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노인들의 마을 (1)
세종시 시립 박물관은 그 이름이 무색할 만큼이나 세종시하고는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꽤라고 하기엔 멀쩡한 시절에는 금세 올 수 있었겠지만…….
하여간, 이 부근은 완연한 시골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눈이 꽤 녹았군요.”
“그러니까요.”
앞장서서 걷는 건 김태평이었다.
그 바로 뒤를 이순규가 따랐다.
신체적 특성 때문에라도 이런 일에서 단 한 번도 빠지질 못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만은 없었다.
타고나기를 선하게 타고나기도 했는 데다가,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더더욱 그러한 면이 강조되어 그런 모양이었다.
그에 반해 유현이 매번 이렇게 나서는 건,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른 인원들도 할 일이 있지 않나.
뭔가 많이 부족해지고 난 다음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뭐가 되었건 쪽수가 많은 게 장점이었다.
적어도 이동할 때 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적었으니.
“잠시.”
김태평은 이제 많이 녹아 정강이 높이까지밖에 오지 않는 눈길을 걸어가다가 손을 들었다.
이순규가 의문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그가 봤을 땐 라드 같은 게 보이진 않아서 그랬다.
“들개가 있군요. 꽤 큰 거 같은데…….”
“아.”
말을 듣고 나서 보니, 확실히 저 멀리 들개가 보였다.
무리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다만 놈들도 눈 때문에 이동이 쉽지 않은지 낑낑대고 있었다.
말이 좋아 낑낑이지, 가까이 갈수록 으르렁대는 소리가 사방으로 울리고 있었다.
“감염이 된 건가?”
“모르겠습니다. 근데 굉장히 공격적이네요.”
“그러니까요.”
“뭔가…… 이미 사람을 먹잇감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긴 합니다.”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좋은 기억이 나서 그랬다.
사람들은, 특히 개 키우는 사람들은 개가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 간과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들개 무리의 위험성을 무시할 때가 있는데…….
그러다 정말로 죽는 수가 있었다.
‘남미 개새끼들은 사납지.’
특히나 무리를 이룬 들개는 이미 늑대라고 봐도 좋았다.
집요하게 상대를 쫓고 영리한 공격을 해 댈 수 있는 놈들이지 않나.
조심하는 게 좋았다.
“하지만 거리가 있어서……. 지금은 괜찮을 거 같습니다. 하여간 들개 무리가 자리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주변에 먹을 게 꽤 있나 보군요.”
“아, 그게 또 그렇게 해석할 수 있군요.”
유현은 김태평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들개 무리는 위협적으로 보였다.
사람을 먹잇감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딱 알겠는 수준이었다.
끊임없이 이쪽으로 오려고 시도 중이었다.
사람이 넷 정도 되면 적은 것도 아니고, 오예리를 제외하면 체격들도 다 좋은 편인데도 저러고 있다는 건…….
확실히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끼이익
그사이 김태평은 가까이에 있는 민가에 도달했다.
그러자마자 별 망설임 없이 문을 밀어 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인기척이 아예 없어서였다.
눈밭은 그저 설원으로만 보였다.
“뭐가 있을까요?”
“알 수 없죠. 시간은 좀 있을 테니, 서둘러 보죠.”
오예리 형사는 문가에 남아 밖을 주시했다.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쉽게 넘어오진 못할 듯했지만, 만약 들개 무리가 움직인다면 최전방에 오예리가 있는 편이 좋을 터였다.
그녀의 사격은 움직이는 상대로도 잘 통하니까.
“오, 여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꽁치 통조림인데. 오랜만인데요?”
김태평은 꽉 차 있는 부엌 찬장에 신이 나서 통조림을 잔뜩 꺼냈다.
누가 강매라도 했나 싶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하여간 다행이었다.
당장에야 식량이 부족하지 않다 해도, 나중을 장담할 수 있을 수준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통조림과 같이 장기간 보관이 용이한 음식은 늘 환영이었다.
“여기도……. 이건 먹을 수 있을까요?”
“장인데. 뭐…… 먹을 수 있겠죠?”
유현 또한 뭔가를 찾아냈다.
고추장, 된장 같은 장을 담궈 둔 모양이었다.
그 외에 장아찌 같은 것들도 있었는데, 다들 먹을 만한 것 같았다.
“어……. 여기 좀.”
집 안은 당연하게도 눈이 들이닥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유현이 밖에 마당을, 태평이 부엌으로 직행한 사이 이순규는 더 안으로 들어갔던 참이었다.
뭐가 있는 걸까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간 둘은 쉬이 말을 잇지 못했다.
시신이 두 구 놓여 있어서 그랬다.
노인이라기엔 지나치게 건장한 시신이었다.
백골만으로 연령과 생전의 모습을 확인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이제 나름 익숙해지지 않았나.
“라드겠군.”
“수명이 다해서 죽었을까요?”
“알 수 없지만……. 보건소에서 본 시신들은 이렇게까지 부패……?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그렇게 진행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죠.”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보건소에서 봤던 시신들은 부패 도중에 있었다.
이런 식으로 깨끗하게 뼈가 발라져 있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잘 보니까 이빨 자국 같은 게 있는데……. 들개가 먹은 모양이야.”
“잡아먹힌 건가?”
유현은 더 가까이에서 유골을 살폈다.
내과 의사를 하다 보면 시신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소거되기 마련인데, 유현은 그 정도가 좀 심한 편이었다.
그가 그렇게 나서자 이순규도 따라나섰다.
김태평도 딱히 뒤로 물러나 있진 않았다.
다들 간 큰 것으로 따지자면 이제 수준급이었다.
“죽고 나서였을 가능성이 커 보이긴 해.”
“역시 수명이 짧긴 짧구나. 으음…….”
이순규는 수명 얘기를 하면서 좀 착잡해졌는지 말끝을 흐렸다.
지금 당장은 호르몬 수준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번이라도 폭발적인 호르몬 변화를 보인 사람은 수명이 줄어들지 않겠나.
도핑 수준의 약물도 그러한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순규가 겪었던 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너는 여러모로 상황이 다르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자고.”
“그래……. 하여간, 더 찾아볼까?”
“응. 근데 너무 시간을 할애하진 말자고. 눈이 녹고 있어서…… 놈들이 따라올 수 있어.”
“그래.”
도망쳤다고는 해도 고작해야 10킬로 남짓한 거리를 올라온 마당 아닌가.
다시 출발하게 되면 쭉쭉 벌어지긴 하겠지만 놈들의 속도도 무시할 만한 건 아닐 터였다.
‘뭐……. 라드들이 아무래도 장거리 체력은 떨어질 거 같긴 한데…….’
다만 유현은 이런 생각도 하고 있긴 했다.
몸집이 커지면 무조건 장점만 생기는 건 아니지 않나.
모든 것이 풍요롭다 못해 넘쳐나기만 하던 현대 사회에서나 에너지 소모가 긍정적인 것이지 이런 시대에는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런 시대에 에너지 소모가 많다는 것은 효율 나쁜 차를 끌고 다닌다고 보면 되었다.
연료도 기름이 아니라 먹어서 해결해야 했고.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지.’
생각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심시켜 주고 싶지는 않아서 그랬다.
식량을 서둘러 파밍하고 도망치는 것, 그것이 최선이었다.
끼이익
그렇게 일행은 세 군데의 집을 더 털었다.
그중 두 군데에서 시신을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완전히 백골만 남아 있었는데, 들개 무리의 소행으로 보였다.
다들 얌전히 누워 있었는데, 확실히 수명이 다한 후 당한 것으로 보였다.
“끄으으…….”
그리고 마지막 집에서, 일행은 마침내 아직 살아 있는 라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철커덕
오예리는 마당을 통해 확인한 후 라드를 향해 바로 총을 겨누었다.
그것을 제지한 것은 유현이었다.
“잠시만.”
“네? 왜요? 위험해요!”
“아니……. 위험해 보이지가 않아요.”
유현은 그렇게 손을 든 채로 상대를 관찰했다.
확실히 키는 일반적인 노인에 비하면 꽤나 큰 편이었다.
물론 키야 젊고 늙음의 차이가 없기는 한데……. 허우대나 이런 것도 그랬다.
하지만 말라 있었다.
‘늙으면 소화 기능도 떨어지기 마련이지.’
먹을 것이 부족했을까?
그것도 그렇긴 했을 터였다.
초기에 감염이 되었다면 지능이 떨어질 테고, 그렇다면 통조림 같은 음식을 따 먹는 것도 무리였을 테니.
기껏해야 냉장고 문이나 열어서 뭘 먹었을 텐데, 음식을 아무리 많이 쟁여 놓는 집이라 해도 몇 달을 견딜 수는 없는 법이었다.
“끄으으!”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팔도 제대로 못 휘두르는 주제에 그랬다.
“편하게…… 해 드릴까?”
그런 라드를 보다가, 이내 이순규가 입을 열었다.
총을 거꾸로 들면서였다.
저걸로 때려죽이겠다, 뭐 이런 뜻이었다.
“그래, 그러자.”
유현은 더 관찰할까 하다가, 의미를 찾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봐도 그냥 노인 그 자체여서 그랬다.
라드의 특수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노인은 노인이었다.
그 말은 이대로 버티기만 해도 곧 라드들이 싹 다 늙어 죽을 거란 얘기였다.
서글픈 말이지만 새로 감염될 만한 인간들의 숫자도 드라마틱하게 줄어들지 않겠나.
팍조심하라는 말은 의미가 없었다.
이순규는 기민하게 움직여 달려들려는 라드의 머리통을 단 한 방에 날려 버렸다.
버석거리는 소리와 함께 라드가 바닥에 쓰러졌고, 몇 번인가 바닥을 휘젓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제 쉬시길…….”
이순규는 그런 시신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별 의미 없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미 이 사람은 죽었으니.
아니, 그 전에 라드였으니.
어지간한 인간의 말은 무의미했을 터였다.
그러나 말을 함으로써 이순규 본인만은 좀 편해졌는지 부리나케 집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어…….”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는 김태평이 어물거리기 시작했다.
실로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 냉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늘 침착했으니까.
“어…….”
별일이라며 뒤따라 붙은 유현 또한 비슷한 류의 신음을 흘렸다.
“끄…….”
작은 방에도 라드가 하나 있었다.
방만큼이나 작은 라드였다.
“아기…….”
“저거…….”
그 뒤로는 시신이 하나 놓여 있었다.
부패가 진행 중인, 작은 라드가 뜯어 먹은 흔적이 여기저기 낭자한 시신이었는데 그 또한 어떻게 봐도 라드였다.
“임산부였나……?”
이때만큼은 유현의 목소리마저 떨려 왔다.
“이게……. 우웁.”
김태평은 심지어 마당으로 달려 나가 토악질까지 해 댔다.
정황상 추정되는 것들이 너무도 끔찍해서 그랬다.
“웨엑.”
이순규 또한 차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사이, 유현은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한 채 작은 라드와 그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라드는 태어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모습을 보면 기껏해야 한 달도 안 되었을 것 같았다.
이빨이 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
‘시기상…… 사태가 터지고 나서 임신한 건 아닐 거야.’
유현이 보기에도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냥 문을 닫고 나오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던 건, 한 가지 염려 때문이었다.
‘그래……. 라드끼리…… 교접한 건 아닐 거야. 응…… 아닐 거야.’
더 자세히 말하자면, 어쩌면 이 사태가 버틴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