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죽음 그리고 (1)
“준비라.”
김태평은 준비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환자, 그러니까 요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생 죽음의 준비를 해 온 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나?
요원이라는 직업을 택한 이상,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있어야만 했으니.
“참…….”
그렇다 해도 독감에 의해 죽을 거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을 터였다.
이건 준비를 한다고 해도 방비가 되는 종류의 죽음이 아니지 않나.
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그에 대비하는 삶을 살아온 김태평으로서는 무언가 마음의 줄 하나가 끊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삶을 지탱하던 믿음이 훌훌 풀려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눈을 따로 감겨 줄 필요는 없겠군, 그래.”
말은 하고 있는데, 솔직히 자기가 뭔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그저 떠들 뿐이었다.
언젠가, 은퇴했던 선배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언젠가 팀원을 잃게 될 거야.
-이미 꽤 잃었는데요?
-예상했던 손실과 그렇지 못했던 손실의 차이는 크지…….
-그러지 않으려고 훈련받고, 애초에 그렇게 타고난 애들 뽑는 거 아닙니까?
-세상일이 늘 그렇게…… 예상한 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지. 너는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혹 그렇게 되면 그냥 아무 소리나 해 봐. 나에게는 도움이 됐었다.
의미 없는 말을 주절거리는 것.
태어나 처음이라고는 못 해도, 거의 해 본 적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혈압……. 안 잡힙니다.”
이제 김태평은 팀원과 행했던 여러 작전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지나간 10분 동안 요원은 이제 죽어 가고 있다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맥도 안 느껴집니다, 어쩌죠?”
재원은 그사이 혈압을 재고 있다가 잡히지 않자, 허벅 동맥에 손가락을 올렸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전도상에도 심정지.”
유현이 그의 말을 들으며 중얼거렸다.
원래 같으면, 맥이 잡히지 않는 순간 바로 흉부 압박을 했어야 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건 의미가 있을 때의 얘기였다.
지금은…….
‘의미가 없어.’
연명 치료?
그게 가능하기는 한가?
‘안 되지……. 안 돼.’
가능하다고 해도…… 여기서 흉부를 압박하는 건 무리였다.
‘이미…… 한 차례 연장했지. 그때……. 죽게 뒀어야 했나?’
유현은 이제 며칠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머리 회전이 워낙에 빨라진 덕에 지나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현은 확실히 농공단지, 험한 벽 안에 갇힌 때로 돌아가 있었다.
‘그때…… 물리게 두지 말았어야…… 했을까?’
후회의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실로 드문 감정이었다.
그는 늘 확신에 찬 언동을 보여 주지 않았나.
“으…….”
그때 다른 침상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진호 형사가 있는 곳이었다.
“음?”
김태평을 제외한 모두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물……. 물 좀.”
단지 신음만 흘러나온 게 아니라서 그랬다.
의미 있는 말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눈도 떴는데, 그 눈 안에 담긴 이지를 쉬이 읽어 낼 수 있었다.
여느 라드와는 달랐다.
무언가…….
“교수님. 재한이는 어찌 된 겁니까……?”
더는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김태평의 질문이 있었고, 그 질문의 무게가 꽤나 대단했기에 그러했다.
적어도 유현은 그의 부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 시각……. 오후 4시 11분. 박재한 요원은…… 사망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CPR도 하고 하던데요.”
“의미가 있을 거 같습니까? 사실상 박재한 요원은…… 그때 죽었어요. 죄송합니다. 괜한 희망을 드렸어요.”
“아니……. 아닙니다. 아닙니다.”
김태평은 아니라고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까 말한 대로 박재한은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눈을 감겨 줄 필요가 없어서였다.
대신 얼굴을 가려 주긴 해야 했는데, 그건 재원이 했다.
그렇게 박재한은 죽었다.
“흐…….”
그사이 이순규가 떠다 준 물을 이진호 형사가 받아 마시고 있었다.
아직은 정신이 온전치 않은지, 물을 이리저리 흘려 대고는 있는데 다만 완전히 이성이 없는 건 아닌지 사레가 걸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이진호 형사를, 이순규는 잠자코 바라보았다.
‘음……. 냄새가…… 좀 약한데…….’
사실 냄새라고 하면 이진호나 박재한이나 도긴개긴이었다.
둘 다 몸이 좋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신을 차린 마당이다 보니 재점검에 나선 것이었다.
그러자 확실히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난……. 이맘때쯤 완전히…… 라드 아니었나?’
이순규는 당시를 떠올려 보았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어져 있어서였다.
안정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한 이유는 아마도 호르몬이었을 터였다.
정말이지 이성이 완전히 날아갈 정도의 충동만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후우……. 감사합니다. 근데…… 여긴…….”
그에 비해 눈앞의 이진호는…….
‘이건 그냥 사람 아냐……?’
이상하다 싶은 정도가 아니었다.
사나운 모습조차 보이지 않지 않나.
그저 평상시의 이진호였다.
아니, 원래의 이진호보다 훨씬 쇠약해져 있는 상황이다 보니 도리어 약해 보일 지경이었다.
“여긴 병원이에요. 이진호 형사, 정신이 드십니까?”
그렇게 이순규가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유현이 나섰다.
그는 늘 그러하듯 침착한 얼굴이었다.
머릿속은 그러하지 않았으되, 겉으로는 여전히 침착을 가장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이 남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 네.”
“그래요, 잘된 일입니다.”
“저……. 근데 왜 제가 묶여 있죠?”
아닌 게 아니라 이진호는 물 달라고 할 때조차 느슨한 재갈을 물고 있던 참이었다.
제대로 된 말인 것 같아서 이순규가 바로 풀어 주긴 했지만.
그 외에 결박은 아직 하나도 풀어 주지 않았더랬다.
“기억이 없으실 수도 있는데……. 이진호 형사님. 독감이 패혈증을 넘어 죽기 직전으로 심해졌었어요.”
“제가……. 아.”
그제야 이진호는 결박된 상황에서 고개만 쳐들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지난 며칠간 제대로 먹지 못해 앙상해진 몰골이 눈에 들어왔다.
독감 때문이기도 했다.
하여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죽었을 겁니다. 그대로 두었으면.”
“아……. 살려 주셨군요. 감사…… 으.…….”
“왜 그러십니까.”
유현은 재원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 채워 둔 혈압을 확인하고 있었다.
‘수축기 혈압이 170…….’
명색이 의사고 또 의료 응급 상황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상황인데 일행의 원래 혈압을 모를까.
이진호의 평소 혈압은 120에 80으로 지극히 정상이었다.
명색이 형사인데다가 젊고 또 사태가 터진 후에도 나름의 신체 활동을 쉬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70.
이건 호르몬 또는 신경 전달 물질의 영향이라고 봐야 했다.
물론 심리적인 동요로 인해 혈압이 오르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170은 너무 높았다.
“아니, 머리가……. 잠시…… 으음.”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역시나 여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럴 수 있어요. 아무튼, 당시 이진호 형사에게도 설명을 하긴 했는데……. 오예리 형사도 동의했습니다. 물론 제가 주도적으로 진행한 일입니다.”
“어떤…….”
“이진호 형사는 저기 현경이에게 물렸습니다.”
“네에?”
혈압이 좀 더 올랐다.
그러나 미미한 차이였다.
기껏해야 175?
이미 꽤나 올라 있었다는 얘기였다.
과연 호르몬이나 신경 전달 물질의 영향일 거란 생각이 더욱더 공고해졌다.
“바이러스끼리 싸움을 붙인 겁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런.”
“당시로서는 그 수밖에 없었어요. 이진호 형사. 아직 젊지 않습니까. 제 일행이고…….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잃을 수는 없었어요. 그리고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듯하군요.”
“그……. 어떻게!”
돌연 이진호가 고개를 유현을 향해 팩하고 휘둘렀다.
사람 목이라는 게 휘두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길지 않지만, 여기서는 그 외에 달리 어울리는 표현을 찾기 어려웠다.
그만큼 급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과연, 영향이 있긴 있군.”
그러나 유현은 딱히 놀란 얼굴이 아니었다.
라드가 되면 신체 조건이 변하지 않더라도 힘이 좀 강해지기는 했다.
정확히 말하면 한계치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게 된다는 뜻인데……. 그래 봐야 쇠약해진 몸 아닌가.
단단히 묶어 둔 결박이 풀어질 수준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계속 이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조금 전까지 멀쩡히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영 믿기지 않을 만큼이나, 이진호는 광분하고 있었다.
“너랑 비슷하긴 한데……. 더 약해.”
그러나 유현만이 아니라 다른 의료진들, 그러니까 유현의 일행으로 온 이들도 딱히 놀라지 않았다.
이미 경험이 있어서 그랬다.
특히 이순규는 경험도 아니고, 체험이었다.
“음……. 내가 이거보다 심했다고?”
“넌 진짜 장난 아니었어. 기억 안 나지 않아?”
“그건…….”
“일단 조절해 둔 약 좀 줘. 식사도 달라는 대로 주진 못하겠지만, 하여간에 충분히 줘 보자. 너랑 비슷한 경과를 밟게 된다면…….”
실험?
그렇게 말하기엔 터무니없이 n수가 적었다.
애초에 설정한 가설조차 요행에 가까운 일 아닌가?
그러나 실마리를 보았다.
그렇다면 일단 달리긴 해야 할 터였다.
어차피 제대로 된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더할 나위 없겠지?”
“그…… 그렇지. 근데 그럼 여기서 꽤 있어야 하지 않나?”
“그 편이 더 나을 거야. 협조할 거라고 하긴 했지만……. 눈앞에서 결과물을 들이밀면 더 큰 협조를 구할 수 있겠지. 게다가 아직 겨울이야. 뭘 하기에 유리한 계절은 아니지.”
“그래……. 벌써 거기까지 생각이…….”
이순규가 유현의 다소 냉정해 보이기까지 한 판단에 놀라고 있으려니, 김태평이 다가왔다.
그는 여느 보호자와는 달리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듯해 보였다.
사실 가족 같은 사이지 가족은 아니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보다는 김태평의 본질이 더 커다란 이유긴 하겠지만…….
“그게 좋겠군요. 그사이 저는 남산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여기 나름 장비가 있겠죠. 그렇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 같고요.”
“그래 주시면 좋죠. 특히 박원상, 그 친구와 연락할 수 있는 방도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거야말로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
박원상은 나름 티비에 출연하고 있지 않나.
강변 마트가 무너지고도 그랬다.
하여간 자기 목숨이 제일 소중한 놈이었다.
아내를 그렇게 헌신짝 버리듯 한 정부에 여전히 협조하고 있다니.
이제 남은 대가라고 해 봐야 연명밖에 없을 텐데도 그러했다.
‘그렇다 해도 복수심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가끔 밖으로 나오는 일이 있으니,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 마음을 조종하는 것.
그 또한 요원의 자질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