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노인들의 마을 (2)
‘으읍…….’
유현은 잠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를 그저 내려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거친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애초에 엄마였을 라드를 물어뜯을 지경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가까스로 참고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유추를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라드화가 되었다 해도……. 아기는 아기로구만, 그래.’
영양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마 제대로 된 라드였다면, 시신 상태로 미루어 보건대 며칠 되지 않았으니 이미 꽤 자랐어야 했을 터였다.
아니, 자라긴 했다.
다만 살이 붙지 못했을 뿐.
이빨이 났다고 해도 작은 데다가 위장도 제대로 자라지 못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뭘 먹는다 해도 소화를 시키지는 못했을 터였다.
‘정상적인 분만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사고가 나서 이렇게 된 걸까.’
만약 아이에게도 성장 호르몬이 과다하게 들어가 뱃속에서 지나치게 커지는 상황이라면 딱히 걱정할 일이 없을지도 몰랐다.
태어나 봐야 이렇게 될 테니.
‘더 확실한 것은 실험을 해 봐야 하기는 할 텐데…….’
유현은 잠시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실험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현 안에 남아 있던 인간성이 고개를 쳐들어 버린 참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건 없지.’
해서 유현은 아이를 죽이고 나가려다가, 그것도 관두기로 했다.
끔찍한 생이지만 그것조차 끊어 주기기가 좀 그래서 그랬다.
해서 문이 절대로 열리지 않게끔 닫아 주고 나왔다.
“어……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두고 나왔지.”
“그래. 그래…….”
“그만할까, 이제?”
유현의 말에 이순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던 김태평조차 그랬다.
나름 식량을 모으긴 했지만 시간도 그렇게까지 많이 흐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까이에 몇 집들이 더 있는 상황임에도 그랬다.
게다가 오예리도 상황을 전해 듣고 나자 더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세상에 아기 라드라니?
그 아기가 자기 엄마를 뜯어 먹고 있었다니?
이건 좀 너무…….
자박자박
해서 일행은 다시 박물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격했던 장면이 장면이었던 만큼, 돌아오는 길에 제대로 된 대화 따위는 없었다.
그저 눈 밟는 소리만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 와중에도, 오예리만큼은 후방을 경계하고 있었단 점이었다.
‘교수님도…… 저런 면이 있긴 하구나.’
오예리는 중간쯤에 서서 진짜 걷기만 하고 있는 유현을 돌아보았다.
오예리 형사가 유현과 함께 지내 온 지도 이제 제법 되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모습은 처음 보았다.
유현은 심지어 형사들이 차에 치여 죽고, 그 시신을 영안실에서 확인했을 때에도 해야 할 일을 고려해서 행동하지 않았나.
그만큼 오늘 본 장면이 충격적이었단 말이 되었다.
‘내가 안 들어가길 잘했네.’
그런 걸 본인이 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어쩌면 업혀 가고 있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르르
그렇게 이동하는 동안에도 들개 무리는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실 눈이 더 녹았기 때문에 달려들려면 달려들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놈들은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서.
‘말은 안 하는 게 낫겠지.’
달려들려고 한다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니지 않나.
오예리는 유현도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올 권리가 있단 생각이 들어서 조용히 있었다.
돌이켜 보면 유현도 사람인데 이런 적이 너무 없지 않던가.
도리어 어떤 부분에서는 살짝 안심도 되었다.
리더에게 사람의 마음이 남아 있다는 건, 일행에게 위안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으니.
으으릉
오예리는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한 들개 무리를 보면서 말 안 하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박물관 근처에 도달하자마자 놈들이 불어난 일행을 보고는 도망가는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일행의 덩치는 구성원이 어떻든 간에 그 덩치만으로 의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와……. 통조림 봐라. 이거 맛있겠는데?”
상황을 전혀 전해 듣지 못했던, 그러니까 박물관에 남아 있던 일행은 식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통조림을 보면서 화색을 띠었다.
식량 자체가 부족했던 적은 없었지만 종류는 무척 한정되어 있던 탓이었다.
꽁치 통조림은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지민도 드물게 밝게 웃고 있었다.
“와……. 오늘 이거 먹어도 돼요?”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유현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 버텨야지.’
무너지면 안 될 일 아닌가.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나름 가족 같은 사이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형 근데 뭔 일 있었어? 표정이 아까…….”
물론 유현의 근심을 읽어 낸 이도 있었다.
우식이 그러했다.
“아.”
어차피 우식에게는 얘기를 하려 했던 참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재원도 알아 두면 좋을 거 같았다.
뭐가 되었건 의사들은 이런 류의 비극에 그나마 내성이 있지 않나.
될 수 있다면 김 주무관에게도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건 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실험 지식은 훌륭한 데 반해서 담이 너무 약했다.
가뜩이나 눈길 해치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까지 들으면 심란해서 그 때문에 아플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아직 독감이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긴 했고.
“재원이랑 같이 봐.”
“아……. 응.”
“짐 싣는 건 다른 사람들한테 잠깐 맡기고.”
“어, 응. 형.”
해서 유현은 의사들 그리고 오예리 형사와 김태평 요원를 불러 모았다.
잠깐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이런 류의 정보는 공유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단지 알려 주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추론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그랬다.
확실히 백그라운드가 다른 게 이런 종류의 난상 토론에서 도움이 되었다.
“그런……. 그런 걸……. 아우…….”
재원은 고개부터 가로저었다.
생각만 해도 싫은 모양이었다.
다만 우식의 반응은 좀 달랐다.
“확실히…… 호르몬이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있지. 바이러스야 당연히 전달되었을 것이고……. 아이가 일반적인 아이에 비해 커졌을 가능성은 있어요. 흐음.”
그는 임상보다는 다른 게 더 끌려서 공무원이 되었던 케이스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오히려 일반적인 의사들에 비해서는 실험이나 정책 쪽으로의 인사이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인간은 모성 사망률이 다른 동물에 비해 높은데……. 우리가 본 라드들의 특성 중 하나가 머리가 더 크다는 거잖아요.”
“그렇지.”
“아, 네.”
그의 말에 유현과 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도 대동소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오예리나 김태평은 의학에 대해서는 아예 문외한이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도 그랬다.
“그렇다면 모성 사망률이 급등할 겁니다. 아무리 라드라 해도 신체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건 아마……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킨다고 해도 해결이 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인간의 신체 구조를 고려한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인데…….”
“실험실이 아니고서는 어렵지. 유전자에 눈이 달린 건 아니니까.”
“네. 그렇죠. 오히려…… 살아남은 아이에 남은 바이러스는 생식을 안 하는 방향으로 숙주를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과다한 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를 일이기도 하고요.”
“하긴……. 우리가 그렇게 많은 라드를 봤는데도 유아기의 애는 없었지.”
유현만 이 상황을 두고 보면서 추론을 이어 나갔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우식도 나름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금 본격적으로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라드들이 번식할 가능성은 없어 보여요. 물론 미친놈들이 뭔가 더 실험을 진행한다거나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할 텐데. 이 상황에서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그렇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겠지보다는 그렇게 믿어야지가 되겠지만.
그 누구도 유현의 말에 토를 달지 못했다.
오히려 나름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보느라 바빴다.
끔찍한 광경을 목도하긴 했지만, 희망을 품을 만한 상황이라는 걸 들었지 않나.
일단 라드들의 수명이 짧다는 걸 이번에도 확인했고, 또 놈들이 번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럼 갈까요? 서울로.”
그렇다면 이들이 해야 할 건 단 하나뿐이었다.
어떻게든 놈들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
얼마나 오래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았지만.
글쎄.
대한민국 평균 수명을 따져 보면, 길어야 한두 해일 터였다.
노인들이라고 해서 오늘내일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던 건 아니었을 테니.
10년은 거뜬히 살 수 있었을 사람들이 고작 몇 달을 못 버텼다는 얘기가 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네, 그러죠.”
“갑시다!”
당연하게도 일행의 목소리에 힘이 팍팍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라드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 즉 이진호 형사와 박재한 요원을 옮기면서도 그렇게까지 우울해하진 않았다.
오예리 형사야 어두운 낯을 드문드문 보였지만 김태평은 이미 미래를 꿈꾸고 있는 듯했다.
‘정부……가 결국, 가장 큰 적이 되는 건가……?’
물론 그라고 해서 그리 밝은 미래를 그리고 있진 않았다.
사실, 김태평은 처음부터 라드가 그렇게까지 위협적인 적이라 여기고 있진 않았다.
오히려 무서운 건 김선태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대통령이지 않나?
실제로 나라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건 대통령이지 라드는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이놈들을 퍼뜨린 참이었으니까.
‘남산이라도…… 포섭을 해야 할 텐데……. 그쪽 정보를 알 수가 없으니.’
만약 청와대 측이 남산까지 세력을 확장했다면 이미 다 텄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면 강남 일대에 남아 있을 생존자 무리를 규합해야 할 텐데, 그거라고 해서 쉬울 것 같지도 않았다.
인간이 모두가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배워서 그랬다.
망할 놈들.
마트를 그렇게 날려 먹을 줄이야.
“가시죠.”
“어, 그래. 가자.”
물론 김태평은 생각에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이미 차에 올라타 차량을 선도하고 있었다.
오예리 형사는 그런 김태평을 도와 앞길을 가로막는 물건이나 눈이 있으면 치우고 있었고.
부우웅
덕분에 일행은 곧 박물관 일대를 떠나 북쪽으로 향할 수 있었다.
단 하루가 더 지났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눈이 꽤 녹아서, 속도가 전날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서두른다면 금일 내에 서울은 아니더라도, 경기도에는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있었다…….”
그렇게 일행이 떠나고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라드 무리 또한 박물관에 닿았다.
끝까지 유현을 따라잡았던, 그리고 현경을 감염시켰던 놈이 앞장서서 리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라드의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이순규가 봤던 녀석이었다.
연구소 근처에 자리했던, 냉동고를 사용하고 지키도록 지시했던 바로 그놈이었다.
“일단 들개부터……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