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테크노 마트 (2)
네안데르탈과 호모 사피엔스.
이 얘기를 창조론자인 정유현이 했다는 것이 꽤 역설적이긴 했지만.
정유현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습득하는 걸 즐겨 했고 또, 다른 측면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에도 능한 편이었다.
하여간 김태평은 당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이 숨 막히는 침묵을 견디고 있었다.
‘각 개체별 지능은 오히려 네안데르탈인이 더 위였다고 하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은 추정이기에 더 높았다고 치자에 가깝다고 보면 되었다.
그러나 그럴싸한 이야기는 그것이 단지 이야기에 불과하더라도 가치가 있는 법.
‘두 종의 운명을 가른 건……. 집단생활이라고 했어.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
당장 김태평 본인만 해도 개인 전투 능력은 대한민국 최상위에 속한다고 자부하지만, 성인 남자 셋만 모이더라도 이렇다 할 무기가 없으면 도망쳐야 할 터였다.
그 모인 놈들이 라드들이라면 어떨까.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신종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도 없는 놈들은 단지 모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능 자체도 이전 개체들에 비하면 높아 보였다.
‘그놈들이 여기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지.’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며 대위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저 인간은 대응법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아서 그랬다.
과연 침묵을 깨고, 다시 입을 연 사람은 대위였다.
사실 그에게만 자격이 있기도 했다.
같이 온 중령은 나가리가 되어 버렸으니까.
“우선은 내려가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놈들의 행동 양식에 대해 더 얘기하기 전에 보여 드려야 할 것이 있어요.”
“아, 네. 근데 저 중령은…….”
“지휘 능력은 저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배제하도록 하죠.”
“네, 그렇게 하시죠.”
아니, 이제 확실히 배제가 되어 버렸다.
중령은 그렇게 이빨 빠진 호랑이 아니, 들개가 되어 회의실에 남게 되었다.
총 든 군인 둘과 함께였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리 평탄한 시간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이미 테크노 마트에 주둔하고 있는 군은 대위에 의해 사유화된 지 오래인 것으로 보여서 그랬다.
‘대단한데.’
김태평은 젊은 사람이 어찌 이런 카리스마를 갖출 수 있게 되었을까를 궁금해하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대위의 뒤를 따랐다.
어둑한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곳에 있는 이들은 죄 익숙한지 그 누구도 발을 헛디디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망설이는 이조차 없었다.
그에 비해 김태평 측은, 심지어 훈련받은 요원들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을 더듬어야만 했다.
‘좋지 않아…….’
잘 훈련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훈련이 가능할까?
그렇다기보다는 다들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일 터였다.
24시간.
그 말은 곧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 김선태가 이끄는 부대원들만 봐도 그렇지 않나.
현시점 대한민국 최정예들일 텐데, 오히려 일상에서는 느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음?”
하여간 2층으로 내려가니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졌다.
사실 아까부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싶었는데, 바람에 의한 소리였던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었나? 아닌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닐 텐데.’
백번 양보해서 4층 이상은 어지간한 라드들이 한 번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할 곳이다 보니, 창문을 열어 둘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2층은?
여긴 여차하면 들어올 수 있을 터였다.
“아.”
의문은 딱 창가에 들어서자마자 풀렸다.
“며칠 전부터 이 지경입니다.”
대위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했다.
창문이 여기저기 깨져 있었으니까.
“밤이 되면……. 놈들이 여기에 돌을 던져요. 경비 서는 이들이 총을 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어둡기도 하고…… 은폐까지 하는 데다가……, 한둘이 나서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이 쉘터의 분위기가 이렇게 되고 말았지요.”
2층에 있는 이들은 전부 군인들이었다.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매일 밤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겠구만.’
실로 악랄한 전법 아닌가.
이건 단순히 집단을 이루었다 정도의 위협이 아니었다.
상대는 고도의 지능을 갖추고 있을 것이 뻔해 보였다.
거기에 더해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을 터였고.
‘이건 교수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 같은데…….’
김태평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창가로 다가가려는데, 대위 옆에 있던 병사가 달려와 말렸다.
처음엔 기습인가 해서 대응하려 했으나 대위의 말이 있어 손을 멈출 수 있었다.
“창가에 붙으면 위험합니다. 낮에도 돌멩이가 날아오거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바닥에 핏자국이 보였다.
“괜히 여기 그냥 책상만 밀어 둔 게 아닙니다. 어디서 날아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창가에 사람 보이면 갑자기 날아옵니다.”
“사상자도 있었습니까?”
“네. 첫날……. 꽤 다쳤죠.”
다쳤다라.
이 정도로 핏자국이 남은 걸 보면 아마 죽은 사람도 있었을 터였다.
이만한 무리에 의사 하나 없기야 하겠느냐만, 생각보다 의사들은 기구나 약이 없으면 무력한 존재들이지 않나.
정유현이나 청와대처럼 미리 준비할 수 있었다면 모를까, 맨몸뚱이 하나 덜렁 들고 도망친 이들이라면…….
‘없는 거보단 나아도 기대하는 만큼의 도움을 주기란 어렵겠지.’
김태평은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다.
단지 라드들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대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새끼…….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지 않았나?’
바깥으로 나갔던 분대 한둘이 실종되었다고만 말한 참이었다.
그래서 식량 보급이 어려우니 도움을 달라, 할 수 있으면 식량도 좀 들고 오고 뭐 이런 수준의 요청을 받았다.
‘권력을 뺏길까 두려운 거로군…….’
애초에 통신이 거의 끊긴 마당 아닌가.
청와대에서조차 이쪽의 정보는 이쪽에서 제공하는 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흐음…….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태평은 복잡한 속내를 감추고 일단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너무 오래 침묵을 지키면, 의심을 사기 십상이라는 걸 잘 알아서 그랬다.
게다가 상대는 이미 권력자였다.
권력이라는 괴물에 먹힌 인간.
그 정점에 선 인간이 지금 청와대에 있지 않나.
그런 놈들은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안 될 일이었다.
“우선은 경계를 단단히 하고……. 밖으로 정찰을 나가 놈들이 과연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해야겠죠.”
대위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저 얼굴만 보면 이 사태가 어떤 사태건 간에 해결이 가능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만만한 미소였다.
그러나 김태평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우리를 흡수할 생각인가 본데……. 중령은 살아남기 어렵겠어.’
라드들을 상대할 생각으로 왔더니, 안에도 적이 생긴 마당이었다.
서로 협력해서 전력으로 상대해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이 지랄이라니.
‘나라도 살아야겠는데…….’
기회를 엿봐야 했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컸으니까.
라드들이 계속 돌을 던지고 있다는 거……. 보기에도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볼수록 가벼이 여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대규모 습격이 있을 수도 있어.’
이쪽에서 염탐을 나갈 거라고 하지만, 역으로 저쪽에서 염탐 중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명심하세요. 라드는 좀비가 아닙니다.
정유현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라드는 좀비가 아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
지능이 있는 것들.
개체별 격차도 꽤 심하고…….
-또 다른 인간 집합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어쩌면 또 다른 종이라고 봐도 좋을 터였다.
호모 사피엔스의 위기일까.
김태평은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피곤하실 테니……. 일단 쉬시죠. 밤에 또 습격이 있을 테니 분위기도 보시고요.”
“아,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뇨, 와 주셨는데 제가 감사하죠.”
대위는 김태평의 속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숙이곤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병사들이 다가와 김태평과 그의 부하들을 이끌었다.
안내받은 방은 7층에 있었다.
5층과 6층엔 일반 거주민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리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우선 냄새가 났다.
‘당연한 일이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저만한 무리를 이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여긴 좋은데요?”
그에 비해 7층은 꽤 쾌적했다.
무엇보다 물이 나왔다.
-해당 층에서만 나오는 것이니 함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할당량도 지켜 주시고요.
아무래도 아래층에는 제한을 두거나 시설을 망가뜨렸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대우를 해 주긴 해 준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김태평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우리는 다 모여 다녀야 해. 알겠지?”
“아, 네.”
“이곳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느꼈을 거야. 그렇지?”
“네. 확실히……. 청와대 측하고는 다릅니다.”
청와대에 있는 놈도 또라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자는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왕이지 않았나.
이를테면 타고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얘긴데, 그 덕분에 오히려 초조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쪽의 대위는 어떤가.
나이도, 계급도 비교가 안 될 지경이었다.
그렇다 보니 상당히 통제가 심했다.
적어도 모든 구성원이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게 불 보듯 뻔했다.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야 하나?’
청와대.
그곳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제일 상황이 좋은 곳인 건 맞을 터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있었다.
권력에 미쳐 버린 인간.
‘정유현에게로 갈까……. 그것도 모험인데.’
그렇다고 유현에게?
세종시까지 갈 수나 있을까?
‘우선 상황을 보자.’
김태평은 판단을 잠시 유보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잘 수 있을 때 자 두자고.”
“경계는 불필요할까요?”
“어차피…… 저쪽에서 적대적으로 나오면 이 인원으로는 대응 못 해. 괜히 의심이나 살 거야. 그냥 자.”
“네.”
말이 침대지 그냥 매트리스였다.
물론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딘가 싶은 상황이어서, 다들 군말 없이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날이 어둑해졌을 때 즈음 눈을 떴다.
자의는 아니었다.
-쏴! 쏘라고!
-투시경 보급됐잖아! 그걸 써!
사방에서 고함이 들려오고 있었다.
흡사 전장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온 건물을 뒤덮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어찌 김태평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우리도 나가자.”
“네.”
해서 밖으로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위와 마주할 수 있었다.
“점점 수가 느는군요. 대응 사격을 해야 합니다. 한둘이라도 줄여 놓으면 의미가 있겠죠.”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태평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내면의 두려움을.
다만 헷갈리는 건, 그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였다.
‘라드냐……. 아니면 권력의 손실이냐…….’
전자라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 텐데.
후자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튀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협조 없이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차는 몰 수 있어야만 했다.
맨몸뚱이로는 세종은커녕 서울도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