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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83화 (183/323)

183화 죽음 (1)

황 대령의 솔깃함은 다른 이들의 솔깃함과는 그 파급력이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물경 천 명에 이르는 10비, 즉 수원 비행장의 수장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강변 마트가 그랬던 것처럼 구성원들이 이질적인 이들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동시에 여전히 풍족하다고까지는 못해도, 적어도 아주 부족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러한 상황에서만큼은 나름대로 풍족하다는 말까지 쓸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저희가 돕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도 정부와 마냥 좋은 사이는 아니어서요. 그럼 목적지는 남산입니까?”

더군다나 유현은 적절하게 사실 9에 거짓 1을 섞어 말한 참이었기에 황대령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이들까지 홀랑 매료되어 있었다.

애초에 유현이 하는 말에 의심을 품을 만한 사람도 거의 없어서 그랬다.

그는…….

적어도 정부 측 외의 생존자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선지자 같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게 적절치 않고 동시에 결국, 자신은 실패한 사람이라는 건 누구보다 유현이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어……. 이게 가장 가능성이 커. 실패한다면…… 그때 가서 버티는 작전으로 돌아서도 늦지 않아.’

그럼에도 유현은 자신의 언행을 필사적으로 합리화하면서, 황 대령을 마주하고 있었다.

“네, 남산입니다. 거기에 정부 측이 마련한 연구 시설이 있어요. 이 사태의 원흉인 작자들 중 적어도 연구진에 해당하는 이들이 거의 다 거기 있을 겁니다.”

“그럼…… 쓸어 버립니까?”

황 대령은 벌써 머릿속으로 얼마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말은 쓸어 버린다고 했지만, 말처럼 쉬운 일만은 결코 아니긴 했다.

안에 연구 시설이 있고 그걸 이양받아 써야 한다지 않나.

막말로 전투기 띄워서 얼마 남지 않은 폭탄을 쏟아붓는 것도 마땅치 않다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남산이 정부 영역이라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사실상의 반역…….’

황 대령은 청주 측을 동원해 이쪽을 공격하려 했던 대통령의 속내를 떠올렸다.

그때는 딱히 빌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쪽이 더 이상의 폭격에 나서지 않게 된 것은 일단 파일럿과 전투기의 전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소음으로 인한 라드의 습격이었다.

그러한 합리적인 이유를 대도 명령 불복종이라고 여겼던 청와대가 가만히 있을까?

그때야말로 망설이던, 그리고 여전히 어느 정도 건재해 보이는 비행단들이 수원을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돕더라도 비밀리에 돕기는 해야겠군.’

일이 잘 풀리면 상관없었다.

그때는 오히려 드러내야 할 터였다.

대통령의 치부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 동시에 연구에서 성과도 낸다면 어떻게 될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군인 출신 대통령이 다시 나오는 것도 꿈 같은 일만은 아닐 터였다.

“아뇨. 연구 인력들도 필요하기는 합니다. 최대한 인력을 보전하는 선에서…… 침입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흐음……. 근데 남산 연구소의 정확한 위치는 혹시 알고 계십니까?””

원래는 알지 못했더랬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김태평에게 미리 들었으니.

“네,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불렀었거든요.”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가 있을까?

유현은 살짝 거짓말을 가미했고, 당연하게도 의심은 없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로구만…….’

지금까지 보여 준 것만으로도 신빙성은 차고 넘치는데, 정부 얘기까지 더해지자 일말의 망설임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건 좋은 일입니다만……. 그렇다 해도 남산은 그 자체가 천혜의 요새일 겁니다. 폭격에서도 완전히 배재된 지역이고……. 따라서 주변 건물들도 멀쩡할 텐데, 안에 군인들이 있다면…….”

“그렇죠. 사실 좀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다행이라면, 김선태의 정예 병력은 이제 거기에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물론 무슨 첩보를 입수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여태까지 대통령이 보여 주었던 모습을 생각하면, 사실상 청와대가 보유하고 있는 최강의 전력인 김선태를 오래 외부에 돌려 둘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일례로, 김선태는 남하조차 하지 않지 않았나.

모르는 길로 돌아갔을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글쎄.

대통령이 자신의 칼을 그렇게 먼 곳에 둘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드리는 겁니다. 그리고…….”

유현은 당연하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그만의 계획이라면 계획이 아니라 다분히 망상으로 여겨져야 마땅하겠으나, 김태평과 오예리 등을 포함한 여러 브레인의 의견이 뒤섞인 것이었다.

누군가는 탐탁지 않아 할 만한 계획이지만 그렇다고 달리 반론이 있지도 않았다.

“안과 통신이 가능하다면…… 내통자를 만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네? 내통자요? 거기…… 사실상 이번 사태의 주된 원인이 된 놈들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죠.”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면 한때 그의 친우였던, 그러나 이제는 세상의 원수가 되어 버린 박원상을 떠올렸다.

‘그 새끼…….’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렸다.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라디오, 티비 등에 나오면서 정부의 개노릇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유현 같았으면 아마 거기에 나가느니 죽었을 터였다.

물론 그럴 사람이 아니니 애초부터 거기 붙어 있기야 했겠지만.

하여간, 유현은 그렇게 솟구쳐 오른 감정을 딱히 숨기지 않았다.

“그중에 하나를 꾀어낼 방도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네. 확실한 방법이 있죠.”

때문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유현이 떠올린 방법은 꽤나 잔인한 것이었다.

“저희가 그중 핵심…… 인력이라고까지는 못해도 나름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있습니다.”

“아내……?”

뭣도 모르는 황 대령의 눈이 오예리를 향했다.

오예리는 불쾌함을 드러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는 아닙니다.”

“저분은 저희 조력자예요. 제가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아, 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럼 본부에 있나 보군요.”

황 대령은 사과를 하면서도 동시에 궁금증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 황 대령을 보며, 유현은 말을 이었다.

“네. 제 연구 대상 중 하나입니다.”

“네? 연구 대상……?”

“제가 실험을 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다만…… 희귀한 상황이 되었죠.”

“그……. 제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황 대령은 저도 모르게 팔뚝에 돋아난 소름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춥기도 하거니와 난방이랄 것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더더욱 쉬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물렸습니다. 근데 라드화가 바로 진행되지 않았죠.”

“네……?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지금이야 황 대령이 이 기지 전체의 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도 한때는 사령관의 명을 받들었던 형편이지 않았나.

밖에 나가 주변을 수색하거나 전투에 돌입하는 일 정도는 꽤 겪었단 얘기였다.

그 과정에서 부하를 잃은 경험도 있었다.

구출하려던 시민을 잃었던 경험이야 숱했고.

그래서 알았다.

라드화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꽤나 순식간에 일어났고, 때문에 물리고 나면 대응은 불가했다.

“기본적으로 라드는 좀비가 아닙니다. 이건 잘 알고 계실 테죠?”

“아……. 물론입니다.”

유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황 대령을 보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상 다른 이들이 라드를 대하는 태도를 미루어 짐작해 보면, 딱히 좀비 외에 다른 단어를 떠올리기 어려워서 그랬다.

정부 측에서 라드라는 단어를 어마어마하게 밀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좀비라고 부르고 있을 터였다.

정부를, 다시 말해 대통령을 악마와 거의 동격으로 여기고 있는 유현조차 이 일은 잘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물론 단어와 사고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라드는 기본적으로 ARS-24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질환이에요.”

“나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유현의 말에 황 대령의 초점이 조금 흔들렸다.

이번 사태에서 가족을, 친지를 잃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

연락조차 닿지 못한 채, 어딘가에 살아 있겠거니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유현은 또다시 누군가의 아픔을 느끼며, 그러나 해야 할 말을 했다.

“아뇨. 지금으로서는 어렵습니다.”

“연구를……. 그리고 이순규 교수님은…….”

“저 바이러스는 좀 달라요. 그리고 상황도 특수했습니다. 그 말은 곧 상황을 특수하게 만들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만……. 치료는 아직까지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네……. 그렇군요…….”

“아무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기 때문에 기존에 다른 감염이 있다거나 혹은 숙주, 즉 물린 사람의 상태에 따라 감염의 경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

황 대령의 관심은 확실히 아까보다는 줄어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방금의 집중력이 워낙에 대단했던 것일 뿐, 이곳에 있는 모두는 유현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쪽 연구원의 아내 또한 비슷한 상황을 겪었죠.”

다만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조금 유약한 라드가 되었을 뿐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되었지만.

그 후로 물린 이들…….

그러니까 박재한 요원이나 이진호 형사는 좀 다를 수도 있었다.

‘박재한 요원은…… 사실 어렵긴…… 하지?’

유현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 무전이 들어왔다.

입구에 못 보던 차가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였는데 다행히 침입은 아닌 듯했다.

“뭐? 본부에서 또?”

-네, 아는 얼굴입니다.

황 대령이 받은 건 아니었으나 그의 측근이 받았기 때문에 사실상 대화는 끊겼다.

대신 모두가 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 왔지?”

뭔가 아는 거라도 있냐는 얼굴로 본부장을 바라보았고, 본부장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죽는다고……. 정유현 교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일행 중에 모르는 얼굴도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는 얼굴이 있어?”

-네. 확실히, 식별 가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협박당하는 거 같진 않고?”

-아닙니다. 지금 차에서 모두 내리게 했는데, 딱히…….

“그럼…….”

측근은, 아마도 작전 과장으로 보이는 이는 황 대령을 바라보았다.

부대 문을 여닫는 것은 워낙에 큰일이라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연구 대상이 된 세 사람 모두 죽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곤란하게 되었군요. 더 관찰을 해야 할 거 같았는데…….”

“그렇다면 일단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네, 혹시…… 항공 의무전대가 접근이 가능한 상황인가요?”

“아……. 완전히 안전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새로 세운 철책에서 멀지 않습니다. 어차피 부대 안까지 들어온 라드가 많은 건 아니고, 단지 경비의 용이성을 위해 세운 철책이니 들어가는 건 무리가 없을 겁니다.”

“그럼 그쪽으로 갈 수 있을까요?”

유현은 그의 군 복무 당시를 떠올렸다.

병원이라기에 항공 의무전대의 시설은 개판이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곳보다는 나았다.

대체 누가 죽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곳에서 보는 게 합당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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