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탈출 (4)
“으, 으.”
현경 또한 할 말이 없는지, 발목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붉은 핏물이 떨어지는 빗물에 섞여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선연한 이빨 자국 또한 눈에 들어왔다.
그걸 만들어 낸 놈은 총을 들고 있는 유현을 피해 아래로 도망치고 있었다.
“꺄하하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남기고서였다.
뭐가 저리 통쾌하고 즐거운 걸까.
‘상실감을 이해하는 건가?’
그렇다고 해도 살짝 핀트가 어긋났다고 봐야 했다.
오예리 형사라면…….
그래, 이 자리에 누워 있는 이가 오예리 형사쯤 되었다면 유현도 슬플 터였다.
아니, 재원이나 우식이었어도 그럴 게 뻔했다.
그러나 유독 인간관계에 있어 바운더리가 좁은 유현에게 현경은 사실상 남이었다.
어쩌다 울타리 안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물리적인 울타리일 뿐 심리적인 벽은 넘지 못했다.
“미안, 미안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현경이 입을 열었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걸까.
의미 없을 가능성이 컸다.
의식이 흐릿할 때 하는 말에 너무 커다란 의미를 두는 건 쓸데없는 짓이지 않나.
다만 들어 주는 건 할 수 있었다.
후두둑
비가 내리는 와중이었지만.
“으, 으윽.”
순간적으로 혈압이 오르는 것도 관찰하는 와중이었지만.
“제 남편……. 용서해 줘요…….”
유현은 말을 들어 주었다.
안정제를 쥔 채였다.
‘효과가 없으면 쏴야 해. 별수 없어…….’
안정제라는 것도 결국, 약이지 않나.
무슨 신비로운 힘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였다.
그 말은 곧 숙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되었다.
‘그나마 딱히 영양이 좋은 편도 아니고…….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이라는 게……. 희망적인 건가?’
유현은 현경의 말에 가타부타 반응하지 않은 채, 그저 그녀를 관찰했다.
깡마른 몸이었다.
원래도 살집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진짜 마른 몸이었다.
보면서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말랐었나.’
하긴 이럴 만하긴 했다.
와서 뭐 제대로 먹은 적이 없지 않나.
허구한 날 방 안에 틀어박혀 괴로워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 순규가 뭐라도 쥐여다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죽었을 터였다.
게다가 여기 오기 전이라고 해서 딱히 상황이 많이 낫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이런 몸을 하고서 산길을, 그것도 비 내리는 산길을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으, 배……. 배가 고파.”
숙주의 상태와는 별개로 변이는 순식간이었다.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현경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된 양 공격성을 드러냈다.
퍽그래 봤자이긴 했다.
자율 신경 계통이 아무리 광분 상태에 빠진다고 해도, 신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완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법이었다.
유현은 손바닥으로 현경의 이마 사이를 후려치고, 다른 손으로는 들고 있던 진정제를 배에 찔러 넣었다.
“자라, 자.”
간절히 빌면서였다.
암만 유현이라고 해도 물리적인 울타리 안에 들어왔던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것이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겠나.
“끄…….”
다행인 것은, 확실히 현경이 많이 지쳐 있었다는 점이었다.
영양도 부족한 상태에서 산길을 따라오지 않았나.
아마 안정제가 아니더라도, 자극만 없어지면 바로 잠이 들 정도였을 터였다.
거기에 안정제가 들어가니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옆으로 쓰러졌다.
“흠.”
유현은 그렇게 조용해진 현경에게서 몸을 떨어뜨리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 때문에 소음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불가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보이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쉽게 그칠 비는 아냐.’
유현은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텅 빈 것만 같았던 하늘엔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방향은 저쪽인데.’
유현은 한창 뛰어오던 곳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았다.
보건소에 있던 나침반을 챙겨 온 것, 그리고 하필 그것을 유현이 들고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요원도 하나 가지고 있었으니 중간에 습격만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목적지에 도착했을 터였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처럼, 그곳 또한 낙원일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유현보다는 사정이 나을 터였다.
‘어쩐다.’
유현은 다시 현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 고치겠다거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다소 학자적인 면이 있었다.
‘아까 그놈은……. 무리에 속한 놈들 중에서도 특히 머리가 좋아 보였어.’
마지막에 내지른 웃음.
그건 비웃음이었다.
아마 여기 있던 사람이 유현이 아니라 박원상이었다면, 그 웃음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나무를 엄폐물 삼아 다가오던 그 모습.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비 때문에 몇몇이 철수하지 않았다면 아마 오늘이 유현의 마지막 날이었을 터였다.
‘거기에 감염된 사람은 어떤 경과를 보일까. 음…….’
유현은 재차 현경을 내려다보았다.
마른 몸이었다.
기껏해야 45킬로는 나갈까?
비에 젖은 옷까지 다 더해도 그 정도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제 그녀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지만, 아니라고 정했다.
그편이 생존율을 기하급수적으로 올리니까.
“읏차.”
결정을 내린 유현은 우선 결박부터 했다.
미안하지만 현경이 겉에 걸치고 있던 옷을 찢어서 밧줄로 삼았다.
그 때문인지 몸을 더 떨긴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그 편이 나았다.
유현을 위해서도 그렇고, 현경을 위해서도 그렇고.
현경에게 너무 많은 기력이 남아 있게 된다면, 유현에게 남은 선택지는 살해뿐일 테니.
‘어디…….’
유현은 그렇게 재갈까지 물려 놓고 난 후, 덩굴로 현경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부근을 돌려 감고서는 그 덩굴을 감아쥐었다.
도저히 들고 갈 자신이 없었기에 생각해 낸 방책이었다.
‘이러다 정 안 되겠으면 나무에 묶어 놓고……. 나 혼자 갔다가 순규라도 데리고 와야지.’
덩굴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의학 박사가 뭐 다른 것도 다 잘 아는 건 아니지 않나.
특히 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하다고 봐도 좋았다.
해서 유현은 이곳에서 자생하는 덩굴줄기를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그런지 살짝 말라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이 끊어질 것 같진 않아 다행이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세상에 감염자를 끌고 가고 있다니.
게다가 그 감염자가 친구의 아내라니.
이거 어떻게 보면 박원상보다도 더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아냐…….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수도 있어.’
하지만 무리에 속했던 놈에게 물렸단 사실이 자꾸 유현의 탐구 정신을 자극하고 있었다.
무언가 실마리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이성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따라서, 대화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물론 서로 원하는 바가 평행선을 달리긴 할 테니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란 얘기였다.
“시발…….”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해도, 결국, 사람을 끌고 나가야 하는 건 유현이었다.
그의 초인적인 육체와 정신력 그리고 의지가 아니었다면 아마 벌써 포기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챙겨 온 초코바 두 개를 제외하면 탈출을 감행하고 나서 먹은 것도 없었다.
심지어 탈출하기 전에 잠이라도 잘 잤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배낭 안에 담긴 안정제라도 맞고 편히 잘까 하는 기이한 욕망마저 올라오고 있었다.
“시발…….”
욕도 시끄럽게 내는 건 좀 그랬다.
무리는 더 이상 쫓고 있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그마저도 확신할 수는 없지 않겠나.
더군다나 다른 놈들이 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다.
‘과실수들이 아예 없는 걸 보면 딱히 그 새끼들한테도 매력적이진 않은 거 같긴 한데.’
황폐화된 땅이 인간에게뿐만 아니라, 라드들에게도 적대적인 것만은 다행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 않나.
‘아직 살았나?’
심지어 중간중간 현경의 맥도 확인해야 했다.
시신을 끌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나.
그건 정말로 삽질이었다.
‘살았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뭐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현경의 목숨은 참으로 질겼다.
현경을 문 놈이 발목을 제외하고는 일절 상처를 내지 않은 것도 한 가지 이유이긴 할 터였다.
그 자식은 아마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걸 지켜보거나, 혹은 그에게 죽게 되는 것을 기대했을 터였다.
‘지능은 높을지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부족하네.’
착오가 있다면 유현의 성향이지 않았을까?
“후우…….”
하여간 유현은 거의 산 끝에 다다랐다.
저 밑에 보이는 것, 거대한 건물들이 목적지였다.
문제가 있다면 보기엔 가까워 보여도 실제로는 가깝지 않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비탈이었다.
혼자라면, 혹은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한 상황이라면 모르겠지만.
인사불성의 감염자를 데리고 내려가는 건 좀 무리일 듯싶었다.
그러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애초에 누운 상태로 내려가는 현경은 중상을 피하지 못할 터였다.
더 재수가 없으면 유현도.
‘일단은 여기 묶어 둬야겠구만.’
해서 유현은 현경을 근처 나무에 동여맸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는 데다가, 해도 지고 있어서 어두웠지만 하여간 근처에 뭐가 없는 것 같긴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확신은 불가했다.
‘들짐승이라도 오면……. 음.’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읏차.”
고민을 하면서도 유현은 일단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사이에 더 깜깜해진 탓에 건물 윤곽만이 겨우 확인 가능할 따름이었다.
‘시벌…….’
그렇다고 여기 더 있을 수 있을까?
그러긴 싫었다.
유현은 천천히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으어.”
중간중간 잠깐씩 미끄러지는 일이 있었지만, 혼자다 보니 그렇게까지 커다란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옷도 꽤 두껍게 입고 있어서 조금 쓸리는 것으로는 옷만 상하지 몸이 상하는 일은 없었다.
“후.”
그렇게 농공단지 안에 들어선 유현은 우선, 차도가 이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습격을 당해 엎어졌던 건 유현의 차량뿐이지 않나?
계획대로 되었다면 벌써 한참 전에 일행이 여기 왔어야 했다.
‘다행이네, 후.’
그 근방에서 차량 두 대를 확인했다.
여기저기 긁히고 쓸린 흔적도 있고, 심지어 창문이 깨져 있기도 했지만 하여간 도착한 모양이었다.
안쪽에 핏자국이 튀어 있지도 않았다.
잘 보니, 비 때문에 진흙이 되어 그런가 발자국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지럽진 않았다.
적어도 여기 와서는 싸움이 없었단 뜻 아니겠나.
툭그러나 유현은 탄피가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들고 있던 손전등을 켰다.
광량이 대단치는 않았다.
실제로 유현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그저 몇 걸음 밖 정도가 더 보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밖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캄캄한 와중에 툭 하고 켜진 불빛은 눈길을 끌고도 남았다.
“교수님인가?”
“그러길 바라야죠. 무방비로 갈 수는 없어요.”
일행 중 나선 것은 김태평, 오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