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겨울이 온다 (2)
부우웅
장갑차량.
또는 SUV 차량들이 줄지어 내달렸다.
그러다 동서울 터미널 근처에 자리했다.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멀리서도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라드들 때문이었다.
적지 않았다.
그냥 몰려 있다는 느낌도 아니었다.
개체 간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무리를 이루고 있군요.”
“그러니까요.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위는 짐짓 걱정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침착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다 알고 있었을 테니.
‘이 정도 무장이라면……. 이길 수도 있어.’
그와 동시에 자신을 내비치고 있었다.
확실히 어제 보여 준 전투력도 그렇고 장비도 그렇고 확 달라진 참이지 않나.
‘대체 청와대는…… 어떻게 이런 장비를 미리 가지고 있을 수 있던 거지?’
청와대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을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이만한 무장과 이만한 인원을 보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터였다.
‘확실히 숨기는 게 있어.’
대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중령을 후려쳤던 주먹이었다.
핏자국은 지워진 지 오래이지만,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그 새끼는 아는 게 없었지.’
쓸모없는 놈이란 생각에 고문을 좀 해 봤는데 소득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김태평은 아마 아는 게 있을 터였다.
아니, 많을 것 같았다.
또 어떻게 생각하면 별반 다를 것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중요한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보내진 않았을 거 같은데…….’
하는 것만 봐서는 중요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조심성도 그렇고, 어제 전투 능력도 그렇고.
“우선 후방에 정찰을 보내 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김태평이 이런 말을 해 왔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적은 라드.
인간이라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다.
특히 대위에게는 그러했다.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바람도 있었다.
그 정도로 지능적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니, 소망이라고 보는 게 좋을 터였다.
만약 놈들이 그만큼의 지능을 보이고 있다면.
실제로 전술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펼칠 만한 여력이 있다면…….
‘우리는 끝장이야.’
테크노 마트는 생각 없이 보면 꽤 훌륭한 보금자리였다.
우선 군이 지키고 있었고, 건물도 높았다.
방호벽이 있다, 이 말이었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 보면 허술했다.
애초에 방어용으로 지어진 곳이 아니지 않나.
이곳은 되도록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진 ‘마트’였다.
제아무리 추후 뭔가 고치고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많았다.
“필요가 없어 보여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이만한 인원이 쳐들어갈 것도 아닌데요. 포격 시작하면 몰려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후방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건 그렇죠. 흐음.”
대위는 턱밑을 쓸었다.
방금 면도를 한 탓에 매끈한 느낌만 일었다.
나름 특권이라고 봐도 좋았다.
모든 것이 부족해진 지금, 면도 거품을 내어 새 날로 면도를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
‘그래, 지키긴 해야겠지.’
그저 군 내 대위였을 땐 상상도 못 할 권력이지 않나?
이곳에서만큼은 일종의 왕이었다.
“알겠습니다. 정찰을 보내죠.”
“네.”
“그리고……. 문제는 저기일 텐데요.”
“으음.”
대위는 지시를 내리고 다시 동서울 터미널을 바라보았다.
망원경으로만 봐서는 대체 얼마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창가에 드문드문 비치는 것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옥상에 있는 것들이 더 눈에 잘 띄었다.
‘저거……?’
김태평은 그중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놈을 발견했다.
얼굴에 뭐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망원경 같았다.
‘설마…….’
믿기지가 않았다.
지능이 있다고 해도 망원경을 쓴다고?
물론 이놈의 라드들이 어느 정도 도구를 쓴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긴 했다.
심지어 운전도 하지 않았나?
물론 시동 걸고 액셀 밟은 게 다이긴 했지만.
그나마도 키가 차 밖에 있으면 그걸 들고 들어갈 생각도 못 해서, 도로는 버려진 차들로 가득 차 있긴 했다.
‘망원경은…… 좀 다른데…….’
그에 반해 이쪽을 망원경을 통해 관찰하는 건 좀 다른 얘기였다.
“뭘 봤길래 그렇게 입을 벌리고 계십니까?”
“아. 아니. 저쪽에서도 우릴 보고 있는 거 같아서요.”
“네? 하하. 농담도……. 물론 보이기야 하겠지만 집중할 만큼 잘 보이진 않을 겁니다.”
“망원경……을 쓰고 있어요.”
“네?”
대위는 그런 김태평에게서 망원경을 받아다 동서울 터미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옥상을 바라보았다.
“허.”
눈이 마주친 느낌이 일었다.
실제로 마주친 것은 망원경 알이겠지만.
하여간 녀석은 이쪽을 분명히 응시하고 있었다.
“저격 가능하겠습니까?”
본능적으로 위험하단 느낌이 일었다.
옆에 늘어선 놈들의 외양도 그러했다.
아니, 자세가 그랬다.
저건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사열이었다.
오와 열을 딱 맞춘 건 아니라지만…….
“저격은…… 글쎄요. 그럴 만한 능력자가 없어요. 차라리 RPG로 쏴 버리는 게 나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쏘죠.”
“쏴요? 그냥 지켜보러 온 거 아닙니까?”
“그때는 저런 놈이 있는지 몰랐죠.”
저놈은 지배자였다.
저 무리를 다스리고 있었다.
그 느낌을 받자마자 손에 땀이 뚝뚝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리는…… 지도자가 있으면 달라져.’
본인이 체감한 적이 있던 탓이었다.
당장 이 마트가 그러지 않았나.
그가 도착하기 전 이곳은 무리의 크기도 작았지만, 정말이지 오합지졸이었다.
그저 라드에게 쫓겨 전기도 통하지 않는 건물을 억지로 올라 숨어 살던……. 말 그대로 도망자들이었다.
그러나 대위가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 이 무리는 강동을 대표하는 쉘터를 이루었다.
주변을 수색해 인원과 물자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었더랬다.
“그건 그렇죠.”
물론 김태평에게 동일한 경험이 있지는 않았다.
대신 김태평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도록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타고난 감도 좋았다.
‘저놈……. 우릴 봤는데도 달려들지 않고 있어.’
보통의 라드도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란 얘기였다.
그 때문에 정부 측 계획도 어마어마한 차질을 빚고 있었다.
당장 폭격만 해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아주 대단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지 않았나.
전투기를 보고, 또 첫 번째 폭발을 보고 다들 도망가서 오히려 라드의 숫자가 적었던 지역에 라드가 불어나는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참을성이 있는 놈이야……. 저놈이 매일 밤 습격을 지휘하고 있다면……. 이제야 이해가 되는데…….’
그러나 놈은 좀 달랐다.
매일 밤을 떠올리면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기다릴 수 있는 놈이었고, 지금 놈은 분명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리를 확장하고 있는 건가?’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이제 서울은 살아 있는 사람보다 라드 찾기가 더 수월해진 지 오래니까.
아예 도시 전체를 폭격해서 무로 돌려 버렸다면 또 모르겠으나, 대통령은 여전히 사태가 끝난 후를 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후만 보고 있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지금 나보고 폐허를 다스리라 이 말인가!
그 계획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화만 냈다.
미친놈.
‘욕을 해 봐야 별 소용없지.’
생각을 이어 나가던 김태평은 한숨을 쉬었다.
그 미친놈은 대통령이고, 여전히 청와대 인근의 권력을 완전히 틀어쥐고 있지 않나.
그 힘은 서울 전역까지는 아니더라도 강북 전역을 정리할 만할 터였다.
적어도 저놈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라드야 아무리 강해도 각개격파하면 그만이니까.
시가전과 접근전에 익숙해진 군이라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쏴 보죠. 대신……. 즉각 후퇴할 준비를 하고 쏴야 할 거 같습니다. 혹 벌집 들쑤신 꼴이 되어서 놈들이 달려 나오기라도 한다면…….”
“그럼 오히려 잘된 일 아닙니까? 중간중간 다른 건물들이 있긴 해도 거의 야지예요. 이렇게 밝은 대낮에 쏴 대면 다 죽일 수 있을 겁니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게다가 돌이라도 던지기 시작하면…….”
“책임은 제가 집니다. 일단 RPG 쏘고 나오면 대응 사격합니다.”
“음.”
김태평은 이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군인이 아니라 요원이었기에 그러했다.
그는 무턱대고 까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아보고 재고 기다렸다가 덮치도록 훈련받았다.
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망할.’
까라면 까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국정원 요원이라고 뻗대 봤자 뭐가 되겠나.
‘당장 그 중령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지.’
라드는 확실히 위험하지만 여기까지 어떻게 될지는 불확실했다.
하지만 눈앞의 대위는 확실히 위험했다.
주변에 도열한 부대만 봐도 그랬다.
훈련 정도야 김선태 그 괴물의 부대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눈빛이 좋았다.
‘벌써 여럿 죽였을 거야.’
이곳을 평화롭게만 다스렸을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망하기 전의 세상도 그런 논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지금은 훨씬 노골적이었다.
“그렇게 하죠. 다행히 제 부하 중에 어느 정도 다룰 줄 아는 친구가 있습니다.”
“좋군요.”
물론 대위도 긴장하고 있었다.
김태평과 그 부하들의 전투력 때문이었다.
적을 눈앞에 둔 채로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낭패였다.
그러나 상황은 일시적으로나마 봉합이 되었다.
철커덕
해서 김태평의 부하 중 둘이 RPG를 장전하였다.
목표는 당연하게도 동서울 터미널 옥상.
육안으로는 사람 얼굴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멀었기 때문에 조준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부하들은 배우기만 했을 뿐, 실제로 쏴 본 적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수가 좀 줄었어요.”
“그래도 망원경 쓰고 있는 놈은 있습니다.”
“흐음…….”
하여간 쏘기 전에 김태평과 대위는 번갈아 가며 망원경으로 터미널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한 놈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대위는 별 의심 없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김태평은 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옷은 같은데……. 뭔가…… 좀 달라진 거 같은데?’
머리 모양인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경황이 없는 데다가, 얘기 나누느라 잠시 시야에서 놓치기도 했기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상. 무.
하지만 일단 정찰 보낸 인원들에게서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보고는 괜찮아서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쏘자.
쏘고 생각하자.
일단 맞히면, 그러면 유리해진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비록 콘크리트 건물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한 폭발력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지만, 혼란은 줄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옥상 맞히고 밑으로도 쏘면 어쩌면 혼란을 야기해 지들끼리 죽고 죽이도록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실제로 광화문 인근을 정리할 때 썼던 전법이기도 했다.
슈우웅
하여간 RPG가 불을 뿜었다.
그 시간 박기태, 1호는 건물 밖에 있었다.
더미를 옥상에 남겨 놓은 채였다.
“병신들.”
그뿐만 아니라 태반이 밖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강변 쪽에 있었다.
이들은 밖에 나와 있는, 그러니까 무장한 군인들을 공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목표는 마트 안에 있을 민간인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