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경기도 남부 (1)
“왜 그러세요?”
농공 단지에서 여기 올 때만 해도 운전이 가능할 정신이 있는 이들은 요원들 뿐이었다.
아니, 사실 요원들도 억지로 운전을 한 것이지 다들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받아들인 덕일까?
감염내과 교수인 유현으로서도 뭐라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이유로 대다수 인원의 상태가 훨씬 나아진 상황이었다.
‘뭐……. 질병 경과상 나아질 때가 되기도 했지.’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름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된 재원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레지던트 2년 차 땐가에 차를 샀기 때문에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딱히 많이 몰아본 경험은 없겠지만, 도로에 오가는 차량이 없다 보니 별 상관은 없었다.
“아니……. 뒤에서 비명 소리 같은 게 들린 거 같아서.”
“아……. 그런 무서운 얘기 하지 마세요.”
“넌 앞이나 봐 인마. 전방주시 몰라?”
“우리 차밖에 없는데…….”
“우리 차는 박아도 되냐? 그리고 엄밀히 따졌을 때 우리 차는 이제 있지도 않아.”
“그건……. 그건 그렇긴 해요.”
재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안한지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붙는 건 없었다.
유현이 말했던 ‘비명’도 들리지 않았고.
유현도 아까까지 그랬던 것처럼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는 ‘비명’에 대해 묵상하는 중이었다.
‘사람 소리라기보다는 개……소리였지?’
개소리라는 말을 농담조로 던질 수 있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떠올린 개소리는 같은 단어지만 전혀 다른 함의를 품고 있었다.
‘거기 있던 무리들이 당한 모양인데…….’
굶주린 들개들만 위험할까?
그럴 리는 없었다.
애초에 인간은 타고난 사냥꾼이고 또 포식자니까.
대형 동물의 개체 수가 팍팍 줄어 나간 이유가 뭔가.
인간들이 집단으로 사냥에 나서면서였다.
북미 대륙은 물론이거니와 오세아니아 근방에 인간이 상륙하면서 동시에 번성하던 대형 포유류들의 씨가 말랐다는 사실은 인류사에 명백히 기록된 사실이었다.
‘인간……? 어쩌면 라드일 수도……. 아니지. 라드일 가능성이 훨씬…….’
그러나 그것도 인간들의 숫자가 충분하고, 무장도 하고, 무엇보다 젊은 개체들일 때 한정된 얘기였다.
이 근방은 시골이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청년회장을 60대가 맡을 수도 있는 지역일 터였다.
사태가 터지고 나서 가뜩이나 인구수도 줄었을 텐데, 그런 이들이 들개 무리를……?
‘진짜 도망 나오길 잘했네. 마주쳤으면…….’
애써 잊으려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눈을 감으면 날아들던 쇠 파이프와 아이 머리통만 한 돌들이 떠올랐다.
특히 차량이 완전히 박살이 나서 엎어질 때의 기억은 영영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더불어 라드가 현경을 물고 웃음 짓던 그 모습도.
‘이런 개 같은…….’
유현은 표정을 구기다가 이내 앞을 바라보았다.
좀 느려진다 싶어서 확인한 것인데, 확실히 느낌만은 아니었다.
일행은 선두부터 쭉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분명 차도는 올라가는 차도임에도 불구하고 차량들은 이쪽을 향해서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차는 문이 열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어쩌죠……?”
“어쩌긴, 다른 길로 가야지. 일단 있어 봐. 주변 잘 보고. 뭐가 나올지 몰라.”
“그……. 같이 안 내리고요?”
“내리려고? 내리면 더 위험하지.”
“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을 듯싶었다.
그렇지 않겠나?
안 그랬으면 이딴 식으로 차들이 놓여 있을 리가 없었다.
덜커덕
해서 유현은 좌석에 놓아두었던 총을 집어 든 채 차에서 내렸다.
마치 통신이라도 주고받은 것처럼 김태평도 내리고 있었다.
그 외에 김현철 소위와 우식 그리고 요원 둘도 합류했다.
멀쩡한 인원 중에서는 이순규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그가 현경과 라드화가 진행 중인 두 사람의 곁에 붙어 있었으니까.
“돌아가야겠죠?”
유현은 다가오는 김태평을 향해 말했다.
평소 유현의 말이라면 어지간해서 바로 들어주던 그였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네, 그렇긴 한데……. 일단 차량을 좀 보죠.”
“차량을……요?”
“지금 보면…… 문이 저렇게 다 열려 있지 않습니까. 아마 여기에서 습격이 있었을 겁니다.”
“아,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저 사람들이 그냥 여기 온 건 아니겠죠. 피난을 생각하고 왔을 텐데……. 챙겨 온 짐을 가지고 도망갈 수 있었을까요?”
“아.”
유현은 김태평의 말을 듣고 다시 차량들을 바라보았다.
어림잡아 수백 대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차들이 널려 있었다.
이렇게만 봐서는 얼마나 지났을지 모르겠지만, 라면 같은 것들은 유통 기한이 꽤 되지 않나?
식수도 생수통에 든 것이라면 어지간해서는 먹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공동묘지처럼 보이던 곳이 돌연 보물창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냥 그렇게만 보기엔 누군가의 비극이 가득한 곳이었긴 한데…….
“이럴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살펴보죠. 주변에 뭐가 나올지 모르니, 제가 팀원들과 함께 주변을 보겠습니다. 이순규 교수님도 도와주시면 좋겠네요.”
“네, 그럼 제가 나머지 인원들과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서두르는 게 좋을 겁니다. 이 근처에…… 보니까 아파트 단지도 있고 해서. 사실 경기도잖습니까?”
“그렇죠.”
경기도.
면적이 넓기도 하지만 하여간 인구수도 이제 서울보다 많은 지역 아닌가.
게다가 이곳은 경기 남부, 그중에서도 수원으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제일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당연히 살아남은 사람도 많을 것이고, 폭격의 대상도 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남아 있는 라드가 많을 터였다.
“자, 너무 흩어지진 말고. 주변부터.”
“네.”
서두르는 게 좋다는 말을 딱히 더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유현은 차에 남아 있던 이들도 죄다 동원해서 훑기 시작했다.
어차피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는 데다가, 도로가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정찰에는 한없이 유리할 터였다.
“어, 교수님. 차 키 그대로 있는데요?”
하여간 그렇게 살피던 중 재원이 먼저 외쳤다.
외쳤다고 하기엔 적당한 성량을 유지하고 있긴 했지만.
“오……. 이 차는 꽤 괜찮아 보이는데.”
“근데 앞에 차들이 있어서. 이걸 어떻게 치우죠?”
“아, 그렇네. 음. 어쩔 수 없지……. 밀어낼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앞에 한 두어 개의 차량을 치워야 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파킹만 박았고, 외제 차도 아니다 보니 밀면 나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지금 당장 급한 건 아냐. 어차피 우리가 차가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 식량에 집중하자. 토치나 이런 거 있으면 그런 것도 챙기고.”
“토치요?”
“아니……. 음.”
유현은 재원을 바라보았다.
유현도 거의 병원, 집 그리고 헬스장만 왕복하는 사람이었지만 재원은 그냥 병원에만 있던 애 아닌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몰랐다.
“그냥 먹을 것만 찾아라.”
“아, 네.”
그나마 다행인 건 시킨 건 잘한다는 점이었다.
“교수님. 여기 쌀이…….”
“라면도 있습니다.”
“김치……. 와…… 완전 썩었네.”
“과자! 과자다!”
그 후로도 발견? 아니, 발굴은 계속 이어졌다.
마을보다도 훨씬 효율이 좋은 느낌이었다.
김태평의 말대로 도망가려고 본격적으로 싸 둔 짐이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음.”
한편 김태평은 김태평대로 주변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한민국만큼 아파트 단지 많은 곳도 없다는 말이 있지 않나.
그걸 여기서 실감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발…….’
따지고 보면 아직 도심도 아닌데 대체 몇 세대가 있는 건가.
여기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하면, 그건 정말 재앙이 될 터였다.
“어, 팀장님.”
그때 반대편을 살피고 있던 팀원이 말을 걸어왔다.
그쪽도 김태평이 보던 곳 못지않게 많은 단지가 있고 또 상가들도 있었더랬다.
때문에 김태평은 기민하게 반응했다.
“왜. 뭐 있어?”
“네. 저기.”
“저기……? 아.”
팀원이 가리킨 곳엔 한 무리의 인파가 있었다.
말이 인파지 멀리서 봐도 사람은 아닌 듯했다.
덩치들이 산만 했고, 무엇보다 옷이 엉망이었다.
물론 이쪽 일행도 겨울이 되면서 디자인 따질 여력 없이 껴입느라 엉망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런 모습은 아니었다.
“뭐 하는 거지?”
“아무래도…… 건물들을 뒤지고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뒤져……? 하긴…….”
뒤진다고 생각하고 보니까 나름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행을 습격했던 놈들이나 강변에서 만났던 놈들처럼 창문을 돌로 깨고 진입한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안에 있을 이들에게는 위협적일 터였다.
“일단 보지. 꽤 머니까. 아직 여기 발견한 거 같지도 않고.”
“네.”
직선거리로는 기껏해야 500미터 정도 될 터였다.
하지만 도로가 고가 도로였기 때문에 그걸 감안하면 2, 3킬로 정도는 떨어져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걸 따라잡을 수 있을까?
어려울 터였다.
“어……?”
“왜. 훈련 안 받은 사람처럼 굴래?”
세상에 대체 어떤 미친 요원이 정확한 상황 보고 대신 감탄사를 내뱉는단 말인가.
게다가 이놈들은 김태평이 엄선해서 데리고 다닐 정도로 뛰어난 놈들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살아남지 않았나.
어이가 없어서 타박을 해 가며 옆을 봤더니만 확실히 그럴 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싸우는데요……?”
“그래, 싸우네. 근데…….”
“상대도 라드 같습니다.”
“뭐지……?”
냄새로 지들끼리는 편 먹고 인간 조지는 새끼들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김태평은 망원경을 꺼내 들고 자세히 살폈다.
그랬더니 두 집단 사이에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한쪽은 집단이라고 봐야 하나 싶을 지경이었다.
우선 숫자부터가 차이가 났고, 딱히 서로 협동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유연히 같은 공간 내에서 지내고 있다가 한데 묶여서 사냥당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상대 라드는…… 이전 세대 라드……라고 해야 할 거 같은데.”
“네?”
“그……. 무지성으로 뛰어들던 놈들 있잖아. 그 새끼들 느낌이야.”
“아…….”
“그에 비해서 저 새끼들은 무리를 지었잖아. 지들끼리 돕기도 하고. 저 봐. 방금 봤어?”
“아, 네. 확실히……. 저건…….”
전에 있던 놈들도 협동을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잘 보면 그냥 약해진 놈을 같이 물어뜯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리 지은 놈들이 보여 준 모습은 그와는 전혀 달랐다.
끌려가는 놈을 구하기 위해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심지어 그 와중에 한 놈은 꽤 다치기까지 했다.
확실한 동료 의식이 있다는 얘기였다.
“하여간, 아직 우리 쪽으로 오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놈들, 무는 거 말고도 공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아, 그렇긴…… 하지. 그래, 슬슬 가자고 해야겠네.”
“어.”
“왜.”
“이쪽 보는 거 같습니다.”
“이런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