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위기 (3)
그것은 무리였다.
이순규가 총을 쥔 채 응시하고 있는 것.
그 끝엔 여러 개체의 라드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아니, 서성인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으니.
“모두 넷……. 저 중에 둘은 얼굴이 익어.”
“얼굴?”
이제 나머지 일행도 이순규의 시선을 따라 무리를 보고 있었다.
물론 이순규와 같은 것을 보고 있지는 않았다.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는 거리였으니.
게다가 어제 습격자들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더랬다.
깜깜하기도 했거니와 상황도 너무 급박해서 그랬다.
차라리 병사와 싸웠던 라드 둘의 얼굴이 훨씬 더 잘 떠올랐다.
“응. 어제 두 놈……. 총 맞은 놈들은 보이지 않는데…….”
“덩치는 그냥 그런데…….”
“하지만 달려들면 위험하긴 해. 총을 안 쏠 수가 없어.”
유현은 생각을 멈추고 이순규를 따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신도시답게 건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폭격 탓에 무너지거나 불타 버린 건물들도 많았지만.
굳건하게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은 그 자체로 은폐물이었다.
저 뒤로 얼마나 많은 수의 라드들이 있을까.
‘아니……. 많이도 필요 없지.’
숨어 있던 놈들이대여섯만 달려 나와도 위험해질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제 직접 겪지 않았나.
그리 크지 않은 놈들도, 무장이 변변찮은 놈들도 가까이서 붙으면 무서운 놈들이었다.
“따라 나오겠지……. 그럼 전멸인데.”
“다행히…… 달려들 거 같진 않아.”
“가만히 저기에 있을 거 같아?”
“아니, 그것도 아닌 거 같긴 해.”
이순규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유현도 처음엔 그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 보니, 뭔가 알 것도 같았다.
“따라오는 거야?”
“응. 천천히……. 우리 속도에 맞춰서.”
“공격하려고?”
“아니, 그런 거 같진 않아. 공격할 거면……. 아까 거기가 나았지.”
아까 거기.
유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들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무너진 건물로 인해 잔해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뿌려져 있다고 하면 크기가 작을 것 같지만, 무너진 건 오피스텔이었다.
20층은 되었을 법한, 그런 건물이었다.
잔해도 큼지막해서 은폐하면서 달려들었으면 대응이 쉽지 않았을 터였다.
해서 아까 엄청 긴장을 하며, 최대한 빠른 속도로 빠져나온 바 있었다.
“그러니까요. 그냥…… 일정한 속도로 따라오는 거 같아요.”
“이런 시발……. 우리가 뭘 어쨌다고.”
그러나 놈들은 그 엄폐물 더미도 그저 일정한 속도로 지나온 참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딱 일행의 속도에 맞춰서 걷고 있었다.
뛰어서 떨쳐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괜히 눈에 띄는 짓을 했다간 어찌 될지 모르니까.
이미 다리가 코앞이지 않나.
라드 밀집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가뜩이나 쥐들도 비실비실하고, 이순규도 냄새가 나긴 해도 약해졌다고 한 마당에 뛰어?
자살행위였다.
“이러다……. 우리 은신처를 놈들이 알게 되면 어쩌지?”
“제기랄……. 그렇다고 쏠 수도 없어.”
“그래, 그렇지.”
이순규는 은신처를 떠올리고 있었다.
저들 넷으로 거길 어쩔 수 있단 생각이 들진 않았다.
창문도 다 철로 용접해 막지 않았나?
뚫린 건 오직 4층뿐이었다.
초거대 개체라 해도 거기까지 올라올 수는 없었다.
몸으로 부딪쳐 봐야 골절이나 생길 터였다.
아무리 커져도 사람은 사람일 뿐, 고릴라는 아니니까.
‘하지만…… 찝찝한데…….’
그럼에도 불안감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놈들은 마치 늑대 무리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다가오면서, 유현 일행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약점이라도 드러나면 달려들어 물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저런 개체들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 아냐.’
유현은 이순규보다 깊게 추론을 이어 나간 참이었다.
그는 이순규에게 들었던 지성체를 떠올리고 있었다.
‘언어를 쓰고 있을까? 아니, 그런 건 아닌 거 같지만……. 하여간 전보다 진보한 개체야.’
지성체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이는 바이러스가 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였다.
이들의 진화 방향이 정해지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
만약 바이러스가 숙주의 지성 수준을 딱 적정한 수준에 맞추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가 대체될 수도 있어…….’
새로운 종이라 해도 좋을 지경 아니겠나.
물론 온전한 지성을 남겨 준다면 딱히 대체 되어서 나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그래 줄까?
그럴 리가 없었다.
철저히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이 바로 유전자니까.
저벅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유현은 사방을 경계하며 걸었다.
이쪽도 하수도가 막힌 것은 매한가지인지 길은 엉망이었다.
사방이 물길이었다.
구정물.
이제 벌레들과 바이러스 그리고 세균들의 온상이 될 터였다.
바깥의 라드들이 더러운 물웅덩이를 밟고 다녔다.
‘제기랄.’
어떻게 된 게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길게 보건 짧게 보건 그랬다.
그나마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건 앞뒤로 둘러멘 식량이었다.
무리한 덕에 적어도 일주일은 더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아니지. 병사가 없으니……. 하루 더 버틸 수 있을지도.’
유현이 식량을 두드리는 그 순간에도 라드 무리는 조용히 뒤따라오고 있었다.
손에 몽둥이 같은 것들을 들고서였다.
애초에 넷이면 라드 무리 중에서는 적은 편이 아니라 그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했다.
다만 경계하는 기색은 역력해 보였다.
“이상한데?”
“그러니까.”
전에도 한바탕 싸움이 벌어지긴 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약한, 다친 놈들이 와서 벌어진 일종의 사냥이었다.
일례로 그 싸움에서 벗어나거나 했던 놈들은 별문제 없이 원래 이쪽에 있던 놈들하고 뒤섞이지 않았나.
그 후로는 애초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전혀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저쪽은 좀 달랐다.
“우리한텐 잘된 일인데…….”
“그러니까.”
모든 라드들의 신경이 저 무리를 향해 쏠리고 있었다.
이순규, 유현 일행이 아니라 저 무리만 지켜 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현 일행을 따라온 라드 무리도 원래 이쪽에 있던 라드들을 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그 덕에 더 이상 뒤를 쫓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당장 싸움이 벌어지진 않았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왜 저러지?”
“모르겠어. 약해진 놈들도 없……. 냄새로 보면 같은 편으로 인식해야 할 텐데……. 딱히 흥분할 만한 일도 없었잖아?”
한껏 마음이 놓인 유현은 은신처로 들어가는 골목에 서서 이순규에게 물었다.
이순규 또한 무리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알 수 없었다.
저들이 왜 저러는지.
낯선 무리가 와서 그런다는 말도 설득력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당장 유현 일행부터 박살 났어야 했을 테니.
“일단은……. 들어가자. 다들 지쳐 있어.”
“어어.”
안전하게 하려면 빙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니까 저들 무리가 은신처를 아예 모르게 만들려면 그렇다 이건데, 그게 정말 지금 당장 안전할지 어떨지는 모르는 법이었다.
근거리에서라면 라드들이 약해진 쥐의 냄새를 확연히 구분할 수도 있을 테니까.
골목 사이에 있던 놈들이랑 마주치면 위험하다 이 말이었다.
해서 일행은 바로 은신처로 들어섰다.
철커덕
그리고 철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고 나서야 일행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왔어? 어땠…….”
그럼에도 표정은 가관이었다.
끔찍하다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
기다리고 있다가 혹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마중 나갈 생각이었던 최우식과 김현철 대위는 그런 일행을 보면서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병규……. 병규는 어딨지?’
김현철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음에도 그랬다.
뭔가 말 붙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까칠하다기보다…….
하룻밤 사이에 밖에 나가 있던 이들이 마치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일었다.
아니, 다른 존재라기보다는 여전히 밖에 있는 느낌이랄까?
“후…….”
제일 먼저 돌아온 것은 유현이었다.
그는 애써 머리카락를 쓸어 올리며 머리를 차갑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야만 했다.
‘설명해야 해. 주의도 줘야 하고.’
안 됐지만, 지금 우스꽝스러운 모양새로 들고 온 식량 말고는 죄 나쁜 소식뿐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비가 온 덕에 음료를 버리고 죄 먹을 것만 들고 오기는 했지만.
그따위 소식으로 덮기는 어려울 터였다.
우선 사람이 죽었다.
“김현철 소위……. 미안합니다. 김병규 이병이 죽었어요.”
“네? 그……. 어쩌다…….”
김현철은 마치 다음은 자기 차례라도 되는 것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곤 김병규랑 자신은 관계없는 사람임을 피력하려는 듯 손을 부리나케 저었다.
뒤에 있던 이순규는 그의 감정이나 생각이 어떤지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어깨에 손을 올려 두었다.
괜찮음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순규의 내면은 변함이 없는 것에 비해 외면은 너무나 많이 변하지 않았나.
“히, 히익.”
“공격당했어요.”
김현철은 뒷걸음질 쳤고, 유현은 그런 김현철을 따라 걸었다.
혹시 몰라 가방 안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피 묻은 수건을 보여 주면서였다.
“마트 지하에 숨어 있던 라드 둘을 발견했어요. 약화된 상황이어서…… 제압하려 했는데, 병사가 달려들었어요. 그러다 반격당해서 다쳤어요.”
“다, 다쳐요?”
김현철은 할 수 있다면 더 뒤로 가고 싶었지만, 벽이 등에 닿아 여의치가 않았다.
때문에 코앞까지 다가온 유현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어야만 했다.
“네. 다쳤어요. 그래서 치료를 하다가……. 수술을 하게 됐는데…….”
“여기 영상이요.”
그런 유현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오예리도 나섰다.
김현철은 놀란 얼굴로 이들이 늘어놓는 증거물을 그저 지켜보았다.
“수술은 그래도 나름 잘된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내과 의사라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런데 어젯밤에 공격이 있었어요.”
“공격……?”
“네. 네 명으로 이루어진 라드 무리였어요.”
“즉석에서 네 명이 모였다고요?”
김현철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참이었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런 성품이 아니었다면, 이미 사단에서 죽었을 테니.
제아무리 은신처에 숨어 살아남았다 해도, 사태 발발 후 무려 한 달이 넘도록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어딘가 특별한 면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여간 김현철은 그렇게 되찾은 침착함을 발휘해 질문을 던졌다.
“즉석은…… 아닙니다.”
“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 질문이었다.
거리를 내다보면, 라드들은 분명 무리를 이루고 있긴 했다.
하지만 즉석에서 이루어진 무리였고 곧 해산되기 일수였다.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끼리 목적이 맞을 때만 같이 움직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또 흩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러나 유현 일행이 이번에 본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분명히 같이 움직였어요. 저희를……. 다친 김병규 이병을 사냥했어요.”
“네에……? 아니…….”
“우선 창가로 가 보죠. 지금은 어떤지 봐야 합니다.”
“뭐, 뭘요.”
“일단 창가에 가서요.”
“아, 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