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87화 (187/323)

187화 죽음 그리고 (2)

“제가…… 소리를 질렀다고요?”

안정제를 맞고 잠시 잠에 들었다가 깬 이진호 형사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처음엔 전혀 기억을 못 하는 듯했다.

그러나 좀 지나자, 머리를 메우고 있던 뿌연 안개가 걷어지는지 슬금슬금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아…… 이게 그럼……. 이……. 이거 뭐죠.”

막상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할 때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보였었는데, 지금은 또 그렇지가 않았다.

혼란스러워 보였다.

아니, 이걸 뭐라고 할까.

당황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았다.

“충동입니다. 충동.”

유현도 이 사람이 왜 이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해 가만히 있었다.

그사이 나선 것은, 정확히 같은 처지였다고까지는 못해도 상당히 비슷한 처지였던 이순규였다.

“충동……?”

그 또한 호르몬의 폭풍으로 한바탕 난리를 친 후에, 그 기억을 더듬다가 화들짝 놀란 경험이 있었다.

분노? 슬픔? 어떤 갈망?

아니, 이제 와 판단해 보니 충동이었다.

전두엽이 극도로 억제되는 동시에 남성 호르몬과 아드레날린 등이 미친 듯이 분비된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그게 맞았다.

어떤 작은 생각이 들었을 때, 산들바람 같던 그 생각이 돌연 폭풍이 되어 버리는 것.

그리하여 다른 모든 생각과 이성을 휘감아 날려 버리고 종래에는 충동으로 인한 행동만 남아 버리는 것…….

‘나는 그게 라드가 폭력적인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이 또한 어떤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었다.

그저 이순규의 개인적 경험과 사유일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것을 신성시하여 떠들고 다녔겠지만.

그는 의료진이고 그 전에 과학자였다.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이론에 대해서는, 제아무리 경험이 있다고 해도 n수가 적은 경우엔 맹신하지 못했다.

“그…… 그래. 그렇군……요. 이건…….”

“너무 곱씹다 보면 또다시 그 충동에 잡아 먹힙니다.”

“아.”

이순규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사람 눈이 무언가 물들어 간다는 표현이 단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방금 이진호의 눈은 그야말로 정상이 아니었다.

다행한 것은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순규는 그런 이진호를 보며 저어하다가 이내 물었다.

“어떤 충동이었죠? 상대를 물고 싶었나요? 아니면 단순히 배가 고팠어요?”

“어…….”

이순규의 말에 다른 이들은 좀 어리둥절해했다.

특히 박중 대위를 위시한 다른 병사들이 더더욱 그러했다.

아까 상황이 저런 거랑은 제법 거리가 있지 않았나?

아니, 전혀 상관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뭔 물고, 배가 고파?

“배가 고픕니다. 배가……. 배가……!”

그러나 유현과 재원 등은 그런 이진호를 보면서 이순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이야 인간이지만.

한때 이순규는…….

그야말로 뭔 얘기를 해도 배고픈 것으로 이어졌더랬다.

그게 비단 이순규만의 일이 아니었음이 지금 밝혀지게 된 것이었다.

“일단 밥을 좀 줄 수 있나요?”

해서 유현은 박중 대위에게 요청했다.

박중 대위는 이제 어지간한 일로는 놀라지 않을 거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데 뭐 놀랄 일이 있겠나.

벌써 사람 형상을 한 라드를 몇이나 죽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였다.

아픈 사람을 라드가 물게 했다질 않나…….

방금 라드처럼 고개 팩 돌려서 자기 물려고 했던 사람에게 밥을 주라고 하질 않나…….

‘이게 진심인가……?’

박중 대위는 그런 유현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깨달았다.

눈앞의 사람은 오히려 자신보다도 더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그러니 이 결정이 감정에 의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 알겠습니다.”

단지 필요해서 주는 것일 뿐이라는 얘긴데…….

‘내가 뭘 알겠냐……. 대령님이 까라면 까는 거지.’

일단 전폭적인 지원을, 이 기지 내에서만큼은 해 주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굳이 거기까지 헤집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유현은 유명 인사였다.

해서 박중 대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미 주변부 경계는 옥상부터 해서 철저히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 주변 라드들이 다른 건 몰라도 총소리에는 제법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그리 위험한 일은 없을 터였다.

물론 어두워지면 또 모를 일이긴 한데…….

그 전에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확실히 라드화가 진행이 될 때 최우선적인 충동은 배고픔이군…….”

그렇게 밥을 가지러 간 사이 유현 일행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이순규였다.

그의 충동도 그러했고, 방금 이진호의 충동도 그러하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나.

“특이하네. 사실 감염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바이러스가, 그렇게 행동하는 게 더…… 익숙한데.”

유현이 말을 받았다.

“아뇨, 형. 라드 바이러스는 여러모로 다르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바이러스로 상정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일단 이건 인공적으로 탄생했거나 적어도 인공적인 수정이 가해진 놈이에요.”

“거기에…… 무차별적인 변이가 이루어지고 있지. 아마 순규를 감염시켰던 놈하고 지금 이건 질적으로 다를 거야. 본질은 비슷하겠지만…….”

인공적으로 탄생한 바이러스.

그 말에 정작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들이 아니라, 주변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움찔했다.

이런 망할.

너무 무섭지 않나.

이런 걸 만들다니.

“충동이 있을 때 그걸 억제하기만 하는 게 능사는 아냐. 적절히 조절해 주긴 해야겠지만……. 하여간 밥은 규칙적으로……. 내가 하루에 4끼 정도를 먹었나?”

“아니, 5끼.”

“그것만으로 이렇게 커졌나.”

이순규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한창 자라길 원했을 때는 더럽게 안 크더니, 정신없이 아플 때는 괴물처럼 커져 버렸다.

이것도 끼니를 제한한 덕이라는 걸 생각하니 새삼 호르몬의 영향이라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박원상이 호르몬에 미쳐 가지고 그것만 연구했는지도 알 것 같았고.

확실히 인간은 호르몬의 노예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는 존재였다.

“아무튼, 그렇게 주면서 지켜보자 이거지?”

“응. 그리고 일단 재갈을 물리자고. 여기서 계속 볼 거 아니지 않나?”

이순규는 깨진 유리문을 보며 물었다.

물음의 대상에는 유현뿐만이 아니라 박중 대위도 들어가 있었다.

철책을 따고 나왔다는 사실을 제외한다고 해도, 이곳은 방어에 그리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박중 대위의 시선은 아까 쓰러졌던 병사에게 머물러 있었다.

“옮길 수 있겠습니까?”

“일단 약 들고 가야죠. 어차피…… 관찰하는 게 다예요, 지금은.”

“그렇군요…… 이런 망할.”

박중 대위는 진짜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물어봐야 아니라고 하면 뭐 어쩌겠나.

민간인 중에 간호사가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의사 넷이 떠들어 대면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디 있는지 수배해서 찾는 것도 일이었다.

지금 세상은 모든 것이 통제 아래 있지 않았으니.

“천천히 옮겨 보죠. 흔들리는 건 위험합니다. 오히려 이쪽 둘은 괜찮을 거 같고. 박재한 요원도…… 언제까지고 저렇게 둘 수만은 없으니 데리고 가죠.”

“그러죠. 그래도 땅에 묻힐 수 있으니…….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김태평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사실 몇몇 요원들, 그러니까 작전 중에 사망해 버린 요원들 중 일부는 그 자리에 놓고 오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었다.

쫓기고 있는데 어떻게 수습을 한단 말인가.

심지어 윗대가리들은 사람이 죽은 것보다 죽은 사람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더더욱 꺼렸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지문 자체를 없애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그렇게 방치된 유해가 들짐승들에게 찢기는지 어쩌는지는 알 방도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김태평의 말이 완전한 기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들것으로 옮겨서…… 트럭에 실으면 됩니까?”

“이 둘은 그래도 됩니다만……. 병사는 위험해요. 그보다는 좀 더 안전하게 옮기는 것이 좋아요.”

유현 또한 박중 대위를 따라 병사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아까보다 배가 약간 부어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만져 보니 그런 것 같진 않았지만.

하여간, 흔들려서 찢어진 간이 더 찢어지거나 하게 된다면…….

‘그때는 손을 쓸 수가 없을 거야.’

사실 지금도 장이 찢어졌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최대한 입으로 먹는 건 뒤로 미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내부 파열이 발생했다면, 이미 변이 빠져나오면서 복막염을 일으키긴 했겠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았다.

장간막이 막고 있는 상황에서 음식물 괜히 들어갔다가 새면 난리가 날 테니.

부우웅

잠시 후 현경과 이진호 형사를 실은 트럭이 떠나고, 병사는 부대 안쪽에 두고 있던 군용 앰뷸런스에 탄 채 사령부 근처로 이송되었다.

덜컹

그 차에 타고서 유현은 앰뷸런스 부르고 하는 게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걸 느꼈다.

애초에 이거 군용 차량 아닌가.

흔들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거기에 더해 딱히 정비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었는지 기억 속 앰뷸런스보다도 더 흔들렸다.

‘찢어지면 할 수 없겠어…….’

일이 이쯤 되면 그냥 인명은 재천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랬습니까?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보다…… 실험에 진척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병사의 부상을 박중 대위는 엄청나게 신경을 쓰고 또 그에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부대의 장인 황 대령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그는 병사보다는 오히려 이진호 형사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제 보니 아까 같이 있던 이들이 다 박중 대위의 사람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설렁설렁 해 가지고서…… 어떻게 여길 다스릴 수 있겠어.’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

“네. 한 명이 제 친구와 비슷한 경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충동에 의해 이성을 잃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럼 이론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벌써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뭐……. 희망적인 상황입니다.”

“잘됐군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모두 요청하십쇼. 일단 그…… 형사님 여기 두시고. 누가 뭐래도 여기서는 여기가 제일 안전하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둘이 그런 말을 나누는 사이, 김태평은 따로 움직였다.

유현을 포함한 다른 일행들의 입회하에 박재한 요원의 장례는 이미 치른 참이었다.

호상이라고까진 못해도, 그 정도면 괜찮은 배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태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별개의 문제였다.

“우리는……. 국가에 충성을 맹세했던 몸이지.”

그는 팀원들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방금 동료를 제 손으로 흙 속에 파묻어야만 했던 팀원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그 와중에 눈만은 이글거렸는데, 모두 김태평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국가가 스스로를 저버렸어. 아니, 자기가 국가라고 믿는 미친놈이 그랬지. 우리도 일부는 거기에 일조하긴 했지만……. 이제 와 그렇게 계속 둘 수는 없어. 우선 박원상의 신변부터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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