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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79화 (179/323)

179화 재난 본부 (3)

건장한 체격의 청년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또한 분통을 터뜨렸다.

돌이켜 보니 정유현의 말이야말로 진실이었고, 정부가 삽질했던 것이 명확했기에 그랬다.

그런 주제에 지금도 방해를 해?

‘잘하시네. 역시.’

김태평은 속으로 감탄하며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은 그런 시선을 무시한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네. 남산으로 가야 하는데 순탄치 않을 거 같습니다. 여기 김태평 요원도 습격을 당해서 팀원을 여럿 잃었어요.”

“거참……. 이런 위기에 다들 힘을 합칠 생각부터 해야지……. 어찌 이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그럼 저희가 뭐라도 도울 게 있을까요?”

유현은 본부장의 말에 아까 지나오면서 봤던 차량들을 떠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소방차가 한 대 있었다.

헬기도 두 대 있었지만 암만 봐도 고철덩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해 보였다.

이미 퇴역하고 장식품으로 내다 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소방차는 아마 움직이긴 할 터였다.

이 양반들이 맨날 타지는 않았어도 어지간히 다룰 줄 알 테니까.

“서울도 위험하고. 수원도 위험하다고 들었습니다.”

“아……. 수원이요?”

해서 소방차를 달라고 하려 했는데, 본부장 반응이 좀 이상했다.

뭔가 아는 듯한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유현과 같은 느낌을, 김태평도 받았다.

‘수원……. 수원 비행장 쪽이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되었다고 했지.’

다만, 아무래도 유현보다 아는 게 더 많다 보니 추론의 방향성이나 질이 달랐다.

누가 말해 줘서 아는 건 아니었다.

김태평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청와대에 있을 때도 첩보 활동을 쉬지 않았다.

위에서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건 명약관화한 사실이었고 언제 팽당할지 알 수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수원은…… 저희가 주로 쓰는 길목이 있습니다.”

“왕래가 있는 집단이라도 있습니까?”

“네. 비행장 쪽…….”

“비행장이요? 공군 기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쪽도 피해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특히 대규모 폭격 작전을 수행하며 소음 때문에 근처 라드가 몰려들었던 모양이에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부 측에서는 그런 일을 예상했을 거 같은데……. 하여간…… 그때 엄청 피해를 봤다곤 들었습니다.”

공군 기지라는 곳은 애초에 육군 기지랑은 다를 수밖에 없는 곳 아닌가.

특히 방공포가 있는 포대가 아니라 비행단이 주둔하는 곳은 평지였다.

개활지.

여기가 공격당한다는 건 전쟁의 행방이 이미 적에게 기울었다는 얘기라고 봐도 좋았다.

하여간,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 방어보다는 폭격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당했으니 꽤나 죽어 나갔을 터였다.

그나마 무리를 이룬 놈들은 아니었겠지만, 그럼에도 피아 구분이 되는 놈들이었으니 만큼 더더욱 그랬을 터였다.

“그래도 예비군 훈련도 진행 중이었고 해서 인원이 워낙 많았습니다. 예비군 중에는 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 가지고 지금은 규모를 줄인 채 지내는데, 안이 넓어서 저희 측에서 공수한 종자를 심어다가 농사도 짓고 그래요.”

“그럴 만한 공간이 있어요?”

“골프장이 있지 않습니까.”

“아……. 그렇지. 공군은 그렇지.”

“네. 지금은 이쪽 주변 마을에 비축된 식량도 그렇고……. 이미 개간된 땅도 있고 해서 이동을 안 하고 있긴 한데……. 거기가 좀 더 자리를 잡으면 아예 이동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수원 비행장까지 가는 길은 안전하다는 겁니다. 저희가 그대로 거의 매주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허.”

유현도 이번에는 좀 놀랐다.

김태평을 돌아보니 그 또한 굳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더랬다.

어딘가에는, 특히 군부대 같은 곳은 아무리 정부가 트롤짓을 거하게 했더라도 버티고 있는 데가 있을 거라고.

더 정확히 말하면 예상보다는 희망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문제가 있군요.”

그때 김태평이, 그러니까 보다 빨리 냉정을 되찾은 이가 입을 열었다.

“그쪽이…… 호의적일까요? 저희들에게도?”

“아……. 제가 사실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대강 돌아가는 분위기는 알아요. 딱히 정부랑 뭘 하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이건 교차 검증이 될 수 있는 사실이긴 했다.

김태평이 듣기에도 그랬으니.

대통령은 아예 청주 비행단, 즉 17비를 이용해 수원 비행장에 폭격을 할까 고민했을 정도 아닌가.

‘새삼스럽게 개새끼네, 진짜.’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다행인 건 10비(수원)가 17비와 나름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걸 청와대에서 알았고.

비록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하여간 연락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청와대는 섣불리 이상한 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이 사람들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폭격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본부장님. 정유현 교수님은 정말 중요한 사람입니다. 혹여라도 잘못되었다간…….”

“네, 저도 압니다. 그래도 그쪽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제가 아는 황 대령은 꽤 좋은 사람이에요. 아마 도울 겁니다.”

“대령? 단장이 대령입니까?”

공군 군의관을 나와 나름 체계를 알고 있는 유현이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는 길에 항공우주의료원을 털고 올까도 고민하지 않았었나.

그렇게 하면 너무 경로가 틀어지는 데다가 딱히 전투 부대도 아니고, 무엇보다 군이 어느 쪽에 섰는지조차 알 수 없어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하여간 그랬다.

“아……. 단장님은 자살했습니다. 사태 터지고 얼마 안 돼서 주변 세류역 있지 않습니까? 거기 인원 수색 명했다가……. 너무 피해를 봐서요.”

“아. 총을 안 들고 갔구나.”

“네. 정부 측 요청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황 대령은 그 일로 여전히 분해합니다. 폭격 얘기도 들으면 진짜…… 엄청 분통을 터뜨릴 겁니다.”

“흐음……. 그렇군요.”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 대령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대령이라고 해 봐야 어떤 보직에 있었는지에 따라 완전 다른 사람들 아니었던가.

물론 비행단이니 파일럿 출신일 가능성이 있을 텐데, 그래 봐야 유추가 가능한 건 아니었다.

남겨 두고 온 이순규가 끼어든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이순규도 딱히 정신 분석 쪽을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럴 게 아니라……. 제가 같이 가서 말을 해 볼까요?”

본부장이 제안을 건넸다.

솔깃해지는 제안이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매주 왕래를 하는 사람인데다가 종자도 줬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꽤 긴밀한 사이이지 않겠나.

그런 사람이 다리를 놔 준다면, 모든 것이 더 수월할 터였다.

“그건 감사한 일이군요.”

“네, 너무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제가 영광입니다.”

본부장은 유현을 보기 전에도 품고 있던 호감이 더 자라난 모양이었다.

유현이 인물이 좋기도 한 데다가 말도 잘하는 편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슬슬 때가 되었다는 판단이 섰다.

“실은 본부장님. 저희 일행이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정말 극비인데…….”

“그런 말은 안 하셔도 됩니다만.”

“하지만 드려야 합니다.”

유현은 밖에 둔 이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이순규와 라드화가 진행 중인 이들 그리고 현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제가 우연치 않게…… 확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라드가 되었음에도 회복한 사람입니다. 이순규 교수라고, 제 홈페이지를 보았다면 대강 유추가 가능하실 겁니다.”

“아……. 압니다. 그게 사실이었군요.”

“네. 그리고 또 라드화가 진행 중인 사람들이 있어요.”

“진행이요……? 그거 그냥 물리면 바로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본부장 말고 다른 이, 그러니까 처음에 커뮤니티에서부터 유현을 봤다는 이가 끼어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는데, 저변에 깔린 감정을 찬찬히 보면 의심만은 아니었다.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현이 하는 말이니까.

그가 지금껏 쌓아 온 대외적 이미지는 실로 대단하지 않았나?

영웅이라는 말도 아깝지 않을 지경이었다.

“네, 특이한 상황이죠. 그래서 제가 보호하고 있는데, 이해가 가능하실까요?”

“안전만 하다면요.”

“당연히 묶어 두었습니다. 감시도 할 거고요.”

“그렇다면야…….”

본부장은 말끝을 흐리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렸지만, 생각해 보니 여기에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뒤늦게 떠올려서 그랬다.

강압적이지 않은 집단을 추구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는데,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본부에 있던 이들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대개 구조받은 사람들이었고 그런 이들이 제아무리 잘 대해 준다고 해도 어찌 대등하다 여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이 집단은 체력적으로나 생존에 필요한 지식이나 경험으로나 모든 면이 상대적이 우월한 사람들이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저희도.”

“그럼 결정되었군요. 오시죠.”

유현과 김태평은 그런 일행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일행의 나머지 또한 재난 본부 안으로 들어섰다.

난방 따위는 돌아가지 않게 된 지 오래였지만 그럼에도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건물 자체도 허투루 지은 게 아닌데다가 사람이 꽤 많아서 그랬다.

특히 이순규가 그랬다.

“저기…… 너무 만지시는 건 좀.”

“아, 죄송합니다. 신기해서.”

처음 그가 모습을 드러냈을 땐, 다들 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특히 라드와 전투를 치렀거나 혹은 아는 사람이 당한 이들 같은 경우에는 적의를 떠나 두려움 정도는 느꼈다.

그러나 이순규가 누군가.

선한 성품의 대명사이지 않나.

제아무리 겉모습이 변했다 해도 대화 몇 번 나눠 보면 오히려 유현보다 훨씬 호감을 사기 쉬운 사람이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좀 신기하긴 하죠.”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벌써 몇몇 청년들하고 친해졌는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에 비해 현경과 다른 이들이 있는 쪽 분위기는 어둡기 그지없었다.

“으! 으으으!”

특히 박재한 요원이 그랬다.

“이건…….”

“라드……. 음.”

따뜻한 곳에 들어와 달리 다른 쪽으로 소모할 에너지가 없어져서 그럴까?

전에 없던 거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거칠다기보다는 흉포한 모습이었다.

“으!”

마치 초기 라드 같달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본부장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배고픈 거 아닌가요?”

영 엉뚱한 말이었다.

근데 맞는 말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밥을 언제 줬죠?”

“이틀은 됐죠?”

“그럼 화가 나지 않을까요?”

둘도 아직 희망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에 더더욱 맞는 말로 여기고 싶었다.

문제가 있다면 재갈을 풀어야 한다는 건데, 너무 사나워서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다행히 여긴 건장한 청년들이 많았다.

심지어 봉사 정신까지 투철한 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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