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40화 (140/323)

140화 겨울 (1)

슈우웅

마트 2층은 이제 인간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라드가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도 돌아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우선 너무 두려웠다.

그 자리는 정말로 습격을 당했던 곳이었으니.

슈우웅

거기에 더해 날은 점점 더 차가워져만 가고 있었다.

바람을 막아 줄 수 없는 2층은 오히려 바깥보다도 더 추웠다.

“흐음.”

대위는 2층 계단 쪽에 선 채, 신음을 흘렸다.

‘망할.’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아니 당황스럽다는 게 맞을 터였다.

완전히 당했으니까.

심지어 신임하던 지휘관도 몇 잃었다.

거기에 더해 민간인들까지 잃었는데, 그 때문에 민심이 그리 좋지 못했다.

-우리는 진짜 시키는 거 다 하지 않았습니까!

-지켜 주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가져온 물품 돌려주십쇼!

무시하려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사안이긴 했다.

시키는 것을 다 했다고 해 봐야 밖으로 나가는 건 아니어서 그랬다.

기껏해야 이 안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령 빨래나 분뇨 청소와 같은 일.

또는 지금 보이는 것처럼 계단을 틀어막는 일 등등.

그 일이 식량을 구해 오는 일보다 중한가?

아니었다.

‘망할!’

하지만 그렇다 해도 권위에 금이 간 것은 사실이었다.

라드에게 당했고, 너무 많은 인원이 사라졌다.

물론 생각보다 방어 인원이 많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전체 사상자는 다 합쳐 물경 100을 헤아리지만, 군인은 25명 내외만이 당했을 뿐이었다.

‘일단은……. 방어를 해야 해. 이놈들이 머리를 쓴 걸 보면…… 정공법으로는 자신이 없다는 뜻이야.’

대위는 정황을 미루어 보고 이런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김태평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망자가 너무 적어…….’

작전에 나간 인원은 그야말로 단 하나도 다치지 않고 돌아왔다.

사실 작전에 나가면 그냥 인원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사상자가 있을 수 있는데,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

그 말은 곧 지금 움직이고 있는 인원의 훈련도가 꽤 괜찮다는 얘기였다.

사기도 괜찮았고.

그러나 본부에 남아 있던 이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많이 당했다.

그런데 죽은 이는 적었다.

기껏해야 20명 남짓했다.

쳐들어온 라드들을 다 합쳐도 30명이 될까 말까 한 수준에 불과했다.

‘나머지 놈들은 다 저놈들 편이 되었을 거야.’

당장 어젯밤에는 라드 놈들이 와서 돌을 던져 대거나 하지 않았다.

불안에 떨고 있던 민간인들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대위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보다 대드는 인원도 줄었으니까.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또 온다……. 그때는 더 많겠지. 게다가 저놈들……. 수법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흐음…….’

김태평은 여전히 죽어 나자빠진 인원이 너무 적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총을 쐈음에도 그랬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는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이 드넓은 서울 어딘가에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텐데, 그들은 이 습격에서 안전할까?

이 주변에 있던 이들은 아마 다 당했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이런 식으로 무리 지어 지능적으로 습격을 해 오는 놈들이라면, 대응은 불가했다.

“대위님.”

원래는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차량은 이미 대위의 손아귀에 들어간 참이었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도망가는 건 절대 무리였다.

다리도 건너기 어려울 수 있었다.

한강 다리는 보기엔 좋아도 너무 길었고, 또 너무 노출되어 있으니까.

“네.”

해서 김태평은 생존을 위해 대위와 더 협력하기로 했다.

“청와대에 증원군을 요청하는 게 좋겠습니다. 상대는 보통이 아니에요.”

그리고 청와대를 부르기로 했다.

분명 적은 압도적인 위력을 보이고 있지만, 김선태 그 인간이 오면 바로 정리될 터였다.

그놈들은 전투의 귀재니까.

수도 꽤 많지 않나?

아마 사태가 터지고 나서 인원을 거의 잃지 않는 부대는 그뿐일 터였다.

“증원군이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저놈들……. 양동 작전을 취한 것으로 보아 전력이 열세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본부가 털렸습니다. 민간이 수십이 당했어요. 게다가 지휘관들도 잃지 않았습니까. 또 오면 어찌 막으시려고…….”

“저놈들도 죽지 않았습니까. 일례로 어젯밤에는 습격이 없었죠.”

그러나 대위는 생각이 달랐다.

김선태는 몰라도, 청와대에 힘이 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온 인원들의 무장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나.

아무리 봐도 최정예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쪽과는 비교도 안 될 지경이었다.

‘그런 놈들이 더 온다……. 이쪽 상황을 완전히 알고? 그럼 난 다시 대위가 된다…….’

이번에 왔던 중령.

그 멍청한 놈들 밑으로 기어들어 가야 되지 않겠나.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겨울만 견디면, 방법이 생길 터였다.

식량이 부족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아마 저쪽이 훨씬 절박할 터였다.

“저쪽은 수가 늘었어요. 수십 명이…… 늘었다고요.”

“늘었다? 아, 어제 살아 들어간 라드 말입니까?”

“네. 그게 다 전력이 될 겁니다.”

“본래 라드가 무리를 짓던가요?”

“네?”

“저놈들이 특이한 겁니다. 이번에 라드가 된 놈들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죠.”

“아.”

대위는 완전히 희망 회로를 불태우고 있었다.

논리적이지 못했다.

이 인간의 능력을, 그리고 지금까지 해 온 성과를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새끼……. 이 새끼도 역시 미친놈이로군.’

인간이 갑자기 멍청해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김태평은 그러한 이유를 많이 보아 온 몸이었다.

특히 청와대에 앉아 있는 대통령이 그랬다.

‘권력에 미쳤어. 그래 봐야…… 알량한 놈이…….’

체급은 비할 수 없었다.

이놈이 다스리는 영역이라고 해 봐야 건물 하나도 다 안 되지 않나.

게다가 사람도 적었다.

거기에 미쳐서 이따위 결정을 내리다니.

‘문제는……. 내가 힘이 없다는 건데.’

한스러운 것은 지금 이놈이 갑이라는 점이었다.

첫날 대들었던 중령?

그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자기라고 해서 다를까.

여전히 대위의 정예 부대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었다.

‘그래도 앉아서 뒤질 수는 없지…….’

몰래 통신을 시도해 볼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걸리면 바로 뒤질 터였다.

“그렇죠. 현명하신 판단입니다.”

이러한 속내와는 별개로 김태평은 고개를 깍듯하게 숙였다.

아마 대위도 예전의 대위였다면, 그러니까 아랫사람일 때였다면 이게 말도 안 되는 아부라는 걸 알아차렸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못했다.

그저 웃었다.

“그래. 우선은 버팁시다. 다행히 식량은……. 이런 말 해서 좀 그렇긴 한데. 우리 측은 충분해요.”

“아…….”

김태평의 기분은 상당히 X 같았다.

멍청하고 고집 센 놈을 위에 두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식량 얘기를 듣고 나니 좀 나아졌다.

‘그래……. 우리 인원이 확 줄었지. 우리가 들고 온 식량도 적지 않고…….’

확실히 이렇게 되면 식량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이쪽이 저쪽, 동서울 터미널에 자리한 놈들보다는 나을 터였다.

“아, 그리고 우리 이럴 게 아니라. 어제 들어왔던 놈들 면상이나 좀 봅시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대위가 어깨를 두드렸다.

“면상이요?”

“네. 3층에 있던 민간인이 폰으로 영상으로 찍었다더군요. 일단 우리가 입수해서 들고 있습니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라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범죄 수사를 할 것도 아니고.

그러나 그 말에 대위는 껄껄 웃었다.

“소일거리 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놈들이 어떤 식으로 이 안에서 움직이는지…… 확인은 해 두셔야죠.”

“그런 의미라면 좋군요. 네. 보겠습니다.”

어찌 움직이는지 본다라.

김태평은 작전 도중 보았던 라드들을 떠올렸다.

아마 괴물 그 자체일 터였다.

몸집만 거대한 게 아니라, 순발력 또한 대단하니까.

다만 약점이 있다면 흥분을 쉽게 하고 대개 직선으로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대규모 작전을 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좁은 곳에서도 샷건 등의 화력이 강한 총기류를 소지하고 있다면 무리 없이 막을 수 있었다.

‘김선태, 그 인간에 한해서긴 한데…….’

여기서 될까?

물론 무장이 퍽 훌륭한 편이긴 했다.

자동화기가 있으니까.

하지만 무턱대고 희망을 갖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김태평은 대위의 말에 우선 웃으며 뒤를 따랐다.

‘비위를 최대한 맞추다가…… 튀든지 뭘 하든지 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5층이었다.

아비규환이라 할 수 있는 2층 그리고 민간인들이 잔뜩 몰려 있어 냄새나는 3층과 달리 이곳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전기난로도 있었다.

켜 놓진 않았지만.

하여간 여러 가지로 특권층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틀어 봐.”

대위는 그 사이에 놓인 부드러운 소파에 앉고는 턱으로 폰을 가리켰다.

그러자 병사 하나가 빠릿빠릿한 태도로 영상을 틀었다.

배터리가 깜박이고 있었으나 그거까지 어떻게 해결할 여력은 안 되는 모양이었다.

-흐흐흐

틀자마자 소름 끼치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김태평만은 그러지 못했다.

‘어……?’

그가 뭐 특별히 귀가 둔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예민한 편이었다.

‘저거……?’

화면은 흔들렸다.

민간인이 잘 찍었으면 뭘 얼마나 잘 찍었겠나.

게다가 상대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가서, 물어!

그러다 잠시 멈추고 지시를 내렸는데, 그 얼굴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아마 김태평이 그저 일반인이었다면 이상하다 하고 말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요원.

다른 사람을 기억하는 게 일종의 일이요 업인 사람이었다.

‘1호……. 1호가 어떻게…….’

1호의 얼굴을 떠올리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순규에 대한 이야기도 떠올렸다.

정유현 교수가 굳이 떠들어 대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는 다 아는 수가 있지 않았겠나?

‘상대적으로 얌전했다고 하지. 이놈도…… 이성이 남아 있었어. 하지만 또 다른 바이러스에 중복 감염을 시켰었는데……. 이전 감염 때문에 이성이 남은 건가?’

김태평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너무 경악했다 싶어서 그랬다.

그러나 기우였다.

다른 이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기태, 1호를 알아봐서는 아니었다.

다만 그가 보인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그랬다.

힘이 세고 빠른 라드는 얼마든지 있고, 또 이들도 얼마든지 봤다.

상대해 본 적도 적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지능적인 놈, 동시에 표정이 다양해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놈은 처음이었다.

“으음…….”

“으으음…….”

때문에 보기 전에는 그냥 어찌 싸우나 보려고 했던 대위의 얼굴도 어두워져 있었다.

더욱이 영상에 본인이 신임했던 한준구 소위가 나와서 더더욱 그랬다.

이 영악한 놈은 한준구 소위를 붙잡아다가 팔뚝을 물고는 그대로 들고 뛰었다.

-쏴! 쏴! 날 죽여!

그 바람에 한준구 소위의 마지막 명령은 시행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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