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겨울이 온다 (1)
일행이 들고 온 식량은 적지 않았다.
그래 봐야 보건소 내에 노인들이 비축해 둔 물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꽤 소요되었다.
보건소 2층에 창고처럼 쓰이던 곳들을 정리해 숙소로 만드는 데에는 더 시간이 걸렸다.
시간 단위가 아니라 며칠이 소요되었을 지경이었다.
‘잘된 일이야.’
정리를 위해 유현을 비롯한 모두가, 심지어 지민이까지 합세해 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다.
그래서일까?
모두들 한동안 라드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정신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확실히 이 근방은 도심과는 달리 아예 라드가 없어서 그렇기도 했다.
기껏해야 8킬로 정도 떨어진 곳일 뿐인데, 별천지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애초에 은신처를 이런 곳으로 잡았으면 어땠을까. 아니, 아냐. 그랬으면…… 총기류나 쥐를 얻지 못했겠지.’
후회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에 좀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던 유현조차 이런 생각을 잠시 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자자. 이거 밭에서 뜯어 온 건데……. 모양새는 좀 이상해도 싸 먹기 좋아. 라면이라도 싸 먹으면 건강에 좋겠지.”
노인은 의사가 무려 넷이나 껴 있는 집단 앞에서 라면과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얘기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딱히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계란이 있으니까 진짜 좋네요.”
“좋지. 하하. 내가 이거…… 살리느라고 얼마나 애쓴 줄 아나.”
라면이 보통 라면이 아니었다.
싱싱한 감자도 들어가 있었고, 심지어 계란까지 풀어 놓지 않았나.
이런 호사는 저번 은신처에서는 꿈도 꾸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아휴……. 뭐 그리 겁이 난다고 죽어 가지고…….”
김 주무관은 라면 먹다가 한이 맺히는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먹다가 운다고 뭐라 그럴 사람은 없었다.
지난 며칠간 제일 고생했던 사람 중 하나라 그랬다.
쥐 사육장 만든다는 게, 아무리 가지고 온 물품이 있다고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할 줄 아는 사람이 그밖에 없어서 더했다.
‘게다가 쥐들을 단 하나도 안 상하게 해야 했으니…….’
쥐 그까짓 거 한두 마리 상한다고 뭐가 문제냐는 소리를 노인이 했으나, 따지고 보면 집주인이라 할 수 있는 노인조차 사람들의 눈 흘김에 도망가야만 했다.
벌써 오는 길에 열 마리 이상 소모하지 않았나.
남은 쥐가 많지 않았다.
혹 초거대 개체라도 두어 마리 뜨거나 작은 놈들이 여럿 뛰어오게 되면 도망가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쥐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당장은 한 사람당 하나도 안 되었다.
적어도 몇 주 이상은 이곳에서 버텨야 했고, 그 기간 동안 한 마리도 상해선 안 되었다.
주르륵
김 주무관은 노인이 라면에 곁들여 먹으라고 건네주었던 술 한 잔을 바닥에 흩뿌렸다.
바닥이라고 해 봐야 다들 모여 지내는 병실 중 하나였기에 알코올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 주무관이라고 했나?’
그럼에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건, 그가 누구에게 술을 뿌리는지 알아서였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모든 것이 풍족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술은 진짜 먹다 죽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많았다.
“거참 아깝게.”
지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며칠간 치료를 받은 덕에 슬슬 앉은뱅이에서 벗어나는 노인 덕택이었다.
애주가를 넘어 의존증에 가까운 그는 다른 노인이 닭과 식량을 챙길 때 술부터 챙겼더랬다.
심지어 그가 담가서 보건소장과 공중 보건의에게 선물로 주었던 술까지 고스란히 건물 안에 남아 있었다.
“여기 오는 길에 친구가 죽어서 그럽니다.”
“아, 그래? 그럼 뭐……. 한잔해야지.”
이름이 뭐냐 물었더니 그저 박 영감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한 그는 퍽 사람 좋은 양반이었다.
지금도 그렇지 않나.
넉살 좋은 얼굴로 의자를 끌고 김 주무관에게 다가가더니 술잔을 튕겼다.
최우식조차 어색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못 했던 일이었다.
‘뭐……. 저런 것도 필요하겠지.’
수련받으면서 밥을 빨리 먹게 된 유현은 대강 먹은 접시를 닦고 옥상으로 향했다.
그런 유현의 뒤를 양재원이 따랐다.
오는 길 내내 우거지 죽상이더니 막상 오고 나니 좋은지 긴장이 좀 풀려 보였다.
“후…….”
유현은 옥상에 올라 한숨을 쉬었다.
옆으로는 닭장이 있었는데, 나름 노인네 손재주가 좋아서 그런가. 제법 튼튼해 보였다.
물론 유현의 시선은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산등성이에 꽂혀 있었다.
‘나뭇잎이 죄 떨어지고 있어.’
찬 바람을 느끼면서였다.
“교수님.”
그런 유현에게 양재원이 다가왔다.
“응?”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래도 모르는 척 물었다.
세상이 망하고 나서는 사소한 일에도 괜히 호들갑을 떨어야 살 만한 법이란 말을 이순규가 해서 그랬다.
녀석은 정말로 거의 모든 일에 놀란 척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라드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함을 극복한 비결인 것 같기도 해서, 유현은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아니, 별건 아니고……. 원래 같았으면 저 이제 전문의 시험 보러 들어갔을 때라서요.”
“아……. 벌써 그렇게 됐나.”
“벌써라뇨. 두 달도 지났는데.”
“하긴. 그런가. 전문의 못 따게 돼서 억울하겠네.”
“아니……. 그게 뭐 억울해요. 세상이 이렇게 됐는데.”
“여기서 보면 딱히 망한 거 같진 않지 않냐.”
유현이 가리킨 곳은 정말로 평소의 산과 같았다.
보기엔 그랬다.
“근데 라디오에서…… 말한 폭격은 대체 언제 일어나는 걸까요?”
“아, 그거. 알 수가 있나…….”
“거짓말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 지금까지 한두 개 쳤나. 죄다 구란데.”
백신 개발했다는 내용의 방송이 제일 어이가 없었다.
백번 양보해서 변이가 없었다고 하면, 지금쯤이면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순규가 걸린 알파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저 산 너머에 득실거리는 라드들은 그 형태와 행태가 제각각이었다.
단순 숙주의 차이가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없었다.
환경의 차이가 그렇게 만들었을 리는 더더욱 없었고.
“하긴……. 개새끼들.”
“말 나온 김에 이거나 돌려 볼까.”
“라디오요? 아……. 그거 아직도 돌리고 계신 거예요?”
“아직이라고 하기엔 며칠 안 됐어.”
“그런가. 그러고 보니 방송도 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저거? 저거 근데 방송용으로 만들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재료는 둘째치고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잖아.”
유현은 재원과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라디오를 천천히 꺼냈다.
딱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행동은 느릿하기 짝이 없었다.
병원 생활 할 때는 그렇게 바쁘더니 다 망하고 나니 오히려 여유로웠다.
‘난 바쁜 게 좋은데.’
유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파수를 천천히 돌리기 시작했다.
치지직
여느 때처럼 의미 있는 소리 대신 백색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마트……. 1호……. 발견…….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정부 측 방송인가 해서 보니 주파수가 영 생경했다.
진짜 우연히 얻어걸렸다고 봐야 했다.
“어…… 어디서 들어 본…….”
“어……?”
음질은 개판이었다.
여기서 질을 따지는 게 의미가 없을 지경이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그러나 분명히 말이 들렸다.
“반복되는 거 같지?”
“네. 똑같은 목소리에 톤도 같아요.”
“누가 녹음해 놓은 거 같은데……. 1호……. 1호라면. 설마.”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 같긴 한데, 음질 때문에 분간이 잘 안 갔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목소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1호’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박기태를 말하는 건가……?’
그놈이 살아 있다고?
‘유실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히 죽었다고 들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유실’이었다.
물건처럼 말한다 싶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 보니 그건 잃었다는 뜻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저 도망갔다고 볼 수도 있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옥상에서 내려가는 동안에도 방송은 지속되었다.
역시 녹음해 놓은 게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복도엔 누가 의사들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 이순규와 최우식이 서 있었다.
또 비슷한 이유로 밥을 다 먹은 오예리, 이진호도 있었다.
그들은 아까 유현이 그랬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그러다 유현이 가까이 가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유현이 매일 확인하던 라디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그랬다.
분명 어제는 저렇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오늘은 나왔다.
변화가 있었다.
“뭐예요?”
“뭐지?”
모든 것이 멈춰 버린 것 같은 세상에서 없던 라디오 방송이 새로 생긴 건 거의 천지창조에 비견할 만한 변화였다.
때문에 모두가 단지 고개를 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유현에게로 다가왔다.
-강변 테크노 마트……. 1호……. 발견……. 무리……. 수백 이상…….
그때 또 후진 음질의 방송이 반복되었다.
“1호. 1호래.”
유현은 혹 다른 내용이 나올 수도 있단 기대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1호가 누군지 알기에 딱히 사전 설명은 없었다.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역시 최우식과 오예리였다.
둘 다 1호를 쫓았고 그러다 동료를 잃지 않았나.
“죽었다지 않았어요?”
“살아 있다고? 게다가 무리는 또 뭔 소리야.”
“무리에 섞인 건지……. 그 무리를 이끈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유현은 이순규를 돌아보아다.
온갖 약을 다 써서 감염을 억제했고 호르몬의 날뜀도 조절한 결과, 인간에 최대한 가까운 모습으로 남은 그였다.
그리고 동시에 1호 박기태를 떠올렸다.
직접 본 것은 병원에서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박원상의 묘사를 들은 바 있었다.
‘그건 순규에 비하면 짐승이지만……. 그래도 대화가 어느 정도 통했다고 했었지…….’
그런 놈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당연히 무리를 이끌고 있지 않을까.
“수백이래요.”
“수백이라니……. 그걸 어떻게…….”
“너무 호들갑 떨지 마. 강변이라잖아. 거기랑 여기는 백 킬로도 넘게 떨어져 있어. 그보다…….”
유현은 이제 거의 열 번 가까이 반복되는 방송을 듣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익숙한 목소리란 생각만 들었다.
어디서 들어 봤는데 싶은 수준?
그러나 계속 듣다 보니 떨어지는 음질에도 불구하고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거 김태평 아닌가……?”
“그 요원이요?”
“듣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한데요?”
김태평.
그가 살아 있다고 해서, 강변에 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일행은 작은 불빛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끈이 이어지는 기분이랄까?
물론 그 끈의 근원이 된 김태평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