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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67화 (167/323)

167화 도전 (2)

치료?

아니, 이걸 치료라 할 수 있겠나.

라드에게 물리게 하는 걸 치료라고 한다면 세상에 치료가 아닐 것이 없을 터였다.

유현은 고개를 털어 내고는, 우선 문을 열었다.

“여기……. 아……. 이거…… 어쩌죠?”

그러자 상대적으로 멀쩡한 얼굴의 오예리가 나섰다.

그녀는 타미플루를 먹은 것도 아닌데 그랬다.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독감은 숙주에 따라 매우 다른 임상 경과를 보일 수 있었으니.

어떤 사람은 예방 주사도 맞고 타미플루 복용도 했는데 잘못되기도 하는 데 반해 어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그냥 건강히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지금처럼 다들 힘든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치명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긴 할 텐데……. 오예리가 멀쩡한 것은 다행이니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음.”

유현은 이진호 앞에 섰다.

현경의 방과 달리 이 안에는 나름 침대로 쓸 수 있도록 두꺼운 옷가지 등을 깔아 둔 상황이었다.

그 위에 누운 이진호는 끙끙 앓고 있었다.

단순히 아프고 열이 나서만은 아닌 듯했다.

‘이미 액세서리 근육을 다 쓰고 있어…….’

호흡이 힘들어서 그랬다.

좋지 않았다.

지민, 그러니까 아이가 보였던 증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원인은 다를 것이 분명해서 그랬다.

‘이건 아무리 봐도……. ARDS(Adult Respiratory Distress Syndrome, 성인 호흡 곤란 증후군)에 가까워 보이는데.’

‘소아는 작은 성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있지 않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텐데, 의학적으로는 말 그대로의 의미로 쓰였다.

소아는 단순히 작은 성인이 아니라 그냥 다른 생물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많이 달랐다.

일단 기도가 좁다 보니, 호흡 곤란에 빠지기 더 쉬웠다.

가래나 기타 등등의 분비물로 인해 덜커덕 막힐 가능성이 큰 것.

다행히 지민은 이 경우에 해당해 등을 두드려 주는 등의 조치를 통해 지금은 많이 좋아진 마당이었다.

“흐, 흐으.”

하지만 눈앞의 이진호도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일단 호흡음 자체가 너무 탁했다.

어디 하나에서 줄어 있다기보다는 그냥 다 그랬다.

이건…….

‘역시 ARDS…….’

방법이 거의 없었다.

대학 병원이었다면야 당연히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게 많이 있겠지만, 거기서조차 한번 발생하면 치사율이 있는 질환이 아닌가.

여기서는 어떨까?

아무리 봐도 요원처럼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유현아…….”

이순규는 정신과 의사다 보니 유현처럼 직접 진료를 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그도 들은 가락이 있지 않겠나.

암만 과가 다르다 해도 인턴 때까지는 동일한 과정을 밟아 왔으니, 그게 당연하지 않겠나.

“일단……. 일단은 지켜보죠.”

해서 상황이 안 좋다는 것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태평?

그는 그냥 별 관심이 없었다.

이진호는 대체 가능한 사람이라 그랬다.

팀원들처럼 오래 같이 지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괜찮은 겁니까?”

그렇다고 해서 정말 무심하게 있지만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할 줄 알기에 그랬다.

그에게는 사회생활이 결국, 연기와 비슷하게만 느껴졌는데 하여간 뭐 튀는 모습을 보여 주진 않았다.

“일단은 봐야죠. 약 쓰면서.”

“약이라 함은……?”

“박재한 요원과 같습니다.”

“그럼……?”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긴, 그건 그렇죠.”

하여간 그렇게 밖으로 나온 일행은 잠시 기다렸다.

눈은 한쪽으로 고정한 채였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진호에게는 시선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이순규조차도 박재한 요원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되려나.’

‘이게…… 될까?’

‘하아…….’

이이제이.

꽤 오래된 격언이지만, 이게 제대로 되었던 적이 있었나.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의학적으로는 의문만 들었다.

특히 의사들 중에서도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순규는 속으로 매독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때…… 수은으로 매독을 치료하려 했던 적이 있지.’

지금이야 매독 하면 오래된 성병이라는 느낌밖에 없겠지만.

한때 매독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정말이지 무서운 병이었다.

16세기 이후 어지간한 유명인은 다 매독에 걸렸다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이순규를 개인적으로 충격에 빠지게 했던 이는 마지막 수업의 주인공 알퐁스 도데였다.

당시에도 이미 이름난 문학가였던 그를 살리기 위해 당시 의사들은 노력했고, 그 결과 알퐁스 도데는 수은 중독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매독으로 죽었는지 헷갈리게 되었다.

‘이것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이순규는 어두운 생각을 잔뜩 떠올린 채로 유현을 돌아보았다.

유현은 그저 문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 작은 창이 나 있어서, 창으로 안쪽의 환자가 보였다.

솔직히 이렇게만 봐서는 이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흐음…….”

상태가 좋을 수가 있겠나.

다 죽어 가는 와중에 감염이 되었는데.

아마, 자연 상태에서라면…….

그러니까 통제되지 않는 상태였다면 감염을 위해 한번 물고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죽이지 않았을까?

식량을 위해.

‘아니면…… 단순히 즐거움을 위해 죽였을 수도 있어.’

유현은 여전히 현경을 물고 나서 소름 끼치게 웃으며 사라졌던 놈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그 개체의 지능을 가늠하기 어려워서 그랬다.

배고파서, 잡아먹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건 금수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하지만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 심지어 죽이는 것도 아니고 한번 물고 도망갈 수 있다는 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그렇게 있으려니 김태평이 말을 걸어왔다.

이진호를 앞에 두고 있을 때와는 아무래도 느낌이 달랐다.

유현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김태평은 마음을 쓰고 있었다.

낯선 느낌이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인간도 역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

“어찌 되려나, 이 생각뿐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때는 제가 처리하죠.”

“처리라면.”

“라드는…… 죽여야죠.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하지만 대화를 이어 나가다 보니, 확실히 김태평은 좀 남다른 면이 있었다.

부하조차도 라드라면 죽일 생각이라니.

특히 대화를 듣고 있던 이순규는 뜨악한 얼굴이 되어 김태평을 바라보았다.

유현 또한 그 정도는 아니었으나, 하여간 놀라긴 했다.

그는 이순규를 포기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지만……. 여기 교수님처럼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바로 죽일 생각은 없어요.”

“네네.”

김태평은 그렇게 대화를 종료하고는 다시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 자기 부하를 바라보았다.

‘지지 마라…….’

응원을 하면서였다.

그런다고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일은 없었다.

김태평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돌아보았지만, 유현과 이순규는 상대적으로 태평해 보였다.

내과야 노상 기다리는 게 일이지 않나.

정신과?

기다리는 것으로만 보면 내과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쪽이야말로 인내심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과였다.

“일단 저녁 먹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밖이 어둑해져 오고 있었다.

산은 해가 빨리 진다더니, 중턱에 위치한 농공 단지도 그런 모양이었다.

요 며칠간은 눈이 계속 내려서, 그러니까 날이 흐려서 그런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눈은 서서히 그쳐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네.”

“그……. 환자 안 봐도 됩니까?”

“먹고요. 어차피…… 우리 손을 떠났어요. 이진호 환자는…… 방금 보고 왔는데, 상태가 별로더군요.”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더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스테로이드나 더 붓는 수밖에 없었다.

부으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게 혹……. 나중에 물리게 했을 때 뭔가 변화를 주지 않을까?’

스테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면역을 억제하지 않나.

지금 이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건 과한 면역 반응에 의한 것이다 보니 쓰긴 쓰는데…….

ARS-24가 어떻게 나올지가 의문이었다.

일반적인 호흡기 감염일 때야 뭐……. 많이 썼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겠나.

“일단 드시죠.”

유현은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일단 입에 음식부터 넣었다.

이순규도 그랬다.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하여간, 그렇게 침묵 속에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김태평은 빈말로도 맛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숫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아니면 귀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의사들이라 그런가……. 이런 면에서는 또 냉정하네.’

유현이야 원래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순규는 지나칠 정도로 무골호인 아니었던가.

근데도 이렇게 열심히 밥이나 처먹을 수 있다니.

일견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유를 부리지는 않았다.

둘은 최선을 다해 밥을 먹고, 다시 이진호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들이 차려 준 밥을 먹고 있던 오예리가 일어나 몸을 비켜 주었다.

이진호는 밥 먹을 정신이 없었기에 그저 앓고 있었다.

이것도 딱히 좋은 사인은 아니었다.

‘정맥으로 줄 수 있는……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완전 비경구 영양법) 같은 게 있다면 좋을 텐데…….’

영양제를 챙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게 보건소에 있겠나.

기껏해야 포도당 정도가 다였다.

그건 이미 주고 있긴 한데…….

사실 바이러스나 세균과 제대로 싸우려면 단기적으로 당이 필요한 게 맞았지만, 장기적으로 싸우려면 단백질 등의 여러 영양소가 필요했다.

항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죄다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랬다.

“흐, 흐읍.”

물론 지금은 딱히 의미 있는 고민이 아니었다.

호흡이 아까보다도 좋지 못했다.

스테로이드를 줬지만, 효과는 잠시뿐이어서 그랬다.

지금은…….

‘이대로면…… 밤을 넘길 수 있을까?’

유현도 예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에서만 진료하던 그 아닌가.

아무리 전문의고 또 그중에서도 경험 많은 교수라 해도 만능이 될 수만은 없었다.

“오예리 형사님, 잠시만.”

결국, 유현은 마음을 정했다.

이순규는 무언가 목구멍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침묵을 지켰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

대안 없는 반대는 의미가 없었다.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 네. 저 근데 나가도 됩니까?”

“어차피 저희 셋뿐이라. 이 정도면 저희 셋은 무증상 감염자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괜찮아요.”

유현의 말에 오예리 형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러나 좋지 않은 예감 정도는 간직한 채 밖으로 나왔다.

‘방법이 없다고 하시려나…….’

확실히 오예리 형사가 보기에도 이진호에게 희망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무너진 세계가 그녀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더 그랬다.

일행은 자신들도 모르게 포기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었다.

“네?”

그런 그녀에게도 유현의 제안은 놀라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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