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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26화 (126/323)

126화 변이 (1)

창가에 다가선 이들은, 그중에서도 밖에 있다가 온 이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볼 때보다 위에서 보니 더 확연해서 그랬다.

확실히 저 무리는 배척받고 있었다.

뭔가 다르단 뜻이었다.

뭐가 다를까.

“순규야. 넌 모르겠어?”

“난……. 음……. 딱히…….”

“하긴 네가 이상한 걸 느꼈다면……. 그때 말을 했겠지. 기억에 없다면 별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는 걸 거야.”

“하지만 다른 라드들에게는 저놈들이 확실히 다르게 느껴지는 거 같아.”

경계는 노골적이었다.

무리는 결국,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고 다리를 건넜다.

도망.

그래 도망이었다.

라드들이 다른 라드들에게 밀려 도망을 가다니.

‘행동 양식이 전혀 달라.’

나머지 라드들은 그렇게 뒷걸음질 치는 무리를 쫓으려다가 이내 돌아와서는 해산했다.

해산했다.

이 말이 중요했다.

역시나 저놈들의 집합은 즉흥적이었다.

딱히 동료 의식도 없었고.

같이 누군가를 공격하다가 무리에 있던 이가 다치면 오히려 놈을 사냥하던 놈들이지 않나.

‘저놈들은…….’

그에 반해 이제는 보이지 않게 된 저놈들은 어떤가.

가족?

거기까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무리의 양상을 보였다.

‘아니, 아냐. 거기까지 갈 것도 없어……. 사실…….’

마트 지하에 있던 놈들.

아마도 모자 관계였을 놈들.

그 둘의 관계 또한 기묘했다.

‘순규와는 달리…… 라드들은 생전의 기억 중에 수행 기억만 남는 것 같았어.’

1세대, 그러니까 박기태나 순규와는 다른 특성이었다.

이들은 죽었다 살아난 후에도 전두엽이 억제되었을 뿐,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다만 전두엽의 억제와 폭발하는 호르몬으로 인해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였을 뿐.

그러나 라드는…….

‘기억이 있다면 그럴 수가 없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대를 거듭해 내려오는 지식의 축적 그리고 그 지식의 습득, 즉 개인에 있어서는 기억일 터였다.

수락 마을에서 노인들은 기르던 가축을 잡아먹었으나, 추후 박원상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그들 중 대부분은 이미 기억이 흐릿해진 이들이었다.

기저 질환이 있었다는 얘긴데…….

라드는 그런 게 없어도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 모자는 달랐어. 음…….’

머리가 복잡해진 유현은 창가에 이마를 대고 서 있다가, 문득 그를 향한 시선을 읽어 냈다.

함께 밖에 나갔다 온 이들이 아닌 남아 있던 이들의 시선이었다.

최우식, 김현철, 김 주무관 그리고 최우식의 아내와 아이까지.

그들은 모두 설명을 바라고 있었다.

왜 하루가 지나서야 돌아왔는지.

그리고 병사는 어디에 갔는지 등등.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현은 질문이 들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일단……. 다 모였으니 말하죠.”

유현은 아까 방에 들어오면서 내려놓은 가방을 가리켰다.

“저건 식량이에요. 고열량식이라…… 딱히 건강에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먹을 시 약 8일. 아껴 먹는다면 그 두 배에서 세 배까지도 버틸 수 있는 양이에요.”

우선은 좋은 소식부터 말했다.

당연하게도 모두의 얼굴이 조금은 밝아졌다.

이대로 얘기를 끝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럴 수는 없었다.

“안 좋은 소식은……. 보셔서 아시겠지만 김병규 이병을 잃었습니다. 공격이 있었어요. 아까 보신 그 네 명……. 라드 무리가 우리를 공격했어요.”

“네 명의 무리라고 하셨죠…….”

“네.”

김현철은 여전히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은신처에 평화로이 있지만, 그도 한때는 지옥에서 탈출한 전력이 있는 이 아니던가.

“무리를……. 무리를 이뤘다면 전 살아서 오지 못했을 거 같은데요.”

김현철은 사단을 떠올렸다.

분명 라드들은 살아 있는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날뛰었다.

그러나 체계적이진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처럼 잡아먹거나 하진 않았지만.

유현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돌이켜 보면, 로이드 레이지(Roid Rage,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성격이 난폭하고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의 강화 버전으로 생각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네, 그렇죠. 이놈들이 변한 거 같습니다. 방금 보셨듯……. 지들끼리도 반목하잖아요?”

유현은 수라장을 거쳐 온 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김현철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도 무서운데, 무리를 이룬다고?

“아직 저게 우세종은 아닐 겁니다.”

그 반응을 보며 유현은 본인의 추측을 잠시 감추었다.

어쩌면.

저 다리 너머의 우세종은 무리를 이루는 놈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

폭격 덕에 대다수가 죽었을 테지만, 살아남은 이들 중에는 저런 놈들이 꽤 있기는 할 터였다.

“저거 하나밖에 없잖아요. 여기는 그냥…… 뭐. 아사리판이죠.”

몰려나왔던 놈들의 수가 조금 줄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죽거나 잡아먹힌 놈들도 있지 않을까?

그 전에 여길 쳐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 이 은신처는 일종의 요새화되어 있었다.

아마 공격을 위해선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 놈들은 남은 놈들의 식량이 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우리한테는 잘된 일일 거야.’

초거대 개체가 또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알지 않았나.

라드는 그냥 가까이 있으면 그 자체로 위험한 놈들이었다.

절대적인 수를 줄이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그렇군요. 그럼…… 밖에 나가는 건…….”

“일단 이번 일로 알게 된 게 몇 개 있는데…….”

유현은 철장을 집어 들었다.

원래 같으면 활발하다 못해 공격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어야 할 쥐가 늘어져 있었다.

죽은 건 아니지만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유현의 쥐만 그런 게 아니라 대다수의 쥐들이 그랬다.

일부는 똥오줌을 마구 갈긴 놈들도 있었다.

“쥐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8시간이에요. 그걸 넘어가면 죽거나 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8시간.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은신처를 옮기는 데 있어서는 촉박한 시간이었다.

“물론…… 여러 마리를 들고 나가면 유독 오래 살아남는 애들도 있고, 또 여기 순규가 있어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딱 8시간은 아니지만……. 만 하루를 채 버티기 어려워요.”

만 하루.

이 또한 수색에 있어서는 충분한 시간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은신처를 통째로 옮기기엔 무리였다.

“앞으로는 그걸 염두에 두어야만 할 것이고……. 또 하나는 영상을 보시죠.”

유현의 말에 오예리가 폰을 켰다.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거의 끄고 지내는데, 어차피 통신은 마비가 된 지 오래다 보니 기록용으로만 쓰이고 있었다.

-피!

영상 속 유현은 피 칠갑을 한 채 병사를 살리려 애쓰고 있었다.

“역시 라드의 공격력은……. 어마어마합니다. 한 방에 이렇게 됐어요.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은신처 내였다면 모를까 밖에서는 대응이 어려워요. 그나마 닫힌 공간에서 싸운 건데도 그랬습니다. 열려 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잃었을 거예요.”

그리 오래 상영되진 못했다.

오예리 또한 유현을 돕기 위해 나서야만 했던 까닭이었다.

사실 이 뒤로는 수술이 아주 잘된단 느낌을 주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였지만, 하여간, 살리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점만큼은 어필할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무리의 존재입니다. 우세종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준비할 필요는 있죠.”

유현이 말을 잇는 사이 나머지는 한마디도 보태지 못했다.

알아 온 정보라고 하는 것들이 워낙에 심각한 것들이라 그랬다.

식량을 제외하면 죄 나쁜 얘기들이기도 했고.

당연하게도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져만 가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병사처럼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하여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불안한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었다.

“종합하면……. 앞으로는 바깥에 나가는 것이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어요.”

유현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실제로는 옥상에서 자라고 있을 채소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딱 그 정도 수준 아니던가.

심지어 이제 곧 겨울이었다.

추운 계절이 오고 있었다.

‘망할.’

거기에 있던 식량만이라도 다 가져왔다면…….

보릿고개 넘기듯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당장 유현부터가 지금은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지쳤다.

이대로 욕조에 몸을 누이고 쉬고 싶었다.

처음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고 오피스텔 생각이 이토록 간절히 난 것은.

“형.”

그렇게 해산하고 터벅터벅 걸어 침대로 향하려는 유현을 우식이 불러 세웠다.

돌아보니 심각한 얼굴이었다.

‘넌…… 아까 그 정도 소식 가지고 놀랄 사람은 아니지 않냐?’

최우식.

이놈이 대체 어떤 일을 겪어 왔던가.

결혼도 하고 애도 있는 놈 주제에 사태 발발 전부터 생명에 위협을 느껴 왔다.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유현은 자신이 특이한 인간임을 알기에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여간, 표정이 이런데 대꾸를 안 하기는 좀 그래서 답해 주었다.

“응. 왜?”

“잠시 얘기 좀.”

빨리 눕고 싶었다.

제아무리 유현이라고 해도 어제는 너무 힘들었다.

오는 길도 험했고.

아니, 정말로 죽을 뻔했다.

“형.”

근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옥상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몰려나와 있던 라드들은 이미 다 돌아간 후였다.

대신 느껴지는 건 부쩍 차가워진 바람이었다.

비가 와서 그럴까.

아니면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뭐가 되었건 별로 좋지 못한 일이었다.

“응.”

“이거…….”

우식이 내민 것은 라디오였다.

작은 라디오.

“왜 이걸……? 밑에도 있잖아.”

“뭔 소리 할지 불안해서 따로 듣고 있었지.”

“애 몰래 그게 돼?”

“요새 뭐…….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 붙잡을 사람이 있나.”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우울한 시대 아닌가.

아니, 우울하기만 한가?

참혹한 시대였다.

“하여간…… 원상이 형이 나오더라.”

“뭐?”

박원상.

유현의 친구.

그리고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

유현의 얼굴이 일그러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뒤따라 올라온 이순규의 얼굴 또한 그랬다.

자신을 토대로 만든 것이 이 라드임을 모르지 않아서 그랬다.

“뭐래?”

“슬슬 프로파간다 시작하는 거 같아. 일단……. 형이랑 같은 한국대학교 교수라고 말을 하고……. 이 사태에 대한 전문가로 얘기를 하고 있어.”

“거짓말은 아니긴 하지.”

“정부 측 입장에서만 얘기를 하고 있어. 뭐……. 방송 주체가 정부니까 당연하긴 할 텐데……. 하여간. 겨울이 오기 전에 폭격이 한 번 더 있을 거래. 이번엔 좀 더 정확하게 한다는데…….”

“그만한 여력이 있나?”

“모르겠어. 그러고 나서 서울부터 찬찬히 수복할 거라는데……. 가능성이 있을까?”

“가능성이라.”

있기야 할 터였다.

사실 건물이 무너진 상황에서 또 사살 명령이 내려진다면…….

제아무리 라드라 해도 군을 이기긴 어려울 테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때까지 과연 군이 제대로 남아 있냐가 될 터였다.

‘무리…….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게 군에게 문제가 될까?’

또 하나의 의문이 들었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일방향 소통만 가능한 상황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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