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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62화 (162/323)

162화 한겨울 (1)

“기온이 더 떨어졌네.”

유현은 따뜻한 물로 몸을 지진 것도, 그렇다고 온돌방에서 잠을 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얼굴이었다.

어제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왔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멀쩡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쿨럭.”

“쿨럭, 쿨럭.”

상대적으로 허약한 이들 몇몇이 기침을 해 대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일 숙소로 삼았던 가건물은 나름 창도 깨진 곳이 없어 바깥바람을 막아 주기는 했지만, 떨어지는 기온을 막아 주기엔 무리가 있어서 그랬다.

무엇보다 창문을 닫은 상태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어서 중간중간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던 것이 기침의 이유가 되었을 터였다.

“괜찮냐?”

“아, 네. 그냥 목이 좀 따끔거리는 정도예요.”

유현은 기침을 해 대는 이들 중 하나인 재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물었다.

재원은 어깨를 으쓱해 보임으로써 괜찮음을 피력했으나, 잠시뿐이었다.

이내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흐음…….”

그뿐만이 아니라, 김 주무관도, 우식의 아내도 그랬다.

우식의 아내는 꽤 건강한 편이었지만 아마 밤새 우식을 간호하느라 무리를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머리 안쪽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 거란 얘기를 들었지만, 그럼에도 안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검사를 해 본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우식은 잠들기 전에 어지럼증을 호소하기까지 했다.

‘문제가 없다는 말도…… 사실은 문제가 없길 바라는 것일 뿐이긴 하지.’

만약 경막하 출혈이라도 있다면…….

정상적인 의료 인프라가 있을 때야 별거 아니긴 할 터였다.

CT 찍어 보고 흡수될 정도면 경과 관찰하고 아니면 수술하겠지.

수술이라고 해도 별거 아닐 공산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서 머리를 연다……. 그게 조금이라고 해도 부담이야.’

외과 계열 의사가 아예 없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마취도 할 수 없었다.

“일단 청진을 좀 해 보자.”

유현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되돌아왔다.

감염내과 의사인 그는 어지간한 감염병은 진단할 수 있었다.

물론 검사가 수반되었을 경우에 한한 얘기긴 했지만.

하여간 유현은 청진기를 집어 들고, 재원의 호흡음을 들었다.

명색이 의사인 사람이 셋이나 있다 보니 이런저런 도구가 많은 것이 다행이었다.

‘살짝…… 양측 폐 하엽으로 크랙클이 들리는데…….’

세균성 감염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빨랐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일 텐데…….

‘독감인가? 흐음……. 독감이라…….’

유현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졌다.

재원은 허약해 보이긴 해도 젊고 무엇보다 기저 질환은 없었다.

그러나 김 주무관과 우식의 아내, 서하나는…….

그중에서도 김 주무관은 빈말로도 건강한 사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좀 있었다.

‘비만이었다가, 단지 못 먹어서 빠진 몸이야. 기저에 당뇨도 있었다고 했고…….’

지금이야 검사를 해 보면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긴 했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와 보세요.”

“아, 네, 쿨럭.”

유현은 기침하는 김 주무관의 청진을 시행했다.

재원과 비슷한 소견인데, 아무래도 이쪽이 더 심했다.

‘타미플루가 있어야 할 거 같은데…….’

아까보다 미간의 주름이 더 짙어졌다.

보건소에서 아예 안 가져왔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양이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식량이나 식수에 비해 약은 그 중요도가 좀 떨어지지 않던가.

응급하게 쓸 수 있는 양만 챙겨 왔는데, 그마저도 3분지 1은 유현이 몰았던 차가 전복되면서 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수씨, 이리로요.”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 침착한 말투를 고수했다.

언제든 침착할 수 있다거나, 침착을 가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음.”

하여간 유현은 서하나의 폐 음을 청진했다.

“괜찮네요. 아직 폐렴은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재원도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중증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김 주무관 정도가 해당될 터였다.

하지만 걸렸다는 것이 중요했다.

독감은 아주 잘 번지는 질환이지 않나?

게다가 한번 중증으로 진행하고 나면, 원래 건강했건 그렇지 않았건 죽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이 옆에 가건물을 몇 개 더 확보하죠. 비가 이렇게 와서…… 이동하기가 쉽진 않을 거 같으니. 며칠 견딜 생각은 해야 할 거 같습니다.”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흐음.”

김태평은 당장 이동하지 못하는 데에 대해서 불만이 있었다.

다만 그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하늘 때문에 이동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랬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간 내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이라도 풀고 있는지 진짜 미친 듯이 내리고 있었다.

“팀장님은 절 좀 도와주시죠. 순규도.”

“아……. 현경 씨?”

“네.”

“하긴……. 이 날씨면…… 오래 버티긴 어렵겠군요.”

“어쩌면 간밤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있죠.”

김태평은 산 쪽을 바라보았다.

어찌나 비가 세차게 흘러내리는지, 계곡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이 이리저리 갈려서 내려오고 있었다.

마냥 최악을 염두에 두고 있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누가 되었건 간에 움직이기는 어렵지 않겠나?

더군다나 흔적도 죄다 지워지고 있을 터였다.

“가죠.”

“네.”

“네.”

그사이 유현은 건물 안쪽에 있던 비닐 쪼가리를 챙겨 온 참이었다.

물건들을 싸고 있던 것이라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그런 거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나.

일단 비라도 피할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냄새…….”

예민한 이순규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이 비에 이런 거라도 챙겨 입지 않으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그랬다.

하여간, 일행은 곧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이라고 하기엔 야트막한 동산 비슷한 곳이었지만, 비가 내려서 그런가. 지리산 버금가게 느껴졌다.

“손잡아!”

이순규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의 어마어마한 완력은, 이성이 완전히 돌아오면서 그리고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좀 줄어들긴 했어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읍!”

“흣차!”

김태평도 그의 손을 잡고 위로 올라섰다.

“근데 교수님. 위치는 기억하고 있는 겁니까?”

“그럼요.”

미심쩍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는데, 곧 무의미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유현이 가리킨 나무에 사람이 보여서 그랬다.

밤새 힘이 솟구치기는커녕 빠져서 그런가,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한 대로 죽어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커 보였다.

“흡.”

“음!”

그러나 일행은 일단 비탈을 올랐다.

그렇게 발견한 현경은 살아 있었다.

아니, 살아는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안정제에서 깨어난 후 나무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심하게 쳤는지, 등 뒤부터 팔까지 죄다 까져 있었다.

나름 두꺼운 옷을 입혀 놨음에도 그랬다.

“이거……. 관찰이 가능하겠습니까?”

“모르겠네요. 으음.”

김태평은 회의감 가득한 얼굴이었다.

왜냐.

이렇게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현경의 이마는 불 난 듯 뜨거워서 그랬다.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일단 왔으니까 끌고 가자.”

이순규가 휴우 하고 한숨을 쉬고는 덩굴을 끊었다.

어차피 몸도 묶여 있는 데다가 입에는 재갈도 물려 있어서 안심하고 현경을 짊어졌다.

“할 수 있겠어?”

유현은 그런 순규와 산비탈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한 번이라도 발을 삐끗했다간 내려간다기보다는 굴러떨어진다는 느낌이 일 것 같았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순규는 한숨을 한번 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가면 할 수 있어.”

“일단 우리가 길을 봐 줄 테니까……. 부축 필요하면 말해.”

“그래.”

발이 제일 날랜 것은 아무래도 김태평이었다.

올라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완력이 더 중요했지만, 내려갈 때는 길을 잘 살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해서 그가 앞장섰다.

“여기. 아니, 여기는 좀……. 이쪽으로.”

그는 잘못 디뎠을 때조차 넘어지는 대신 재빠르게 옆으로 뛰어가거나, 나무를 잡아 몸을 지탱했다.

이렇다 할 짐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다음으로 발을 내딛는 이순규로서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심정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유현이 내려갔는데, 그는 이순규가 넘어지면 잡아챌 요량으로 이순규의 몸에 묶어 둔 끈을 쥐고 있었다.

“후…….”

그럼에도 내려가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올라올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심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후…….”

그러나 어떻게 내려오기는 했다.

그사이 숙소로 쓸 만한 가건물을 확보한 오예리, 이진호 그리고 김현철이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좀 좁기는 한데…… 그래서 오히려 관찰하기에는 나을 거예요.”

나름 중간에 기둥도 있고 또 나일론 끈도 있는 사무실이었다.

한때 관리직을 맡은 이의 사무실로 쓰였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폐허였다.

누군가 한바탕 휩쓸고 가기라도 했는지 이리저리 널린 사무실 집기 등이 눈에 들어왔다.

“네, 좋네요. 여기…… 이 안으로 다 옮기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네. 어제는 너무 늦게 도착해서 경황이 없었는데……. 이쪽이 나을 거 같긴 합니다. 차도 이쪽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사무실은 공장 쪽으로 문이 나 있었다.

비료를 만들어 대던 곳이라 냄새가 좀 심하게 나긴 했지만, 비료가 발효되고 있어 그런가. 기온은 확실히 높았다.

거기에 더해 건물이 가건물이기는 해도 더 튼튼한 느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외풍이 새는 것도 덜한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픈 사람들은 빨리 이쪽으로 옮기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해서 안쪽으로 다른 이들 모두를 끌고 들어왔다.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하지는 않겠죠?”

김현철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는 처음부터 현경을 고까워하는 입장이었다.

지금도 감염자 관찰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그냥 죽였으면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겁니다.”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찰이 가능하면……. 그건 그것대로 운이 좋다고 봐야 할 상황이야.’

죽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어제 무리를 해서라도 그냥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싶을 지경이었다.

생각해 보면, 좀 너무하긴 했던 셈이었다.

제아무리 감염자라 해도 따로 영양 공급도 없이 어찌 이 날씨를 견딜 수 있겠나.

“오래 버티지 못할 공산이 커요.”

“아, 네. 그럼.”

김현철은 유현의 말에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로 물러섰다.

“쿨럭.”

그때 또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익히 들었던 소리는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좀 더…….

심각해 보이는 기침이라고 해야 할까.

“아.”

고개를 돌려 보니, 보건소에 있던 노인 중 하나가 기침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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