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76화 (176/323)

176화 경기도 남부 (3)

“끄으으으!”

이변이 찾아온 것은 새벽녘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안개 낀 산 너머로 해가 떠 오고 있을 무렵이었다.

여전히 신음만 흘릴 뿐,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진호 형사와는 달리 박재한 요원이 갑자기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까지 큰 소란은 아니었지만 주변이 워낙에 고요하다 보니 거의 모든 일행이 다가왔다.

애초에 잠자리도 불편하다 보니 지민이 말고는 다 깨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무, 무슨 일이에요?”

“뭐지?”

그중에서도 가까이 다가가는 이들이 있었는데, 유현이나 이순규 그리고 재원 등이 그랬다.

우식은 이미 옆에 붙어 있었다.

그가 경계를 서던 중에 발생한 일이라 그랬다.

덜컹

쾅그사이에도 박재한 요원은 덜컹거리고 있었다.

그게 자극이 되었는지 현경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먹는 걸 제한한 데다가 또 원래 아팠던 상황에서 라드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 이전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박재한 요원이.”

“잠깐만.”

물론 현경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

이미 틀렸다는 생각을 해서 그랬다.

그에 비해 박재한 요원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라드화를 겪었던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

이렇게까지 며칠간 끙끙대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김태평이 보기에도 그랬다.

실험에 직접 참가한 건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있긴 하지 않았나.

멍하니 있던 것도 아니고 그의 타고난 관찰력을 통해 제법 상세한 기억을 하고 있었다.

‘제발…….’

그는 박재한이 이순규처럼 되기를 바라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은 죄가 많아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았다.

미신이란 생각은 했지만, 천벌이라는 말이 어쩐지 가깝게 느껴져서 더더욱 그랬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많은 피를 묻히고 살았던가.

심지어 이 사태에 대해서도 그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어……. 이거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경련! 환자 경련하는데!”

“페니토인!”

“그게 있어?”

“있더라!”

그의 바람이 무색해질 만큼이나 박재한 요원의 용태는 급변하고 있었다.

무려 네 명의 의사가 살피고 있었지만, 문외한이 보기에도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건 명확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순규가 가져온 주사를 찔러 넣자마자 박재한이 좀 안정을 되찾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김태평의 관점에서 얘기였다.

“발작이라니……? 이런 증상이…… 있었나?”

이순규가 유현을 돌아보았다.

정작 증상을 겪은 건 그였지만, 솔직히 말해 초기의 기억은 거의 없어서 그랬다.

그때를 떠올리면 배고팠다는 기억뿐이었다.

“아니, 넌 그런 건 없었어. 아니……. 있기는 했지.”

“언제?”

“처음 실려 왔을 때……. 물론 그때도 심장 마비가 훨씬 특징적이었는데.”

“그럼 경련은 그냥 동반 증상인 거 아냐?”

“그렇지.”

심장 마비가 되면 전신에 피가 안 가지 않나.

당연히 머리로도 안 가게 되었다.

이게 지속되면 사망하겠지만, CPR를 통해 회복이 되고 나서 단기 손상을 받았던 뇌가 경련을 일으키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지금도 아마 그런 상황일 터였다.

차이가 있다면 머리가 직접 손상을 받은 것 같았다.

“검사를 해 볼 수도 없고…….”

“뭔가 다르긴 한데, 경과가.”

유현은 자신이 봤던 라드 환자들, 그러니까 이순규와 현경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저 둘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런 건 처음 봤다.

바이러스의 행태가 달라진 걸까?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긴 한데…….’

바이러스는 상대적으로 변이가 빠른 놈들이긴 했다.

때문에 치료 약 개발도 어렵지 않나.

더불어 백신 개발도 어렵고.

아직도 감기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세대 만에 이렇게까지 변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상황이 아주 달라지긴 했지만……. 문제는…….’

CT라도 있으면 뭐라도 찍어 볼 텐데.

지금은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아, 환자 까라지는데. 포화도를 잴 수도 없고……. 호흡 가라앉는다.”

“어…… 어쩌지?”

“일단 바이탈은 챙겨야지. 삽관하자.”

“어……. 어어.”

이순규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여기저기를 뒤적거렸다.

별 소용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과 의사는 사실상 인턴이었으니까.

대신 도움이 되기 시작한 것은 재원이었다.

“여기, 여깄습니다.”

“응.”

“저, 근데! 물리면 어쩌시려고요.”

“블레이드로 밀고 넣을 건데 뭔 소리야.”

“그, 그래도…….”

“다 알아서 조심할게. 이마나 눌러.”

“네네.”

물론 직접 시술에 나선 것은 유현이었다.

자세도 별로고 빛도 어두웠지만,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곧 삽관을 해냈다.

슈욱

자연스레 그렇게 들어간 플라스틱 관에 앰부를 연결한 재원이 앰부를 짜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뭔 소용이 있으려나…….’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했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미 라드라면…….’

만약 라드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생지랄을 하고 있는 거라면…….

자괴감이 밀려오고 있을 무렵, 김태평이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해 떴네요.”

어찌나 집중하고 있었는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유현을 비롯한 의료진들은 주변이 밝아졌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냥 집에서 잤어도 될 뻔하긴 했네.”

예상은 했지만, 과연 주변은 논으로 가득했다.

민가도 여태 지나왔던 시골보다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드글드글한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뭐가 있어도…… 수는 적겠어.’

라드가 있을 수는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위협이 되긴 어려워 보였다.

맨몸이라면 몰라도, 총 든 사람들이 있으면 딱히…….

심지어 이곳은 개활지라서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데다 주로 직선으로 달려드는 라드를 맞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일행에게는 오예리 형사가 있었다.

그녀는 든든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트럭 앞쪽 위에 선 채였다.

“지난 일이니까……. 일단 가죠.”

“네.”

“아, 근데 어제 저쪽에서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인계는 받으셨죠?”

“네, 들었습니다. 사실 그럴 만한 입지긴 해요. 누군가 점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태평 또한 든든한 얼굴로 앞장서서 가기 시작했다.

부우웅

오랫동안 관리받지 못한 차량이 내뿜어 대는 매연을 뒤로하고, 하나둘 앞으로 나갔다.

구불구불한, 동시에 좁아터진 시골길을 따라가다 보니 작은 동산을 넘어서자마자 우측으로 길이 나 있었다.

완전 산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포장이 되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큰 차량이 왔다 갔다 했을 테니.

저 안쪽으로 축산 진흥회도 있고 소방 재난 본부도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길이 좋고 넓으니까 좋네.”

“그러니까요.”

오늘 운전대는 유현이 잡은 참이었다.

잡았다고는 해도 거리가 짧아서 의미가 있나 싶긴 했지만.

하여간 교대로 잡기로 했다.

“멈춰 선다.”

“어……. 아직 한참 남은 거 같은데.”

“생각이 있겠지. 요원이잖아.”

“하긴, 그건 그래요.”

김태평이 일행에 끼어 들어온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나름 평화로운 겨울 시기에 들어와 대화 나눌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기는 했다지만, 그걸 감안해도 신뢰감이 상당했다.

그가 보여 준 능력들 때문이었다.

유현도 뛰어난 사람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배운 게 다르다 보니 확실히 좀 달랐다.

전투력이야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싸우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만큼 회피가 가능했다는 것부터가 대단하지 않나.

“사람들이 우리한테 호의적일지 아닐지는 알기 어려워요.”

하여간, 내렸더니 김태평이 다가왔다.

차 세운 곳은 솔직히 말해서 건물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곳이었다.

왜 이렇게 멀리 댔나 했더니만, 이유가 있기는 했다.

“하긴…….”

“사실 라드보다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특히 우리는…… 총이 있긴 하지만 인원수에 비해 전투 요원이 적어요. 무엇보다 물자는 너무 많고요.”

“음……. 어쩌죠?”

예전 같았으면, 혹은 유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설마 하면서 망설였겠지만.

세상이 망한 지도 벌써 수개월이 흐르지 않았나.

당장 유현 일행부터가 도로 건너편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도살당할 때 돕지 않았더랬다.

시도는 했다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이득을 봤으면 봤지 피해를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생존자들을 공격하는 이들도 있지 않을까?

“일단 제가 요원들 데리고 염탐을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태평은 그런 유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에 끼어 줄 생각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나서야 하겠지.’

이순규라면 100% 제지하고 나설 터였다.

유현?

이 사람이라면 말리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태평에 대한 평가를 절하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한 일행이 없는 것 같은데, 굳이 리더의 눈 밖에 날 필요가 있을까?

“아……. 저희가 도울 건……?”

“아뇨. 이순규 교수님은 사실 모르는 사람들 눈에 띄면 오히려 오인을 받을 수 있어요. 오예리 형사나 교수님은 여기서 일행을 지키는 게 나을 것이고요. 아무래도…… 그렇게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 않습니까?”

딱 좋은 핑계도 들고 있었다.

김태평은 자연스레 트럭을 바라보았다.

박재한을 비롯한 이들이 누워 있는 곳이었다.

저걸 다른 이들이, 그러니까 사정을 잘 모르는 이들이 보면 어찌 될까.

아마 많은 해명이 필요할 텐데……. 대개는 해명이 있기 전에 싸움이 벌어질 터였다.

“그렇네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 유현 또한 자기가 모르는 상태에서 김태평이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을 하는 건 관계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눈으로 본다면, 그러니까 다른 생존자들을 살해하는 걸 본다면 좀 그렇겠지만 그게 아니라면야…….

‘사실상 일반인들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죽이려고 마음먹은 요원들을 어찌 이기나.

딱 봐도 권총에 소음기를 챙기는 폼이 단순히 정찰 나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재한이는…… 어떻게 될까요?”

김태평은 요원 셋과 함께 산 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시간도 있겠다, 요원 하나가 물어 왔다.

참고 참았다 하는 말일 것을 모르지 않아서, 김태평은 역정을 내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인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나도 모르지.”

“교수님은 알까요?”

“글쎄. 하늘만이 아실 거 같은데.”

김태평은 그렇게 다시 하늘을 보다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지금 또 죄지으러 가는 길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찜찜했다.

“위력 정찰이라고 생각해.”

물론 죄책감은 그렇게 크지도 않았고, 딱히 이어지지도 않았다.

김태평은 건물이 보이는 곳에 도달하자마자 작전을 하달했다.

안에 있는 이들이 누구건 간에 딱히 호의적으로 대할 생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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