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69화 (169/323)

169화 변화 (1)

“끄……. 끄으윽.”

변화는 다음 날 오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제 눈이 그쳤고, 일행은 슬슬 도망갈 타이밍을 재야 했으니까.

험악한 기세로 내린 눈은 거의 대부분의 흔적을 지워 줬을 테고, 놈들에게 흔적을 읽어 내는 능력이 있진 않을 테니 시간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이미 보건소까지 따라붙었지 않나?

물론 전에 그놈들, 그러니까 마트에서 병사를 데리고 갔던 그놈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왜 이러는 걸까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미 일행은 그들이 쫓아온다고 믿고 있었다.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종류의 믿음을 수정할 수는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어차피 이곳, 그러니까 비료 공장은 오래 있기에 그리 좋은 곳도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던 유현은 신음을 흘려 대기 시작한 박재한 요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에게 오예리 형사와 김태평이 각기 질문을 던져 댔다.

오예리 형사는 이진호와 박재한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이진호 형사도 이렇게 되는 게 시간문제일 거란 느낌을 받아서 그랬다.

“일단은 봐야죠.”

유현은 탄식하듯 말을 내뱉었다.

“네?”

“그게 무슨……?”

할 수 있는 말이 그거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나.

아는 게 없었다.

이 둘을 라드에게 물리게 하는 순간 그들은 선을 넘었고, 그다음부터 벌어질 일은 모조리 미지수의 영역에 있었다.

“다만……. 호흡음이 좀 좋아졌어요. 그래서 소리도 잘 내는 겁니다.”

“어……. 그럼 좋아진 겁니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뭐라도 해야만 하지 않겠나.

해서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었다.

부족하나마 청진도 하는데, 확실히 뭔가 변화가 있었다.

“네. 좀 좋아진 정도가 아니라…….”

거칠기 짝이 없던, 정말로 물에 푹 빠져 있는 듯해 보였던 호흡음이 개선되어 있었다.

거의 정상으로.

“끄으…….”

그것도 소리를 자꾸 내어서 ‘거의’라는 말을 쓴 것이지. 사실상 정상 호흡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많이 좋아졌어요. 약을…… 아니……. 음.”

약을 쓴다고 해서 ARDS가 좋아지던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런 종류의 병은 막 좋아지지 못했으니까.

정말로 에크모라도 돌려 가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좋아지다니.

‘저 바이러스가 정말로 포식 작용이라도 한다는 건가……?’

돌연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바이러스들은 원래 다른 유전자 개체를 흡수해서 변화하는 성질을 갖고 있지 않나.

만약 독감 바이러스의 성질을 빼앗아 호흡기 감염을 일으키게 된다면……?

혹시 몰라 마스크를 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뚝에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은 적어.’

만약 그랬다면 호흡기 증상이 호전되기는커녕 더 심해졌거나 적어도 남아 있기는 했을 터였다.

이렇게까지 깨끗해지기는 어렵다는 얘기였다.

“근데 열은 남아 있군요.”

“이놈들 원래 체온이 좀 높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한데……. 현경과 비교하면 1도가량 더 높습니다. 열이 난다고 봐야 해요. 일단 의식도…… 정상이 아니고.”

“그렇군요…….”

김태평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재한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죽지 않은 건 다행이긴 한데…….’

확실히 죽은 것 같진 않았다.

그래……. 일단은 다행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의식도 없고, 움직임도 많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유현은 쯧 하는 소리를 내며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눈이 쏟아붓더니, 이제는 해가 난 지 오래였다.

기온도 상당히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삼한사온이라던, 예전에나 통용되던 말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사람들의 세상이 망해 버리자 지구가 살아나는 느낌마저 일 지경이었다.

물론 유현이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전에 누군가 그렇게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있을 뿐이지만…….

“슬슬 움직여야 할 거 같습니다. 염화 칼슘 뿌리면서 달린다고 했을 때, 지금이 거리를 제일 벌릴 수 있는 기회예요. 전처럼 또 공격당하다가 도망가는 건…….”

“저도 두 번 다시 경험해 보고 싶진 않군요. 그나마 여기 차가 좀 있긴 있던데. 트럭에 실어도 괜찮을까요?”

김태평이 말하는 차량은 여기 모인 모두가 알고 있는 차량이었다.

모두라고 해 봐야 이제 곧 죽게 생긴 노인 둘과 경미하긴 해도 증상이 남아 있는 김현철, 양재원, 김 주무관에 우식의 가족까지 제외한 넷뿐이긴 했지만 하여간 의사 결정권이 있는 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1톤 트럭이었다.

천장은 없었다.

아무래도 비료를 실은 다음에 끈으로 묶어서 다닌 모양이었다.

하긴 굳이 냉동 창고 등을 이용할 필요는 없는 화물이니 그럴 만도 했다.

“거기에…… 음. 방법이 없기는 할 거 같습니다.”

사람을 짐짝처럼 실어도 되냐는 말인데, 유현으로서도 달리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이건 이순규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독감에 걸린 일행을 멀쩡한 SUV나 봉고에 태운다고 가정했을 때, 남는 공간이 없었다.

가뜩이나 묶은 채로 뉘여 가야 하는데 차량 하나가 유실되지 않았나.

“그렇군요.”

“음.”

“그럼……. 언제…… 갈까요?”

오예리 형사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진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호흡음이 여전히 별로라고 들었다.

왜 안 좋아지냐는 물음은 간신히 집어삼켰다.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독감 사태로 알게 되지 않았나.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결과가 극명하게 달랐다.

자신은 이렇게 멀쩡해졌는데 이진호는 쓰러졌으니까.

“일단……. 두 노인분부터 싣죠. 가다가 잘못될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차라리 두 분도 물리게 하면 어떻습니까?”

“싫다고 하셨잖아요. 게다가…… 아시잖습니까? 라드 감염은 수명을 극단적으로 줄입니다. 노인분들에게는…… 딱히 연명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건…… 그렇군요.”

오예리 형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이진호를 돌아보았다.

수명을 극단적으로 줄인다는 말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보건소 주위에 살던 노인들이 라드화를 거치고 떼죽음을 당했다는 걸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지 않았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대사를 끌어 올리고, 에너지 소모가 극심해지면 아무래도 빨리 죽을 테지.

그럼 이진호가 이번에 살아난다고 쳤을 때, 수명은 얼마나 남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사이 유현은 이순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인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

“음.”

“으음.”

냄새부터 달랐다.

이미 이 두 노인은 의식이 없었다.

아니, 의식만 없는 게 아니라…….

“오늘 넘기기 어려우시겠는데.”

“그래. 그렇겠지. 음…….”

생명의 희망 또한 사라져 있었다.

사라져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 의사를 물었다는 점이었다.

‘뭐……. 원했더라도 내가 그렇게 두진 않았을 거 같은데…….’

유현은 의미 없는 연명 치료에 대해서는 미련을 전혀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런 얘기를 죽어 가는 사람들 앞에서 꺼내진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이순규도 그랬다.

사람이 아니라, 의사로서 예의를 지켰다.

그러나 그것도 정말이지 잠시뿐이었다.

해야 할 일을 감정 때문에 그르칠 수는 없었다.

“네가 머리 들어라. 내가 다리 들게.”

“어. 그래.”

둘은 가까워지는 차량 소음과 함께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파서 그런가. 노인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벼웠다.

옮기는 데 전혀 품이 들지 않을 지경이었다.

“여기로 올리시죠.”

“네.”

김태평은 입구 앞에 차량을 대 놓고, 위에 서서 환자를 받아 올렸다.

바닥이 너무 차서 뭘 깔기는 했는데 올리면서도 이게 의미가 있나 싶었다.

‘두고 가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 이건가? 하긴……. 두고 가서 라드에게 발견이 되면 먹이가 되겠지.’

무리 상황은 정확히 모르지만 식량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것 같다고, 김태평은 생각했다.

그러느니 이렇게…….

‘이게 근데 사실상…… 이렇게 되면 죽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김태평은 우선 무시하기로 했다.

의사 둘이 내린 결정 아닌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제가 남죠.”

게다가 이순규가 같이 있기로 했다.

“이쪽은 제가 남죠.”

다른 쪽, 그러니까 이진호와 박재한 그리고 현경까지 실린 트럭에는 유현이 남았다.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관찰을 해야 하고, 처치가 필요하면 처치도 해야 하기에 그러했다.

무엇보다 이런 쪽의 직관은 유현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나?

이렇게 두는 편이 유현에게도 그렇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고 마음이 편했다.

“네, 그럼…… 나머지는 저랑 형사님이 데리고 가죠. 앞장서겠습니다.”

“네. 재원이가 제 차를 몰면 될 겁니다. 걘 이제 사실상 다 나았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배정을 하고, 인원은 흩어져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안에 있던 인원들은 아직 상황을 잘 몰랐다.

안전해지면, 그러니까 다른 곳에 도착하면 알려 줄 참이었다.

어차피 차도 따로 타고 가지 않나.

그 말은 곧 유현이 타는 차를 운전하게 된 재원은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 물게 했다고요?”

“조용히 말해, 인마.”

“아니……. 이게 무슨……. 박원상도 아니고.”

“그냥 두면 죽어. 근데 현경이는 살았다고. 지금은 독감 감염 징후가 없어.”

“그래도……. 근데 이순규 교수님처럼 될 공산이 있기는 한 거예요?”

“모르지, 그건. 다만 그러길 바랄 뿐이야.”

“허어…….”

자초지종을 들은 재원은 한숨을 쉬었다.

세상이 망해 돌아가더니, 진짜 일이 이 지경이 되었구나 싶어서 그랬다.

세상에 정유현 교수가, 그 대쪽 같은 사람이 일부러 라드에게 물리게 둘 줄이야.

근데 그걸 듣고 비난할 생각보다는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충격이었다.

‘나도 미쳐 버렸나. 아직 독감 여파가 남았나.’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봐도, 핑계가 되지 않았다.

“자, 그럼……. 천천히 올라가 봅시다. 도로라 해도 눈이 하나도 녹지 않았을 테니까, 주의해서 가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혼란한 것은 재원뿐이었다.

나머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유는 있었다.

비료 공장은 그 크기도 보건소보다 훨씬 큰 데다가 가건물이다 보니 방어에 훨씬 불리해 보여서 그랬다.

게다가 눈도 와 있어서 저번처럼 급히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않을 터였다.

뭐가 되었건 한시라도 빨리 도망가는 게 맞았다.

부우웅

그렇게 일행은 잠시 있었던 곳을 떠나 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 쿨럭대는 인원도 있고, 죽어 가는 인원도 있는 데다가, 라드화가 진행 중인 인원도 있었지만…….

멈추진 않았다.

‘라드는 수명이 짧아…….’

유현은 행렬 앞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버티면……. 뭐가 되었건 버티면 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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