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서북쪽으로 (2)
목적지인 보건소로 향하는 길은 고요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보단 그냥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부재가 더 커다란 이유일 터였다.
‘야생 동물도 수가 많이 줄었겠지?’
도시에서의 라드와 시골에서의 라드는 그 행태가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애초부터 라드는 인간을 감염의 대상으로 보지, 식량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으니까.
물론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 동족끼리도 포식을 하는 만큼 인간도 먹고 있긴 했지만.
시작은 그러했다.
‘너무 조용하니까……. 기분이 안 좋군.’
유현은 적막한 도로를 걸으며, 뒤쪽을 경계했다.
지금 당장 어떻게 될 리가 없다는 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라드 무리라 해도, 산재해 있는 라드를 한 번에 다 처리할 수는 없지 않겠나.
개개인의 신체 능력은, 이것조차도 추정에 불과하지만, 원래의 라드들이 더 나을 터였다.
‘1세대, 2세대라고 해야 할까? 아니……. 아냐. 이 현상이 다른 장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야 해.’
얼굴은 무슨 베테랑 군인처럼 하고 있는 주제에 떠올리고 있는 생각은 그저 학자의 그것이었다.
두두두
그때 쥐들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사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 이순규가 걸음을 멈추어 섰기 때문에, 다들 얼굴을 굳히고 멈추었다.
“뭐야?”
“근처에…… 있어.”
이순규는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가 퍼져 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나는 차이를 모르겠단 말이지…….’
무리를 이루는 놈들과 그렇지 않은 놈들.
이순규로서는 도저히 분간이 불가했다.
그냥 같은 라드일 뿐이었다.
해서 지금 저쪽에 있는 것들이 어떤 종류에 해당하는 놈들인지 특정이 불가했다.
“간다……. 쥐들 덕분일 거야. 수가 많기도 하고.”
하여간 냄새는 멀어져 가고 있었다.
기껏해야 수백 미터 이내였을 테니, 사실상 위기가 물러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모두 10명이라고 해도, 전투원은 5명 정도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나마 최우식의 아내가 총 쏘는 법을 익히고 있지만, 아직은 최우식에 비해 낫다고 보긴 어려웠다.
그러나 상대는 그저 라드 아홉 개체라 여기고 있을 테니 물러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휴. 근데…… 이 근처에도 있기는 있구나.”
“어쩌면 우리 있던 곳에서 넘어오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어. 우리만 위험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 테니까.”
“아. 그렇겠네.”
확실한 위협이 있지 않았나.
무리를 이룬 라드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매일 새벽 몰려와 반드시 라드 몇을 끝장내고, 심지어 그것을 도로 위에 전시해 놓고 가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그 근방 라드들의 포식으로 끝났다.
죽어 있는 동족이 있으니 그냥 먹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 일이지, 같은 일이 반복되자 아무리 저지능 개체라 해도 이상함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그럼……. 그쪽도 마냥 안전하지는 않겠군요.”
침묵을 지키던 이진호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사실 어렴풋이 느끼고 있긴 했다.
그가 즐겨 있던 만화책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지 않았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더 나은 곳, 더 지속 가능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라 자위를 해 보지만 그들은 명백히 도망치고 있었다.
무리를 이룬 놈들을 피해.
그리고 부족한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일단 포인트까지는 왔어.”
그 말에 대꾸는 없었다.
이순규는 답을 해 주는 대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곳을 가리켰다.
마을 회관이었다.
‘평기’라는 지명이 쓰여 있었다.
한때 수십 명 정도는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작은 마을을 끼고 지어진 벽돌 건물이었다.
지금?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쉬었다 갈까? 아니면…….”
유현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쭉 가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쉬고 싶기도 했다.
기껏해야 한 시간 걸어 놓고 이게 무슨 꼴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적진 한가운데를 걷는 기분으로 걷는 한 시간은 분명 산보랑은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일행은 이런저런 짐을 잔뜩 짊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쉬었다 가죠. 어차피 이 근처는 안전하지 않습니까?”
오예리가 말하자,
“어휴.”
김 주무관이 기다렸다는 듯 짐을 내려놓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일행의 행선지는 결정되었다.
물론 바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우선 짐을 놓고, 총을 든 이순규, 유현 그리고 김현철 소위가 건물로 향했다.
나머지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끼이익
열린 문틈을 통해, 먼저 들어선 것은 역시나 이순규였다.
어지간한 신체적 위해는 무시할 수 있는 체격의 소유자인 데다가, 일단 라드이지 않나.
공격당할 가능성조차 제일 적었다.
“없어. 네가 걸어 둔 샤프심. 지금 부서졌어.”
“좋아. 들어가자.”
유현이 안배해 두었던 허접한 안전장치가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한 일행은 우선 안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일행을 반겼다.
그러나 맨몸뚱이로 밖에 있다가 벽돌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온 참이지 않나.
심지어 창문도 전혀 깨지지 않은 채였다.
“휴.”
“후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한숨을 쉬며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이 와중에도 쉴 수 없는 이들이 있기는 했다.
바로 이순규, 유현 그리고 오예리 등이 그랬다.
셋은 위로 올라가 창가에 자리했다.
혹 따라붙는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서 그랬다.
‘아이…….’
셋은 지민을 떠올렸다.
우식의 아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이는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아니,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현처럼 덩치가 원래 커다랬던 사람조차 라드에 비하면 작은 축에 속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나.
“일단은 조용해.”
“후.”
“노인네들은 괜찮겠지?”
이순규의 말에 유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 지나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세상이지 않나.
심지어 두 노인은 노쇠했고 무기라고 해 봐야 낫과 같은 날붙이가 다였다.
만약 건장한 라드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단번에 무너질 터였다.
“그래. 그렇지.”
이순규도 유현의 생각에 십분 동의했기에 별말을 이어 나가진 않았다.
그렇게 침묵 속에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했다.
누군가는 가져온 간단한 스낵을 먹기도 했다.
그래 봐야 제대로 된 요리는 아니었다.
그저 단백질 바와 같은 것을 먹을 뿐이었다.
“자, 슬슬 다시 갈까요?”
30분가량이나 지났을까?”
유현이 제일 먼저 몸을 일으킨 후, 1층으로 내려왔다.
늘어져 있다가 이런 말을 하면 별 설득력이 없었겠지만, 일행 중 유현처럼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있던가.
심지어 벌써 몇 번이나 위험을 감수하고 밖으로 나돌지 않았나.
지금 목표로 삼은 보건소도 유현이 찾아낸 것이었다.
물론 이순규야말로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밖으로 나갔지만, 아무래도 생김새 때문에 그의 헌신보다는 유현의 그것이 더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네.”
“그러죠.”
“지민아, 가자.”
“네.”
아이조차 유현의 말이라면 찍소리하지 못했다.
끼이익
일행은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좁은 도로를 걷기 시작했다.
작은 하천 건너편에 원래 그들이 따라 걷던 도로가 보였다.
그쪽은 딱 봐도 시골치곤 꽤 번화한 읍내였다.
‘저기서 뒤질 뻔했지.’
유현은 딱히 반갑지 않았던 조우를 떠올렸다.
저곳엔 라드가 있었다.
수는 적었지만 다들 거대했다.
지들끼리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 온 상황이 아니었다면, 일행은 거기서 죄 죽었을 수도 있었다.
부상 입은 놈은 역으로 당해 죽기까지 했지만.
놈이 멀쩡했다면 어땠을까.
‘시골은 절대적인 수는 적어도……. 살아남은 젊은 개체들은 위험해.’
몸을 부르르 떨며 옆을 보니, 오예리 형사 또한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괜찮아요?”
유현에게 그녀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지 않나.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이자, 버팀목 중 하나였다.
“아, 네. 저보다는 양재원 선생님이…….”
“아, 저놈.”
그에 비해 재원은 어떨까.
단순히 제자라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객관적으로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 같았다.
하필 처음 밖으로 나간 날 갔던 곳이 저기라 더 그렇긴 할 터였다.
지금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야.”
“네?”
뭐가 되었건 이놈은 의사였다.
충직한 놈이기도 했고.
유현은 그의 어깨를 잡아 주었다.
“우리 가는 곳은 그런 놈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기껏해야 2, 3킬로 남짓 떨어져 있는 곳이라 언제든 공격당할 수도 있단 말은 하지 않았다.
저지능 개체인 데다가, 아직 지들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놈들이니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거란 계산이 있었다.
게다가 라드는 이런저런 은폐물이 가득한 도심에서 제일 무서운 법이었다.
사방이 뚫린 개활지에서, 그것도 일행이 건물 안에 있는 상황이라면 훨씬 나을 터였다.
‘크면 총에 맞을 부위도 넓으니까 뭐.’
유현이 속으로 어떤 살벌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는 재원으로서는 할 말이 별로 많지 않았다.
“네네. 뭐……. 그렇겠죠?”
“그래. 어찌 되었건 우리 정도면 상황이 나쁘진 않은 거야.”
“네. 하지만…….”
재원은 속으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더 멀어지고 있어……. 이 사태가 해결이 될까.’
원래 목적은…….
그러니까 일행이 세종시에 자리한 이유는 바로 연구를 이어 나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물론 서울과 멀어질수록 안전해질 거란 계산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재원은 거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서로 말은 안 해도 이미 포기했다는 얘기 아니겠나.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지금 일행이 걷고 있는 방향은 명백히 북쪽이었다.
그래 봐야 거리가 얼마 되지는 않지만.
서울과 가까워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남산은 온전히 남아 있을까.’
그 비슷한 생각을 유현도 하고 있기는 했다.
이 사태가 지속되면, 세상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지금처럼 삶을 지속해 봐야 도망자의 삶 아니겠나.
유현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건 문명사회에서 잘살기 위함이었지, 이렇게 구차한 삶을 연명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일단 보건소 맞은편 마을 회관에 있는 장비를 활용해 봐야겠지.’
거기엔 라디오로 쓸 만한 장비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엄청 답답하기야 하겠지만.
하여간.
“저기 보인다.”
그때 이순규가 앞을 가리켰다.
보건소가 눈에 들어왔다.
3층 건물.
원래 있던 곳보다도 더 낮은 건물이지만 이 근방에는 건물이랄 것도 적어서 그런가, 엄청 높아 보였다.
“아.”
“휴.”
다시 한 시간여를 걸어온 일행 중 일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뻔질나게 밖으로 나돌던 이들은 오히려 긴장의 끈을 끌어당겼다.
“이제부터가 위험합니다. 전에 왔을 땐 아무것도 없었지만……. 모를 일이에요.”
하다못해 들개만 해도 위험한 존재였다.
해서 일행은 다들 총을 앞세운 채 마을로 진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