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죽음 (2)
실려 온 것은 모두 셋이었다.
트럭에 실려 왔는데,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이는 하나였다.
박재한 요원.
그러나 의사들이 다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다 데려온 모양이었다.
현경은 이제 이걸 환자로 봐야 할지 아니면 라드라고 봐야 할지 좀 애매한 상황이긴 했지만, 유현이 환자라고 했으면 그건 환자인 게 맞았다.
적어도 여기서는 그랬다.
“자……. 우선 항공 의무전대로 가시죠. 이쪽은 박중 대위입니다. 길을 터 줄 겁니다. 저는 그럼.”
“네, 감사합니다. 황 대령님.”
“별말씀을. 알게 모르게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재난 본부에게도 많이 받았고요.”
“그럼,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트럭에서 환자들이 당장 내리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군인들이 차에 올라 그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쏘지는 않았다.
아까 황 대령과 함께 있던 이가 지휘를 맡았기에 그랬다.
‘음……. 이게 연구 대상이라 이거지……?’
작전 과장으로 보였던 이의 미간에 주름이 진하게 잡혔다.
아무리 봐도 여자 쪽은 라드 같아서 그랬다.
비록 몸집도 작고, 뭔가 좀…….
약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읍! 으으읍!”
재갈이 물렸음에도 불구하고 숨겨지지 않는 저 공격성은 라드의 그것이었다.
그 말은 즉 현경만 있었으면 유현에 대한 의심이 물밀듯 밀려왔을 거란 얘기였다.
그러나 그 외에 다른 둘은 좀 달랐다.
“으…….”
죽음이 임박했다던 이, 즉 박재한 요원은 미동조차 없었다.
신음도 흘리지 못했다.
작전 과장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진호 형사였다.
그는 의식이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았다.
아니, 눈을 끔뻑끔뻑하는 것이 정신을 차린 것으로 보였다.
‘방금 눈이 마주쳤지?’
기운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라 보기엔, 보고 있을수록 그가 여태껏 봤던 라드들이 떠올랐다.
명색이 전투 비행단 아닌가.
비록 특수 부대와 같은, 즉 지상전에 강한 이들은 없어도 일단 젊고 건장한 청년들이 총으로 무장하고 나설 수 있었다.
싸우다 보면 간혹 라드를 생포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주로 군의관이 아직 살아 있었을 때 그랬다.
내과 전문의였던 그는 종종 라드를 잡으면 관찰을 해 봐야 한다고 했다.
꽤 좋은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단 말을 들은 데다가, 실제로 진료 만족도도 꽤 높았던 사람이었던 만큼 될 수 있으면 협조했었다.
‘어이없게…… 갔지.’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하면서, 단열이 잘 안돼 군 숙소 때문인지 뭔지 감기가 돌았는데 그때 죽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군의관 하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는 사태 터지고 얼마 안 되서 전대에 입원해 있던 라드에게 당했었고.
‘아무튼…… 총 맞은 놈들도 이것보단 더 사나웠는데…….’
라드는 사나웠다.
이제 와 이런 말 하는 게 뭔 의미가 있겠느냐만, 마주하고 있다 보면 이게 같은 사람이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사나운 놈들이었다.
그 힘이 강하건 약하건, 덩치가 크건 작건 상관없었다.
담이 약한 사람은 아마 작은 개체라 해도 마주하는 순간 몸이 얼어붙어서 죽을 터였다.
그런데 이진호 형사라는 사람은 그런 면에서 라드와 완전히 구분되었다.
“흐…….”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는 와중에도 이진호 형사는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고통에 의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단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인가?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자, 여기서 버티고 있고……. 선생님이 뭐 요청하시면 바로 드리고. 알았어?”
“네!”
과장은 고개를 털고는, 지금껏 딴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반성하며 명을 내렸다.
병사들은 총을 고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딱히 환자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진 않았지만, 쏴야 할 때가 오면 모두 망설이지 않고 쏠 수 있는 정예 병사들이었다.
“흐음……. 혈압이……. 이건…….”
유현은 그 틈바구니에 올라 박재한 요원을 살폈다.
이미 온몸이 묶여 있기도 하고, 또 재갈도 물려 있어 안전했다.
아니,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없어도 그럴듯했다.
박재한은 명백히 죽어 가고 있었다.
“왜……. 왜 이런 겁니까?”
김태평은 그로서는 드물게 감정을 드러냈다.
팀원이지 않나.
그가 마음을 줬던 몇 안 되는 사람.
“아무래도 패혈증이 온 거 같군요.”
“패혈증이라면……. 전에 왔던 거 아닙니까?”
“네, 그래서 ARS-24에 감염시켰죠. 그러고 나서 한동안 좋아지디가…….”
“ARS-24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유현은 호흡음을 들었다.
숨소리는 의외로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약하긴 하지만 그건 기력이 없어서일 뿐, 폐가 본격적으로 망가진 느낌은 아니었다.
물론 사진을 찍어 봐야 제대로 된 파악이 가능하겠지만, 하여간 느낌은 그랬다.
“ARS-24가 범인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근데 왜 라드화는 진행이 안 되었죠?”
“알 수 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맨손으로 만지지 마십쇼. 체액이 닿으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 네. 그럼…… 이제 박 요원은 죽는 겁니까?”
사실 벌써 몇 번이나 최후를 떠올리기는 했던 몸이었다.
애초에 작전 나가기 전에 쓴 유언장이 몇 개던가.
때문에 죽음 그 자체는 견딜 수 있었다.
아니, 견딘다는 말도 좀 우스웠다.
다만 이런 식의 죽음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김태평도 마찬가지였기에 표정이 좋을 수는 없었다.
“글쎄요. 일단 패혈증에 준하는 치료를 할 겁니다. 제가 있었던…… 진주나 청주에는 벤틸레이터(Ventilator, 인공호흡기)도 있었어요. 그게 아니더라도 에피라든지 하는 약들도 있었고.”
“그럼 거기 가면 일단 시도해 볼 수 있는 치료가 있다는 거군요.”
“네.”
유현은 그렇게 말하며, 항공 의무전대가 있다는 곳을 돌아보았다.
트럭은 천천히 이동 중이었지만, 애초에 의무전대가 그렇게 멀리 있는 건 아닌지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마당이었다.
군부대 특유의 낮고 각진 모양의 건물이었다.
앞에 항공 의무전대 마크가 붙어 있었는데, 과연 철조망 밖에 있었다.
철조망이라 해 봐야 굵은 철사를 엮어 만든 부분이 많았다.
제대로 된 설비로 보이는 곳조차 딴 데 있던 철조망을 뜯어 온 건지 뭔지 약해 보였고.
‘저거 마음먹고 라드 놈들이 뛰어들면 박살 날 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철책 한쪽이 무너졌다.
라드 때문은 아니고, 박중 대위 측이 자르고 돌입한 것이었다.
총 든 인원 열이 박중 대위의 뒤를 따랐다.
“경계 철저히. 이 새끼들 건물 안에 있을 거야.”
“네.”
박중 대위는 벌써 여러 번 건물 수색을 해 본 몸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좀비들은 겨울이건 여름이건 심지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밖에서 서성이지만, 라드 놈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살아 움직이는 놈들인 만큼 이성이 시켰는지, 아니면 본능이 시켰는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궂은 날씨엔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
“흩어지지 마. 탄막 형성하지 않으면 위험해.”
그런 생각과 함께 박중 대위는 본래 응급실 입구로 쓰였던 입구 쪽으로 붙었다.
애초에 병원이라는 곳이 뭘 막기보다는 누구나, 언제나 오기 쉽도록 지어진 곳 아닌가.
입구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유리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일단…… 뭐가 있어 보이진 않아.’
안쪽은 텅 비어 있을 뿐 아니라, 먼지가 수북했다.
딱히 왕래가 없던 모양이었다.
하긴, 마감이 개판이라 바람도 숭숭 들어오는 곳이니만큼 라드에게도 딱히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을 터였다.
“깰까요?”
“어. 차라리 소란 듣고 몰려오면 한 번에 쳐 버리는 게 나아.”
“저쪽으로 어그로 튀면 어쩌죠?”
“뭔 걱정이야. 기관총 사수도 있는데. 우리 걱정이나 해.”
“네.”
박중 대위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 하나가 망치로 유리창을 후려쳤다.
이미 여러 번 해 봤기 때문에 이쪽으로 튀지 않게 후려칠 수 있었다.
와장창
테이프도 붙이지 않고 저지른 탓에 소리가 엄청나게 울렸다.
박중 대위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유리가 부서지는 즉시 귀를 기울였다.
우두두두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덩치가 꽤 큰 놈이 있는지 아주 그냥 천장이 박살 나는 느낌마저 일었다.
“이 새끼들은 대체 어디서 먹을 게 나서 버티는 걸까요?”
“모르지. 근데 요새 통 고라니가 안 보이긴 해.”
“아…….”
“이 새끼들 심지어 불 쓰는 놈들도 있잖아. 못 봤어?”
“그거 생존자 신호일 수도 있다고…….”
“생존자? 부대 안에? 말이 되냐? 아무튼, 집중해. 뒤에도 경계 철저히!”
“네!”
잠시 잡담이 있었지만 박중 대위의 명이 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두두두두
덕분에 발소리는 잘 들을 수 있었다.
몇몇은 이쪽으로 향하는 듯했지만, 또 몇몇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놈들은 유현이 마주쳤던 놈들과는 달리 무리를 짓지 않고 개인으로 다니는 놈들이니 그럴 만도 했다.
타타탕
응급실 쪽으로 온 놈들은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저쪽……. 안쪽으로 튀는데 어떻게 할까요?”
뒤쪽으로 경계 서고 있던 인원이 보고를 올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더 깊숙한 곳으로 뛰는 놈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전에 총에 맞아 봤거나 맞아 죽는 놈을 봤던 모양이었다.
사냥을 위해 잡기 시작한 멧돼지들도 이제는 인간 기척만 느껴지면 도망가고 있으니, 그보다는 지능이 높아 보이는 라드가 도망을 택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냥 둬. 저거 씨 말리려면 총알 부족해.”
“네.”
“아직 남아 있는 놈 있을 수도 있어. 1층부터 확보하고, 2층으로 간다.”
“네!”
박중 대위는 이럴 땐 군부대 건물들이 후져서 다행이다 싶었다.
10층까지 있었으면 어쩔 뻔했나.
기껏해야 2층이 다니 망정이지…….
탕탕탕
과연 안에 남아 있던 놈들도 있었다.
“에이…… 이거…….”
“이 새끼들……. 지들끼리 처먹었나?”
1층은 텅 비어 있다시피 했으나 2층엔 먹다 남은 찌꺼기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사람 뼈가 주를 이루었는데, 일반적인 것보다는 훨씬 컸다.
병사 말처럼 지들끼리 먹은 모양이었다.
잘된 일이기도 했지만, 이런 식이면 이놈들이 죄다 굶어 죽길 바라는 것도 요행이 될 터였다.
쾅그때 벽면이 무너져 내렸다.
“어억.”
동시에 투덜거리던 병사 하나가 붕 하고 날았다.
“쏴!”
박중 대위의 명으로 총알 세례가 이어졌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초거대 개체는 이미 1층이었다.
와장창
녀석은 망치로 깼던 유리창을 더 크게 부수며 밖으로 향했다.
총알이 한두 발쯤 박힌 것 같긴 한데…….
치명상은 아닌 듯했다.
그랬다면 저렇게 뛰지 못했으리라.
“시발!”
다른 방에 있다가 방금 나온 참인 박중 대위는 욕설을 내뱉었다.
널려 있는 해골들과 방금 날아가 의식을 잃은 병사를 번갈아 보면서였다.
“내가 이런 거 있으면 초거대 개체 주의하라고 했어, 안 했어!”
“죄, 죄송합니다.”
“지랄 말고 의사 빨리 오라고 해! 이러다…… 이러다 죽겠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