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합류 (3)
비쩍 마른, 심지어 죽음이 지척에 있어 보이는 노인네 둘이 총을 숨기고 있다가 꺼냈다.
나름 조준도 하면서.
꽤 놀랄 일이긴 했지만.
김태평은 이름 그대로 태평한 얼굴이었다.
“청와대의 명으로 왔다면 벌써 여기에 CS탄이라도 터졌을 겁니다. 대충 눈치채셨을 텐데, 짓궂으시네요.”
“뭐……. 그래도 뭐든지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건 그렇죠. 동의합니다. 네, 저는 김선태에게 잡혔다가 팀원 몇을 잃고 탈주했습니다.”
사실 유현도 태평하긴 매한가지였다.
그저 추측이 맞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은 거라 그랬다.
나름 우리 쪽이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고, 실전도 겪었다는 걸 보여 주고 싶기도 했고.
‘괜한 짓이었던 거 같네.’
그러나 헛짓이었다.
김태평의 뒤에 있던 팀원 전원이 권총을 빼 들었다가, 김태평이 손을 들자 집어넣지 않았나.
밥 먹고 그것만 연습했나 싶을 정도로 빨랐다.
노인네 둘로, 그것도 소총으로는 게임이 안 되었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이 말이었다.
‘뭐……. 상관없지.’
훈련받은 요원들이 일반인들보다 못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것 아니겠나.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가슴 한켠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자리 잡고 있었다.
김태평이 팀원 몇을 잃었다면 곱게 잃어 줬을 것 같지 않아서였다.
“혹 탈주 과정에서 저쪽 사람이 몇이나 죽거나 다쳤죠?”
“분대 하나가 전멸했습니다. 12명이 죽었죠.”
“그 말은…….”
“김선태 측에서는 명령과는 관계없이 제 목을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그걸 달고 여길 오셨다는 말인데…….”
“그냥 두었으면 저는 잡혀서 고문을 당하건 회유를 당하건 했겠죠. 저나 교수님 사이에 그 둘 중 무엇이라도 견뎌야 할 만한 의리가 있던가요?”
“김선태 대신 오셨다는 말인데.”
정유현은 창밖, 그중에서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조용했다.
헬기가 하나라도 뜨면 어찌 될까.
두말할 것도 없이 전멸이었다.
아니, 그냥 분대 하나만 와도 전멸을 피하기 어려울 터였다.
총 좀 쏜다고 해 봐야 덩치도 크고, 은폐 엄폐도 제대로 안 하는 라드나 맞히는 수준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다행이군요. 다만…… 계속 여기 있기는 어렵겠는데요?”
“네. 제가 없다고 해서 못 찾을 놈들은 아닙니다. 김선태가 직접 나서지는 않겠지만…….”
“아, 남산을 지키려나요?”
“아뇨, 청와대로 가겠죠.”
“1호가 남산에 있으면 거기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닙니까?”
“하하.”
정유현의 말에 김태평이 킬킬 웃었다.
원래도 얼굴이나 표정 같은 게 냉소적인 사람인데 일부러 더 그렇게 웃고 있다 보니 진짜로 기분이 나빠졌다.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건 대의가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김선태는 그가 가진 최고의 자산일 텐데 계속 밖으로 나돌게 둘 리가 없죠.”
“불러들인다고요?”
“네. 게다가 남산 연구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 않습니까? 핑계가 되겠죠. 더군다나 테러 이후에 마련한 곳이다 보니 애초에 방어도 탄탄합니다. 내부자의 도움 없이 들어가려면 몇 배의 병력이 필요할 텐데……. 지금 그게 가능한 병력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유현은 흐음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속은 후달렸다.
‘청와대의 자원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보다야 많겠지. 작정하고 찾으려고 나서면……. 못 찾을 리가 없어.’
달랑 SUV 하나 타고 내려온 김태평도 내려오는 동안 딱히 위험한 일을 겪은 것 같지 않았다.
차량이 좀 더럽긴 했지만 어디 부딪친 흔적도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전투를 치른 흔적이 없었다.
심현경이 혼절하긴 했지만,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봐야 할 터였다.
‘여기……. 좋았는데. 미친놈들이 나는 왜 찾는 거야?’
1호보다 우선시 되는 건 아닌 듯했지만.
하여간에 김선태가 정유현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마냥 짬 때리고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본인이 직접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부하들은 움직일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세종시부터 뒤지고, 그다음엔 주변을 훑겠지.
도망쳐 나온 마당이라고는 하지만 당당히 말하기에는 도보로도 금세 닿을 만한 거리에 있지 않나.
‘하아.’
놈들이 마음먹는 순간 잡히는 건 시간문제란 얘기였다.
“혹시 오는 길에 뭐 적당한 곳이 있진 않았습니까?”
“옮기시려고요?”
“네. 차야 이 근처 돌면서 구하면 될 일이니까요. 절 잡으려고 한다면, 이유 불문하고 이곳에 있으면 안 될 거 같은데요?”
유현의 말에 노인 둘이 눈을 마주했다.
별로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그 둘은 여기 남아도 될 일이었다.
다 늙어서 굳이 고향을 떠날 이유가 어딨겠나.
심지어 이곳의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젊은이들이 떠나면 아무래도 든든한 마음이 좀 덜하긴 하겠지만, 이 둘은 둘만으로도 꽤 오랜 시간 버텼다.
“몇 군데 있기는 하죠. 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좋은 곳이 있다면……. 역시 강변 테크노 마트 또는 동서울 터미널 근처입니다.”
“거기……. 이번에 박살 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라드 무리도 있다고 하고?”
“와해되고 있었습니다. 1호가 구심점이었을 텐데……. 녀석이 잡혀갔으니 당연한 일이죠. 사실 와해되는 걸 봐서 잡혀가거나 죽었겠구나 하는 거긴 한데……. 결론은 같죠.”
“으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 게다가 한번 그렇게 살상이 크게 벌어진 곳은 아무래도 다시 가기가 꺼려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자는 많이 남아 있을 겁니다. 마트나 터미널 자체보다 근처 건물을 뒤져 보면 안전한 곳도 있을 것이고요.”
“확실히……. 그건 일리가 있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않겠나?
거길 굳이 다시 들쑤시진 않을 것 같았다.
들쑤신다고 해도, 근처에 라드가 있어서 흔적도 옅어질 테고.
‘이 사람들이 있으면…… 어지간한 규모가 아닌 이상 라드도 큰 위협은 안 될 거야. 다만…….’
문제가 있다면 김태평 자체였다.
이놈이 하는 말에 과연 꿍꿍이가 없을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이제 와 주변을 수색해 또 괜찮은 곳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
“우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죠.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을 텐데 우선은 좀 쉬시죠. 아무리 김선태라 해도 바로 오진 못 할 거 같으니까요.”
“음……. 그럼 염치 불고하고 신세 좀 지겠습니다.”
“네, 뭘요. 주고받은 도움이 있으니 편히 계십쇼.”
“네, 감사합니다.”
김태평이 공식적으로 유현의 팀에 합류하게 된 시각, 김선태는 남산에 도착한 지 오래였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김조은은 약에 취해 뻗어 있는 박기태, 즉 1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 사지를 결박하고 재갈도 물려 두었다.
의사소통?
그거 시도하다가 혀라도 깨물면 어쩐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연구고 나발이고 모두 허사였다.
“시킨 일을 했을 뿐입니다. 박사님 때문에 한 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죠.”
“그래도…… 이제 연구를 재개할 수 있습니다. 프로토타입은 중요하니까요.”
김조은 박사는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도 여전히 박기태만 보고 있었다.
‘저놈은…… 심지어 베타에 감염이 되었었단 말이지?’
베타가 알파의 우위에 서서, 우세종이 되지 않았나?
뭐, 그렇게 보기엔 알파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던 놈이 저놈 그리고 지금 생사가 불분명한 이순규뿐이긴 했지만.
하여간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는 걸 두 눈 똑똑히 봤더랬다.
그런데…….
박기태의 행보가 녹화된 영상을 보니 놈은 그냥 덩치 큰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라드의 공격에도 면역이 있는 존재였다.
이미 무리를 이루는 라드들과 그렇지 않은 라드들 사이에 분쟁이 있다는 건 남산에서도 인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건 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진짜로……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어. 아니면……. 해결이 불필요한 상황이 될 수도 있지.’
박기태.
진짜 이름은 임일중.
중국 소수 민족, 즉 조선족 출신의 MSS 요원으로 일반인을 이용한 실험에 한계를 느낀 중국 육군 병원의 결단에 의해 피실험체가 되었던 이였다.
전투 훈련을 받긴 했지만, 애초에 한국에 심을 스파이로 키워진 이였기 때문에 체격이나 근육의 양 등 대부분의 외양이 보통의 한국인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박기태는 그냥 다른 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성은 남아 있었다.
‘신인류……. 인류 개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지.’
이걸 어떻게 잘하면, 무기화된 바이러스를 넘어서 다른 인류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그렇게 둘이 사실상 동상이몽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누군가 끼어들었다.
박원상이었다.
김조은은 무시했고, 오히려 돌아본 것은 김선태였다.
‘왜 이렇게 수척해졌어?’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노상 연구실 오갈 때 본 얼굴이지 않나?
눈썰미 좋은 김선태가 아니었다면, 못 알아볼 수도 있을 만큼이나 얼굴이 변해 있었다.
TV에서는 화질 때문인지 티가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죽을병에 걸렸나 싶을 지경이었다.
“김선태 소장님.”
“말씀하시죠.”
하여간 박원상은 어렵게, 비척거리면서도 말을 더듬더듬 이어 나갔다.
‘혹시 밉보이게 되면…….’
머릿속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팽당한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TV에 나가겠다고 자원하지 않았다면 그도 그렇게 되었을 터였다.
하여간 세상 비겁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럴 수 있다는 건, 뭐가 되었건 간에 아내에 대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단 뜻이었다.
“제 아내……. 혹시 못 보셨습니까? 테크노 마트에 있었는데?”
“음?”
김선태는 의외란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주요 인물이었는데, 가족조차 챙겨 주지 않았단 말인가?
‘뭐…….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긴 했지.’
그러나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사태 전에 중요했던 이들 중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중요한 이들이 얼마나 되던가.
특히 연구원들은 여차하면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었을 뿐, 도움이 될 만한 대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그중에서도 박원상은 사태가 터지고 나서 도망치려고 했던 정황이 드러나 더더욱 밉보인 상황이었다.
군 장성이나 고위 경찰 등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들이 우선시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못 봤습니다.”
해서 그냥 무감하게 답했다.
“그럼……. 거기는 어떻게…….”
“제 소관이 아니군요.”
박원상은 그런 김선태의 말에 제대로 된 말을 잇지도 못했다.
“아니…….”
“걱정이 되시면 직접 가시는 것까지는 허가될 겁니다. 무장도 요청하시면, 그건 제 권한으로 해결해 드리죠. 모르는 사람도 아니니.”
“어떻게…….”
나가라고?
그건 또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