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겨울이 온다 (3)
탕마트에 군인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절반가량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어제 당직을 섰던 인원이 태반이었다.
말이 당직이지, 실제 전투를 겪지 않았나.
사상자는 거의 없었다 해도 피로도는 어마어마했다.
탕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일어나 총을 쏘고 있었다.
“이런 개새끼들이…….”
“어디로 돌아온 거야!”
“이 개자식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많지?”
“어어…….”
적은 많았다.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여태 보지 못했던 정도로 많았다.
기백을 헤아리는…….
거의 200명도 넘는 라드가 몰려오고 있었다.
와장창
유리창은 이미 죄 박살 난 지 오래였다.
탕물론 대낮이기에 총에 맞아 쓰러지는 라드가 적진 않았다.
“으악!”
그러나 돌에 맞아 쓰러지는 군인도 적지 않았다.
거대한 놈, 그러면서도 침착히 엄폐물에 몸을 가리고 있는 놈이 돌을 하나 던지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하나가 쓰러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많은 라드 전체가 마트 안으로 뛰어들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가까이 와서 돌만 던지고 있을 뿐, 정작 달려드는 놈은 소수였다.
다만 그 소수는 어디서 들고 온 건지 모를 철제 책상인지 뭔지를 방패 삼아 뛰다가, 바닥에 놓고 창문이 깨진 2층으로 뛰어들었다.
“어, 어어!”
좁은 공간.
엄폐를 위해 깔아 둔 물건들.
이 모든 것이 라드에게 유리했다.
게다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볕이 들지 않는 거대한 건물은 어두웠다.
타다다다당
총이 있다곤 하지만 깜깜하고 좁은 곳에선 그리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도리어 동료들이 죽어 나가기도 했다.
“윽, 으윽.”
“으, 으아악!”
그 와중에 난입한 라드들은 신속히 움직였다.
덩치가 크면서도 조직적이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놓여 있던 물건들을 던져 총 든 인원을 무력화시켰다.
동시에…….
“감염! 감염이다!”
“안 돼! 쏘지……. 쏘지 마!”
수많은 인원들이 감염되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감염된 동료나 친구를 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런 일은 없었다.
“이쪽.”
문제는 라드들의 행태였다.
지능적으로 물린 놈들을 뒤로 던졌다.
이전 형태의 바이러스라면 발병까지 수일에서 적어도 수 시간이 걸렸을 텐데.
지금은 아니지 않나.
불과 몇 분이 채 지나기 전에 라드화 되어 밖으로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3층으로 올라가게 두지 마! 절대!”
건물 내부에서 속절없이 뒤로 밀린 군인들은 계단 쪽을 봉쇄했다.
미리미리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둔 것이 주효했다.
그리고 집중된 총탄은 제아무리 라드들이라 해도 뚫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 안 오는데요?”
“뭐지?”
그러나 놈들은 계단으로 오지 않았다.
동시에 내부는 조용했다.
‘갔나……?’
대위가 없는 사이, 지휘를 맡은 건 같은 부대 소속의 소위였다.
나이가 어리긴 하나 대위가 막중한 역할을 맡길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 실전을 계속 겪어 오지 않았나.
‘아니, 혹시 모를 일이야. 이놈들은 좀 달라.’
이렇게 조용히 있다가 경계가 약해지면 달려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단단히 지켜. 3층 좀 살피고 올 테니까.”
“네!”
“피해 파악은 이따가 해. 괜히 한답시고 경계 풀었다가 뚫리면 X 돼.”
“네!”
해서 당부를 단단히 한 후 위로 올라갔다.
“어때?”
3층은 다른 소위 둘과 하사 몇이 지키고 있었다.
계단이 한두 개가 아니고, 그 계단들을 지키기 위해 병사들을 내려보낸 탓에 위에 남은 군인 수는 적었다.
“아, 네. 돌은 계속 날아듭니다. 병사들 몇 명이 감염된 거 같은데……. 2층은 괜찮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2층을 걱정하고 있었다.
거꾸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려가던 인원을 봐서 그랬다.
맨정신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행은 일전에 이미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동료들이 물린 후 저들이 되어 버린 일.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2층은……. 일단 계단 막았어.”
“아.”
“근데……. 라드 놈들은 못 봤어?”
“네?”
“라드 놈들 돌아가는 거 못 봤냐고.”
“아, 네. 네네. 군복 입은 놈들만…… 일부.”
“못 봤다고?”
해서 3층에 있던 이들은 라드에게 감염된 병사들이 있다는 걸 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소위는 달랐다.
2층이 조용해진 연유가 만약 놈들이 물러난 탓이었다면, 3층에 있던 이들이 놈들을 봤어야 했다.
그런데 못 봤다?
이놈들이 대체…….
“으, 으악!”
어디에 있을까.
생각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방금 창가에 서 있던 군인 때문이었다.
챙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지면서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는데,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누군가 서 있었다.
“많군.”
라드였다.
덩치가 거대한.
단지 그뿐이었다면 소위는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을 터였다.
라드들이야 다 크지 않나?
‘말을 해?’
그러나 이놈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했다.
물론 짧게나마 말을 하는 놈들은 꽤 봤다.
특히 최근엔 그랬다.
근데…….
‘표정은 또 왜 이렇게 다양하지?’
이놈은 좀 달랐다.
사람 같았다.
“마, 막아!”
물론 감상은 그뿐이었다.
여긴 2층이 아니라 3층.
민간인들이 꽤 있는 곳이었다.
그것도 수백 단위로.
타다다다당
소위뿐만 아니라, 다른 군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동시에 창문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갔다.
그러나 라드는 무사했다.
놈은 몸을 옆으로 굴려 총알을 피했다.
그런다고 다 피할 수는 없는 게 정상일 텐데 놈은 가능했다.
“으, 으윽…….”
유탄은 아까 그 자리에 서 있던 병사가 맞았다.
요행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지 않나?
아무리 라드라 해도 방금의 움직임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아니, 사람을 방패 삼겠다는 발상이 그러했다.
이건 너무 인간 같았다.
“흐흐흐.”
그러나 라드는 그러한 사실엔 딱히 뿌듯함을 느끼고 있지 않은 듯했다.
도리어 시선은 깨진 창에 두고 있었다.
“아, 안 돼.”
이유는 곧 밝혀졌다.
박살 나 버린 창, 그러니까 휑하니 뚫린 곳에 라드들이 올라섰다.
밑에 매달려 있던 모양이었다.
“가서 물어!”
처음에 올라와 있던 라드가 손가락을 뻗어 명령을 내렸다.
“쏴, 쏴!”
소위도 명령을 내렸다.
타다다당
총질과 함께 라드들이 이리저리 쓰러졌다.
그러나 덩치가 있는 데다가, 거리가 워낙 가깝다 보니 미처 총알이 나가기도 전에 병사들에게 도달한 놈들이 있었다.
“으, 으으!”
놈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병사들을 물고 건물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뭐, 뭐야!”
“막아!”
“어어!”
병력이 온전히 다 남아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그걸 장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보단 수월했을 터였다.
일단 놈들이 안에 들어오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이제 와 그런 생각은 다 허사였다.
민간인들이 물리고 있었다.
“수류탄 던져!”
“네? 민간인이!”
“지금 그런 거 따질 때야? 다 죽어!”
소위는 그곳을 향해 수류탄을 까 던졌다.
콰앙
가뜩이나 폭발음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법인데 건물 안에서 터지고 있지 않나.
소음에 민감한 라드들이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 뛰어들었던 라드, 즉 박기태 또한 인상을 썼다.
그의 시선은 방금 수류탄이 터진 곳, 그리고 다른 병사들이 수류탄을 던지는 곳을 향해 있었다.
한 방에 방금 감염되었던 이들 그리고 아직 감염이 되지 않은 채 도망가고 있던 민간인까지 십수 명이 쓰러졌다.
저대로 계속 수류탄이 쏟아지면 피해가 막심할 터였다.
제아무리 라드라 해도 방금 라드화 된 것들은 절대로 총 든 병사를 이길 수 없다.
“나가, 나가!”
그러나 놈의 얼굴에 당황은 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침착했다.
그의 명령에 근처에 있던 라드들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저, 저!”
소위는 놈들을 쏘고 싶었지만, 민간인 쪽이 아직 해결이 안 되었다.
아까 감염되었던 이들 중 살아남은 놈들이 옆 사람을 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은 다른 라드들을 따라 창가로 뛰고 있었다.
짧은 시간.
정말로 몇 분 뚫렸을 뿐인데, 피해가 적지 않았다.
수십에 달하는 인원이 죽었고, 또 수십에 달하는 인원이 라드화 되어 뛰었다.
“억.”
그 피해자 목록에 소위도 끼어 버렸다.
처음 들어왔던 라드, 놈이 소위를 집어 들었다.
팔뚝을 문 채였다.
주변을 돌아보니, 같이 있던 병사들은 다 죽었다.
놈이 휘두른 칼에 여기저기가 함부로 잘려서.
“가자.”
“아, 안 돼애!”
소위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발버둥을 쳤다.
머리로는 알았다.
이미 끝났다는 걸.
그러나 아직 라드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이렇게 변하고 싶지 않았다.
“쏴! 쏴! 날 죽여!”
해서 명령을 내렸지만 들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들었던 이조차 총구를 들이대지는 못했다.
소위는 아무나가 아니어서 그랬다.
그래도 지휘관이지 않나.
탕탕망설임 끝에 총을 쐈을 땐 이미 늦은 지 오래였다.
“읏차.”
박기태는 라드답지 않게 쓸데없는 신음을 내며 1층으로 뛰어내린 후, 수가 불어난 라드들과 함께 내달렸다.
“이상한데요?”
“너무 조용한데…….”
그 시각 김태평은 대위와 함께 여전히 터미널을 응시하고 있었다.
RPG 여러 발이 박혔지만, 사상자는 아까 옥상에 있던 라드 몇이 다였다.
아니, 그마저도 불확실했다.
RPG가 불을 뿜는 순간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안으로 숨어서 그랬다.
그뿐만이 아니라 놈들은 어느 하나도 밖으로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겁을 먹어서일까?
일리 있는 추론이었지만 무언가 놓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무전 들어옵니다! 본부입니다!”
그때 대위 곁에 있던 병사의 무전기에서 소음이 일었다.
-고, 공격이다! 동쪽 방면에서 놈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게 무슨…….”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 무전이었다.
동쪽?
동쪽이라니.
그쪽엔 아무것도 없지 않나?
-라드들이다! 구원 바람! 지금 즉시 회군 바람!
그러나 생각을 이어 나갈 틈은 없었다.
상대가 너무 급박해서만은 아니었다.
“한준구 소위……! 돌아, 돌아간다!”
상대는 대위가 가장 믿는 이였다.
자기 대신 본부를 맡길 수 있을 만큼이나.
이런 놈이 허튼소리를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무슨? 이놈들이 설마 성동격서라도 썼다는 겁니까?”
“알 수 없습니다만……. 한준구 소위의 보고라면 돌아가는 게 맞습니다. 일단 공격이 있다면 너무 위험해요.”
“무슨 이런……. 어떻게…….”
“아까 정찰을 나가야 한다고 했던 건 요원님입니다.”
“그건……. 그렇긴 하죠.”
김태평은 그럼 라드 놈들이 이쪽을 정찰하고 있다가 빈집털이라도 나섰다는 건가 싶었다.
정황상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망원경 쓰던 놈이 있질 않나……. 이런 작전을 쓰질 않나…….’
만약 그렇다면, 돌아가는 즉시 보고를 올려야 했다.
여기 온 병력만으로는 절대 무리였다.
구원군이 필요한 건 테크노 마트에 남겨 둔 이들뿐만이 아니란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