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43화 (143/323)

143화 겨울 (4)

김선태 소장은 우선적으로 흔적부터 지웠다.

궤도 차량을 타고 왔기에 완벽한 위장은 불가했지만 그럼에도 숙달된 인원들 덕에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는 이상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만들 수는 있었다.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폐건물에 자리를 잡은 김선태는 우선 날이 어둑해진 다음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단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잠자리부터 폈다.

요리는 작전에 나온 이상 사치였다.

“음.”

마른 음식 씹는 소리와 물 마시는 소리만이 건물 안을 채우고 있었다.

무언가 끓이거나 해서 냄새를 풍기는 건, 라드를 끌어들이는 행위라 그랬다.

그 어떤 종류의 라드건 간에 냄새에 민감했다.

그 냄새가 특히 먹을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외부 인원 교대해 주지.”

“네.”

흔적을 지웠지만, 최소한의 경계는 서고 있었다.

방호를 위한 경계라기보다는 누군가 오면 더 위로 피하기 위함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최대한 존재 자체를 숨기고 싶었다.

“보고할 거 있나?”

그렇게 경계를 서던 인원이 돌아오고, 김선태는 다분히 권태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할 게 있겠나.

애초에 건물 고를 때 다 기준이 있었는데.

아무 일도 없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묻기는 했지만 답은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먹던 음식이나 마저 먹으려 했는데 병사가 입을 열었다.

“네, 소장님.”

“응?”

해서 김선태는 다시 그를 응시했다.

쓸데없는 소리 할 사람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잘 알아서 이따위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이끄는 부대 전체가 그랬으니, 으레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소수의 라드들이 짝지어 다니고 있습니다.”

“배회한다는 건가?”

드문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본래 라드는 해가 쨍쨍한 낮보다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했었으니.

‘아니지……. 이제 슬슬 행태가 바뀌고 있었는데……?’

그러나 요즘 들어서도 그렇다고 하면 그건 이상한 일이었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라드는 도리어 낮에 더 돌아다녔다.

그게 생존에 이득이 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뇨. 배회라기보다는…… 정찰 행위로 보였습니다.”

“정찰이라고?”

정찰이라.

이것이야말로 정말이지 김선태가 예상치 못했던 답이었다.

그러나 다른 지휘관들과는 달리 김선태는 그럴 리가 있겠냐는 식의 대응을 하진 않았다.

-라드 무리라고 했네. 행태가 우리가 아는 놈들하고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해야 해. 1호가 이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의 말을 들어서만은 아니었다.

-라드는…… 그러니까 ARS 바이러스는 엄청나게 빠른 진화를 보이는 바이러스입니다. 모든 진화가 그러하듯 잘못된 방향으로도 일어나지만 그런 경우엔 그만큼 빠르게 도태되죠. 그러니 우리 눈에 띄는 놈들은 모두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놈들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이놈들은 그중에서도 무리를 이루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조은 박사의 말을 들어서만도 아니었다.

‘나갈 때마다 조금씩 달랐지.’

김선태는 그 누구보다 많은 라드를 잡아 죽였고, 또 잡아 가둔 사람이었다.

본격적으로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라드를 상대해 왔으니 제일 오래 해 온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경험 속 라드는 변화무쌍한 것이었다.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한계 속에서, 라드는 그야말로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네. 코를 벌름거리는 놈 하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놈 하나, 그냥 뒤따르는 놈 하나. 이렇게 셋이 짝을 지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 무리를 셋이나 보았습니다.”

“흐음……. 체계적이로군.”

“네.”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답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번에도 놀라운 말이 돌아왔다.

‘지능이 확 올라갔나……?’

라드가 여러 모습을 보여 주긴 했지만, 이런 건 또 처음이었다.

“무기는 없었나?”

“몽둥이로 무장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가방을 메고 있는 놈도 있었는데……. 뭐가 들어 있는지는 확인이 불가했습니다.”

“잡아서 보면 알겠지만……. 쓸데없이 경계를 끌어올릴 필요는 없겠지. 들키진 않았지?”

“네. 애초에 건물 근처까지는 오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야투경으로 관찰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군. 그건 다행인데…….”

김선태는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다고 뭐가 보이진 않았다.

이미 유령 도시화 된 서울 동쪽엔 불 하나 켜지지 못했으니.

‘이것도 이상한 일이지.’

청와대 그리고 남산 측에서 예측하기로는, 또 정유현이 예측하기로 서울 내에 생존자는 여전히 기백만을 헤아릴 터였다.

동쪽에만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리도 없을뿐더러, 자고로 서울은 동고서저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인프라와 아파트 등의 주거 시설이 동쪽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 근방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또 어두웠다.

‘정찰……. 설마 그렇게 생존자들을 찾아내서 합류시키고 있는 건가?’

김선태는 잠시 후 팔뚝을 쓸어내렸다.

소름이 돋았다.

그런 방식으로 이 근방에 있던 생존자들이 지워진 것이라면, 무리 수백이라는 말은 절대로 과장이 아닐 터였다.

‘하긴 김태평, 그 인간이 허튼소리 할 놈은 아니지.’

그놈의 추론은 조각나 있는 것들을 제멋대로 끼워 맞추는 방식이다 보니 들어 줄 만한 것이 못 될 때가 많았지만, 적어도 조각난 사실 자체는 신뢰할 만한 것이었다.

“놈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면 우리도 그에 맞춰 대응해야겠지. 내일 바뀐 지침을 하달하겠다. 일단 쉬어.”

“네.”

병사는 충성 대신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라드 중에는 소음에 민감한 놈들이 많은 데다가, 종말이 도래한 도시는 너무 조용하다 보니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거리를 늘리고……. 시간도 더 들여서 봐야겠군그래. 김태평을 빼내는 것이 문제가 될 텐데…….’

대통령은 분명 마트 내 세력과 충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대놓고 대비하라고 하지 않았나.

비록 장비가 빈약하기는 하겠지만 소총으로 무장한 적이 수백이었다.

이쪽에서도 놈들과 싸우려면 나름의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얘긴데, 라드 놈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소수의 인원만 운용해야 했다.

‘라디오 송수신은 일단 중단되었어.’

정해진 시간에 잠깐 반복한다.

그것이 새로운 지침이었다.

들키게 되면 김태평은 그날로 죽음이라 그랬다.

때문에 그쪽과의 의사소통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흐음…….”

김선태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았다.

정말로.

원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이건 뭐 점입가경이었다.

‘언제는 쉬웠나.’

하지만 이 작전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어렵지 않았던 적이 없고, 또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던 적이 없지 않나.

솔직히 말하면 세상이 이렇게 될 줄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당장 탈주한 라드들을 잡아다 남산으로 옮길 때도 그랬다.

치지직

그 시간 유현은 라디오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이들도 유현과 라디오를 응시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경계를 서고 있는 인원 외에는 다 그러고 있었다.

“또 안 나오네. 아마도 시간이 있는 모양인데.”

“구조 요청 같은 거 아니었어요? 근데 뭔 시간을 지키지?”

“그걸 들으면 안 되는 놈이 있을 수도 있지.”

“설마 라드?”

“라드가 라디오까지 듣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우리 그냥 지금 사이좋게 목매다는 게 나을걸. 아, 지민이 자지? 걔 들었으면 안 되는데.”

“자요. 옥상에서 밭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다행이네, 그나마.”

유현은 다행이란 말을 전혀 다행이지 않아 보이는 목소리로 읊다가 라디오를 돌아보았다.

-도주……. 가능한……. 입구……. 확인……. 바람…….

현재 송신 중인 라디오는 정부 측 공식 라디오 채널까지 해서 모두 셋이었다.

그중 김태평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라디오에서 돌연 말이 흘러나왔다.

-도주……. 가능한……. 입구……. 확인……. 바람…….

정확히 같은 내용으로 세 번 반복되었다.

지금 시간이 새벽 2시였으니, 진짜 애매한 시간에 송신된 셈이었다.

-알겠다…….

그러나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또 다른 채널에서, 그러니까 유현이 모아 둔 세 개의 라디오 중 다른 하나에서 김태평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딱 세 번 반복되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어, 역시.”

“누군가를 피해서 나누고 있단 거죠?”

“그렇지. 나도 이거 켜 놓고 이어폰 끼고 잔 거 아니었으면 못 들었을 거야. 잠귀가 예민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놓쳤지.”

“저는 못 들었으니까요.”

최우식도 유현과 똑같이 하고 잤지만, 전혀 몰랐다.

그뿐만 아니라 오예리, 이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나머지는 아예 그럴 생각도 못 했고.

“강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자세히 언급을 안 하니 뭔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그러나 지금은 여기 다 모여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지만, 이곳이 안온하기에 그럴 터였다.

실제로 첫날 거대화된 개체를 마주한 이후론 정말 일이랄 게 없었다.

식량은 충분하고, 심지어 기름도 충분해 난방도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인간 본성 중 하나인 심심함이 발동하고야 말았다.

“가 볼 수도 없고……. 근데 말야.”

“네, 형.”

“이쪽 목소리도 나는 왜 귀에 익은 거 같지.”

“설마요. 다 아는 사람이라고?”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유현은 곰곰이 목소리를 점검했다.

그는 이런 일에 꽤 능한 편이었다.

기억력이 워낙에 좋아서 그랬다.

그리고 주의력이 좋은 편이기도 했고.

“그때…… 거기서. 그래, 수락 마을. 거기서 들었던 거 같은데.”

“수락 마을……?”

“아……!”

오예리는 직업적으로 그러한 것을 훈련받은 사람이었다.

유현의 말에 손뼉을 치고는 대번에 이름을 떠올렸다.

“김선태…… 중령. 그 기분 나쁜 군인이었어요.”

“아, 그 인간. 이름 기억나네요.”

“개새끼……. 사람 죽인 놈이 그놈 아냐?”

최우식도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사람이 죽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군인……. 대통령이 처음부터 칼로 썼던 놈이지.’

그 와중에 유현은 좀 다른 생각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놈이 김태평을 구하러 갔어. 김태평은 1호를 봤다고 했고. 1호를 잡으려고 하나……. 흠.’

그는 반사적으로 이순규를 돌아보았다.

이순규를 이용한 연구를 하게 되면 어찌 될까?

이런 망상을 돌려 본 적이 있어서 그랬다.

아마 다른 개체를 이용한 연구보다는 백신 개발에 유용하긴 할 터였다.

알파니까.

원래 모든 연구는 거기서 시작하는 게 답이었다.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건가?’

희망을 품어 볼 수 있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김선태의 목표 중 하나가 자신이라는 건,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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