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겨울 (3)
“1호가……?”
-네, 그렇습니다. 확보할 수 있다면 확보하는 게 좋을 겁니다.
“흐음……. 확보하면 뭐가 달라지기는 하나?”
청와대.
그곳의 주인 대통령은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라면 본인이 저지른 일을 얼마간이라도 돌아보게 되는 법이니까.
‘나라가 망했어.’
나라만 망했나?
그냥 전 세계가 망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직접 공격받은 나라, 즉 주요 선진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아포칼립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은 좀 나은 편일 지경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물론 전해 들었을 뿐, 가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망친 건가.’
그 외의 국가들도 덩달아 나락으로 가고 있었다.
모든 선진국이 마비되자,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의 사람들은 또 다른 이유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달라집니다. 달라질 수 있죠.
그런 생각 때문인지, 대통령이 술 먹는 시간은 점점 늘어 가고 있었다.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조차 사치긴 했다.
술을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열량이 필요해진 라드들이 술까지 탐했기에 그랬다.
단순히 물로 여기고 마셨을 수도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입을 댄 놈들 중 일부는 술이 주는 고양감에 중독되어 버렸다.
그 덕에 아예 골로 가 버린 개체도 있다는 건 다행이긴 했지만, 하여간 망해 버린 세상에서 현실 도피 하는 데 도움이 되어 줄 술조차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달라진다……. 희망이 있다는 건가.”
-네, 각하.
그때 전화가 왔다.
김조은 박사에게.
이 작전의 핵심 인력이자 사태의 핵심 책임자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괴물이었다.
그런 놈이라서 오히려 믿을 수 있었다.
괜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닐 테니.
-지금 떠도는 모든 변종의 원류가 되는 놈입니다. 단순히 1호라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기억하시겠지만 놈에게는 우리가 알파를 찔러 넣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감염시킨 거죠. 헌데 경과가 다르죠. 뭔가 벌어졌을 겁니다. 그게 궁금합니다.
“궁금하다라. 자네는 이 지경이 되어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과학자니까요. 그 결과 세상이 무너졌지만, 반대의 결과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긴. 그럴 수 있겠지.”
대통령은 위스키를 따라 두었던 술잔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고는 냉수를 따라 마셨다.
“뭐가 필요하지?”
머릿속으로는 청와대에서 확보한 자원을 떠올렸다.
사실 청와대 근처, 그러니까 강북의 중앙 지점은 어느 정도 수복이 된 상황이었다.
아직 남산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의 힘이 닿는 지점은 꽤 넓었다.
파주 등지에 있던 군부대를 끌어들인 덕이었다.
아니, 그 군부대의 지휘를 김선태가 맡은 덕이라고 봐도 좋았다.
-저는 군인이 아닙니다. 그쪽에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요.
“아, 그렇지. 우문현답이로구먼.”
-다만…… 그 외에 요청 사항이 있습니다.
“뭐지?”
대통령은 우선 정찰대를 보내고, 그들을 통해 사태를 파악한 후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요청이 또 있다고 해서 묻기는 했지만 다른 생각을 쭉쭉 이어 나가고 있었다.
‘김선태를 직접 보내면 확실하겠지. 하지만 그를 잃게 되면…….’
다분히 정치적인 계산이었다.
그의 절대적인 충성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는가.
다른 각료나 군부대의 지휘관들 그리고 구조된 민간인들조차 일단 대통령에게 접고 들어가는 건 전부 김선태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유현이 필요합니다.
“응?”
그때 의외의 이름이 나왔다.
“뭐라고?”
-정유현 교수가 필요합니다.
“그는 정적이야. 시민들의 프로파간다에 쓰일 수 없다면 제거해야 할 요주의 대상이란 말일세.”
-원래는 그냥 교수였죠. 근데 이만큼 왔다는 건…… 엄청난 사람이라는 반증 아닙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 그래서 제거해야 된다는 말일세.”
정적?
그런 말로도 부족했다.
사태가 끝났을 때, 지금 와서는 사태가 과연 끝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긴 했지만, 정유현이 입을 열게 되면 대통령을 비롯한 지금 정부의 핵심은 대부분 나가리였다.
아니, 나가리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일 터였다.
정말로 죽게 될 터였다.
그것도 별로 좋지 못한 꼴로.
-제거야 나중에 해도 됩니다. 지금은 그가 필요합니다. 그의 인사이트는 정말 대단한 것이니까요. 그가 지금까지 홈페이지에 남긴 글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별다른 조직도 없이 그만한 추론을 했다면, 연구실에서는 더더욱 대단한 도움이 되어 줄 겁니다.
“흐음…….”
듣고 보니 확실히 김조은은 나쁜 새끼였다.
사람을 도구로만 보는 인간.
‘토사구팽을 하라, 이거지. 좋은 일이지.’
물론 대통령도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은 아니었다.
그는 턱을 쓸어내리면서, 이미 토사구팽했던 인원을 떠올렸다.
꽤 많았다.
그 와중에 어려움이 있었나?
가책이랄 게 있었나?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나?”
-저는 모릅니다만…… 김태평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는 지금 마트에 가 있는데…….”
-네. 지금 보고를 올린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시간이 좀 흐르긴 했지만, 죽었을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군. 그럼 순서를 따져 보지. 일단 1호 확보는 우리가 알아서 하게 될 거야. 그러니 자네 요청만 보도록 하자고.”
-네, 각하.
김태평을 바깥으로 돌리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대통령 본인이었다.
유능한 놈이지만,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대체재가 있었다면 이미 갈아 치웠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김선태는 싸우는 건 잘하지만 뭔가 알아내는 데 있어서는 좀 부족한 편 아닌가.
그렇다고 다른 요원을 끌어올리기엔 일단 살아남은 놈들도 별로 없을뿐더러 능력이 아무래도 모자랐다.
‘계륵이라고 생각해서 보낸 건데, 닭다리쯤은 되는 건가.’
보내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대통령은 사태를 일으키고도 술 몇 잔에 후회를 덜어 낼 수 있는 편리한 사고 구조를 가진 인간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가 갔으니 이런 보고도 받을 수 있는 거지.’
저절로 자기 합리화를 마칠 수 있었다.
“김선태 오라고 하지.”
그렇게 고민을 마친 대통령은 김선태를 불렀다.
김선태는 언제나처럼 단단한 얼굴로 들어와 섰다.
“부르셨습니까.”
“음. 1호가 살아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네.”
“1호라면……. 박기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1호라는 얘기에 드물게 그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났다.
놀라움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잠시뿐이었다.
순식간에 무감한 얼굴로 돌아온 그를 마주한 채, 대통령은 말을 이었다.
“김조은 박사 말이 그를 이용하면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수 있다더군.”
“최우선 목표입니까?”
“그렇네. 우선 다른 작전 모두 중지하고, 여기에 역량을 쏟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목격 위치는…….”
“자세한 사항은 이렇네. 사실 라디오를 통해 김태평 요원과 소통이 가능하긴 한데……. 감청 위험이 너무 크지.”
“감청 말씀이십니까?”
김선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대통령은 이럴 때마다 김태평과의 비교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선태의 효용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기에 차분히 말을 이었다.
“무리 수백을 이루고 있다고 했는데, 마트에서는 별 보고가 없네. 애초에 놈들이 우리에게 구원 요청했던 사유도 그저 주변에 라드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뿐이지 않았나?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하지.”
“음.”
이렇게 말을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김선태는 완전히 이해한 기색이 아니었다.
괜찮았다.
어차피 까라면 까는 인간이니까.
이유를 모르고도 깔 수 있다면, 그것도 재능 아니겠나?
게다가 한결같기까지 했다.
이 인간은 단 한 번도 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의문 없이 자신의 명령을 수행했다.
“아무튼, 그 주변을 정찰하고 얼마의 자원이 있으면 될지 보고하게.”
“네, 각하.”
“끝이 아닐세.”
김선태는 고개를 숙이고 나가려다가 멈춰 섰다.
그러고는 대통령의 말을 기다렸다.
“정유현.”
“파악해서 죽입니까?”
“아니, 남산으로 모시게. 연구에 필요하다고 하니. 그의 소재 또한 김태평이 알고 있을 거야.”
“아…… 네. 각하.”
지금껏 틈만 나면 죽이네 어쩌네 했던 인물을 청와대 다음으로 많은 자원이 몰려 있는 남산으로 옮기라는 명령이었다.
사리(事理)에 맞지 않았지만 역시나 김선태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대신 김태평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갔다.
-테크노 마트는 별로 협조적이지 않을걸세.
대통령의 말 그리고 그가 지금껏 파악했던 정보를 토대로 한 고민이었다.
“직접 가야겠군.”
“네, 소장님.”
김선태는 어깨에 달린 견장, 즉 별 두 개를 바라보고는 피식 웃었다.
“이런 세상이 되니까 승진이 되는구만그래.”
만년 중령일 때도 있었다.
그때와 지금의 김선태가 본질적으로 다른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늘 한결같았다.
시키는 것을 시키는 대로 했다.
상사는 그런 김선태를 유도리 없다 칭했지만, 그는 그게 무슨 뜻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무튼, 작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마트 주변을 정찰하면서 1호의 신병을 확보 또는 라드 무리의 규모를 파악한다. 동시에 마트 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김태평의 신병을 확보한다. 제 앞가림은 하는 놈이니 어렵지는 않을 거야.”
“네.”
“그럼……. 준비해서 가지.”
“네.”
김선태는 작전 사항을 점검하고, 작전 장교와 함께 논의에 들어갔다.
세부적인 것들은 이제 밑에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어서 그랬다.
아니, 애초에 그랬다.
그는 현장에 나가 싸우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라드들을 잡아 오거나 쏴 죽이면서 얼마간 욕구가 풀리고 있긴 했지만, 이만한 규모의 작전은 또 오랜만이지 않나.
두근거렸다.
부우웅
그렇게 인원을 모으고, 장비를 챙긴 김선태는 본인 직속 부대를 이끌고 청와대를 떠났다.
그가 없는 동안 대통령 경호를 맡을 만한 부대는 남긴 채였다.
“가면서 마주치는 라드는 어쩝니까?”
“무시해. 어차피 달려들지도 못해.”
“공격 시에는요?”
“알면서 묻는군.”
“네. 저도 설렙니다.”
옆에 선 작전 장교, 임 대위는 기분 좋게 웃었다.
먼저 웃기 시작한 김선태를 보면서였다.
이래서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김선태 부대를 경원시했다.
또라이들이 모인 부대란 이유에서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이 망해 버린 세상이 더 잘 맞았다.
“정지.”
그렇기에 유능했다.
김선태는 육안으로 터미널이나 테크노 마트를 확인하기 전, 지도상으로 가까워지자 일행을 멈춰 세웠다.
“저기가 적당하겠군.”
그러곤 처음부터 점찍어 두었던 폐건물을 가리켰다.
이제 저곳이 베이스캠프가 될 예정이었다.
부주의하게 그들의 접근을 적들이 알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