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붕괴 (1)
김태평이 막 욕설을 내뱉는 사이, 1호는 결단을 내렸다.
“날 따라와!”
아직 복잡한 명령을 알아듣는 무리가 아주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 그가 나서면 대개는 따랐다.
아무리 총탄이 쏟아지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조용하네.’
심지어 지금은 딱히 총탄 세례도 없었다.
수상할 정도로 적막했다.
하지만 박기태는 여기에 다른 어떤 세력이 끼어들었을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불과 얼마 전에 군대가 합류하지 않았나.
그 정도면 어마어마한 세력 같았다.
그런데 또?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봐야 했다.
탕“윽…….”
“시발! 대체 뭐야! 어떤 새끼야!”
“김태평, 그 인간이 보이질 않습니다!”
“설마 우리를 공격한다고? 이렇게 대규모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런 고뇌 속에서 라드 무리는 박기태를 따라 테크노 마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달려드는 라드 무리에 대한 신속한 대응 따위는 없었다.
어둠을 틈타 숨어든 김선태와 그 부대 때문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창가에 붙어 있던 부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탕총알 한 발이 발사될 때마다 어김없이 한 사람이 쓰러졌다.
“억…….”
그나마 신음이라도 남기고 가는 사람은 다행이라고 봐야 했다.
대부분은 진짜로 끽소리 하나 못 내고 갔으니까.
“일단 5층으로 와! 여기는 막아야 해!”
“그렇게 되면 민간인들이 전부 노출됩니다! 라드가 달려오고 있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죽어? 그건 안 될 일이야! 어차피 민간인은…… 또 구해 오면 돼!”
“그……. 네!”
대위의 명령에 부하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아직 남아 있던, 저번 습격에 대비해 층계 쪽에 붙어 있던 부대를 이끌고 5층으로 향했다.
‘제기랄……!’
그사이 민간인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이 자식들 다 도망가는데?”
“아니, 이 시발 놈들이 진짜…….”
“허드렛일이란 허드렛일은 다 시켜 놓고……!”
“어, 어! 들어온다! 도, 도망가!”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민간인들의 자생력은 형편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보호를 받아 온 탓이었다.
아니, 애초에 무기류는 전부 반납하지 않았나.
그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기껏해야 몽둥이 정도나 될까?
팍그러나 그따위 몽둥이는 라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물지 마!”
다행이라면, 선두에 선 1호의 명령 때문에 라드들이 민간인을 적극적으로 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크아아아!”
“물지 말라고!”
지나치게 흥분한 놈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것들은 전부 1호 또는 그의 최측근에 의해 파기되거나 뒤로 물러났다.
‘잘됐군.’
1호는 그렇게 확보한 민간인들을 돌아보았다.
뒤로는 군복 입은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들이 죽인 건 아니었다.
이미 죽어 있었다.
대체 무슨 곡절일까.
궁금했지만 시간을 들여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물지 말자……. 물면 안 돼.’
우선 그조차 본능을 억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투 흥분이 없었다면 몰라도, 달려오느라 확 흥분이 된 참이어서 더더욱 그랬다.
“물지 말라고!”
그조차 그러니 다른 놈들은 어떻겠나.
아무리 무리의 왕이 명령을 한다 해도 돌발 행동에 나서는 놈들이 있었다.
해서 박기태는 자기 판단에 대한 의심과 검증 대신 우선 행동에 나서야만 했다.
불안감을 억지로 억눌러야만 했다.
‘망할.’
그 꼴을 보던 지휘관들은 일단 군을 물렸다.
물렸다고 해 봐야 뭐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건물 아래로 내려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랬다.
2층, 3층이 이 모양인데 1층은 어떻겠나.
그곳은 애초에 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대부분의 시설을 파괴하거나 막아 놓은 곳이었다.
위로, 더 위로 향해야만 했다.
우선적인 집결지는 5층이었다.
“그래도 많이 남았군.”
대위는 그렇게 모이는 인원을 보며 쓰게 웃었다.
많이 죽기는 했지만, 그래도 군인의 수가 꽤 많다 보니 남은 수도 적지만은 않았다.
이 정도 수라면 라드를 막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정체불명의 군이었다.
‘대체 어떤 놈들이지……?’
알 수 없었다.
김태평이 보이지 않긴 하지만, 그들이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능력은 있을지언정 수가 너무 적었으니까.
게다가 김태평과 그의 부하들은 공격이 있을 당시까지는 자신들의 감시하에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물론 대위에게도 시간이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차근차근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만한 시간은 사치가 아니겠나.
“일단은 층계로. 거기서 아래에서 올라올 놈들을 방비해.”
“아, 네.”
“그러다 여의치 않으면 위로 간다.”
“네.”
위로 가서 뭘 어떻게 하려고?
헬기라도 기다리나?
과연 와 줄까?
청와대에서 도와줄까?
말을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아하니 답을 듣는 이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잠시라도 버티지 못하게 될까 봐 다들 애써 참았다.
“위로 간다!”
박기태는 라드 무리를 이끌고 위로 향했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긴 했다.
이대로 시간을 두고 관찰하면 무너질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것이 너무 수월하다 보니,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타겟 이동.”
“저 새끼……. 엄청 빨빨거리네.”
결과적으로 그 행동은 1호의 자유를 조금 더 유예할 수 있었다.
본래 명령을 내리거나 해서 라드들이 흩어지면 바로 행동에 나설 생각이었던 김선태는 어둠 속에서 재차 움직여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들킬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이 안은 인간들로 가득 차 있어 냄새로 분간이 안 될 터였고, 눈으로 뭘 보기엔 너무 어두웠다.
물론 간간이 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전등이 아닌 그냥 불은 생각보다 그리 강한 광량을 내뿜지 못했다.
“우리도 이동한다. 전투 직전에 덮친다.”
“네.”
김선태는 1호의 뒤를 따랐다.
그의 뒤를 따르는 라드 무리는 그리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많은 건 또 아니었다.
다수의 라드는 민간인들과 함께 남았다.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밑에서 옵니다!”
“쏴!”
타다다다당
라드가 올라가려 하자 위에서 총탄이 쏟아졌다.
1호는 아직 그 뒤에 있었다.
안전이 확실하다면, 달려들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지 않나.
물론 다른 라드들 또한 생각 없이 달려들고 있는 건 아니었다.
방금의 총탄 세례에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움직임이 나름 영리하네.’
라드들은 모습을 보였다가, 혹은 소리를 크게 냈다가 뒤로 빠지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평상시였다면 단지 이것만으로 총을 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대위는, 그리고 다른 병사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그것도 잔뜩.
그래서 총탄을 소모하고 있었다.
‘또 어디 가, 시발.’
그 와중에 1호는 일부를 층계에 남겨 놓고, 건물의 다른 쪽으로 이동 중이었다.
김선태는 순간 엄청 놀랐다. 1호가 움직인 쪽이 자신이 있던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혼비백산하는 대신 뒤로 물러나고는, 좀 기다렸다가 그들을 관찰했다.
“냄새가…….”
그러다 코를 킁킁거리는 1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연신 킁킁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야투경이 아니었다면 확인할 수 없었을 장면이었다.
‘미친……. 존나 예민하네.’
거리로만 따지면 5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는 데다가, 이쪽도 나름 냄새를 지우기 위해 방호복 위에 뭘 묻혔음에도 저 지랄이었다.
물론 효과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1호와 나머지 놈들은 코를 킁킁대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건 창이었다.
와장창
단순히 보기만 하진 않았다.
순식간에 깨 버리고는 그 창을 통해 위쪽을 바라보았다.
‘저길 통해서 올라간다……. 그럼 우리가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는데……?’
김선태는 언짢은 얼굴이 되어 총구를 앞으로 겨눴다.
그것이 신호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직접 데려온 인원은 전원이 정예 아닌가.
이미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감 잡은 지 오래였다.
“나머지 제거하고, 1호는 마취로 제압한다.”
“네.”
김선태는 답도 기다리지 않고, 총을 쐈다.
탕그와 함께 나머지 부대원들도 야투경에 의지한 사격을 시행했다.
그 결과는 참으로 참혹하다 할 수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라드 20여 개체가 전원 죽어 버렸다.
“윽…….”
그리고 깨진 창을 통해 위를 바라보고 있던, 그 때문에 그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했던 1호는 마취제에 맞았다.
코끼리도 뻗을 만한 양이었기에, 애초에 인간인 그가 버틸 수는 없었다.
물론 도핑을 넘어서는 호르몬이 튀어나오고 있기에 간도 거대해져 있기는 했지만, 인덕션 되어 있는 정도로 뭘 어쩌겠나.
대번에 정신이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희미해지는 시야에 누군가 들어왔다.
때마침 창가를 통해 비쳐 들어온 달빛에 얼굴이 드러났다.
상대는 딱히 얼굴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상황은 끝났으니까.
‘김선태……. 이 악마 새끼…….’
박기태는 마지막으로 확인한 얼굴을 보고, 희망을 버렸다.
제아무리 지능이 남아 있고 또 신체적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인간.
아니, 인간이라는 말 대신 악마라 불러야 하는 놈이 상대였다면 일이 이렇게 돼 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탕그 시각, 1층 개구멍 쪽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그 총에 맞은 이는 정말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이제 와서 호의로 날 구해 줄 리는 없지 않겠나?”
김태평은 구조에 나섰던 이의 목에 총알을 박고, 그가 쓰러지기도 전에 단검을 휘둘러 좌우에 있던 이의 겨드랑이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몸 측에서 팔로 향하는 동맥과 정맥이 끊어지는 순간 둘은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 이 개새끼야!”
동맥과 정맥이 끊어진 병사는 목에 총 맞은 병사처럼 목소리를 못 내는 건 아니어서 소리를 질렀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본래 밤은 조용해야 하는 법이지만, 오늘 밤은 예외여서 그랬다.
“어디로…… 가죠?”
“글쎄.”
나머지 팀원들도 각자 해야 할 일을 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었다.
“어디든 김선태에게 끌려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김태평은 널브러진 시신과 달과 별에 의지해 사방으로 도망가는 민간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우선은 세종시로 가지. 그래도 교수가 있는 곳이 좀 낫지 않겠어?”
아마도 정부 측에서 자신을 구하려고 한 것이, 정유현을 확보하려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였다.
그렇다면 순순히 잡혀 들어가는 것보다는 정유현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훨씬 나을 터였다.
협상의 여지가 있을 테니.
“응……?”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는 사람 같은데.”
“여기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때 누군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팀원은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었고, 김태평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착각일 리는 없었다.
김태평은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났고, 심지어 훈련까지 받았으니까.
‘아, 박원상의 아내로군……. 애초에 옮겨 주지도 않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