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도전 (1)
끼이익
오랫동안 방치되어 녹이 슨 경첩이 비명을 질렀다.
“흐어…….”
그러나 그 소름 끼치는 소리조차도, 환자 그러니까 박재한 요원의 숨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흡…….”
폐에 물이 차면서, 호흡이 원활하게 되지 못하게 된 지도 벌써 한참이었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쉽게 말하면 익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런 망할.”
마스크를 낀 김태평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늘에 맹세코 이렇게 쇠약해진 요원은 난생처음 보았다.
고문에 의해서도 아니고, 단지 독감에 걸려 이렇게 되다니.
말이 되나 싶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지금 이 세상 자체가…….’
이곳은 공장 단지고, 나름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인 데다가 일행이 식량을 많이 가지고 있어 버틸 수 있지만.
준비가 취약했던 사람들은 단지 이 눈만으로도 죽게 될 터였다.
단지 감염병이 하나 번졌을 뿐인데, 세상에 있던 모든 것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저…… 흐아……. 죽, 죽는 겁니까…….”
요원의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절망이 더 그득히 담겨 있었다.
겁이 난다기보다는 고통스러울 터였다.
감염내과다 보니 이런 상황을 많이 보아 왔던 유현조차도, 별 조치 없이 ARDS에 빠진 환자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죽는 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겠나.
몇 시간에 걸쳐 천천히 물고문을 진행한다고 생각해 봐라.
그게 오죽 고통스러우면 인터넷에 물은 알고 있다는 밈이 돌 지경인데, 몇 시간?
제아무리 훈련을 받은 요원이라고 해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건, 무리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쓸데없는 희망을 주는 건, 유현의 취향이 아니었다.
순규는 어떻게 생각할는지 몰라도 적어도 바이털을 다루는 의사 입장에서는 그랬다.
뻔히 고통받고 있는 환자, 그것도 죽음을 경각에 둔 환자에게 거짓 희망을 주는 건 일종의 죄와도 같아 보였다.
“환자분은……. 오래 버티기 어려워요. 아마 내일……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아. 장가……나 가 볼걸…….”
요원은 이미 체념하고 있었는지 길길이 날뛰거나 하지 않았다.
분노 5단계에서 부정, 분노, 공포, 흥정의 단계를 단번에 뛰어넘은 느낌이랄까?
아니면 단순히 다른 단계의 표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 있을 수도 있었다.
하여간, 유현은 그런 환자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모험에 가까운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게……. 뭡……니까.”
체념한 환자라고 해도, 살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면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죽어야지 하는 노인 중에 진심이 담긴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딨겠나.
현실적인 이유로 체념이 빠를 수는 있겠지만, 살아날 수만 있다면 거의 뭐든지 할 수 있는 게 인간이었다.
“심현경. 그분 기억하시죠.”
“그……. 왜……?”
박재한의 눈동자에 의문이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모를 리가 있겠나.
같이 지냈는데.
더군다나, 박재한 요원은 도망칠 때 같은 차에 타고 있었다.
유현과 현경, 두 사람과 찢어지고 나서 오예리 등의 일행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 당사자였다.
“그 사람도 독감에 감염되었어요. 어찌 보면 당연하죠. 추운 날씨에 방치되었으니.”
“근데…….”
“지금 살아났습니다.”
“라드……. 라드잖습니까……. 하악.”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지금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 팀장님 무슨 말이라도 해 보십쇼 등등.
그러나 점점 숨은 짧아져만 가고 있었다.
기본적인 산소 요법도 못 해 주고 있는 마당에 심리적인 불안감을 주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대로 숨이 넘어가도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해서 유현은 말을 서둘러 내뱉었다.
“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죽습니다. 환자분의 죽음은…… 피할 수 없어요.”
“라드로……. 살…… 바에는…….”
“여기 이순규 교수를 보세요. 라드가 되었다가 나았습니다.”
“그때는……. 다른 바이…….”
“하지만 상황이 특수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심현경 저 사람도 일반적인 라드와는 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저는 바이러스끼리 서로 생존 경쟁을 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적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길어지자, 그렇지 않아도 머리에 산소가 잘 가지 않아서 정신이 없던 요원은 이해를 포기했다.
대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김태평이 그 대상이었다.
“음.”
김태평은 밖에서 이미 마음을 정하고 들어온 참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혹시 이순규가 될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도전해 보는 것이 맞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막상 부하 요원을 보고 나니 마음이 좀 흔들렸다.
‘이런 젠장. 이 꼴보다 더한 꼴을 봐야 할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이놈이 정말로 라드가 되어서 아무도 못 알아보게 된다거나 또는 기만술을 쓰면서 어떻게든 물려고 한다거나 하는…….
혹은 게걸스럽게 사람이 먹지 못할 무언가를 먹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단 말이었다.
“하.”
다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방법이 없는데.
김태평은 감정을 배제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게 요원에게도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호자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도전해 봄 직해.”
“그럼……. 흐……. 해 보……. 해 보죠.”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이자 요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졌단 얘긴데, 막상 그러고 나서도 유현은 이순규 그리고 김태평과 환자를 잠시 바라보고만 있었다.
‘뭔가……. 선을 넘는 느낌이 자꾸 드는데.’
유현은 스스로를 무골호인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훌륭한 의사라고는 판단하고 있었지만, 좋은 의사인가?
글쎄.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워낙에 많이 해 온 탓인가.
많이 무뎌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짓을 하려니 역시나 망설여졌다.
‘박원상. 원상아……. 너는 이 선을 그냥 넘은 거냐?’
머리로는 알았다.
박원상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걸.
그쪽은 무언가 파괴하기 위한 것을 만든 것이고, 이쪽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데려가죠.”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환자의 상태를 안에 들어와서 보니 더 안 좋아 보이지 않나.
이대로 두면 내일은커녕 당장 점심도 못 넘길 것 같았다.
마음을 정했으면, 그 전에 해야 할 터였다.
“네.”
“그러자.”
해서 일행은 요원을 집어 들었다.
원래 체격이 꽤 좋았던 사람인 데다, 앓은 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 살이 많이 빠지진 않아 무거운 편이었다.
물론 일행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들 보통이 아니라 그랬다.
끼이익
그렇게 일행은 박재한 요원을 데리고 현경이 있는 곳에 들어섰다.
현경은 재갈을 문 채로, 일행과 요원을 노려보았다.
“으으읍.”
발버둥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게 이성이 남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힘이 없어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밥 먹일 때 보면, 나름 식기를 쓰려고 한다는 것이 긍정적인 사인이었다.
“풀까?”
“응.”
“하.”
“막상 하려니 쫄리지?”
“어.”
“그래도, 풀자.”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이내 현경의 재갈을 풀었다.
“이것도, 풀어.”
그녀는 풀려나자마자, 그러니까 입이 자유롭게 되자마자 의미 있는 말을 해 댔다.
‘저 정도보다…… 더 좋아지려나.’
그렇다 해도 종이 다른 느낌을 주기는 했다.
신체가 막 변한 것도 아닌데, 이순규보다도 훨씬 이질적인 느낌이랄까.
김태평은 그런 현경을 보다가, 요원을 돌아보았다.
“흐……. 흐…….”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겠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마 마음도 비슷할 터였다.
살려고 라드에게 일부러 물리는 신세가 되다니.
저 끔찍한 놈들 때문에 잃은 팀원이 몇이나 되던가.
아니, 그 전에 세상이…….
“후, 후!”
하여간 일행은 약조한 대로 요원을 현경에게 더 가까이 내걸었다.
사지가 결박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무방비 상태의 요원을 보자 현경은 순식간에 흥분했다.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면서,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당장 물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물게 되면 생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곤란한데……. 이렇게 되면 진짜 지능만 높고 인간을 공격할 의지가 충만한 라드를 만들게 되는 거 아닌가?’
유현은 그런 현경을 보면서, 오히려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요원의 죽음만은 아니었다.
머리 굴릴 줄 아는 적은 누구라도 싫지 않겠나?
‘아니……. 아냐. 어차피 풀려날 가능성은 없어.’
하지만 현실을, 그러니까 사방이 눈으로 가득한 밖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날씨에는 누구라도 움직일 수 없지 않겠나.
그것이 암만 라드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아, 물어라. 이대로 두면 죽어. 난 네가 독감 치료제가 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후…….”
현경은 뭔 소리냐는 얼굴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눈에 담긴 건 의문이 아니라, 그저 흥분이었다.
쇠약해진 인간이 눈앞에 있을 때는 정말로 참기 힘든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구분이 된다는 거니까.
콱얼마 지나지 않아 현경은 요원을 물었다.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됐어! 다시 물려!”
그 즉시 이순규는 현경에게 재갈을 물리고, 유현과 김태평은 요원을 끌고 나와 원래 있던 사무실로 데려왔다.
그러곤 줄로 묶었다.
살아날 거라 기대하고는 있지만, 또 너무 멀쩡하게 살아나면 큰일 아니겠나.
스스로 모순되는 행동이라는 걸 모두가 느끼고 있음에도 손끝이 느린 사람은 없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흐…….”
요원은 그렇게 몸이 묶이면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회한에 젖은 눈을 하고서였다.
오래 마주치면 감정이 전염될까 두려워, 유현은 그저 묶는 데만 집중했다.
김태평 또한 같은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묶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뒤늦게 현경에게 재갈을 물리고 합류한 이순규도 마찬가지였다.
셋은 무언가 찝찝한 마음에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잠시만, 여기요!”
그렇게 겨우 빠져나왔을 때, 오예리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침을 하도 해 대서 그런가. 잔뜩 쉬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를 수 없을 만큼이나 다급함이 느껴졌다.
“왜, 왜 그러시죠?”
쉴 틈도 없이 유현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문 너머에 있는 오예리가 여전히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진호가 이상해요! 숨을……. 숨을 잘 못 쉬는 거 같은데!”
“아. 이런.”
호전된다 싶더니, 아니었나.
셋은 동시에 눈을 마주쳤다.
또 이 짓을 해야 하나 싶은 감정이 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