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49화 (149/323)

149화 합류 (2)

“다친 곳은?”

“없어요, 제가 알기론.”

“그래도 혹시 몰라! 일단 겉옷부터 벗겨!”

김태평의 말과는 별개로, 유현은 환자의 겉옷을 벗기고 처치실 침대 위에 눕혔다.

얼굴이 창백했다.

맥도 약했고.

하지만 관찰 결과, 딱히 다친 곳은 없었다.

‘감염의 징후는 없다, 이거지.’

유현은 다행이라는 얼굴로, 그러나 혼잣말조차 내뱉지 않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딱히 좋은 뜻으로만 움직인 건 아니어서 그랬다.

만약 감염의 징후가 있었다면, 유현은 누구의 가족이라고 해도 내칠 용의가 있었다.

그런데 박원상의 가족이야?

‘용서……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말을 안 하고 국방부 연구에 가담하게 된 것까지는 뭐…….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하여간.

그 후로 보여 준 행보…….

얼마간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건 기실 시간의 문제였을 뿐, 조사하면 알아낼 만한 정보만 주었더랬다.

게다가 순규가 감염되었다는 걸을 알면서도 연구에서 발을 빼기는커녕 이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해 세상을 망가뜨려 버렸다.

그 후?

‘망할 새끼…….’

이제는 숫제 프로파간다에 쓰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쁜 짓을 할 거면 그 안에서라도 잘나갈 것이지, 이게 뭐란 말인가.

아내가 김태평과 함께 와?

‘보아하니……. 이 사람도 팽당한 느낌인데…….’

김태평이 토사구팽당했다는 건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유능하다는 사람이 자신을 놓치지 않았나.

심지어 어디 있는지 다 파악해 놓고서 놓쳤다.

그 후로 연락도 했고.

훈련받은 사람이니만큼 물증을 남기진 않았겠지만, 심증은 남지 않았겠나?

게다가 청와대의 상황은 빈말로라도 좋다고 할 수 없을 테니, 사람 솎아 내기에 열중하고 있을 터였다.

‘거기에 같이 딸려 왔다는 건……. 게다가 이 사람들도 딱히 뭐…… 데면데면하고?’

임무에 보호가 있었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남산이 무너질 거란 얘기도 없지 않았나?

아마 전에 위험했다고 했던 강변 테크노 마트에 있었겠지.

부부가 같이 있지도 못했다는 뜻이었다.

인간미 적은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아내랑은 죽고 못 사는 사이였음에도 일이 이렇게 된 걸 보면 그 안에서 박원상의 위치가 어디까지 떨어졌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일단……. 너무 놀라고 지쳐서인 듯하네요. 수액 좀 맞고 나면 좋아질 겁니다.”

유현은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도 동시에 팔에 정맥 라인을 잡아 두고는, 수액을 연결했다.

보건소다 보니 이런 건 충분했다.

사태가 언제 끝날지를 고민해 보면, 충분하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지만.

김태평 일행을 보고 나니, 유현은 살짝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라드가 거대하더라도, 확실히 훈련받은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

이렇게 멀쩡하게 왔다는 건, 그런 얘기 아니겠나.

“어찌 된 겁니까?”

물론 추정은 늘 그렇듯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법이고, 거기에 기대는 건 위험하기까지 한 법이었다.

해서 유현은 대강의 처치를 마치고, 재원에게 관찰을 맡긴 후 3층에 모여 물었다.

자리엔 모두가 있었다.

최우식의 아내 그리고 아이까지도 다.

‘뭐……. 못 할 것도 없나.’

아이.

세상이 끝장나기 전에는 그저 착하기만 한 것으로 충분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아니, 그 세상에서도 공부는 잘해야 했지만.

하여간, 위험한 일에서는 배제되었더랬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가?

김태평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마트에서 있었던 일이 선했다.

-으, 으아아아!

-아빠, 살려 줘!

-여보!

군인들이 죽어 가는 장면이라고 해서 딱히 덜 끔찍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족들이 산 채로 끌려가는 장면은 그야말로…….

그중에서도 아이들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이들이라고 해서 이 망할 세상에서 예외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해서 김태평은 헛기침만 한번 하고는 입을 열었다.

“뭐……. 통신망이 망가지기 전부터 마트는 쉘터였으니,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네. 장소는 의외였지만, 뭐……. 세상이 망한다는 걸 안다고 해서, 이후에 어찌 될지 정확히 알 수야 있겠습니까.”

유현은 홈페이지를 떠올렸다.

당시 올라오는 글을 유추해 보면, 마트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듯했다.

거기에 웬 군인들이 더해져서 마치 천혜의 요새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천하의 정유현조차 세종시가 아니라 마트로 갈 걸 그랬나 싶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수백, 어쩌면 천 명도 넘는 사람이 거기 있었다.

“네, 군인들이 합류하면서 더더욱 안전해졌죠. 청와대의 2차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남산과 연결하고, 그다음 동서울 터미널까지 연결이 되면……. 불완전하긴 해도, 강북이 연결이 되는 것이니까요.”

“쉬운 목표는 아니었겠는데요?”

강북이라.

강북이 그냥 그렇게 한 지역으로 뭉뚱그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작던가?

제대로 굴러가던 때에야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청와대에서 강변은 거의 딴 세상이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네. 그래도…… 서울 시내 내에서는 헬기 운용이 얼마간 가능했습니다. 제한적이었지만 교류가 있었죠.”

“뭐……. 헬기는 이따금 세종시에서도 보긴 했습니다.”

“네. 우리가 통제하고 있는 자원은 아닐 겁니다. 아마 계룡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계룡대? 거기 군부대 아닙니까?”

“네. 통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쪽 상황은 사실 잘 모릅니다.”

“그렇군요.”

김태평이 모른다고 말하면 정말로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맞았다.

알아도 절대로 말을 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한 유현은 캐묻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대화는 순조롭게 잘 흘러갔다.

“아무튼……. 폭격도 그러한 이유에서 강북은 거의 배제되어 있었죠. 기껏해야…… 이태원 일대만 두들겼을 뿐인데……. 그것도 정밀 폭격이라 다른 곳하고는 다릅니다.”

“그랬군요.”

정유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모두 세종시를 떠올렸다.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드레스덴을 떠올릴 만큼이나 끔찍한 폭격이었다.

정말 도시를 지우려고 했구나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폭탄이 떨어졌다.

그 안에 있던 건 절멸했을 터였다.

라드가 되었건, 동물이 되었건, 생존자가 되었건…….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던 곳에서 증원군 요청이 왔습니다. 처음엔 판단이 어려웠죠. 헬기로 가도 음식만 수용 받을 뿐이고……. 안의 정확한 상황을 알려 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연결이 될 당시 수뇌부 참수 작전까지 논의가 되고 있었습니다.”

“아……. 어차피……?”

“네. 아시다시피 지금 대통령은 괴물이에요. 권력에 미쳐 버린 사람입니다.”

“그렇긴 하죠.”

세상이 망했다.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미쳤다는 말조차 너무 모자라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증원군 요청이 왔습니다. 사유는 근처 라드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거짓이라면 거꾸로 이쪽에서 보낸 부대가 흡수될 가능성이 있었죠.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고…….”

“그렇죠. 그래도 민간인이 거의 최대 규모로 살아남아 있는 곳인데 거기가 날아가면…….”

“네. 물자도 많고요. 그래서, 청와대에서는 저와 다른 중령을 보냈습니다. 저야 알고 있는 그대로의 처지고, 다른 중령도 뭐……. 버려도 딱히 아쉽지 않을 패였죠. 차라리 마트에 흡수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였는데, 가 보니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라디오로 들었습니다. 1호……가 있었다고요?”

유현의 말에 김태평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뭐……. 이 인간이라면 놀랄 일은 아니지.’

태어나서 이렇게까지 신중한 사람은 처음 봤다.

그러면서 동시에 행동력도 좋았다.

이런 놈은 진짜 의사가 아니라 요원을 해야 했는데.

그랬으면…….

‘그래 봐야 팽인가.’

김태평은 기껏해야 팀원 넷만 챙겨서 도망친 자신의 현실을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네, 1호가 있더군요. 무리의 수장이었습니다.”

“수장이라…….”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성동격서를…… 썼어요.”

“네?”

“주력 부대를 유인하고 전력이 사라진 마트를 노렸습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땐 다시 물러나긴 했습니다만……. 사실상 그때 마트는 무너졌다고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구원 요청을 따로 보냈고, 김선태가 온 겁니다.”

“김선태…….”

유현이 기억하는 김선태는 사실상 그의 본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봐야 했다.

그때는 총도 쏘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유현이 직접 본 사람 중에서는, 김선태가 제일 무서운 인간이었다.

“살인 병기들이죠. 아무리 라드가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도 별 소용 없을 겁니다.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않았다면 벌써 서울은 수복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1호도 아마 확보했을 겁니다.”

“1호를? 그럼…….”

“남산으로 갔겠죠. 거기에 연구소가 있으니.”

“프로토타입을…… 흠. 아직 포기를 한 건 아니었군요.”

“네. 그렇습니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들 거라고 하더군요.”

김태평은 그렇게 말한 후, 정유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뭐…… 연구니 뭐니 하는 걸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 인간은 임상 의사지, 연구에 밝은 사람은 아니지 않나.

뒷조사를 할 때 나름 연구 논문도 냈다는 것 정도는 확인했지만, 그 방향성에 딱히 치료제나 백신이 있진 않았다.

어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 또는 어떤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지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근데도 이 인간을 꼭 짚었다, 이 말이지?’

이해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알겠나.

김조은 그 괴물 새끼 머릿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대통령이 권력에 미친 인간이라면 김조은은 또 다른 방향으로 신명 나게 미쳐 버린 인간이었다.

그에 비하면 박원상은 가히 정상인이란 얘기까지 나올 만했다.

그렇다고 놈이 저지른 일이 정당화되진 않겠지만.

“김선태의 다른 목표가 바로 교수님이었습니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여하간 김태평이 유현 일행을 보호하고 있다는 명분이 있어야 이곳에서 발언권이 생길 테니.

“네? 저를?”

“네. 연구에 도움이 될 거란…… 것이 이유였습니다.”

“음……. 제가……?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는 없을 텐데.”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연구소에서 내려온 명령이라는데.”

“박원상? 아니, 그 녀석은 그렇게 힘이 있을 거 같진 않은데. 그럼 김조은 박사겠군요.”

“아, 네. 김조은 박사의 요청이라고 들었습니다.”

“흐음…….”

실제로 김태평이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정황이야 뻔하지 않나.

유현은 침음을 삼켰다.

괜한 소리는 아닐 터였다.

김조은이라면 이유 없이 움직일 것 같진 않았으니.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따위 이유가 아니지 않나.

김선태가 노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럼 김태평 요원이 대신 온 겁니까?”

유현은 가만히 말했고, 김태평의 경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던 노인 둘이 총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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