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초거대 개체 (1)
확실히 놈은 지금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애초에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순규를 저런 놈과 비교하면 좀 실례가 되긴 하겠지만 사실 이순규도 밖에 나가면 늘 저러지 않던가.
“킁.”
라드는 냄새로 인간과 라드를 구분하고 있었기에 저게 기본이었다.
초거대 개체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걷는 내내 저러고 있었다.
문제는 저 길이 이 보건소로 이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겨누자.”
“네.”
“다들…… 창가로 붙어요. 공격해 오면 끝장이야.”
보건소 건물은 꽤 오래된 건물이었다.
벽돌로 쌓아서 튼튼해 보이긴 하지만 문제는 문이었다.
놈이 쿵 하고 달려들면……. 아마도 박살이 나지 않을까.
초거대 개체의 힘은 정말 장난 아니니까.
직접 겪진 못했지만 보아 온 바에 의하면 그랬다.
그래도 꽤 거대한 라드인데도 불구하고 초거대 개체의 주먹에 맞고 픽 날아가는 걸 여기 있는 모두가 봤다.
끼이익
해서 창문을 살짝 올리고, 총 쏠 줄 아는 전원이 창가에 붙었다.
무려 6개의 총구였다.
그중 하나는 최우식의 아내 몫이었는데, 아무래도 최우식이나 양재원보다는 훨씬 잘 쏴서 그랬다.
‘우식이는 그래도 군대 갔다 왔는데……. 왜 그럴까.’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놈을 살폈다.
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더더욱 거대해 보였다.
아니, 실제로 거대했다.
‘우리가 본 게…… 최대치가 아니었나? 하긴……. 이놈들도 당연히 개체별로 차이가 있겠지.’
호르몬이 팍팍 나온다고 해서 다 크겠나?
노인의 경우에는 그래 봐야 골 성장이 둔화되어 있었더랬다.
아무래도 이미 골밀도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다시 분화를 이룬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않겠나.
그러나 아직 성장기에 있던 놈이라면 어떨까.
다른 곳, 그러니까 도심처럼 경쟁자가 많은 곳에선 어린 라드들이 자랄 여력이 없었을 터였다.
‘거긴……. 일단 골격근이 이미 발달한 놈들이 많아서 경쟁에서 밀렸을 거야.’
그러나 이곳은 시골.
인구수 자체가 적은 곳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경쟁이 적었을 테고, 인구 구조도 어린 사람에게 유리했을 터였다.
그래서일까.
“저게……. 저게 뭐냐, 유현아…….”
이순규 또한 더 가까워진 개체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 크기만 따지면 1세대 라드라 할 수 있는 이순규는 어지간한 놈들에게 밀리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근육량도 줄고 다른 신경 전달 물질도 줄어서 실제 힘이야 상대도 안 되겠지만, 하여간 그랬는데…….
“몰라. 긴장하자.”
저놈은 커도 너무 컸다.
과장 좀 보태서 거의 3미터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느리지 않았다.
원래 인간의 육체는 저만한 하중을 견디게 설계되어 있지 않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초거대 개체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이쪽으로 향하는 느낌이었다.
제발 가라고 기도를 하고 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킁킁.”
지금까지 냄새를 맡던 건 그저 시늉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진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긴 했다.
아무리 라드라 해도 구조상 냄새를 개처럼 잘 맡을 수는 없지 않겠나.
예민함이 더해진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뛰어넘을 순 없었다.
“으.”
하여간 이제 걸렸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놈이 벌름거리는 것을 멈추고, 눈으로 보고 있어서 그랬다.
확실히 이쪽, 그중에서도 2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망할.”
“쏴도 되나?”
“소리가…….”
“안 쏘면 다 죽어. 달려들기 전에 쏴! 머리 말고 몸통이라도 노려!”
그와 동시에 발을 뒤로 빼고 있었다.
무게 중심의 이동.
저건 분명 달리기 전의 행위라고 보면 되었다.
탕탕타다다당
해서 유현이 먼저 방아쇠를 당겼고, 직후 다른 이들도 방아쇠를 당겼다.
유현이 쏜 건 제대로 배에 틀어박혔다.
그러나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놈을 그 후로 제대로 맞히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모두의 머릿속에 총알 부족이란 단어가 확 박혀 있다 보니 빗맞히지 않도록 다들 주의하고 있었다.
쿵쿵지축을 울리며 놈이 달려들었다.
퍽그러나 가까워질수록 속도는 오히려 줄었다.
아무래도 덩치가 크다 보니, 총알 맞을 곳도 많지 않겠나.
“크윽.”
거의 다 오긴 했다.
문가 근처까지.
하지만 무릎이 꿇렸다.
“제가 마무리하죠.”
아무리 덩치가 거대해도, 확실히 총을 이길 수는 없다는 걸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긴 했다.
코끼리도 잡는 게 인간 아닌가.
그에 비하면 이 정도 라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탕머리에 한 발 꽂히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쓰러졌다.
승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뻐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다른 창가로 달려가 밖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저 산 너머의 마을이 신경 쓰였다.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총소리는 너무 컸다.
‘제기랄. 이 미친놈이 갑자기…….’
들렸을까?
아마도 들렸을 터였다.
총소리는 폭발음이고 그만큼 멀리 뻗어 나가니까.
“거기는 어때? 여기는 아직 뭐가 없는데.”
“네. 여기도…… 아니, 하나 보입니다. 흠……. 근데 다가오지는 않아요. 그냥 뭔가 해서 온 느낌이에요.”
“여기는……. 여기도 아직은. 음.”
마을 쪽에서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별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산 너머의 일이 보일 리는 없었으니.
하여간 이쪽은 이렇게 두고, 남은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바로 이 지척에서 쓰러진 라드의 처리를 해야만 했다.
“내려갈까.”
“네.”
“가자.”
해서 유현은 관찰력이 좋은 오예리와 우식의 아내 그리고 이진호를 남겨 두고 아래로 향했다.
힘에 비해 비위가 진짜 좋은 편인 양재원도 함께였다.
의사이니만큼 죽은 라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거의 최고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식도 마찬가지긴 했다.
“음.”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문을 열고 나가니 녀석이 보였다.
“크으…….”
놀랍게도 살아 있었다.
“아. 빗맞았나.”
김현철 소위가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마지막에 쏴서 그랬다.
이순규가 혹시 몰라 들고 온 몽둥이를 틀어쥐었다.
“잠시만.”
그걸 말린 건 유현이었다.
“응? 야, 위험해.”
“위험한 건 알지. 하지만 못 움직여. 잘 봐라. 저래서 살 수 있겠냐?”
배에 벌써 여러 방을 맞은 참이었다.
그뿐 아니라 팔과 다리에도 대충 봐도 서너 방은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와서 쓰러진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내가 먼저 갈게.”
“그래. 그러자.”
유현은 이순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라드는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그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 총알 하나가 우측 가슴을 뚫어 놓았다.
‘그래, 뭐……. 당연하지만 인간이지.’
강화되고, 멍청해지고, 잔인해진 인간이긴 해도 하여간에 인간이었다.
“후, 후.”
놈은 이제 턱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 숨이란 얘기였다.
다시 말하면 라드는 모두의 앞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유현은 그 앞에 선 채 라드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중학생 아니면 고등학생이었나.’
정확히 말하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드름에 얽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사춘기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호르몬이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라드들은 대개 이랬거든.
‘옷은……. 옷도 사복이네. 흐음…….’
유현이 알고 싶은 건, 아니 그가 희망하는 바는 청소년기에 라드가 되고 그 후로 경쟁자 없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은 놈들만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일반 성인들도 다 이렇게 될 수 있다면…….
그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지 않겠나.
“흐…….”
유현이 고민하는 사이, 라드는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눈에서 초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의사들이 확인했다.
‘어쩌다 보니 의사가 넷이나 되는구만.’
유현은 이순규, 최우식 그리고 양재원을 돌아보고 라드의 주검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라드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달린 거리는 기껏해야 30, 40미터밖에 안 되었다.
그 와중에 쏴 댄 총알은 거의 30발도 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박힌 건 얼마나 될까.
‘그나마…… 열 발 넘게 박혔군.’
이만하면 괜찮았다.
문제가 있다면 남은 총알이 500발 내외밖에 안 된다는 점인데…….
‘주변은 조용해.’
다행히 몰려오는 것 같진 않았다.
한 놈 죽이는 데 30발이라면, 대충 계산해서 스무 놈이면 끝장이라는 얘기 아닌가.
물론 몰려오면 얘기가 좀 다르긴 할 터였다.
두려움이 있는 놈들이니 도망도 갈 테고.
그러나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는 의식적으로라도 긍정적인 사고 회로를 돌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다.
“이걸 어쩐다?”
그런 유현의 옆으로 최우식이 다가와 물었다.
묻거나 어찌해야 하지 않겠나.
이대로 여기에 두면 벌레든 쥐든 꼬이긴 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들개가 꼬일 수도 있었다.
‘최악은 라드지.’
먹을 것이 없어진 라드라면 충분히 시신을 건들 터였다.
우식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유현이 시신에 한 발짝 다가갔다.
“으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였다.
그냥 땅에 묻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왜 그래요?”
우식이 묻자, 유현이 답했다.
“일단 이거 부검을 해 보자.”
“네? 부검을요?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모르지. 하지만…… 심장 크기나 뇌 상태 같은 거 궁금하지 않아?”
“아. 여기서 볼 수 있을까요?”
“뭐……. 제대로 볼 수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한 번쯤 보는 게 좋겠어. 일단 노인 라드들이 죽었다고 하니, 이놈들의 여명을 알아낼 수도 있겠지.”
“아하.”
여명.
다시 말하면 놈들의 수명이었고, 또 희망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생각보다 변화가 크다면, 정말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터였다.
아니라면…….
‘뭐 그거야 둘러대면 되지.’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순규와 다른 이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모두가 힘을 합쳐서 쓰러진 라드를 집어 들었다.
혹 살아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었다.
입에 재갈을 물리는 동안 반응이 없었으니.
구역 반사가 없다면, 살아 있다고 해도 곧 죽을 몸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으아……. 진짜 무겁네…….”
“허으…….”
양재원과 최우식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운동을 했고 안 했고를 떠나서 그냥 너무 무거웠다.
그나마 김현철, 유현 그리고 이순규가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놓칠 뻔했다.
“으…….”
“으아…….”
하여간 일행은 겨우겨우 처치실로 라드를 끌고 들어왔다.
‘시설이 그래도 괜찮아.’
말이 처치실이지, 거의 수술방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수술할 게 아니고 부검할 거다 보니 별 부담도 없었다.
‘해부학적 기억도 갱신할 겸…….’
유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칼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