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57화 (157/323)

157화 탈출 (1)

부우우웅

세 차량은 모두 보건소 1층에 있었다.

혹시 몰라 안쪽에 두었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아니었다면 아까 다 부서졌을 터였다.

“이대로 문 부수고 나갑니다.”

“네. 문 열라고 내렸다간 다시 못 탈 거예요.”

선두에 선 차량은 김태평이 몰았다.

아무래도 제일 운전을 잘하는 만큼, 제일 위험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 되어서 그랬다.

요원이 운전도 잘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실제로 훈련을 받는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투콱

하여간 선두에 선 김태평은 나무로 된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갔다.

약 창고로 쓰던 곳에 숨겨 놓았기 때문에, 이쪽에서 나갈 거라고는 아마 상대가 라드가 아닌 사람이라고 해도 예상을 못 했을 터였다.

부우우우웅

그 뒤를 따라 다른 차들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제일 좋은 것은 아무래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이대로 달리는 것일 터였다.

“쭉, 쭉 밟자고.”

선두에 선 김태평의 생각도 그러했다.

아무래도 짐이 많아서 그런가, 속도가 제대로 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차를 생각할 때의 얘기고, 사람이나 라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가속된 차량은 부리나케 덜컹거리는 차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안개 덕에 출발한 지 2, 3분이 지났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좋아. 좋아.”

오히려 장애물이 되는 것은 관리가 안 되어 푹푹 파여 있는 도로 상태였다.

도로의 파여 있는 부분을 지날 때마다 굉음이 울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쾅그나마 김태평은 귀신같은 반응 속도로 그걸 피해 갔지만, 김현철이 모는, 그러니까 이순규가 이끄는 두 번째 차량은 그러질 못했다.

저러다 바퀴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격렬한 충돌이 있었다.

콱그 순간 창이 날아들었다.

“잡아!”

잔뜩 갈라지고 망가진 목소리와 함께였다.

정신 차리고 듣지 않으면 이게 사람 목소린지 짐승의 울부짖음인지 헷갈릴 정도로 괴이하고도 커다란 목소리였다.

그러나 분명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잡아!

이들 무리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시발!”

소리는 두 번째 차량이 냈는데 정작 창이 날아와 박힌 곳은 세 번째 차량이었다.

운전하고 있던 유현은 하마터면 절명할 뻔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옆으로 날아와 박힌 창은, 지금도 창문에 붙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운전석 시야만 남기고 나머지 유리창은 책과 이불 등으로 덮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안으로 쭉 날아들어 뒷자리에 있던 이들을 죽였을 터였다.

슉그것으로 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창 외에도 돌멩이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어제 날아들던 돌에 비하면 훨씬 작다는 점이었다.

확실히 그만한 돌덩이들은 어디선가 공수해 왔던 모양이었다.

아무거나 주워서 던지고 있다 보니 어제와는 파괴력이 달랐다.

“우리는 저쪽으로!”

하여간 공격이 시작된 마당이었다.

한 길로 달리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

실제로 적은 수이긴 하지만 화력이 집중되다 보니 차량이 금세 넝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살 사람은 살아야 했다.

해서 일행은 각기 정해진 대로 찢어졌다.

김태평은 그대로 우측으로 꺾어 다리로, 이순규 일행은 달리던 길 그대로, 유현은 좌측으로 꺾어 산을 방패 삼아 달리기로 했다.

“간다, 시발!”

다른 일행을 살필 여력은 없었다.

유현은 그저 달려야 하는 길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슉뒤로 창과 돌멩이들이 날아들었다.

와장창

뒤를 나름 이것저것으로 막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이 순식간에 박살 나 버렸다.

“고개 숙여요! 오 형사! 제수씨 고개 좀 숙이게 해요!”

“네!”

“아니, 아니다! 총 쏠 수 있으면 총 좀 쏴요!”

“어……. 네! 근데 이게 맞을지.”

오예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면서도 총을 쥐고 뒤로 탕탕 쏴 댔다.

조준은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겠나.

가뜩이나 달리는 차 안에서 움직이는 라드를 맞히는 건 누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일렀다.

멀어진다고 해 봐야 여전히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는 놈들이 있어서 그랬다.

“어! 꺾어요!”

사격을 하던 오예리가 비명처럼 외쳤다.

쾅유현은 그와 동시에 차를 꺾었으나, 피격을 피하지 못했다.

철로 된 창이 차의 옆구리를 길게 찢었는데, 그게 하필 뒷자리 쪽 바퀴에 걸렸다.

기기긱

마치 사이드 브레이크라도 밟은 것처럼 속도가 느려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것 이상의 속도는 난다는 점이었는데, 이것도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달립니다! 가까이 오는 새끼들 좀 쏴요!”

“네!”

상황이 급해지다 보니, 오예리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총을 들고 쏴 대기 시작했다.

대개는 의미 없는 사격이었다.

명중을 염두에 둔다면 그랬다.

“멀어진다, 그렇지!”

하지만 제압 사격에 의의를 둔다면 썩 괜찮은 사격이라 할 수 있었다.

비록 탄창 몇 통이 공으로 날아가긴 했지만, 그렇게 벌어 낸 시간이 적지 않았다.

적어도 놈들의 시야 밖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끼기기긱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차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대로 더 이동하는 것은 무리란 얘기.

“이런 망할.”

멈춰 선 차량 안에서, 재원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성격상 무척 드문 일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욕이 안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으니.

“하아.”

김태평에게 배정받은 요원도 한숨을 쉬었다.

그는 차량 안을 둘러보다가 이내 밖으로 향했다.

딱 제압 사격만 한 덕에 그에게는 탄창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나오시죠. 서둘러 이동해야 합니다. 어차피 먹을 건 챙겨 들고 왔으니까…….”

“그러죠.”

유현도 운전석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따라붙는 낌새가 느껴지진 않았다.

어쩌면 다른 차량이 더 위험한 상황일지도 몰랐다.

‘제길. 이런 거나 바라고…….’

유현은 무의식적으로 그러길 바랐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다가, 이내 나머지를 챙겼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달리면서, 심지어 공격까지 당했는데 조용할 수 있었던 이유 때문이었다.

“어쩌죠?”

현경은 잠들어 있었다.

아니, 약에 취해 있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스스로 이동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제가 업죠.”

“업고 산길을 가려면……. 그러다 발목이라도 삐면 어쩌시려고요.”

“너무 급해지면……. 저도 뭔가 하긴 할 겁니다.”

“그…….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죠.”

오예리 형사는 유현이 현경을 업을 수 있게 돕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사이 재원과 김 주무관 그리고 원래 보건소에 있던 김 노인이 총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선두에는 요원이 있었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았는데, 추적을 염려하고 있었다.

짙은 안개 탓에 멀리까지 보이진 않았다.

소음으로 느껴 보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길.’

유현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서, 차량으로 달린 시간과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얼마나 달렸더라.

그래, 10분은 더 달린 것 같았다.

속도 차가 그리 심하진 않더라도, 차로 10분이다.

막판에는 망가지기 직전이었다 보니 뛰느니 못한 속도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가 꽤 벌어지긴 했을 터였다.

‘추적 기술이 있거나 하지는 않겠지.’

냄새로는 추적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까 봐 다들 쥐를 가지고 있었다.

아니, 김 주무관 때문에 가지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엄청 들고 있었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배낭 안에는 거의 쥐만 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헉. 헉.”

차에서 내린 지 20분이 다 되어 갈 무렵까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걷고, 또 걸을 뿐이었다.

무언가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얼마나 남았죠?”

그제야 재원이 입을 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였다.

경계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그래 봐야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유현은 뒤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농공 단지까지는 대략 1킬로……미터 정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직선거리 얘기고, 이제 곧 저 산을 넘어야 해요.”

“하.”

산.

동네 야산이겠지만, 쫓기는 이들이 보기엔 히말라야를 방불케 하는 느낌이 일었다.

딱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멈출 수는 없었다.

“교수님은 괜찮으십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에서 물러나 후미를 지키기 시작했던 요원이 물었다.

아직 속도가 딱히 남들에 비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 힘들 리가 없지 않겠나.

사람 하나를 엎고 가고 있었다.

심지어 총도 메고.

“아직은요.”

“산을 타실 수 있을까요?”

“그건…….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안 깨면, 이거라도 찔러야죠.”

유현은 턱으로 주머니를 가리켰다.

안티도트(Antidote)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다시 말하면 환자를 깨우는 약이 있다 이 말인데, 사실 안 쓰는 게 제일 좋기는 했다.

‘깨우면……. 걷기는 하려나.’

걷기는커녕 소리나 안 내면 다행이었다.

‘소리를 내면……. 어쩔 수 없지.’

미끼로 쓴다는 발상은 아니었다.

다만 더 이상 챙길 수 없다는 얘기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걸 방지하기 위해 지금 이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현은 계속 걸었다.

툭툭주변에서는 소음이 들려왔다.

라드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뭔가 던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달려들었을 수도 있고.

짙은 안개 속을 걷고 있다 보니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소음이 들려온 지 꽤 되었고, 이렇다 할 공격이 없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자, 이제 산길입니다. 방향은 이쪽이긴 한데. 흠.”

요원은 다시 앞으로 가서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아까 말했듯 농공 단지였다.

고립되어 있고 또 먹을 것도 없는, 시멘트 공장이다 보니 생존자나 라드가 없을 것이라는 이유 그리고 가깝다는 이유로 1차 목적지로 선정되었다.

무엇보다 거기서 또 차를 얻어 낼 수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물류를 옮기기 위한 차량이 많기는 할 테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아직은요.”

“네. 알겠습니다. 뒤처지지 마십시오.”

“네.”

요원은 걸어가야 할 길, 사실상 길도 아닌 야산을 올려다보다가 이내 유현을 돌아보았다.

빈말로라도 힘들면 교대하자는 말을 하진 않았다.

일행을 절대로 잃지 않겠단 말을 떠들어 대기엔, 이미 잃은 사람이 너무 많지 않나.

무엇보다 요원이 보기에 저 여자는 그냥 짐이었다.

아니, 짐보다도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뭐……. 팀장님이 괜히 데려온 건 아니겠다만…….’

협상의 대상이 되기는 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훌륭하지는 않을 게 뻔했다.

박원상.

이미 나가리 됐잖아?

뭐, 남산에서 뭐라도 할 수는 있겠지만…….

툭툭생각은 다시 들려온 소음에 의해 끊어졌다.

산에 들어왔으면 소음의 종류가 바뀌었어야 할 텐데, 왜 같은 소음이 들려올까.

불안감이 불현듯 요원의 가슴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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