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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70화 (170/323)

170화 변화 (2)

드드드드드

뒤따라오던 차량이 갑자기 멈추어 섰다.

딱 중간에 가던 유현도 따라 멈추었고, 그것이 신호가 되어 전부 멈추었다.

“무슨 일입니까?”

맨 앞에 가던 이는 김태평이었다.

아무래도 제일 빠릿빠릿한 인원인 오예리와 같이 타고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다가 눈 때문에 길이 좀 어렵다 싶으면 오예리 형사가 내려서 제설제를 뿌리거나 삽으로 치웠다.

말이 치우는 거지, 완전히 깨끗하게 치울 수는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냥 달릴 수 있을 정도로만 치우면 될 일이었다.

“아, 바퀴가 헛돌아서요.”

“빠졌네. 밀죠.”

“네네.”

그렇다 보니 뒤따라오는 차량이 이렇게 좌초되는 경우가 계속 있었다.

처음에는 엄청 긴장했으나, 이순규, 김태평 그리고 유현까지 가세해 세 명의 어마어마한 힘으로 밀면 쉽게 해결되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심드렁하게 밀어 대고 있었다.

물론 오예리와 양재원 등은 긴장한 얼굴로 사방을 살피고 있었다.

특히 재원은 시간이 지나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그러다 쓰러져요.”

얼굴만 봐도 와 이 사람 진짜 엄청 긴장했구나 싶을 정도였다.

창백한 얼굴에 흐르는 땀 등…….

오예리는 본인도 몸이 멀쩡한 상태는 아니면서 걱정의 말을 건넸다.

재원은 그런 오예리 형사를 보며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게……. 저는 이런 일에서 열외였으니까요. 안 하던 일을 하려니까 힘드네요.”

“그……. 그렇죠.”

그 말에 오예리 또한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이진호 형사와 자신이 더불어 했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요원들도 운전하는 게 고작이야.’

그나마 마지막 차량을 모는 사람은 아직도 열이 나고 있었다.

38도는 아니라 미열에 속하는 열이긴 하지만 정상은 아니지 않나?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고, 그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해서 유현을 포함한 셋은 그저 차를 밀고 있었다.

“어, 저기.”

그때 재원이 도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무언가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오예리 형사 또한 주의 깊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 멧돼지네요.”

누가 이 눈을 해치며 돌아다니나 했더니만, 멧돼지였다.

덩치가 진짜 산만 한 놈 하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터였다.

완전 고속 도로도 아니고, 공도로 다니고 있는데 저런 게 보이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는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둘은 그럭저럭 긴장을 늦출 수 있었다.

“하긴……. 길이 이런데 뭐가 다니겠어요.”

“그렇죠. 하지만 두고 보기는 해야 해요.”

평소라면, 그러니까 일행의 전력이 원래대로였다면 사실 길거리에서 마주하는 떠돌이 라드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대다수가 전력에서 아웃되지 않았나.

심지어 신경 쓰이는 존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재갈이 물린 채 덜컹대는 현경도 있고, 이진호 형사나 박재한 요원까지 있었다.

드드드득

그때 드디어 차량이 진창에서 빠져나왔다.

원래 같으면 다른 차량으로 끌어내야 했을 법도 한데, 하여간, 놀라운 힘이라 할 수 있었다.

“됐다.”

“휴.”

“이제 슬슬 힘드네요. 오늘 안에 서울 올라가는 건……. 무리겠군요.”

이순규가 앞을 보며 말했다.

눈이 더 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원래 도로였다거나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눈으로 뒤덮여 있으니.

“응, 만만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

유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눈길에 느려지는 거야……. 사실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차가 아예 다니지 않고, 제설 작업이 되어 있지 않은 눈길을 달리는 건 아예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김태평은 이런 상황을 얼마간 예상하고 있었단 점이었다.

해서 그는 대강의 지리, 그중에서도 하룻밤 정도는 보낼 수 있을 만한 곳을 숙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좀만 더 올라가면 세종 시립 박물관이 있습니다. 인적 드문 곳에 있는 박물관이니……. 라드는 없을 거예요. 있어 봐야 떠돌이 정도나 있겠죠.”

“얼마나 올라가야 할까요?”

“한 1킬로요.”

“지금까지 얼마나 왔죠?”

차로 이동하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렸다.

낮에만 이동해야 한다는 것도 제한 사항이었다.

세상이 망했다고 해서 차에 멀쩡히 있던 헤드라이트가 나가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주목을 끌어서 좋은 일이 있겠나?

그래선 안 되었다.

너무 위험했다.

“8킬로가량 왔습니다.”

“8킬로미터…….”

유현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그렇게나 고생하면서 올라온 것 같은데 고작 8킬로라니.

원래 같았으면 10분 만에 올 거리를 몇 시간 걸려서 낑낑대며 오고 있었다.

“이게 걷는 거보다는 빠르겠죠?”

“당연하죠. 무릎까지 푹푹 패는데……. 걸어서 왔으면 죽었어요.”

김태평은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 있는 인원 중에서, 요원들을 포함한다고 해도 눈길을 그만큼 걸어 본 사람은 없을 터였다.

주로 동남아에서 작전을 진행하긴 했지만, 간혹 만주 또는 블라디보스토크 부근에서도 일이 있지 않았나.

아니, 당장 북한만 해도 겨울이 되면 시베리아보다도 추운 곳이 많았다.

실제로 사람이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던 사람이란 얘기였다.

“라드에게도…… 그렇겠죠?”

일반적인 사람에게는 무릎까지 오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순규만 해도 종아리 정도만 패여 있었다.

더 큰 개체들은 아무래도 걷는 게 수월할 터였다.

“그럴 겁니다. 체온을 뺏기는 건……. 이런 데 걷는다고 생각해 보십쇼. 몇 분이면 몰라도 한 시간 이상 걷게 되면 동상에 걸리겠죠.”

“그렇겠군.”

유현은 대학 병원에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심한 동상은 본 적이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동상 볼 일이 사실 얼마나 있겠나.

차라리 군부대가 가까운 곳에 있는 병원이나 시골 병원에서 더 많이 볼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예상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보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럼 가죠. 날도 흐린데…… 1킬로라고 해도 만만하지는 않을 거 같네요.”

“네. 그러시죠, 교수님.”

그렇게 일행은 또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유현은 트럭 뒤에 올라 라드화가 진행 중인, 그리고 라드가 되어 버린 사람을 바라보았다.

‘더럽게 춥네.’

날이 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바람을 막아 줄 벽 없이 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걷거나 하면 체온이 오르기라도 할 텐데 이건 그것도 아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으으읍!”

그런 상황에서도 현경은 유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분노인지 뭔지 모를 것을 표출해 댔다.

‘확실히……. 라드가 되어 버렸어.’

평상시 모습을 생각해 봐도 그렇고, 트라우마를 겪고 난 후를 생각해 봐도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나?

완전히 변해 버렸다고 봐야 했다.

나름 안정제도 쓰고, 상태도 나쁘고 했었는데도 이랬다.

‘순규가 대단한 거…… 맞겠지.’

다시 생각해 봐도 저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유현은 현경에게서 눈을 뗀 후, 앞쪽 차량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 몸을 욱여넣고 있을 이순규를 떠올리면서였다.

참…….

라드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극복해 내다니.

‘이진호 형사랑 박재한이 해낼 수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아마 유전도 관여한 일일 테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게 되겠나?

“끄으으…….”

박재한은 여전히 신음을 흘려 대고 있었다.

딱히 공격성을 띠고 있는 것 같지는 않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행동이 절제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몸부림치는 게 지금 상황에서 좋을 게 없는데 멈추질 못하지 않나.

의식이 없어서 그렇다고 믿고 있긴 한데, 글쎄…….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아.”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차량은 좌측 길로 빠져 시립 박물관이라는 곳에 당도했다.

중간에 역주행을 대놓고 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니는 차가 없지 않나?

아니, 세상이 망했는데 법도를 따를 일이 무에 있겠나.

“생각했던 거랑은 좀 많이 다르네요.”

유현은 세상이 망하기 전에도 그리 재미난 삶을 살던 사람은 아니었다.

병원, 헬스장, 회의장 그리고 집 정도만 왔다 갔다 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즐거움을 느끼곤 했지만,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진짜 더럽게 재미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라기엔 뭐해도 그가 가 본 박물관은 국립 중앙 박물관을 비롯한 거대 박물관뿐이었다.

“시골 시립 박물관인데 뭘 기대하셨어요. 이 정도면 훌륭하죠.”

“그런 거예요?”

유현은 기대했던 삐까번쩍한 건물이 아닌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그러면서 동시에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건물 특유의 냄새가 났다.

“흐음…….”

천천히 안으로 향하면서, 총구를 앞으로 겨누었다.

“뭐가 있어서 그러는 겁니까?”

옆에 서 있던 김태평이 물어 왔다.

뭐가 있겠나 싶었던 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럼 왜 그렇게 긴장해요. 어차피 우리가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요원들도 뒤따르고 있었다.

이런 일의 프로들이 있다, 이 말이었다.

“아…… 뭐. 그렇긴 하죠.”

“네, 일단 아무것도 없네요.”

“어떻게…… 단정할 수 있죠?”

“먼지가 쌓여 있으면 쉽습니다. 다 균일하죠? 게다가 이 근처 날씨를 감안할 때 넉 달 정도 방치되었다고 보면 이 정도 먼지가 쌓일 만합니다. 군데군데 거미줄도 하나도 상하지 않은 채 있고요. 무엇보다 여긴 뭐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에요. 우리는 쓸 만한 걸 찾아낼 수도 있긴 한데…….”

김태평이 말하는 동안 요원들이 더 안으로 들어갔다.

열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다니는 것 정도는 무리 없이 해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건물이 작아서 수색이 어렵지도 않았다.

일행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노인 둘만 관리인이 쓰던 것으로 추정되는, 그나마 방 같은 곳에 두었다.

이제 죽음이 임박해 있었다.

유현은 사망 선고를 할 때까지만이라도 함께 있기로 했다.

“혼자 보려고?”

“아니, 재원이도. 얘도 정상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뭐……. 이제 와서 어떻게 될 거 같진 않아서.”

“그래. 그럼 난 그사이에 여기 쓸 만한 거 있나 볼게.”

“유물 같은 건데 그래도 되나…….”

“되지. 그리고 대부분 가짜래.”

“진짜로?”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겠지.”

“하긴.”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순규는 나머지 일행과 함께 박물관 파밍에 나섰다.

말이 파밍이지, 민속 박물관이라 쓸 만한 게 많지는 않았다.

그나마 천이나 밧줄 등을 얻어 낼 수 있을 뿐이었다.

“이건 쓸 만하겠네.”

물론 경험이 일천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김태평과 일행은 식기류를 포함한 금속제를 이리저리 주워 왔다.

얻다 쓰나 싶기는 했지만, 뭐……. 쓸 만하니까 주워 왔겠지 싶었다.

어차피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지 않나.

문제는 식량 같은 게 아예 없다는 점인데, 그것도 김태평이 생각해 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일 봐서 날 풀리면 잠깐이라도 저 안에 가 보죠. 작은 읍내가 형성되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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