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변이 (3)
“팀장님, 잠시만.”
“왜.”
김태평은 팀원의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울 시내에 있었으니까.
“이걸로 될까요?”
팀원은 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냥 조끼만 입은 게 아니라 팔과 다리 그리고 헬멧까지 쓰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팀원들 중엔 방패를 들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특수 합금에 강화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터라 어지간한 총으로는 뚫기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팀원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일단……. 정황만 보는 거야. 낌새가 이상하다는 보고가 있었잖아.”
김태평은 아직까지도 토사구팽의 덫에 걸려들지 않은 채였다.
정부 측에서 그만큼 가용할 만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서는 여전히 프로파간다를 설파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정말이지 대단한 놈들이었다.
“정황만 보는 게 될까요? 요새…… 확실히 좀 이상합니다.”
팀원은 불안해 보였다.
김태평도 사실 그랬다.
‘강변 테크노……. 거기가 공격당하고 있다, 이 말이지.’
사태의 피해는 예상을 훨씬 웃돌다 못해 궤멸적이었다.
이건 청와대에서도 아마 예상을 하진 못했을 터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자기의 알량한 권력을 위해 나라를 날려 버릴 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면 했으니.
하여간 때문에 정부는 생존자들이 자체적으로 구축한 은신처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서울엔 사람도, 이런저런 물산도 많다 보니 라드의 숫자도 많았지만 생존자의 수도 많았다는 점이었다.
그중에서도 강변 테크노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군대도 그쪽으로는 진입을 일찌감치 했었어.’
거대한 건물이면서 동시에 유동 인구가 적었다 보니 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실제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리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 그곳은 강변뿐 아니라 강동 일대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정부 측 인원의 가족이나 협력자 중 강동 그리고 그 주변 일대에 사는 인원들은 그쪽에 남아 있었다.
‘박원상 교수의 아내도 거기 있는데…….’
헬기를 이용하면 이송이 가능하지 않냐는 말은 일찌감치 씹혔다.
헬기 이착륙장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옥상에 떡하니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동안 모든 헬기는 정황 파악과 식량 수송 그리고 기타 등등의 임무에 할애되어 있었다.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에 있는 이들의 가족은 모두 청와대로 이송되었다.
그건 특수 작전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게 그들의 해명이었다.
아니, 사실 해명을 할 필요도 없었다.
‘박원상은 아예 알지도 못하지.’
남산에 있는 인원은 반쯤 팽 당한 참이었다.
김태평이 알기로는 거의 폐기 직전까지 갔었다.
사실 폐기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프로파간다용으로나마 써먹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와 연명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니 가족들이야 뭐 중요 요인으로 취급이 되었겠나.
버림받은 지 오래였다.
그나마 그 전에 시설로 이송이 된 게 용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방어 인원이 있는데, 왜 우리까지 가야 하냐 이거지?”
“네? 아, 네.”
“그렇긴 한데……. 우리처럼 장비가 좋지는 않을걸. 게다가 거기로 간 부대 대부분은 지휘관도 없어. 딱히…… 시설 이끄는 사람도……. 공식적으로는 없고.”
김태평은 그런 말을 하면서 앞을 바라보았다.
이미 망가진 지 오래인 도로 위로 장갑차와 탱크가 내달리고 있었다.
옆으로는 탱크가 밀어낸, 차량들이 즐비했다.
원래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인도였을 곳은 전부 차량 또는 그 잔해가 차지하고 있었다.
“어! 군인이다! 이봐! 살려 줘!”
과연 서울은 서울이었다.
어디서 이렇게들 살아남았는지.
완전히 폐허가 된 곳에서도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외침에 응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김선태가 이끄는 부대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고, 김태평 쪽도 한둘 정도가 고개를 돌렸을 뿐 실제로 뭘 하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느낌이 안 좋긴 해…….’
김선태는 명령을 하달받고는 별다른 의문도 없이 그냥 움직였다.
언제나 그렇듯 기계 같은 놈이었다.
별일 없을 거라 여기는 듯했다.
사실 통신이 맛 갔을 가능성이 제일 크기는 하지 않던가.
비록 사태 이후 테크노 마트에 가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청와대 그리고 그 인근에서 라드들을 대규모로 살상해 본 경험이 있는 김태평으로서는 요새화된 곳을 저 라드들이 어찌해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일랑 들지 않았다.
‘근데 왜 가슴이 이렇게 뛰지.’
그러나 가슴이 뛰었다.
두근두근.
의식하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이나 빠르고 강하게.
직감이라고 부르는 현상인데, 현장 요원 중에서는 그 누구도 이걸 비과학적인 일이라 무시하는 이는 없었다.
“아, 저기.”
하여간 가다 보니 테크노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나들이 나온 이들로 가득했을 한강 공원도 그랬다.
지금?
지금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라드들은 나들이 따위 즐기지 않으니까.
그렇다고 좀비들처럼 무지성으로 밖을 나돌지도 않았고.
“선두 멈췄습니다.”
“신호…… 보내고 있을 거야.”
낮에도 선명히 보일 만큼 강한 광량의 전등을 켰다 껐다 하고 있을 터였다.
물론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칠 수도 있겠지만, 가뜩이나 탱크네 뭐네 끌고 와서 소음을 일으킨 마당에 사람 말소리까지 들려주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라드들에게는 이성과 두려움이 있어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일은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식량이 부족해진 지금이라면…….
총알이 부족해질 수도 있었다.
정부에서 추산한 살아 있는 라드의 수는 이곳 서울에만 400만 이상.
그런 대군을 견뎌 낼 수 있는 군대는 없다고 봐야 했다.
“무전 들어옵니다. 뒤따라서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래, 일단 가자.”
테크노 마트에 거주하고 있는 인원은 물경 천 명을 헤아릴 터였다.
삼성동에서 원래 들어왔던 길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도주한 군부대도 이쪽에 있을 테니, 병사들만으로도 수백은 되지 않았을까?
‘두근거림이 가시질 않는데…….’
제아무리 지휘관이 없다고 해도…….
총은 생각보다 만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특히 어떤 한 자리를 지키려고 마음먹은 군대가 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그보다 화력이 우위에 있지 않은 이상 진입은 어렵다고 봐야 했다.
그런데 대체 뭐에 겁을 먹어서 지켜 달라는 요청을 한 걸까.
부우웅
그사이 장갑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위에 따라와 있던 헬기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저 위에서 지금의 서울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었지만, 의미 없는 생각이지 않겠나.
유사시에 사람이 아니라 이곳의 물자나 나를 생각이나 하고 있을 게 뻔했다.
너무 심한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럴 터였다.
뻔하지 않나.
개새끼들.
“우리도 가자.”
“네.”
뒤처지면 안 될 일이었다.
원래 같았으면 사실 별 상관없을 텐데, 최근 들어 이상했다.
거리 분위기가 스산하다고 할까.
얼마 전에는 정찰 나갔던 인원이 실종된 적도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 든 인원 넷, 그것도 김선태에게 훈련받은 인원이 죄 사라지다니.
‘뭔가……. 이상하단 말이지.’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따랐다.
나름 거대한 곳이다 보니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시설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빨리, 빨리!”
무장 상태도 꽤 괜찮아 보였다.
일단 서 있는 이들이 죄 군복에 총을 메고 있었다.
안에 총알이 얼마나 있는지야 알 수 없었지만.
하여간 괜찮은데…….
‘겁을 먹었군.’
얼굴이 별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겁먹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청와대 주변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그쪽은 뭐랄까.
희망에 가득 차 있다고 해야 할까.
요사이 좀 이상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드르륵
김태평의 뒤에 있던 장갑차까지 들어오자, 문이 닫혔다.
전기를 이용해서 닫았는데 철문이다 보니 꽤 단단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이 닫히자 곁에서 지키고 서 있던 인원 전원이 부리나케 움직여 그 뒤에 바리케이드를 깔고 있었다.
저래서야 나중에 돌아갈 때 대체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싶을 지경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보내 줄 생각이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 곤란한데.’
김태평은 여러모로 청와대 쪽과 비교하면 처지는 이곳을 돌아보았다.
전기가 들어오긴 하는데 간간이 들어오는 정도라 불도 어두침침하니 전체적으로 좀 음울해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지하 주차장에서 위로 이어지는 길은 딱 하나로 나 있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쪽에서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나머지 공간은 온통 바리케이드와 차 그리고 잡동사니로 막혀 있었다.
이상한 건 그리 오래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먼지가……. 저 꼭대기에도 그리 많지 않아.’
김태평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주변을 살폈고, 나름대로 정보를 취합했다.
분명 최근, 그것도 며칠 사이에 쌓은 것들이었다.
저렇게 급하게 움직여야 했을 정도의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었다.
‘교수는 뭐라도 알고 있을까.’
박원상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말이 교수지, 그 새끼는 아는 게 없었다.
아니, 아는데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고.
그에 비해 정유현은 한정된 정보를 통해서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아내는 사람이지 않나.
‘연락이 돼야 말이지. 설마 어디 가서 뒤지진 않았겠지.’
김태평은 그런 생각을 하며 층층이 위로 향했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리 높이 올라가지는 않았다.
그마저도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은 훤히 내다보였다.
계단 끝, 그 자리에 서 있던 것은 대위였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대위.
“안녕하십니까, 중령님. 그리고……. 요원이시죠?”
“네.”
함께 온 중령은 대위가 경례할 때까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멍청한 놈.’
이제 와 계급이 뭔 소용이란 말인가.
이미 이쪽은 다른 나라라고 봐야 했다.
눈앞의 대위는 그 나라의 지도자고.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주변에 도열한 인원들.
그들 중에는 민간인들도 있었으나, 누구 하나 까부는 이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김태평입니다. 편하게 김 팀장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네, 그러죠. 이쪽은?”
그리고 대위 또한 이미 권력을 부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자연스레 소개를 강제하고 있었다.
중령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상한 짓 하면 말려야겠네.’
방식은 폭행이 될 수도 있었다.
김선태.
그 망할 놈만 아니라면…… 현 집행부에서 김태평의 상대가 될 만한 놈은 없을 터였다.
“박중근이요. 박 중령이라고 불러 주면 되오.”
다행히 그렇게까지 멍청한 놈은 아니어서 때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김태평에 비하면 첫인상은 별로였을 터였다.
아마 이곳의 상황이 좋았다면 내쳐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위는 문제 삼지 않았다.
“네,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일단……. 지금 상황을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급한 것은 그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