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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58화 (158/323)

158화 탈출 (2)

툭툭소리가 딱히 규칙적인 것은 아니었다.

들려오는 간격 자체는 왔다 갔다 했다.

다만 소리의 종류나 크기가 거의 일정했다.

무언가 단단한 것이 매끈한 무엇인가에 부딪히는 소리.

“교수님.”

오예리의 귀에도 그 소리는 무척 거슬렸다.

유현은 심현경을 업고 있느라, 다른 소리에 아주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해서 오예리가 부르는 소리에나 간신히 반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응? 왜요?”

“지금 뭔가 이상하거든요? 일단 내려놓으시죠.”

“아…….”

그러나 유현은 관찰력이 좋은 사람 아니던가.

동시에 예민하기도 한 편이었다.

멈춰 서자마자, 오예리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딱 알아들었다.

“이건……. 알겠습니다. 저, 잠시만.”

“네. 그러시죠.”

요원은 내심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김태평은 유현이 냉정한 사람이니만큼, 잘라 내야 할 때는 딱 잘라 낼 수 있을 거라 했지만.

어디서 훈련받은 사람도 아니고 단지 의사이지 않나?

게다가 친구의 아내였다.

모르는 사람도 아닌데 그냥 두고 갈 수 있다고?

이런 종류의 상실 아니, 살인은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각오하고 있던 이들에게조차 충격이 되기 마련이었다.

‘뭐……. 중요한 건 이후가 아니라, 지금이긴 하지.’

요원은 우선 유현이 안 내려놓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푹그사이, 유현은 안티도트를 빼서 현경에게 찔러 넣었다.

입을 틀어막은 채였다.

혹 소리를 지르게 되면, 놈들을 자극할지도 모르지 않나.

딱 봐도 주변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칫하면 달려들지도 모르겠는 것과 실제로 달려드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끕…….”

안티도트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효력을 발휘했다.

애초에 재운 지 좀 되기도 했다.

새벽에 발작 일으킬 때 약을 주었으니…….

사실상 그대로 두어도 곧 깰 시간이 되었단 얘기였다.

“조용. 지금 우리 도망가고 있어. 방해되면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가야 해. 조용히 따라올 수 있어?”

현경은 주변 풍경이 낯설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려 했다.

커져 가는 동공과 수축하는 근육 등등.

딱 봐도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는 느낌이었다.

아마 이순규라면 이런 반응을 보일 때 다독였겠지.

‘그 자식은……. 환자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유현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주변도 돌아봐야 했다.

이미 재원과 김 주무관은 지쳐 있었다.

딱히 전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여기서 더 시간을 써?

그랬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여. 아니면…….”

유현은 비상용으로 들고 온 주사를 돌아보았다.

안티도트가 아니었다.

안정제였다.

저걸 여기서 또 찌른다는 건, 어떻게 봐도 비인도적인 처사였다.

안정제란 이름의 독약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남들한테 찌르라고 할 수는 없지.’

오예리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 있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경찰이었다.

그에 반해 유현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인간성을 많이 깎아 내고 있었다.

그래야 집단을 살릴 수 있고, 또 무엇보다 자신이 안전할 수 있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기엔 제정신이 아닌 세상이지 않나.

“좋아.”

그의 눈을 읽은 것일까?

현경은 당황스러운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1분여가 소요되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는 얘기.

그럼에도 주변에 있던 이들의 등은 식은땀으로 쫙 젖어 있었다.

무언가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따라오고 있다는 확신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모두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짐은 내가 그대로 멜게.”

유현은 현경에게 총뿐만 아니라 다른 짐도 주지 않았다.

병사도 공황일 때 이상한 짓을 했는데, 현경은 오죽하겠나.

총은 워낙에 공평한 무기다 보니, 아무렇게나 쏴도 맞는 사람 입장에서는 똑같이 아팠다.

아니, 이렇게 근거리에서 쏴 대는 k2라면 단 한 방만 맞혀도 라드를 죽일 수 있었다.

사람?

사람이야 당연히 죽을 터였다.

두둑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던 야산은 길이랄 게 없었다.

그나마 초입에는 뭐가 잘 없어서 걷기가 나았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니 발 디디기도 어려웠다.

이쯤 되니 현경뿐만 아니라 김 주무관과 재원조차 걷기 어려워했다.

맨몸으로도 나다니기 어려운 곳을 총까지 쥐고 걸으려니 힘든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이쪽으로.”

그나마 요원이 앞길을 터 주고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뒤처지는 이들이 하나 가득일 터였다.

“흐음…….”

덕분에 요원도 여유는 없었다.

짐 덩이들을 끌고 가는 느낌이지 않나.

유현도 짐을 워낙에 많이 들고 있는 데다가, 이미 살짝 지친 상태다 보니 주변을 둘러볼 정도는 못 되었다.

오직 하나, 오예리 형사만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잠시.”

그런 그녀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요원과 유현이 그랬다.

“무슨 일이죠?”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아.”

“근데 방향이 이상해요. 뒤가…… 아닌 거 같은데.”

뒤가 아니다.

말도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일전에 겪었던 일부터 떠올랐다.

이 새끼들.

보건소를 습격할 때도 포위망을 형성하지 않았었나.

아니, 오히려 북쪽으로 더 많은 놈들이 포진해 있었다.

“제기랄.”

찰카닥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짐?

그런 게 지금 중요하겠나.

당장 죽게 생겼는데 나중에, 내일 먹을 음식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특히 요원이나 오예리 등을 제외하면 그랬다.

다들 총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툭투둑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못 알아들을 소리는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행이 내고 있던 소리였으니.

가지가 부서지는 소리였다.

가을 동안 바싹 말라비틀어진 가지는 밟으면 바로 부서졌다.

사람이 밟아도 그 지경인데 라드가 밟으면 어떻겠나.

두두둑

점점 소리가 커져 오고 있었다.

시간을 끄는 게 온당할까?

알 수 없었다.

화력은 모여 있는 게 좋겠지만…….

놈들도 근접전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방향이…….”

“이미 둘러싸인 거 같아요.”

“이런 젠장.”

화망을 집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절 따라오시죠.”

결단은 요원이 내렸다.

그는 정면 돌파를 감행하기로 했는지, 냅다 뛰기 시작했다.

나름 체력을 아껴 두고 있던 모양이었다.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찍, 찍

김 주무관 또한 그 뒤를 따랐다.

흔들려서 그런가, 그의 배낭 안에 담겨 있는 쥐들이 찍찍 울어 대기 시작했다.

“음?”

그 쥐들 덕분일까?

처음 마주친 두 라드.

얼핏 봐도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라드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일행을 보아하니,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익숙한 냄새가 나서 그럴 터였다.

“어, 어쩌지?”

묘한 대치가 있었다.

차라리 원거리였다면 냄새가 번지지 않아, 시각만으로 판별했을 테니 묻지도 따지지 않고 공격을 했을 텐데.

산속이다 보니 근거리에서 마주친 것이 원인인 듯했다.

김 주무관의 말에 재원은 그저 총을 꼭 쥘 따름이었다.

그 모습이 무언가 신경을 거슬렀을까.

“흐으.”

둘 중 한 놈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치켜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생각해 보라.

산속에서, 추위 때문인지 거적때기를 입고 있는 거인이 쇠 덩이를 집어 들고 있다니.

“쏴! 쏴!”

오예리는 요원의 말에 바로 정조준을 하고 목부터 머리까지를 쐈다.

“크어.”

그렇게 하나가 죽어 나가는 사이, 다른 놈이 쇄도했다.

영악하게도 죽어 나가는 동료 뒤에서 달려들었다.

덩치가 크면 느리기라도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더 빠르기만 했다.

근력에 더해 운동 신경까지 어마어마해진 놈들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망할!”

하필 몽둥이의 끝은 유현을 노리고 있었다.

유현은 산길 옆으로 몸을 날리고는 데굴데굴 굴렀다.

그런 그의 다리에 현경이 걸려 같이 넘어졌다.

결론적으로 보면 다행이었다.

몽둥이가 그대로 현경이 있던 자리까지 날아들었으니.

부웅

소름 끼치는 소리.

타다당

오예리와 요원만이 그 소리에 얼지 않고 총을 쏠 수 있었다.

“끄으…….”

머리통을 맞지 않아서 당장에 죽지는 않았지만, 여하간 무력화시킬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편에 널브러져 있는 유현과 현경을 챙길 수 있는 여력은 없었다.

두두두두

총소리가 사방을 뒤덮지 않았나.

그렇지 않아도 각종 오감이 더 예민한 놈들인데, 이걸 놓칠까.

대체 몇 마리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숫자의 라드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 이따 합류합시다! 최종 목적지는 아시죠?”

요원은 급한 대로 옆에 있던 김 주무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뭐가 되었건 쥐가 효과 있다는 걸 확인하지 않았나.

쥐 박사가 있으면 앞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재원을 끌었다.

의사잖아?

어떻게든 도움이 될 터였다.

김 노인은 어느새 요원의 옆에 붙어 있었다.

“교, 교수님!”

오예리는 유현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탕유현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쇄도하는 다른 라드 무리에게 제압 사격을 한 후, 반대로 뛰어서 그랬다.

“교수님!”

“일단 가죠. 목적지는 아시잖습니까!”

“하지만…….”

“어차피…… 우리만으로는 구할 수도 없어요! 교수님도 우리끼리 가는 걸 원할 겁니다!”

“이런 망할!”

그럼에도 따라가려는 오예리를 요원이 설득했다.

오예리는 그런 요원 대신 재원과 김 주무관을 돌아보았다.

둘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다.

용케 걸음을 옮기고 있다 싶을 지경이었다.

“망할…….”

게다가 라드 중엔 유현과 현경이 사라진 쪽으로 간 놈들도 있었지만, 분명 이쪽으로 오는 이들도 적지는 않았다.

“뛰죠!”

“네, 네!”

요원을 선두로, 모두는 달려야만 했다.

“하악, 하악.”

한편, 유현은 반대로 뛰고 있었다.

가야 하는 방향은 대강 머릿속에 있었다.

그래서 더 우울해졌다.

멀어지고 있었으니.

“헉, 헉.”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심현경이 의외로 잘 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짐도 없는 데다가 조금 전까지 잘 자고 있어서 그렇긴 하겠지만.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대단하다고 볼 수 있지 않겠나.

탕그럼에도 따라붙는 놈들이 있었다.

“크억.”

유현은 단 한 방에 무력화된 라드를 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이건 순전히 요행이라 그랬다.

운이 좋았다.

정말로.

평균적인 사격 솜씨를 미루어 보면, 탄창 하나를 거의 다 비워야 가능한 일을 한 방에 해냈다.

“일단……. 이쪽으로!”

“으, 응!”

유현은 그렇게 제일 선두에 있던 놈을 무력화시킨 김에 더 위로 뛰었다.

뛰다 보니, 확실히 저것들이 빠르게 지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그랬다.

이쪽도 죽도록 힘들긴 하지만, 저쪽은 더 힘들어 보였다.

순간적인 가속도는 어마어마했지만 유지하는 건 어려운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너무 과한 근육은 이럴 땐 약점일 테니.

‘이런 망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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