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한겨울 (2)
김 노인은 밭은기침을 해 대고 있었다.
가뜩이나 노쇠한 데다가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충분히 먹지 못한 탓에 기침하는 꼴이 어째 되게 오래 앓은 사람 같아 보였다.
“음…….”
당연하게도 유현이 나섰다.
별다른 검사 수단이 없다 보니, 일단은 청진이나 했다.
‘아…….’
어쩌지 싶었다.
들리는 소리 자체는 김 주무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나이가 문제지, 나이가…….’
의학적으로 괜히 나이가 깡패라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오죽하면 라드들조차 늙은 개체는 금세 죽어 버렸다.
사람?
사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같은 질환이라고 해도, 노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었다.
“어, 어떤가?”
김 노인의 상태가 궁금한지, 박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일단은 두고 봐야죠.”
“두고 본다고?”
“네. 약도 쓰면서 보기는 할 텐데……. 약이 충분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흔이 넘은 노인들은 독감 백신이 무료지 않나.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닌데, 하여간 대한민국은 노인 백신 접종률이 전 세계에서 탑을 찍는 국가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독감 시즌이 되면 수천 명이 죽어 나갔다.
백신으로 면역력을 확보하고, 타미플루를 쓰고 또 적절한 수준의 대증 치료를 해도 그랬다.
지금은?
‘백신이고 나발이고 하나도 없지.’
어디 가서 남은 백신 구하는 것도 의미 없는 짓이었다.
애초에 독감 백신이라는 게 매년 같은 걸 만드는 게 아니지 않나.
WHO에서 올해 유행할 것 같은 독감 종류를 골라내면 회사에서 그 정보를 이용해 백신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WHO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하고 있다고 해도 라드 사태를 막느라 여념이 없을 터였다.
“우선…… 기침 시작하는 분들은 다 따로 계셔야겠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 있는 건 위험할 거예요.”
유현은 순규와 함께 환자 분류에 나섰다.
나름 의사가 여럿 낑겨 있는 집단이다 보니 마스크와 같은 최소한의 방호 물품은 갖추고 있어 다행이었다.
물론 그래 봐야 코앞에서 기침을 해 대고 또 밀폐된 공간에 같이 있으면 별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다들 쇠약해진 상황이지 않나.
해서 유현의 말대로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격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으……. 아야, 머리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식이 정신을 차렸다는 점이었다.
불행인 것은 이내 서하나뿐만 아니라 지민도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우식은 깨어나자마자 아내와 아이, 둘 다 격리시켜야만 했다.
둘은 가족이라 다른 방에 두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우식과 둘은 이제 문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괜찮아?”
“어, 나는 괜찮아. 자기는. 머리 안 아파?”
둘 사이에는 애틋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교수님은 괜찮아요?”
오예리 형사는 그런 대화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유현을 돌아보았다.
막말로 이 중에서 제일 아파야 할 사람은 유현이지 않나.
어제 쫄딱 젖어서 들어온 꼴을 보면 그러했다.
“저요? 전 괜찮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 오늘도 밖에 나갔다 왔다.
비닐을 둘둘 감고서였다고는 하지만, 하여간 고생했다 이 말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그저 여유로울 뿐이었다.
보기에도 그랬다.
확실히 이 인간은 좀 유별난 편이었다.
“쿨럭.”
기침하는 이들이 모두 허약한 이들인 것만은 아니지 않나.
재원도 사실 젊은 사람이었고, 요원 중에서도 벌써 셋이나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진호 형사도 밭은기침을 연신 해 대는 중이었다.
문 뒤에 선 채로.
“제기랄……. 전 괜찮은 거 같은데요?”
“원래 독감이 처음에는 괜찮은 거 같아요. 그러다 엄청 아파집니다.”
“그래도…… 저는 젊고 건강한데요.”
“그래서 일단은 해열제만 드릴 거예요.”
유현은 가지고 온 타미플루 알약을 한곳에 모았다.
모인 약의 양은 일행의 수에 비해 턱없이 적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쓸어 올 걸 그랬단 생각만 들었다.
무용한 생각이었다.
‘애초에…… 보건소에 구비된 양이 아주 많지도 않았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온 국민이 손 잘 씻고 마스크를 끼게 된 후 독감은 유행 질환으로서의 위상을 지켜 내지 못했으니까.
때문에 보건소에서조차 백신이나 열심히 맞혔을 뿐, 타미플루 확보에는 그리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 정책에 유현이 참여했으므로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더랬다.
“누가 알았겠어요, 형.”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우식이 말을 걸어왔다.
그 또한 정책 참여자였기에 지금 유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래. 근데 넌 괜찮냐?”
“저요? 저야 뭐……. 괜찮은 거 같은데요?”
“어지럽진 않고?”
“살짝? 근데 뭐……. 흔들려서 어지러운 느낌이에요.”
“증상만으로 진단 가능한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지?”
“알죠. 근데…… 외상성 뇌출혈이라고 해도 지금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잖아요?”
“그건……. 그건 그렇지.”
우식의 말에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변을 돌아보았다.
널찍한 공장 안에 남은 인원은 고작해야 8명뿐이었다.
유현과 우식, 순규, 김태평에 요원 둘 그리고 김현철 소위에 오예리 형사까지.
나머지는 모조리 격리되어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따다다다닥
그때 밖에 내내 들리던 소음이 바뀌었다.
내다보니, 어느새 비가 우박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확실히 기온이 아까보다 훨씬 더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는 이동이 불가할 거 같은데요.”
김태평은 바깥과 안쪽 문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날씨는 추워지고 있고, 또 길도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데, 일행은 아팠다.
“네, 어렵죠. 흐음……. 용케 여기까지는 왔는데…….”
유현은 현경 하나만 잃고서 여기까지 온 게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이 말인데.
문제는 기적을 계속해서 바라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정말이지 기적이 아니고서는 더 이상 생존을 이어 나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대충 병이 나으려면 얼마나 걸립니까?”
아까 오전까지만 해도, 김태평은 아픈 사람들은 버리고 갈까 싶었더랬다.
현경만 관찰 대상으로 삼아 데려가고…….
어차피 나머지 일행 중 김 주무관을 제외하면 대체 불가한 인원은 없지 않나?
그러나 자기 부하들까지 쿨럭대기 시작하자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어떻게 봐도 우수한 인원인 팀원들조차 저렇게 되었다는 건 이 질환에 감염되는 게 단지 운에 달렸다는 얘기라 그랬다.
그 말은 곧 자신도 언제든지 쓰러질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급성기는 건강한 성인이라면 3, 4일이면 지나갑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요.”
2주 이랬으면 어쩐단 말인가.
3, 4일이라면…….
‘놈들이 대대적으로 쳐들어오면 삼사일이 아니라 서너 시간조차 버티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운에 기대어 볼 수 있는 시일이지 않겠나.
길도 엉망이고 날씨도 이렇고.
놈들도 살아 있는 생명체들이니 어지간하면 움직이려고 하지 않을 터였다.
역사를 돌이켜 봐도, 겨울엔 전쟁도 쉬지 않던가.
“문제는 우리 일행이 그렇게까지 건강한 상태는 아니라는 거죠. 그나마 어르신들이 재배해 놓은 신선한 야채를 먹어서 다행이긴 한데……. 그렇다 해도 제대로 된 영양 공급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단백질이 너무 부족해요.”
“보충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 표기된 만큼이 다 흡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아…… 그래요? 그게 그런 게 아닙니까?”
“네.”
유현은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안 쉬어야지 하는데도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상황이지 않나.
독감 치료라는 것도 그랬다.
약 주고 기다려 보는 것.
지금은 일단 그게 전부였다.
“우리끼리도 너무 가까이 붙어 있지는 않는 게 좋아요. 잠복기에 해당할 수 있어요.”
“아……. 네.”
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멀어지면서였다.
이 와중에 본인까지 쓰러지는 건 사양이었다.
“일단 밥이나 하자. 재료를 아끼지 말고…… 죽처럼 끓여 봐야지.”
그사이 이순규는 큼지막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한 손길로 들고 온 식량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아껴 먹으면 꽤 오래도록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그러나 아픈 사람에게는 예외가 되어야 할 터였다.
적어도 순규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 된다고 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뭐가 되었건 아픈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이거나 가족 같은 사이라 그랬다.
“어때?”
“맛은 없어.”
“맛 얘기가 아니라.”
“어, 뭐……. 걸죽하니, 이건 꽤 도움이 될 거야.”
순규가 끓인 죽을 한 모금 먹은 유현은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일행은 우선 아픈 이들에게 죽을 나누어 주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쿨럭.”
그사이 감염이 진행되었는지 일행 사이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돌아보니, 오예리 형사였다.
‘이런.’
유현은 혀를 차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청진을 해 보니 아직 폐렴이 진행되거나 한 건 아니었다.
“전 괜찮은데…….”
“고집부리다 잘못되면 진짜 큰일이에요. 일단 쉬어요.”
“그……. 네.”
“물 많이 드시고……. 마침 비가 와서 식수는 엄청나게 확보했으니, 이건 다행이죠.”
유현은 그녀에게 따뜻한 말이랍시고 식수 얘기를 건네곤, 비어 있는 방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곤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에 따뜻한 옷가지 등을 챙겨 주었다.
재원이 이 모습을 봤다면 까불거렸을 텐데, 아쉽게도 김태평만 봤다.
‘저 양반도 저럴 때 보면 사람은 사람인데.’
그는 그저 이런 짤막한 감상만 내뱉을 뿐이었다.
“흐음.”
“흐으음.”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창밖에 내리던 우박은 이내 진눈깨비가 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떠나기에는 점점 더 사정이 열악해지고 있단 뜻이었다.
반면 쫓아오기에도 그리 좋지는 않을 게 뻔했다.
대충 봐도 무릎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쌓였는데 저걸 뚫고 와?
‘그 정도로 애쓰면 어쩌겠어……. 죽어 줘야지.’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 쌓인 눈 지켜보기를 중단하고 경계를 서고 있는 김태평에게 다가갔다.
김태평은 유현을 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괜찮습니다. 라드가 오는 기미도 없었어요.”
“몸은요?”
“저도 괜찮고요. 교수님은?”
“저도. 그럼 제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에만 더 부탁드립니다.”
“네.”
김태평은 후우우 하고 심호흡을 하고는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이제 멀쩡하게 남은 인원은 유현과 자신 그리고 순규까지 해서 셋뿐이었다.
나머지는 모조리 격리되었다.
기침이 시작되고 단 이틀 만에 일이 이렇게 되었다니.
‘독감이 이게 진짜 무서운 거로구만……?’
세계 대전 때 죽은 사람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더니.
그게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괜히 드는 생각이 아니었다.
노인들은 죽어 가고 있었다.
유현이나 순규나 별말은 안 하지만, 희망은 없어 보였다.
문제는 중증 환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게 그들만이 아니란 점이었다.
“이런 망할.”
유현이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환자들을 보기 시작한 순규가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서하나 그리고 지민이 있는 병실 앞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