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북상 (3)
‘아직도 말을 제대로 안 해?’
‘응.’
‘넌 정신과 의사가 왜 그렇게…….’
‘이 새꺄……. 정신과 진료가 무슨 마법 같은 건 줄 아냐?’
‘그런 거 아냐?’
‘아냐!’
그 모습을 본 유현은 이순규를 향해 속삭였다.
맨날 나누던 대화인데, 이상하게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
해서 이순규는 고개를 털어 낸 후에야 박원상의 아내 앞에 설 수 있었다.
“읏.”
이순규라는 건 아마 알고 있을 터였다.
벌써 그녀가 이 집단에 들어온 지도 열흘도 넘게 지나지 않았나.
게다가 그 기간 동안 심현경과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 온 것이 이순규였다.
그럼에도 본능적인 움츠림은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 게……. 트라우마로군.’
유현은 어설프게 입을 여는 대신 그저 이순규 옆에 앉았다.
익숙한 얼굴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좀 낫겠지 싶어서였다.
밉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터였다.
합리적이지 못한 증오라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박원상의 성격으로 미루어 볼 때, 그리고 그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 때 눈앞의 여인은 정말로 아는 게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알았을 거야.’
박원상은 애처가다.
-넌 다른 사람에게 향해야 할 관심이나 애정을 다 아내한테 집중하는 거 같아.
이순규가 농담으로 이런 얘기를 했을 정도로.
실제로 일종의 사회 적응을 마친 소시오패스인 박원상에게 아내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가르쳐 주진 못했을지언정, 자신을 향한 애정은 품게 해 준 그런 존재.
그런 아내를 가만히 두었을까?
뻔히 망할 세상 속에?
‘아, 그만둬야지.’
얼굴을 볼 때마다 유현은 이런 생각이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돌아가 괴로웠다.
비난하러 온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음에도 그랬다.
해서 유현은 입을 더 굳게 다물었다.
“제수씨.”
그사이 이순규가 입을 열었다.
답은 없었다.
그래도 고개는 이쪽을 향했다.
퀭한 눈이 더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생의 흔적이 여기저기 얽혀 있던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망가졌다는 말도 어울릴 지경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순규는 눈앞의 제수씨 아니, 환자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게 용하다고 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특성상 전투 후유증을 겪는 군인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전투기 추락 이후 살아남은 조종사를 본 적은 있어서였다.
파일럿을 했을 만큼 배짱이 두둑했던 그는, 아마 적절한 치료가 없었다면 자살했을 터였다.
이순규가 볼 때 코앞에서 홀로, 그것도 비무장 상태로 라드를 마주해야 했던 현경의 트라우마는 조종사의 그것에 비해 결코 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환자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치료는 빈말로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었다.
우선 약이 없었다.
아니, 있기는 한데, 그야말로 기초적인 우울증에나 쓸 만한 약들이었다.
‘내가 그때……. 온전했다면 훨씬 준비를 잘했을 텐데.’
잠시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병사를 잃고 나서도 했던 후회였다.
감염이 되지 않은 채로, 적어도 회복이라도 된 채로 유현과 이 종말을 준비했더라면 적어도 정신과 약을 이렇게만 준비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인간의 우울이나 감정 기복이 상실에서 온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흔히 보아 오지 않았나.
객관적으로 보면 여전히 많이 가진 사람이, 정상에서 고꾸라진 이후 우울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이순규가 보기엔 이 재난은 인류 전체에게 크나큰 상실감을 던지고도 남았다.
이전엔 당연했던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되어 버렸으니.
“우리 이사를 가려고 해요. 더 좋은 곳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은,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일행이 받아들이는 위험이라는 단어와 환자가 받아들이는 위험이라는 단어는 아예 다른 것이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라 그랬다.
해서 고르고 고른 단어가 이사였다.
‘그 이사를……. 어디로 가려고 한다고 하려고?’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랜 친구로서 술자리였다면 드립을 칠 수도 있었을 터였다.
나이가 들고 상황이 바뀌었지만 관계 자체는 그대로 남아서 그랬다.
아니, 박원상을 잃어버린 이후로는 이순규가 더 소중하게 남아 버렸다.
무의식적인 이유로라도 유현은 이순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더 좋은 곳을 찾았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빨리 어디 가자고 할 때 놀라지 말아요.”
답은 여전히 없었다.
유현은 좀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작 대화를 시도했던 이순규가 답을 재촉하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됐어. 나가자.”
“응?”
“나가. 이따 얘기해.”
“어어.”
그러곤 현경의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유현도 그의 뒤를 따랐다.
“알아들은 거야?”
그러고는 참았던 질문을 토해 냈다.
“어. 눈이 왔다 갔다 했어. 알아들었어. 다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야.”
“왜? 왜 그러는 거야. 그렇게 무서웠나.”
“단지……. 그것 때문만도 아닌 거 같긴 해.”
이순규는 식사 시간을 떠올렸다.
각기 먹어도 되겠지만, 일부러라도 다 모여서 먹고 있었다.
그것이 심리적으로 훨씬 안정이 되기에 그러했다.
특히 지금 이 집단처럼 유현이나 이순규, 오예리, 이진호처럼 단단한 사람들이 있는 집단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들이 툭툭 내던지는 말들이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양재원이나 최우식, 김 주무관 등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홀로 있었다면 무너졌을…….
‘아, 최우식은 예외인가.’
가정이 있어서 그렇지 홀로 된 몸이었다면 아마 훨씬 적극적이긴 했을 터였다.
하여간, 이 집단은 그들이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현경에겐 아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박원상 저 개새끼…….
-뻔뻔하지 않아요? 지가 이 사태를 일으켜 놓고 저기 나와서 떠든다는 게?
그것도 첫날 그랬다.
이순규나 유현이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조용한 편에 속하는 김현철 소위가 노인들과 대화를 심도 있게 나눌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때 현경은 아마 알았을 터였다.
미심쩍었던 부분에 빠져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 내 남편이 역시 죄인이었구나 라는 것도.
왜 마트에서 나름 특별 대우를 받았었는지도.
“뭐, 어찌 되었건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문제는 그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데.”
불안정해진 정신은 안정된 환경을 필요로 하는 법이었다.
안정된 환경에 이곳만 한 곳이 또 있을까?
단 몇 달이라도 안정 가료할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질 않았다.
“그래, 길어야 며칠이야.”
“어쩌면 당장 오늘 밤에 떠나야 할 수도 있어.”
“아. 밤…….”
유현은 밤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서 몸을 떨었다.
확실히 이곳에 온 후 긴장을 잊고 있었단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간 잊고 있던 긴장이 한순간에 밀려오는 느낌이 일었다.
‘그날……. 그날처럼 밀려오면.’
놈들은 늑대 무리였다.
아니, 그보다 훨씬 무서운 놈들이었다.
초보적인 수준을 벗어난 도구를 쓸 줄 아는, 그러면서도 힘도 인간에 비해 훨씬 강한 놈들이었다.
그게 새벽에, 사람이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날은 병사를 잃었다.
그게 오늘이라면 오늘은 또 누구를 잃게 될까.
‘흐음…….’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현경이 있는 방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에 본인이 먼저 몸서리를 쳤다.
-나니까 니들이랑 놀지……. 이 인간성 옅은 새끼들아.
언젠가 술에 취한 이순규가 유현과 박원상 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억울했다.
이만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러나 이럴 땐 괜히 정신과 간 게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확실히 유현에겐 비인간적인 면이 혼재해 있었다.
“주의시키자고. 김태평에게도 더 주의시키고. 그 사람이야……. 강변에서 무리를 겪기는 했겠지만, 여전히 김선태를 제일 두려워하잖아? 내가 볼 때는 딱히 그럴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래. 음. 그나마 내 말을 제일 잘 들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부드럽게 돌려서 말해 볼게. 오예리 형사님이랑 이진호 형사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그래. 그렇지. 둘이 있어서 다행이지.”
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평에게 갔다.
김태평은 라드 무리에 대한 주의를 듣고 나서도 딱히 더 긴장하거나 하진 않았다.
“까다로운 시간에 올 수 있다 이거죠?”
그렇다고 방심의 흔적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니 이 태도는, 그저 늘 최악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보면 될 터였다.
오히려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요. 조심해서 나쁠 거 없지. 다만…… 피곤하기는 할 텐데……. 흠.”
김태평은 밖을 내다보았다.
라드 시신을 발견했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보면 여전히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저기 너머 어딘가에 무리가 있을 가능성이 너무 컸다.
그 말은 이 풍경이 한시적이란 뜻이었다.
“돌아가면서 경계를 서죠.”
“그래야 하겠군요. 차는 완전히 준비된 겁니까?”
“네. 뭐……. 가진 게 없다 보니 단출하네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차량 세 대로 올라가다 보면, 눈에 띌 수밖에 없을 겁니다. 처음엔 그렇게 가더라도……. 수도권에 이르러서는 좀 나누어서 움직여야 할 텐데. 인원 분배를 해 보죠.”
“아, 네.”
이따금 헬기 정찰이 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 있었다고 했나.
‘개새끼들.’
헬기라는 게 어디 그냥 기계 하나 있다고 두두두 날 수 있는 물건이던가.
기름도 많이 먹고, 인력도 있어야 하고 심지어 정비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다.
헬기는 그렇지 않아도 잘 떨어지는 물건이니까.
그 말은 곧 그만한 여력이 청와대에는 있단 뜻이었다.
“대충…… 이렇게 하고, 밥부터 먹죠.”
일행을 나누는 건 금방이었다.
각 무리의 리더를 정하고, 배정하면 될 일이었다.
애초에 김태평은 팀을 나누지도 않았다.
해서 원래 있던 무리를 유현과 이순규를 중심으로 나눈 게 다였다.
그렇게 나누고 밥을 먹고 나니 금세 밤이었다.
챙새벽.
꼭 병사를 잃었던 그 시각.
돌멩이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 소리에 김태평은 기함했다.
기시감이 들어서 그랬다.
이거 딱 강변에서 들었던 그 소리 아닌가?
‘설마?’
그 새끼들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쉬이 떨쳐지질 않았다.
왜?
왜 이러지?
“이런 시발.”
나가니, 유현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왜 그러냐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돌이 날아온 방향.
북쪽이었다.
“에워쌌나?”
“어떻게 이렇게까지…….”
그야말로 칠흑 같은 밤이었다.
차를 몰고 도망갈 수 있을까?
길목이 차단된 상황에서?
그건 무리일 터였다.
당장 도망쳐야 하는 방향에서 이만한 위력으로 돌멩이나 철제 무기가 날아들게 되면 다 죽을 수도 있었다.
“일단 옥상! 옥상으로!”
“야투경 몇 개나 있죠?”
“8개가 다예요!”
“일단 그거라도 분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