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죽음 (3)
“뭐, 병사가?”
“네, 지금 빨리!”
“이런 망할. 알겠어요, 갑시다!”
유현이 타고 있던 트럭은 애초에 그리 먼 곳에 있지도 않았다.
항공 의무전대, 그러니까 병원 내에서 울려 퍼지던 총탄 소리도 고스란히 다 들을 수 있었을 지경이었다.
아니, 응급실 입구를 깨부수고 들어가는 장면도 봤다.
‘불안하다 했는데…….’
항공 의무전대는 부대 내에서 꽤 특이한 위치에 있는 곳일 터였다.
군의관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는 곳이라 그랬다.
게다가 병실도 있지 않나.
그 말은 곧 내부 식당이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먹을 게 아주 많았다.
‘아무래도 다른 부대보다는 더……. 놈들이 서식할 수 있을 만한 공산이 크긴 하지.’
게다가 들어 보니 정부는, 그러니까 대통령은 초창기 라드에 대한 대응을 일부러 비틀어 버리지 않았나.
트롤짓을 했다 이건데 그 대상에는 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체 왜 군의 대응이 소극적이다 못해 모자라는 느낌이 드나 했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다.
휴가 나갔다가 라드화 되어 버린 놈들 또는 근처 민간인들을 의무 지원이라는 명목하에 부대 내 의무대나 의무전대에 배치했고 그 결과 군은 의료 체계부터 빠르게 무너져 내린 마당이었다.
‘병신 새끼들…….’
욕설과 함께 떠올린 생각은 초거대 개체들의 존재였다.
아무래도 세월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아까 저쪽으로 도망간 개체 또한 어마어마하지 않았나?
“근데 유현아……. 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해 봐야지, 그래도. 우리가 제일 나을 테니.”
심각한 생각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이순규가 상황을 환기시켜 주었다.
확실히 지금은 병사와 박재한 생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지 않나.
이런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다.
이순규마저 완전히 라드화가 진행되어 버렸다면, 유현은 지금처럼 겉으로나마 멀쩡한 얼굴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터였다.
부우웅
지금 트럭을 몰고 있는 건 본부 사람이 아니라 부대원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중 대위가 이끄는 부대 소속으로 주변 경계를 맡았더랬다.
라드 놈들 중 지능이 특출난 놈들도 간간이 보이긴 하지만, 부대 안에 있던 놈들은 오래된 놈들이다 보니 대개 본능이 우선이어서 오히려 중구난방으로 튈 수 있어서 그랬다.
철책 안으로 튀어 들어갔는데 놓치게 된다면 그게 단 한 마리라고 해도 곤란할 터였다.
무전이 되는 영역도 제한적인 데다가 개간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딱히 무장한 인력이 없어서 그랬다.
하여간, 같은 부대원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트럭은 거칠게 길을 내달려 곧 의무전대 앞마당에 닿았다.
다행인 것은 이곳이 애초에 응급 진료를 위한 곳이다 보니 빈자리가 많다는 점이었다.
“여기, 여기 빨리!”
차에서 내리자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2층에 있는 모양이었다.
소리가 좀 먼 것을 보면.
“가자.”
“잠깐. 여기서 도구라도 좀 챙기고.”
“아.”
“재원아, 우식아. 너네도 좀 도와.”
이순규는 한달음에 내달리려다가 유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응급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우연찮게 여기 있는 이들 중 최우식을 제외한 모두가 공군 군의관 출신이어서 그랬다.
이비인후과처럼 딱히 공군에서 선호하는 과가 아님에도 그랬던 것은 일견 신의 예비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여기 세트 찾았다.”
“에피랑 리도 찾았습니다!”
“항생제랑…… 수액. 좋아. 찾았어!”
하여간, 일행은 금세 도구를 찾아 2층으로 향했다.
딱 올라가자마자 역한 냄새가 진해지기 시작했는데, 병사에게서 나는 냄새는 아니었다.
그냥 공간 전체가 찌들어 있었다.
이곳에서 라드 놈들이 뭘 어찌했는지 대강이나마 짐작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망할…….’
유현은 욕설과 함께, 자신을 찾는 소리를 따라 전진했다.
“웁.”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학 병원 내과 레지던트로 있으면서 진짜 별의별 꼴을 다 봤던 재원조차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이순규도 간신히 참고 있을 뿐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의외로 우식이 괜찮아 보였는데, 유현은 그런 우식을 잠시 눈여겨보다가 이내 병사 앞에 당도했다.
“여기……. 여깁니다.”
“어떻게 당했어요? 뭐라도 휘둘렀습니까?”
유현은 차분한 얼굴로, 당황을 가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내과 의사였고 외상 환자를 본 경험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로 봤던 환자 또한 사실상 환자로 셈하기가 좀 어려웠다.
끝까지 지켜보질 못했으니까.
‘제길.’
유현은 저도 모르게 찢겨 죽어 가던 이를 떠올렸다.
“아, 아뇨. 그냥 달려들었습니다. 벽이 무너지면서…….”
“아, 이게. 그럼.”
“네.”
“일단 옷 자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멈추진 않았다.
처음 환자를 그렇게 잃고서, 벌써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 온 몸이지 않나.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의대생 때 배우긴 배웠다는 것이었다.
흘러 지나가듯 배운 것이고 그 지식의 깊이 또한 얕았지만 의사로서 쌓아 올린 지식과 경험은 그 영역이 조금 빗나가 있을지언정 크나큰 도움이 되어 주고 있었다.
지이익
가위로 옷을 자르자 이미 시퍼렇게 멍이 들어 버린 갈빗대가 눈에 들어왔다.
손으로 조심스럽게 눌러 보자 부러져 있었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진기.”
“어.”
폐를 찔렀을까?
그렇다면 좋지 않았다.
호흡이 어려워질 테고, 그 말은 곧 죽음을 의미할 테니까.
대학 병원이라면야 방법이 있겠지만 여기선 도리가 없었다.
‘일단 호흡음은 정상……. 감소한 영역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바람이 새진 않아. 그 말은…… 조각이 나지는 않았다는 말이야.’
갈비뼈는 대부분 부러지더라도 대강의 형태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위아래로 잡아 주는 근육이 있어서 그랬다.
딱히 운동으로 강화할 필요 없이, 숨만 쉬어도 강화대는 빗장근이 그것이었다.
이것까지 찢어지거나 하면 달리 방법이 없을 텐데 다행히 이건 멀쩡했다.
‘그렇다면…… 간은 괜찮나?’
시퍼렇게 부어오른 부위는 우측 상복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엔 간이 있었다.
간.
달리 말하면 핏덩이.
잘못되는 순간 내출혈로 발전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환자는…….
‘열어야 하나?’
열어?
배를?
아니면 가슴을?
유현의 눈동자가 빠르게 위아래를 훑었다.
다행히 누가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기도 했거니와, 유현의 행동이 퍽 자연스럽기도 해서 그 누구도 유현의 당황을 알아보진 못했다.
‘아냐……. 일단 지켜볼 수 있어.’
덕분에 시간을 번 유현은 평소의 그로 돌아와 상태를 관조할 수 있었다.
기도 괜찮고, 호흡 나쁘지 않고, 혈압도 그렇게까지 떨어지진 않았다.
엄밀히 말해 낮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당장 혈압 때문에 뭐가 어떻게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연명이었다.
“폴리 꽂자. 수액 넣고……. 내가 중심 정맥관 잡을게. 환자 혈액형이…… 에이형. 에이형 있습니까? 수혈이 필요할 듯한데.”
더 정확한 처치를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긴 했다.
가령 혈액 검사 수치나 엑스레이 같은 것들.
공군부대 항공 의무전대에는 놀랍게도 그러한 것들이 비치되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었다.
전기가 통하지 않아서 그랬다.
물론 부대 내에는 이쪽 계통을 전문으로 하는 군인들도 있을 터였고, 주변부에서 흡수한 민간인 생존자나 예비군들 중에서도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는 사이 환자가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선제적으로 조치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어, 저요.”
“저도 에이형입니다.”
유현의 말에 검사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많은 이들이 나서 줄 따름이었다.
덕분에 유현은 5명의 지원자를 차출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사람당 뽑아야 하는 양이 크게 줄어서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직접 혈관을 이어서 수혈하는 건, 유현으로서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보니 걱정이 되었는데 일이 다행이었다.
“호흡은 괜찮고. 간도 부서지거나 한 건 아닌 거 같아. 좀 지켜볼 수 있을 거 같아.”
유현은 우선 한 명의 혈관을 이어 놓은 후, 입을 열었다.
폴리도 달았으니 일단 물이 들어가는 양과 나오는 양을 잴 수 있지 않겠나.
그것만으로도 환자 보는 데에는 크나큰 도움이 될 터였다.
그 균형을 맞추는 것, 그리고 들어가는 만큼 나오는지 관찰하는 것이 중환자 의학의 기본이라서 그랬다.
“확실히…… 일단 젊기도 하고. 의식도 곧 차릴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 옆에서 안정만 취해 주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환자를 보니 재원도 어느새 한 사람의 완연한 의사로 돌아와 있었다.
더 이상 주변의 역한 환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멀쩡히 굴었다.
이순규는 혹시 몰라 챙겨 온 약을 보이며 말했다.
“혹 섬망 증세 보이면 내가 해결할게.”
“좋네요. 종합 병원이 따로 없네.”
그 모습을 보던 우식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의 과정을 밟지 않은 데다가 공보의 이후로는 딱히 진료를 하지 않은 그가 임상에 한계를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보조야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는 건 어려웠다.
“근데…… 이진호 요원 말입니다. 확실히…… 뭔가 달라요.”
다만 라드에 대해서만큼은 얘기가 달라졌다.
“박재한 환자와 반대인 것으로도 보이고요. 아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미약하게 기침도 하고…….”
“어, 나도 느끼긴 했어. 너무 낙관적인 예상이긴 한데……. 그쪽은 독감이 이겼나 싶기도 하더라.”
“네, 그렇다면 이거…….”
“하지만 일단은 박재한을 봐야지. 이분도 옮기고. 들것 좀 가져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유현의 말에 박중 대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괜찮겠습니까?”
꼭 확인을 받아야겠다는 듯,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선은.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요. 저는 외과 의사가 아니고, 시설도 여의찮아요.”
“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는 거죠?”
“네. 지켜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다행이군요. 휴. 알겠습니다. 들것 들고 오겠습니다. 여기서 계속…… 보시겠습니까?”
“네. 그래야죠. 아무래도 여기에 뭐가 많을 수밖에 없고요.”
“그럼 경계를 더 철저히 해야겠군요. 알겠습니다. 하는 수 없죠.”
박중 대위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내지도 않았다.
확실히 유현의 말이 타당했기에 그러했다.
유현은 그의 부대원들이 들고 온 들것에 환자를 싣고 아래로 내려온 후, 즉시 박재한과 이진호를 들여다보았다.
사실 현경도 안으로 옮겨져 있긴 했는데 그녀에 대한 희망은 접어 둔 지 오래였다.
“일단 안정제 주면서 보기는 할게.”
물론 순규가 자신에게 처방했던 대로 처방을 내리고 있긴 했지만, 유현은 현경과 순규를 구분 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순규가 이순규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대단한 것이지 약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어찌……. 어찌 되겠습니까?”
뒤따라온 태평의 말에 유현은 박재한을 보았다.
이제야 비로소 혈압도 재고 할 수 있었는데,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