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변이 (2)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한국대학교 병원 박원상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볼까 합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세종시에서는 라디오만 송출되고 있었지만.
서울은 달랐다.
TV가 나왔다.
전기도 통하고 있었고.
물론 공습에 의해 초토화된 곳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서울은 몇몇 밀집 지역을 제외하고는 정밀 폭격만 이루어진 참이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박원상입니다.
-이 라드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 중이신 걸로 아는데……. 좀 성과가 있으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같이 나오신 김조은 박사님과 함께 연구 중입니다. 백신과 더불어 치료제도 나올 예정입니다.
김일용 형사는 욕쟁이 배달 기사 아니, 배달 기사였던 김순구 그리고 그 후배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딱히 뭐 박원상 교수나 이 방송에 대해 미련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폭격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있던 지역과는 별 상관이 없었기에, 밖으로 나가는 것은 여전히 위험한 일이었다.
당연하지만 군의 접근도 아직까지는 전혀 이루어지고 있지 못했다.
-백신과 치료제요? 그게 언제쯤 나올까요?
-아마 만들게 되면……. 세계 최초가 될 겁니다. 이번 라드 사태를 일으킨 바이러스는 변이의 속도가 워낙에 빠른데……. 그 중심이 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어려웠어요. 정부 차원에서 전적으로 돕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아……. 정부가 어떤……?
-대통령께서 이런 일을 예상하신 건 아니겠지만, 팬데믹 사태에 대비해 연구실을 서울 시내 곳곳에 마련해 주고 계셨습니다. 그 덕에 오직 대한민국만이 제대로 된 연구를…… 이런 상황에서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인력도 많고요.
-아……. 그렇군요!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보다 보면 헛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김일용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 알고 있었으니까.
나머지도 그랬다.
“저……. 저 시발 놈 저거. 저 새끼가 그 새끼죠?”
김일용은 여전히 욕을 내뱉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는 김순구를 돌아보았다.
라드만 보면 조용해지면서 이 방 안에서만큼은 여포가 따로 없었다.
‘뭐……. 그래서 웃을 일이 있는 거지.’
김일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저놈이야.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지.”
“개새끼…….”
김순구는 여전히 욕을 내뱉고 있었다.
무의미한 욕설의 향연 속에서 조용히 있던 형식, 그러니까 후배 놈이 입을 열었다.
“근데……. 치료제나 백신이 개발된다는 게 사실일까요?”
“사실이겠냐? 저 새낀 나쁜 놈이라니까?”
“아니……. 그래도 정 교수님 말을 들어 봐도……. 일단 이런 사태를 일으키려고 한 건 아니었지 않아요?”
이들이 정유현을 사태 발발 이후 다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기엔 세상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단 한 블록만 지나기에도 벅찬 것이 요즘이었다.
그런데 세종이라니?
얼토당토않은 소리였다.
“통화상으로는 그랬지. 남산에 연구소 있다는 것도 사실이긴 하고.”
모든 소통은 홈페이지나 통화로만 이루어졌다.
그마저도 폭격 이후로는 다 끊어졌고.
때문에 이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단편적이었다.
그 와중에 정부 측의 메시지는 라디오 정도가 아니라 TV 쇼를 통해 때려 부어지고 있으니, 흔들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믿기는 어려운 일이야.”
김일용은 회한 어린 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번화가였다.
홍대나 건대처럼 발 디딜 틈이 없는 곳까지는 못되더라도,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더랬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휑한 거리엔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더 두려운 것은 저 골목에 가득한 건물 어딘가에 라드들이 득실거리고 있을 거라 점이었다.
“설령 나왔다 해도……. 저것들이 치료가 되겠어?”
그중 몇은 지금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니, 배회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저놈들은…….
‘이상해……. 원래 저렇게까지 똑똑하게 움직였던가?’
맨앞에 선 놈을 필두로 해서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저 경계 따위가 아니었다.
저건 탐색이었다.
사냥을 위한.
“불 껐지?”
“네? 아, 네. 요새…… 위험하잖아요.”
겁먹은 김순구가 평소와는 달리 욕설 하나 없이 답했다.
그러면서 커튼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형식이 그런 그를 말렸다.
“형. 괜히 이거 흔들려서 이목 끌리면 위험해요.”
“아, 그렇지. 하…….”
TV도 껐다.
어차피 용비어천가 저리 가라 하는 칭송만 가득할 것이 뻔하지 않나.
의미 있던 내용은 얼마 후 폭격이 있을 거라는 소식뿐이었다.
그나마도 여긴 폭격 지역이 아니라, 의미가 적었다.
그렇다면 혹 새어 나갈지 모르는 소리라도 줄이는 것이 나을 터였다.
“저기.”
“좋아.”
창문이야 원래도 열어 본 지가 오래였다.
그 때문에 안에 있던 이들은 김일용을 포함해 아무도 바깥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애초에 작은 목소리로 소통하고 있기는 했다.
라드 무리가 정말로 사냥에 나선 참이어서 그랬다.
두두두두
그러나 보이긴 했다.
사실 아주 잘 보였다.
일행이 숨은, 그러니까 김일용이 은신처 삼은 곳이 이 근방에서는 꽤 높은 편에 속하는 곳이라 그랬다.
세종시처럼 상권이 죄 죽은 곳은 아니다 보니 층마다 정리할 때는 진짜 개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안전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된 지 오래였다.
“아, 저기. 저기……. 사람 있는 곳인데. 오라고 할 걸 그랬나.”
“무슨 수로. 우리도 못 가는 곳인데……. 저기 있는 사람들이 올 수 있겠어?”
해서 일행은 창을 통해 라드 무리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단독 주택은 이 근처에 거의 남아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몇 있던 것들은 취약한 방호력에 의해 죄 털린 지 오래였다.
라드가 습격한 곳은 사옥이었다.
김일용을 따라온 이들이야 거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김일용은 나름 이곳을 잘 아는 터라 익숙한 건물이었다.
‘저기 무슨 출판사 있는 곳인데…….’
우선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창이 터져 나갔다.
용접기나 철판을 미리 준비하지는 못했을 테니, 창이 터져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 후로는 대비가 되어 있을 게 뻔했다.
이쪽도 계단을 틀어막아 두지 않던가.
아직 먹을 게 여유가 있다 보니 나갈 일이 없어서 거의 천장까지 닿도록 막아 두었다.
‘겨울……이 오면 나가야 될 수도……. 이럴 때 정유현 교수님하고 연락이 닿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김일용이 무용한 생각을 이어 나가는 사이 깨진 창을 통해 들어간 몸집이 작은 라드가 문을 열었다.
그러자 나머지 라드가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개새끼들……. 진짜 들개도 아니고 저게 뭐냐고.’
망할 것들.
옆을 돌아보니 김순구나 형식이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팔뚝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저런 것들이 돌아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일행은 이 건물을 정리하던 도중에 죄 죽었을 터였다.
각개 격파가 불가했을 테니.
와장창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창이 또 깨져 나갔다.
이번엔 1층 창이 아니라 4층 쪽이었다.
떨어져 내린 것도 돌덩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이미 죽어서 부딪친 건지 아니면 부딪치면서 죽은 건지는 몰라도, 땅에 떨어질 때 전혀 미동이 없었다.
“또……. 또 저러네.”
가서 본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놈들이 저렇게 나선 것이 여러 번이었다.
꼭 한둘은 본보기인지 뭔지 냅다 죽여 버리는 듯했다.
나머지?
나머지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공격당한 이들 중 일부는 저들의 일원이 된다는 점이었다.
“수가 늘었죠?”
“늘었어. 확실히…….”
딱히 김일용처럼 직감이 날카로운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김순구처럼 둔한 이조차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게……. 정유현 교수님이 말하던 바이러스의 진화인가?’
김일용으로서는 원인을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라는 건, 경찰 쪽 일에 한정되어 있기에 그랬다.
이런 사태에 대한 대비는 정말이지 터럭만큼도 되어 있지 못했다.
“저 봐. 또…….”
사옥 안에 있던 이가 모두 몇 명이었을까?
영원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알 수 없을 터였다.
하여간에 끌려 나온 이는 모두 넷이었다.
그중 셋은 이미 물렸는지 팔뚝께를 꾹 누르고 있었다.
맨 뒤에 있던 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무 상처 없이 끌려 나왔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저들도 최근 이 근처에서 벌어지던 일을 못 보진 않았을 테니, 어쩌면 곧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하여간 저렇게 아무 상처 없이 끌려간 사람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관찰력이 좋은 김일용은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먹이……. 나머지는 동료……. 대체 저게……. 저게 어떻게 되어 먹은 놈들이지?’
그래서 더더욱 강력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정유현에게 이런 말은 듣지 못했다.
잘난 TV 속 영웅 박원상이나 김조은 박사에게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 거리에 분명 존재하는 놈들이었다.
‘좀 더 있으면……. 무리가 스물을 넘어가게 될 수도 있어.’
스물.
무리 지어 다니는 라드가 스물.
군대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그걸 무슨 수로 당해 낼 수 있을까.
“일단 가네요. 저 새끼들 대체 어디서 지내는 거지?”
김순구는 뒤통수를 보이기 시작한 무리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형식은 명치께를 짚고 있었다.
속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마다 나름 불 켜진 집들이 여기저기 있지 않았나.
지금? 지금도 그리 줄지 않기는 했다.
차이가 있다면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 집은 모조리 창문이나 문 또는 벽이 무너져 있다는 점이었다.
“모르지. 그렇게 멀지는 않을 거야.”
“그럴까요?”
“아마…… 그럴 거야.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일용은 습관적으로, 마치 범인을 잡기 위해 애쓰던 때처럼 지난 시간을 더듬고 있었다.
그의 놀라운 기억력과 관찰력은 사진 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전 있었던 사건을 재조합해 냈다.
‘분명 처음엔……. 저놈들 나타났을 때……. 다른 놈들이 튀어나왔었어.’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더랬다.
라드가 또 다른 라드와 대립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이상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놈들은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지금은…… 나오는 놈들이 없어. 뭐지?’
다른 라드들을 본 게 언제였더라.
그래, 한 나흘은 된 거 같았다.
놈들이 대개 건물 안에 숨어 있긴 하지만, 하나둘 밖으로 나도는 놈들도 없진 않았으니 이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죽었나……? 아니면 쫓겨났나? 아무리 그래도 그쪽이 더 많기는 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