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도전 (3)
“진호를 어떻게 한다……고요?”
오예리 형사는 기본적으로 유현의 말이라면 따르는 사람이었다.
아마 죽으라고 하면 시늉까지는 해 보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충성적인 사람이고 또 유현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신뢰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건 근본적으로 좀 다른 말이었다.
세상에 뭘 어떻게 하겠다고?
“의사를 물을 겁니다. 다만…… 지금 이대로는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없어도……. 없어도 그렇죠. 이걸……. 대체 이걸 어떻게.”
오예리의 동공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드에게 물게 하겠다니.
그것도 자기 따라서 여기까지 내려온 후배를?
물론 그 덕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유현의 생각이었다.
오예리는 타고난 성정상 그런 생각은커녕 그저 미안해하고만 있었다.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오늘을 넘기기 어려워요.”
“아……. 독감인데요? 진호는 이제 28살이에요.”
“일반적이진 않죠. 하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까. 치료가 제대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막말로 병원이었으면 이진호 환자는 이미 나았을 터였다.
이렇게 되기 전에 각종 조치를 취했을 테니까.
설령 ARDS가 왔다고 해도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저렇게 나이가 젊고 건강했던 환자를 그냥 포기하는 의사가 어딨나.
에크모(ECMO : Extra 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몸 밖에서 인공 폐와 혈액 펌프로 환자의 혈액에 산소를 공급한 후 체내에 넣어 주는 기기)라도 돌리면서 시간을 벌어 봤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에크모?’
유현은 부지불식간에 떠올렸던 기구를 두고 황당함을 느꼈다.
에크모라니.
먹고 뒤지려 해도 없었다.
타미플루 주사제도 없는 마당에…….
“아니……. 그럼 진짜로 진호가 죽는다고요?”
“이대로 두면. 무조건 죽습니다.”
“선생님, 의사잖아요. 감염내과라면서요.”
“그건 맞습니다만……. 약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이 제한이 됩니다.”
유현은 표정 변화를 최소화한 채, 오예리의 말에 답해 주었다.
말이 말이지 사실상 투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유현의 성격상 이런 말을 그냥 했겠나.
진짜로 방법이 없으니 하는 말이라는 것 정도는 오예리도 알았다.
다만 받아들이기 싫을 뿐이었다.
라드라니.
“저, 오 형사님.”
그때 김태평이 나섰다.
‘이 사람의 사격 실력은 비현실적이야.’
일반 팀원들과 비교해서도 그렇거니와 자신과 비교해도 그랬다.
아니, 요원들은 애초에 근거리 권총 사격에 능한 것이지. 장거리 사격에 있어서는 아마 일반 군인들 중에서 더 잘 쏘는 이들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해서 보는 눈이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예리 형사만큼 쏘는 사람은 군 전체를 통틀어서도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모든 것이 재능의 영역에 들어선다고 하지 않던가.
사격도 그랬다.
오예리는 그 사격에 있어 천재였고.
“네?”
김태평의 말에 오예리가 되물어 왔다.
그리 호의적이진 않은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다면 적과도 손잡을 수 있고, 심지어 딱히 거리낄 것 없다는 듯 행동할 수 있는 유현과는 달리 오예리는 김태평이 이 사태에 있어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태평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만큼이나 노골적인 반응이었지만 김태평은 딱히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하는 바가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 팀원은 이미 물렸습니다.”
“네……?”
오예리의 얼굴이 급격하게 허물어졌다.
이것 또한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그랬다.
‘어떻게……. 벌써?’
오예리의 눈에 배신감이 깃들면서 동시에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 끝에는 유현과 이순규가 있었다.
이순규는 좀 겸연쩍어하고 있었다.
방법이 없다는 생각엔 여전히 동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신중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하고 있어서 그랬다.
“방법이 없어요. 진짜로 죽습니다. 그냥 죽을 바에는……. 그리고 의사는 물었습니다.”
“그 사람도 진호처럼 열이 났어요?”
“네.”
“그럼…….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눈은 명료해 보였고, 의사는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하아…….”
그러나 유현은 여느 때와 같이 그저 침착했다.
바위처럼 단단했고.
그걸 보고 있자니 오히려 오예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원래 이런 대립은 더 강력한 확신을 가진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정답이 없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순규 교수님 생각도 그래요?”
“네. 혹시 모를 일이에요. 저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라.”
“설명이…… 필요한데요.”
오예리는 한숨과 기침 몇 번을 거듭한 끝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엔 유현이 나섰다.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네에…….”
“순규의 경우를 보죠. 김태평 요원의 말을 들어 보니, 1세대, 즉 박기태에게 제대로 물렸던 사람들은 2세대 감염자가 되었어요. 이 감염자들은 박기태만큼 강력해지지 못했고, 무엇보다 이성이 거의 남아 있지 못한…… 그네들의 말에 따르면 열화판이 되었어요.”
“열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도 없을 터였다.
오예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라는 뜻이었다.
“그에 반해 순규는 주먹이 이에 스치듯 지나갔고, 아마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변이 대신 번식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1세대와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는데……. 그 과정에 저희는 치료를 했죠. 너무 많은 약을 중구난방으로 써서 어떤 것이 지금의 순규를 만들었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단순히 호스트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고요. 하여간 당시 저희는 밥도 어느 정도 제한했고,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을 썼어요. 약화시켰다는 건데…….”
“네.”
오예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스로 좀 놀랐다.
원래 형사고, 당연히 의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는데 유현이 하는 말을 대강 다 알아들을 수 있어 그랬다.
하도 같이 다녀서 그런가 싶었다.
하긴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일행을 가족보다도 더 오래 보았다.
나가지도 못하고 한곳에서 지낸 시간이 수십 일이 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환자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독감 바이러스에 거의 신체가 잠식된 상황이에요. 거기서 ARS-24……. 사실 그렇게 불러도 되는지는 이제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그 바이러스가 들어온다고 해도, 정상적인 경과를 밟진 못할 거예요. 현경을 보면 아무래도 바이러스끼리 서로 경쟁을 했거나 혹은 포식 작용이 벌어진 거 같은데…….”
“포식이요?”
“네, 카니발리즘이라고 하는데. 동종 포식입니다. 간혹 있는 일입니다. 숙주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동시에 다른 감염체가 감염을 일으키는 경우에 둘이 경쟁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만 들어왔을 때보다 못한 감염력을 보이기도 해요.”
“아……. 그럼 그걸 노리신다는 거군요. 으음…….”
오예리는 일련의 이론 또는 가설을 이해한 채, 진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다른 요원은 그럼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 눈빛을 읽어 낸 유현은, 안 그래도 마침 궁금하기도 했던 참이라 몸을 일으켰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태평은 심지어 그로서는 드물게 꽤 서두르고 있었다.
팀원은 자기 부하고 마음을 서로 나눈 이이기에 그럴 거라고, 유현은 생각했다.
“흐음…….”
안을 들여다보니, 여전히 요원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어 죽은 것 같진 않았지만, 과연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원래 라드화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지 않던가.
당장 현경을 봐도 수분 이내에 변화가 일어났더랬다.
당시 현경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저 환자는 심하게 느린 감이 있었다.
“아직은 별로 변화가 없어요.”
“그렇군.”
“어찌 보면 다행이죠. 확실히 일반적인 감염하고는 완전히 다르니.”
유현의 말에 오예리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뭔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랬다.
다만 나머지는 꽤 확고해 보였다.
“해 볼 만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유현이 더더욱 그랬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마음이 단단해져서 그랬다.
‘이대로 두면 어차피 죽어. 요원도…… 그대로 내버려 뒀다면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커.’
죽었을 사람이 어찌 되었건 살아 있지 않나?
당사자가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살아 있었다.
이른바 연명 치료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싶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하나 이상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면, 진짜로 이 사태를 끝장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제 와 터무니없는 명성이나 명예를 탐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을 이대로 두기는 싫었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되었다.
유현이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은 아닐지언정, 알고 있지 않았나.
막을 수 없었던 일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임감이 완전히 소거되는 건 또 아니었다.
“교수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저는 찬성이에요.”
그 흔들림 없는 눈빛에 오예리가 휘리릭 흔들렸다.
그렇게 이진호 형사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물론 본인에게도 의사를 묻고 나서 결정하겠지만.
사실 죽을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쓸지 묻는데, 죽을 거라는 선택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이진호 형사는 이제 겨우 28살이지 않나.
유현 자신도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28살은 죽기엔 턱없이 어리다고 봐야 했다.
대의를 위해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독감에 죽는 건…….
그건 아니었다.
“그럼…… 가시죠. 오 형사님은 이제 그냥 밖에서 쉬세요.”
“아, 네. 제가 도울 일은…….”
“상대적으로 덜 아픈 거고, 아픈 건 아픈 겁니다. 쉬어야 해요. 그러다 무리해서 또 아프면 큰일이에요.”
“아……. 네.”
오예리는 평소처럼 도우려다가, 유현의 말에 뒤로 물러섰다.
실은 이진호 때문에 물러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죽는 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다면…….
그러나 이진호처럼 되는 건 사양이었다.
저건 너무 무서웠다.
“이게……. 무슨…… 짓이지…….”
재갈이 풀린 현경은 당장 이진호 형사를 무는 대신 이렇게 물었다.
그래 봐야 벌게진 눈이 이진호 형사의 팔뚝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어서, 이성이 진하게 남아 있단 생각이 들게 하진 못했다.
“물기나 해.”
“읍.”
게다가 그리 오래 망설이지도 못했다.
본능을 이겨 내는 건, 그러니까 이순규처럼 해내는 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라 그랬다.
약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지금보다 더 독한 바이러스였다는 걸 감안해 보면…….
“옮기죠.”
“어디로……?”
“창이 있는 곳으로요.”
“그럼 둘이 있잖아요?”
“어차피 묶어 놓을 건데 무슨 상관입니까.”
“하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