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합류 (1)
“팀장님.”
“나도 봤어.”
차 안에 있던 김태평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심현경을 제외하고는 죄다 요원이었다.
이런저런 훈련을 받았단 얘긴데, 그중에서도 중점적으로, 또 혹독하게 받은 훈련을 뽑아 보라고 한다면 역시나 관찰이었다.
무언가 발견한다면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찬찬히 살피는 버릇.
또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 국정원 그리고 그 구성 요원들은 훈련에 골몰했다.
덕분에 방금의 인기척을 못 알아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잠깐 세울까.”
“네? 여기 아직 세종시 아닙니다.”
“나도 알아. 눈 있으면 보이지. 이런 시골이 무슨 세종시야. 일단 세워.”
“아, 네.”
이런 걸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국토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꽤나 많이 살아남아 있었다.
비록 꼴은 엉망이었지만.
이제 곧 겨울이니 그 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저쪽으로 가면 세종시지?”
“네.”
“지도상으로……. 정유현 교수의 은신처가 세종시와 옆에 동네하고 바로 연해 있어.”
“아…….”
“세종시 청사가 있는 부근은 폭격이 진행되었고……. 우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폭격 이후 해당 지역의 라드 수는 급감하지만, 일부는 주변으로 퍼진다. 맞지?”
“네. 그렇죠. 아……. 그러면…….”
김태평은 세종시 방면과 방금 인간들이 있었던 건물 옥상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꽤 있었는데 이제는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저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는 놈들…….’
김태평은 왠지 정유현이 떠올랐다.
물론 그는 대학 병원 교수였다.
딱히 이런 행동과 연관이 있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정말이지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요원들과 군인들을 엿 먹인 적이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 그러한 방면으로 뻗어 있다는 뜻이었다.
‘감이 좋지. 이상할 정도로 감이 좋아. 그런 사람이 이끄는 무리라면……. 폭격이 있던 곳 주변에 지금까지 있을 거 같진 않군.’
수원 구도심은 폭격으로 인해 엉망이 된 것을 확인했다.
그와 더불어 주변부에 있던 도심들 또한 살기 어려워진 것을 확인했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일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움직이는 라드의 수도 꽤 있었다.
주변으로 번진다는 게 비단 서울에서만 확인되는 현상은 아니란 얘기였다.
“저쪽에 정유현이 있을 거 같은데.”
“아…….”
“가 보지. 혹 다른 사람들이라고 해도, 주변 정보 습득에 도움이 될 수 있어.”
“네.”
김태평의 말에 차량은 잠시 멈추어 섰다가, 보건소 쪽으로 향했다.
끼이익
옥상에 있던 이들은 분명 브레이크 잡는 소리를 들었다.
설마 싶었다.
진짜 몇 초도 안 걸렸으니까.
‘하지만 나나 순규는 그 짧은 시간에 총을 봤어. 우리를 봤을 거야.’
정유현은 고개를 숙인 채, 옥상에 있던 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사이 멈춰 서 있던 차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시끄러운 차는 아닌 것 같았지만, 사위가 조용하다 보니 엔진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때?”
“오고 있는 거 같아.”
특히 이순규는 그랬다.
“좋은 뜻이려나…….”
“군인도 아닌데 총을 들고 있다는 게……. 나는 좀 마음에 걸리는데.”
“우리도 총을 들고 있기는 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우리 같은 무리가 또 있을 거 같진 않은데.”
“일단……. 총 챙겨.”
“응……. 어, 잠시만. 차 섰어.”
이순규는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디까지나 그의 기준에서 빼꼼이었다.
워낙에 거대한 그였기에 멀리서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면, 볼 수 있었다.
“내린다……. 무장했어. 5명…….”
물론 이순규도 상대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아주 잠시뿐이긴 했다.
차에서 내린다 싶더니만 훅 하고 순식간에 엄폐물 뒤로 이동해서 그랬다.
“어디에 있어?”
“몰라.”
“뭘 몰라? 보고 있었잖아.”
“사라졌어. 엄청 빨라……. 꼭 무슨 특수 부대 같은데…….”
특수 부대를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아니, 본 적이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작전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좀 이상한 일 아니겠나.
“설마…….”
우연일까.
정유현은 고개를 털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가 무너질 거라고 했지. 김태평이 거기 있었고. 구원을 요청했어. 1호가 있었고……. 상대는 김선태였지.’
이 길을 지나는 이들이 있을 수는 있었다.
그리 커다란 도로는 아니었지만, 뭐가 되었건 차도가 막히는 일 없이 뚫려 있다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한 장점 아니겠나.
그러나 이 시점에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들이?
‘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유까지는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김선태 아니면 김태평이 왔을 거라는 예상은 하기 쉬운 일이었다.
해서 정유현은 굳은 얼굴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겨울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일행을 이끌고 3층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총을 나누어 주었다.
‘김선태라면……. 최악이야.’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얼굴.
일반적인 군인의 얼굴이 아니라 그저 살인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사람.
그 인간 하나만 해도 무서운데, 옆에 있는 놈들도 하나같이 장난이 아니었다.
‘김태평은…… 그래도 대화의 여지가 있지. 부질없는 생각은 일단 그만두고.’
유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 둘을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오고 있어요. 대비…… 합시다.”
복잡한 얘기는 할 필요도 할 수도 없었다.
비록 생사의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아니지 않나.
간단한 합조차 단 한 번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일사불란하게 흩어지기는 했는데, 유현은 그 모습이 어쩐지 오합지졸같이 보여 두려워졌다.
‘맞붙는 건 안 돼. 김선태면 시간 끌다가 무조건 도망가야 해.’
그 괴물 같은 놈하고 싸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죠?”
오예리 형사도 드물게 겁먹은 얼굴이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유현이 자기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김선태, 김태평을 되뇌었던 모양이었다.
제대로 들은 건 오예리 그리고 이순규뿐이었다.
“싸우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주먹질로도 밀릴 텐데 총은…….”
“맞아. 총은 안 돼. 내가 있어도 똑같아.”
이순규의 피지컬은 분명 사기적이었다.
그렇다고 총탄을 막을 수 있나?
그건 아니었다.
예상외의 공간에서 갑자기 덮치면 또 모르겠는데,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숙달된 군인들이 상대라면 그냥 좀 큰 표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될 터였다.
투캉
뒤뜰에 있는 차를 떠올리며, 솔직히 말하면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을 때 무언가 창문 틈새로 날아들었다.
유현은 반사적으로 그걸 집어서 다시 밖으로 던지려다가, 이상하게 익숙한 질감에 고개를 돌아보았다.
‘수류탄이 아니야……?’
영화를 보거나 하면 방 안에 있는 인간들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이야 많지 않나.
살상력이 있는 수류탄이 아니더라도, 섬광탄이나 연막탄 하나만 터져도 무력해지는 것이 인간이었다.
최루탄이라도 터진다면 더더욱 큰일이었고.
치직
그러나 날아온 것은 무전기였다.
-들리나?
그러고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태평…….’
김선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더랬다.
그 인간이라면 무전기가 아니라 다른 걸 날려 보냈을 테니.
그랬다면 어떻게 됐을까.
우왕좌왕하고 있던 와중에 날아든 것에 죄 당하지 않았을까.
아마 제일 먼저 죽는 건 유현이었을 터였다.
이걸 던지려고 창가에 다가갔다는 건 그만큼 저격에 노출이 되었다는 뜻이니.
“들린다.”
본능적으로 움직였다가 뒈질 뻔했다는 생각도 잠시였다.
유현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장면을 이미 폐건물 안쪽에 자리한 김태평은 다 보고 있었다.
‘확실히…… 저 인간은 훈련 좀 시키면 꽤 잘 싸울 거 같단 말이지.’
그걸 집어 들어다 던질 생각을 하다니.
보통은 패닉에 빠지지 않나?
제대로 집어 들기도 어려워하는 게 정상이었다.
-정유현 교수, 맞죠?
김태평은 혹 시간이 나면 훈련이나 시켜 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물었다.
잘못 봤을 리는 없지 않겠나.
“맞습니다. 김태평 맞습니까?”
정유현은 김태평이 오면 뭐라도 배울까 하면서 물었다.
잘못 들었을 리는 없어 보였다.
-잘 왔군. 그래. 들어갈 테니, 쏘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총 내려놔요.”
정유현은 무전기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후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김선태가 오면 다 죽고, 김태평은 비벼 볼 만하다?
개소리였다.
아까 투척은 정말이지 전조 증상이 일절 없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그냥 그렇게 전멸할 뻔했다.
‘근데……. 이 사람이 여길 왜 왔지?’
생각 같아서는 좀 더 여유를 두고 한숨이라도 돌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김태평을 맞으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인간은 김현철 소위나 김 주무관 등과는 좀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애초에 정부 측에 딱 달라붙어서 이런저런 짓을 하기도 했고.
지금 당장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불명확했다.
‘명령……? 아냐. 위장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빈약해.’
김태평에게 들은 것도 있지만, 유현은 대통령이 쥐고 있는 게 정말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폭격이야 뭐 어떻게 되어 가는지 모르겠지만.
일개 교수였던, 심지어 쫓기던 몸이었던 자신조차 은신처 하나 만들고 두 달 가까이 뻐길 수 있었다.
대통령이었다면, 대체 어디까지 모아 둘 수 있었을까.
‘그럼……. 탈출했나? 그랬으면 청와대로 가야지 왜……. 음.’
그러니 김태평은 독자 노선을 타고 있다고 봐야 했다.
복귀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이유야 모르겠지만, 하여간 뭔가 틀어진 모양이었다.
평상시라면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세상이 망했으니 뭐든 가능하지 않겠나.
누군가는 절망 속에서도 욕심을 품을 수 있는 법이었다.
끼이익
하여간 들어오라고 말은 했지만, 혹 돌변할 수도 있기에 유현만 나와서 문을 열고 나머지는 복도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오랜만이군요.”
그런 경계가 무색하리만큼 김태평은 그저 안으로 들어왔다.
뒤에 있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이에 이질적인 존재 하나가 끼어 있었다.
“어……?”
“오는 길에 라드에게 쫓기는 민간인이 있어 구했습니다. 괜찮죠?”
“아니, 제수씨……. 제수씨가 왜.”
심현경.
박원상의 아내가 끼어 있었다.
그녀는 아는 얼굴을 보자마자 무슨 말도 하지 못하고 스르륵 허물어졌다.
오면서 딱히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애초에 지쳐 있었고, 시동생의 배신과 라드의 습격 그리고 정체 모를 이들과의 합류 등이 스트레스가 되었을 게다.
“어, 어! 일단 안으로!”
그 때문에 김태평 일행은 별다른 소개도 없이 안으로 들이닥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