그냥 두기도 아깝긴 하겠지. 이렇게 오가면서 여기 정리를 해 두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고……. 내가 뭘 알겠어.”
“뭐……. 까라면 까야죠.”
중사 또한 고개를 가로저었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윗대가리들 생각은 알 수가 없었다.
대통령의 속셈은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군부대가 일종의 무력 시위가 되고, 그것을 본 상암 주변의 시민들이 더 잘 속아 넘어가는 데에 있었지만…….
노회한 정치인의 속을 군인들이 어찌 알겠나.
방금 말했던 대로 그냥 까라면 까는 수밖에 없었다.
“가는군.”
그러한 병사들, 그리고 차 안에 타고 있는 박원상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들이 있었다.
김태평과 팀원들이었다.
고작해야 모두 합해 다섯이었다.
하나가 죽었음에도 다섯이나 되었던 것은, 오예리 형사가 합류한 덕이었다.
“쏠 수 있겠습니까?”
김태평은 당연하지만 사람을 죽여 본 경험이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뿐 아니라, 팀원들도 그랬다.
그러나 오예리는 아니었다.
경찰은 법의 테두리 속에서 움직여야만 해서 그랬다.
심지어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나서도 라드만 죽였지 사람은 죽인 적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쏴야겠죠.”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필요한 일이에요.”
“네.”
그러나 오예리 형사는 제법 진중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총기를 점검하면서였는데, 저격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략 400미터 정도에 있는 과녁은 쉽게 맞힐 수 있는 실력자라는 걸 감안하면 우습게 볼 일은 아니었다.
“근데 얼마나 걸릴까요?”
오예리는 그렇게 총을 들고 자리를 잡다가 물었다.
김태평으로서도 알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밖에 없는 법이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모르죠. 다만 그리 늦지는 않을 겁니다. 밤은 위험할 수 있으니까.”
“네, 그냥 계속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네. 팀원이랑 계십쇼. 저희는 잔해물 다시 놓으러 가겠습니다.”
김태평은 여상한 얼굴로 올라가 있던 건물에서 내려와, 잔해물을 다시 밀어 넣기 시작했다.
벌써 이 짓도 세 번째였다.
라드의 행각으로 위장하기 위해 닭의 피를 뿌려 놓고, 끌고 온 차량 하나도 오늘 일부러 희생시켰다.
덕분에 대위를 비롯한 병사들은 완전히 라드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다른 놈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딱히 주변을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
‘오늘이다.’
총격을 가해 전열을 흩어 놓고…….
박원상과 접선해, 내부에서의 반역을 꾀한다.
이것이 전체적인 작전의 골자였다.
전적으로 박원상에게 달린 작전이었고 당연히 김태평의 마음에 드는 계획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남산을 확보할 수 있다면……. 청와대도 견제할 수 있어.’
안 되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유현이 말했다.
그렇다면 수원에서 버티면서 여론전에 나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거라고.
-아마 지금쯤이면 정부 측에서도 라드의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아졌을 거라는 걸 알아냈을 겁니다.
유현의 말이었다.
정부가 그렇게 유능할까 싶었지만, 김선태를 비롯한 여러 일선 부대가 주변부 소탕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김태평도 알고 있었다.
대통령의 욕심으로 인해 교외 지역보다는 대개 서울 중심부의 수복에 주력하고 있긴 하지만…….
노인 인구가 뭐 서울이라고 해서 적겠나?
-어쩌면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사실 바이러스를 디자인했다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거거든요.
더군다나 연구, 그러니까 실험 얘기가 나오니 더더욱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지금 대통령은 서울의 중심부만 수복하고, 여론을 조작한 채로 버티고 버텨 라드가 사라진 세상에서도 왕으로 군림할 작정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그런 새끼한테 나라를 계속 맡길 수는 없어.’
아직 라드가 횡행하고 또 올라오는 길에 생존자들 무리 중 일부가 사람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목도한 마당에 사태의 끝을 상정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는 일이긴 했지만…….
어쩌겠나.
그게 걱정이 되는데.
부우웅
그렇게 잔해물을 평소보다 더 촘촘히 채우고 기다리고 있자 차량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갈 때와 정확히 같은 일행이었다.
끼이익
차는 잔해물을 확인하자마자 거칠게 브레이크를 잡았는지 덜컹거리며 섰다.
그 뒤를 따르던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봐야 낡은 봉고 한 대에 SUV 한 대가 다긴 했지만, 하여간 일행 전원이 멈췄다.
“이 미친놈들이 오늘따라 지랄이네.”
“심상치 않은데…… 주변 돌아볼까요?”
“지랄 마. 넌 이런 데 더 있고 싶냐? 대충 사주 경계하면서 치워!”
“아, 네.”
중사 하나가 불안한지 이런 말을 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사실 중사도 괜히 해 본 말에 가까웠던 터라 군말 없이 잔해물을 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잔해물이 많다 보니 총 들고 경계하던 인원들 중 몇 명도 총을 등 뒤로 둘러메고 잔해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사이 대위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다가, 이젠 귀하디귀한 물건이 되어 버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금입니다, 형사님.”
“하아.”
그렇지 않아도 오예리 형사는 대위를 겨누고 있었다.
‘대의를 위한 일이라…….’
평소의 오예리였다면, 그러니까 사태 이전의 아니,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의 오예리였다면 대통령을 비롯한 사태의 주범만 아니라면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았을 터였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서 그랬다.
‘교수님이었다면……. 망설이지 않았겠지.’
하지만 이진호 형사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들과 그럴 때마다 유현이 보여 준 모습이 그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지 한참이었다.
타앙
제대로 된 소음기 대신 조악한 형태의 소음기, 즉 솜 같은 걸로 총구를 가린 k-2 소총이 불을 내뿜었다.
“어……?”
잔해를 밀어내느라 도로 주변에 소음이 너무 심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담배를 입에 불고 막 불을 붙이려던 대위가 툭 하고 쓰러지는 순간에조차도 옆에 있던 이들 말고는 눈치챈 이가 없었다.
“자, 제압 사격. 너무 많이 죽일 필요는 없어. 방향 조절이 더 중요해.”
“네.”
그 후로 총격이 더 이어졌다.
목적은 살상이 아니라 상대를 완전히 흩어 놓는 데 있었다.
때문에 방향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는 듯 보였는데, 그 결과 부대는 갈기갈기 찢긴 채 주변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김태평의 시선은 그중 박원상이 뒤섞인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