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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51화 (151/323)

151화 합류 (4)

‘망할……. 망할……!’

박원상은 웃는 얼굴의 김선태와 냉담한 얼굴의 김조은을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름 개인 숙소였다.

열심히 아부해서 얻어 낸 자리였다.

특별 대우를 받는 건 아니었다.

남산엔 설비가 사람보다 넘쳐나기에 으레 이렇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런 젠장!”

박원상은 그렇게 방에 들어와 주변을 둘러보고 혼자인 걸 확인하고 나서야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혹 누군가 들을까 봐 목소리를 죽였다.

누가 보면 조소를 머금어도 좋을 만큼이나 어이없는 광경이었지만, 그런 생각조차 들지 못할 만큼 마음이 어지러웠다.

‘여보……. 이게 대체.’

라디오에 좀 더 나가서, 좀만 더 낯부끄러운 소리를 해 대면 헬기를 띄워다 줄 줄 알았다.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설마 아내는 챙겨 주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밖에……. 밖에 있다 이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박원상은 바깥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이기적인 사람인 만큼 합리화도 빠른 사람이었다.

해서 어디가 되었건 간에 살아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서 찾아야 할 터였다.

‘아니, 그 전에 진짜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야지.’

그렇다고 당장 본인이 나갈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애초에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건 아닌데 싶었을 때 발을 빼지 않았겠나.

유현이라면 숫제 연구에 사보타지를 했겠지만.

모두에게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여간, 박원상은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김선태 일행과 함께 온 이들을 찾아 나섰다.

‘군인들은 안 돼…….’

일반적인 군인들은, 그러니까 그냥 징병제로 들어갔다가 우연히 사태가 터져 지금까지도 군복을 입고 있는 이라면야 얘기가 달라질 터였다.

하지만 김선태가 데리고 다니는 놈들은 좀 달랐다.

사람 같지 않은 놈이라고 해야 할까?

찾아야 할 것은 김선태 일행과 함께 온 민간인들이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놈들이 의외로 사람을 좀 데리고 왔더랬다.

“저기…….”

“아, 네.”

당연하겠지만, 민간인들은 마트에 있던 이들이었다.

쉘터가 무너진 마당에 의사라는 이유로 또 과학자라는 이유로 또 사회의 유명인이었다는 이유로 남산에 빌붙게 된 이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저자세였다.

이곳은 마트보다도 더 위압적이었으니까.

입구에서부터 딱 정부에서 관리하는 느낌이 들지 않던가.

“혹시 이렇게 생긴 여자 본 적 있습니까?”

박원상은 눈치로 상대가 저자세로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입고 있던 가운을 빳빳하게 잡아당기며 물었다.

주변에 있던 군인들이 고깝게 보긴 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강약약강의 전형이 바로 박원상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 잠시만요.”

효과는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의 박원상은 이 시설의 주요 인물이었기에 그랬다.

잘 보여야 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런 사람이 여자를 찾고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기엔 지금껏 이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이 지나치게 험악했다.

“어……. 저 봤습니다. 나름…… 대우를 좀 받았던 분 같은데요.”

“아,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그렇게 몇 다리 건너니 안다는 사람이 나왔다.

비축하고 있던 약과 가서 뭐든지 하겠다는 서약을 해서 따라붙은 이였다.

오는 길에 그렇게 따라붙은 이들 중 몇은 군부대의 이동을 위한 미끼가 되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후……. 그래, 돌아라, 머리야.’

지금도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박원상.

이 양반 TV에서 본 적이 있지 않나.

최근엔 대위가 소음이나 빛을 내면 안 된다는 이유로 TV 시청을 제한해서 더 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주요 인물로 보였다.

“네, 그……. 원래는 5층에 계셨던 걸로 압니다.”

“5층……?”

주요 인물이라기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왔다 갔다 하면서 주워듣던 게 다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위에서는 박원상을 프로파간다의 선봉과 동시에 이 사태의 책임자로 낙점한 지 오래였다.

토사구팽이 예정되어 있다는 얘긴데, 그런 사정이야 남산에 원래 있던 이들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 아니겠나.

해서 민간인 의사는 최선을 다해 입을 놀렸다.

“네. 그……. 강변 테크노 마트는 대위가 뭐라고 해야 하나. 다스린다고 해야 하나. 그랬거든요. 계층이 나뉘어 있었는데…….”

“아, 5층이 군인들 거주지였습니까?”

“네. 나머지가 2, 3, 4층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2층이 좀 위험해져서 3, 4층으로 몰리게 됐는데, 저는 그나마 4층에 있어서 다행이었죠.”

아마 2, 3층 거주자가 한꺼번에 3층에 몰렸던 모양이라고, 박원상은 생각했다.

그사이에도 민간인 의사는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4층에 있더라고요? 다른 남자 하나랑 같이 있었는데……. 남편은 아닌 거 같았습니다.”

“아. 네. 그래서요?”

5층에서 4층으로 왔다.

강등되었다는 의미였다.

박원상은 그게 자기 탓이란 생각에 괴로웠다.

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적어도 이 사람에게만큼은 아직 대단한 사람으로 보여야 했으니까.

‘원준이가 그래도 같이 있었구나.’

동생.

박원상에 비하면 공부를 못해 집안의 주목을 덜 받았지만, 그래도 뭐 붙어 있었다면 안심이었다.

이런 세상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당연히 둘이 있는 게 나을 테니.

“거기 마지막 날에……. 제가 알기론 3층은 완전히 라드 놈들한테 떨어졌고요. 4층에 있던 사람들도 많이 죽거나 잡혀갔는데, 그래도 그분은 저랑 함께 구석 비상구 계단까지는 함께 있었습니다.”

“근데……. 여기엔 없군요.”

“저희는 위로 도망쳤어요. 별생각 없이, 그냥 군인들이 있으니까 좀 낫겠지, 이런 생각이었죠.”

“이 여자분은……?”

“아래로, 아래로 갔어요. 그런 사람이 훨씬 많았습니다. 기실 차별이 너무 심하고 또 허드렛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도망갈 기회만 노리고 있던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아.”

도망갔다.

동생과 함께.

그 안에서 죽지는 않았다, 이 말인데…….

“근데 이분이 누구시길래…… 그러시죠?”

“아, 그냥 뭐 지인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박원상에게 민간인 의사가 넌지시 물었고, 박원상은 여상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나 마음속은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도망쳤다…….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 안 될 거……. 안 될 거 같은데.’

비록 사태가 터지고 바깥에 나가기는커녕 밖을 내다보지도 못한 몸이었지만, 눈치로 알 수 있었다.

아니, 모르면 바보였다.

뭔가 큰일이 터지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랫동안 밖에 나가 보지도 못할 리가 있겠나.

게다가 이따금씩 군인들이 잡아 오던 라드의 수도 줄어들고만 있었다.

식량도 말은 안 하지만 조금씩 배급을 줄이고 있었고.

‘이런 시발…….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와중에 박원상의 입지는 사라져만 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높은 이들에게서 박원상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란 점이었다.

남산이야 새로 확보한 실험체를 이용한 연구를 하느라 바쁠 수밖에 없었고, 청와대 또한 청와대대로 머리가 아팠다.

“17비가 명령을 거부해?”

“네. 대공포 공격의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계룡대 쪽 움직임도 불안하다고…….”

군이 말을 듣지 않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계룡대……. 거기에 병력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대전 날아갈 때 같이 날아간 놈들 아냐?”

“하지만 헬기 운용이 가능할 정도의 전력이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고…….”

“이런 망할. 수원 쪽은 여전히 연락 안 되고?”

“네.”

“이래서야……. 폭격은 물 건너갔군, 그래. 한 번만 더 하면…… 서울 수복이 꿈이 아닌데, 이 멍청한 놈들이.”

“그…….”

대통령의 말에 공군 장교 하나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폭격 이전에는 그래도 버티고 있던 비행장이 꽤 있었다.

군산, 사천, 광주, 대구, 김해 등등…….

사태가 발발하면서 바로 휘말려 사라져 버린 공군 사관 학교나 진주 교육사와 같은 부대가 더 많긴 했지만, 비행장은 나름 소음 때문에라도 시내에서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괜찮았다.

하지만 폭격을 위해 비행기가 뜨던 날, 그로 인한 소음은 재앙으로 화했다.

수많은 라드들이 자극을 받았고, 상대적으로 풍족한 상태로 있었던 비행장은 그날로 박살이 나 버렸다.

‘내가…… 말했잖아. 소음으로 인한 위험성을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고…….’

심지어 폭격 자체도 인접한 구도심에 이루어진 바람에 거기서 도망쳐 나오는 라드들까지 합류했고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주변의 모든 소도시를 휩쓸어 버렸다.

청주 비행장이 그나마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은, 세종시에 상주인구가 적었던 것 그리고 주변에 있던 육군 부대들이 이미 박살이 나 있었던 것,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 등등을 이유로 뽑을 수 있을 터였다.

수원?

그쪽은 애초에 명령을 반만 들었다.

사령관이 소음으로 인한 위험을 경계했고 보고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 보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나마 희망으로 남아 있던 부대들이 싹 증발해 버린 이후로 수원 비행장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연구는 어떻게 되고 있지?”

“아직…… 이렇다 할 진전은 없습니다.”

“그래도 발표는 해야지. 통신 방해, 이제 완전히 해제하게.”

“아, 네. 각하.”

수원 비행장, 청주 비행장은 이제 위협이었다.

설마하니 군인 된 신분으로 명령도 없이 서울에 폭격을 퍼붓진 않겠지만, 미연에 방지해야 하지 않겠나.

“연구는 남산과 청와대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라고 하게.”

“네.”

희망의 불씨를 여전히 이쪽에서 쥐고 있다고 하면 어찌 될까?

감히 공격을 하지 못하게 될 터였다.

게다가 통신 방해를 해제해, 대부분의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한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령이 떨어져도 조종사 선에서 컷 될 가능성이 컸다.

누가 봐도 망해 버린 세상이지만, 여전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까.

누구 말마따나, 이놈들은 좀비가 아니지 않나.

살아 있는 생명이니만큼, 어떻게든 공략이 가능하긴 할 터였다.

* * *

“그런 상황이군요. 그래서 폭격이 더 없었던 건가.”

김태평은 아직 유현과 함께 보건소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럴듯한 차는 찾았는데, 기름이 모자라서 그랬다.

게다가 지금 강동으로 향해 봐야 당장 머물 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날 김선태는 1호 확보에 열을 올렸지, 라드 제거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으니.

“네. 그렇습니다. 오히려 그날 이후로 공군 전력 태반이 사라졌어요.”

“거참……. 다른 나라는 어떻습니까?”

유현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매일 밤 김태평의 앞에 모여 눈을 빛냈다.

여태 잘해 오긴 했지만 정보가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그런 그들에게 국정원 요원이 풀어 대는 정보 보따리는 너무 달콤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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