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위기 (1)
‘인간? 인간일까?’
이순규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이 근방에 살아 있는 인간이 그들 외에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
“교수님! 선배!”
그와는 달리 이진호는 재빨리 움직여 일단 유현과 오예리부터 깨웠다.
“적?”
“네.”
재빨리 잠든 것에 비해 유현과 오예리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총부터 쥐었다.
유현은 그 와중에 옆에 누운 병사의 맥까지 짚었다.
‘아직은 살아 있어.’
죽지 않았다.
맥은 약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유현은 총을 쥔 채 이순규에게 다가갔다.
이진호가 깨웠으나 적은 저쪽에서 오고 있으리란 직감 때문이었다.
“라드야.”
그사이 이순규는 냄새를 맡았다.
찍, 찍
그뿐만 아니라 쥐들도 냄새를 맡았다.
안드로겐(androgen, 남성 호르몬이나 이와 비슷한 생리 작용을 가지는 물질)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단백 동화 스테로이드) 그리고 기타 호르몬 및 신경 전달 물질의 증대로 발생한 냄새.
라드들에겐 동족으로 인식하는 냄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냄새 아닌가.
가뜩이나 공격성이 올라가 있던 쥐들에게는 큰 자극이었다.
‘이런 제기랄……. 이건 예상치 못했는데.’
유현과 이순규 모두 쥐를 보며 당황했다.
그리고 왜 저러는지도 바로 알아차렸다.
이순규는 길거리에서 이미 한번 겪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아니, 자책했다.
“일단. 일단은 경계하자.”
“젠장……. 들켰겠지?”
“불이 켜져 있어서……. 그 전에 들켰을 거야.”
“망할…….”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다독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컴컴했다.
가뜩이나 어두운 밤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당연했다.
소리?
‘시발…….’
빗소리와 쥐가 찍찍대는 소리만 들려왔다.
유현에게는 그랬다.
아무것도 없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순규의 움직임을 보니, 확실히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이순규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우측을 보고 있었다.
‘냄새……. 냄새로 아는 건가.’
그렇다면 확실히 라드일 터였다.
“몇이나 돼?”
“하나? 아니면 둘.”
“크기는?”
“거대 개체는 아냐.”
“다행……인가?”
“그나마?”
상대도 냄새로 알 수 있을 터였다.
우리가 라드인지 아닌지.
그렇다면 불을 끄는 게 의미가 있을까.
유현은 오예리 형사가 일어나자마자 꺼 버린 손전등을 떠올리며, 주머니에 있던 손전등을 꺼내 켰다.
“너?”
“어차피…… 여기 있는 거 알 텐데 뭐.”
“그럼 다 켜라고 해.”
“다 켜요! 어차피 들켰어.”
그러고는 남들도 다 손전등을 켜도록 지시했다.
화악
불이라 봐야 손전등이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 퍼져 나가는 광량이 적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유현은 희뿌연 무언가를 보았다.
빠르게 움직이는 무엇이었다.
욕이 나왔다.
빨라서가 아니라, 이 상황에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너도 저렇게 움직일 수 있어?”
“나? 비슷하게는? 근데 저렇게는 장담 못 해.”
“그럼 그냥 있어.”
“응.”
혹시 몰라 이순규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래, 가능하다 이거지.
확실히 신체 능력은 거대화되지 않은 개체라 해도 만만치가 않았다.
호르몬 때문이겠지.
그로 인해 증가된 신경 전달 물질도 있을 것이고.
‘박원상…….’
자연스레 박원상이 떠오를 무렵, 이순규뿐만 아니라 다른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달리는 소리.
명백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많다! 적어도 넷!”
이순규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고, 유현은 지척에서 모습을 드러낸 인영을 향해 총을 쐈다.
다다다
텅 비어 버린 공동을 가득 채우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총알이 튀어 나갔다.
딱히 사격을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으나 빗나간 것은 거의 없었다.
워낙에 가까워서 그랬다.
“끄아아악!”
라드 하나가 뒤로 쓰러졌다.
그러나 나머지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시발!”
이순규는 총을 쏘다 말고, 총알에 한두 발 맞은 거 같은데도 달려오는 놈을 향해 총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뻐억
개머리판이 살짝 휠 정도의 충격이 일었다.
그러나 라드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팔로 총을 막았다.
“으어억!”
그래 봤자 뒤로 형편없이 날아갔지만.
팔로 막은 탓에 치명상은 아니었다.
저대로 두면 또 달려들 터였다.
총알이라도 먹여 놔야 할 텐데.
그럴 새가 없었다.
부웅
뒤에 있던 라드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순규보다 작았지만 훨씬 빨랐다.
“으.”
그로서는 뒤로 물러서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쏴!”
“쏠 수가 없어요!”
유현이라고 다를 리는 없었다.
그 또한 총으로 겨우 몽둥이를 막아 낸 참이었다.
아니, 막았다고 할 수 있나?
유현은 뒤로 붕 날아서 병사 옆으로 굴렀다.
“으억…….”
부러진 데는 없어도, 충격량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간신히 쏘라고 외칠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의 총성은 없었다.
특등 사수라 해도 이 야밤에 어찌 이순규나 병사 그리고 유현을 피해 쏠 수 있겠나.
오예리와 이진호는 총을 쏘는 대신 총에 단 대검을 앞으로 내미는 수밖에 없었다.
오예리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와 유현을 감쌌다.
그사이 라드 둘은 누워 있는 병사를 잡아끌었다.
지이익
덩치가 작다고 해도 180이 넘는 놈들 아닌가.
게다가 근육량은 일반적인 180에 비해 훨씬 많았다.
병사는 속절없이 끌려 들어갔다.
“이 개새끼들아!”
이순규가 한 번 더 총을 휘둘렀지만, 그건 아까 튕겨 나갔던 놈에 의해 막혔다.
“크으…….”
그렇게 멀어지는 놈들을 향해, 유현과 오예리 그리고 이진호가 총을 쐈다.
아직 병사는 끌려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이대로 두면 어차피 죽을 거 아닌가.
그것도 가장 비참하게.
차라리 총에 맞아 죽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에 총을 쐈다.
다다다
그래 봐야 마구잡이로 쏘지는 못했다.
“이제……. 이제 그만.”
유현의 제지 때문이었다.
‘저것들……. 완연한 패거리야. 언어로 소통하는 모습은 없었지만…….’
그의 팔뚝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 있었다.
완벽한 공조이지 않았나.
이쪽에 총이 없었다면, 계획도 완전했다고 볼 수 있었다.
보통은 둘만으로 제압이 가능했거나 뒤로 떨칠 수 있었을 테니.
실제로 유현은 총이 있었음에도 뒤로 물러났고.
그사이 다른 한 놈이 병사를 잡아끌어다 도망쳤다.
‘총 쏠 때……. 마트 가판대 사이로 몸을 틀었어.’
총을 보고 즉석에서 떠올린 대응책일 터였다.
지능이 있다.
가장 약한 놈을 노리고, 협동 체계를 갖췄다.
적어도 늑대 무리 정도의 지능은 있다고 봐야만 했다.
‘늑대보다 훨씬 무섭지…….’
지금은 넷이었고, 몰살을 위해 몰려온 것도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수가 더 있었다면 일행은 다 죽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수님, 어쩌죠? 김병규……. 병사…….”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느라, 정작 병사는 잠시 잊고 있었다.
오예리의 말을 듣고 나서야, 김병규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네?”
유현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애써 숨긴 채 말을 이었다.
“제가 쐈어요. 병사……. 산 채로 잡아 먹히진 않을 겁니다.”
“아……. 그……. 아…….”
거짓은 아니었다.
놈들이 가판대 뒤로 틀기 전부터, 유현은 애초에 병사를 노리고 쐈다.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몇 발은 맞았을 터였다.
총알이 바닥에 튀는 게 보이지 않았으니.
죄 박혔겠지.
“문제는…… 우린데.”
유현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어두웠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실로 애매한 시간이지 않나?
더 자기는 글렀다고 보면 되었다.
“쥐들은 어떻지?”
“한 마리 더 죽었어.”
이순규가 철사로 만든 철장을 보였다.
쥐가 똥오줌을 갈긴 채 죽어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정상이 아닌 상황에서 적과 마주한 상황이었고, 총소리까지 들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 벌벌 떠는 게……. 정상은 아닌 거 같아.”
“젠장.”
이런 상황에 주위에 늑대 무리 같은 놈들이 도사리고 있다.
밖으로 나가긴 했을까?
모를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먹으려나? 아냐……. 그러진 않을 거 같아.’
이성이 없는 것들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사실 인간의 치아 구조는 날것을 먹는 데 있어 그리 유리한 구조가 아니지 않나.
화식(火食)이 일찍이 자리 잡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저것들은 애초에 화식하던 인간들이었고.
본능 아니면 기억이라고 불릴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밤에 가는 건……. 무리야.”
유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는 어느새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깜깜했다.
피차 마찬가지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방금 보지 않았나.
적어도 저것들은 우리보다 더 잘 움직였으니.
“날 밝는 대로 갈까요?”
“그래야죠. 제기랄.”
이진호 형사의 말에 유현은 욕을 읊조렸다.
‘저런 무리가…… 더 있다면……. 앞으로 부상자를 동반하고는 절대 못 다닌다는 얘기가 돼. 아니……. 어쩌면…….’
약자로 분류될 만한 인원은 죄다 위험해질 터였다.
당장 떠오른 것은 우식의 아들이었다.
조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사이였다.
그 아이가 잘못되어도, 병사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더 큰 문제는…….’
유현은 이순규, 오예리, 이진호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다들 강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이순규는 홀로 길거리를 오갈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단지 신체적인 강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을 포함하는 말이었다.
‘무서워하고 있어.’
지금은 이순규 외에 오예리, 이진호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안타까움 따위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 습격이었으니까.
다른 이들이 습격당하는 걸 보는 것과 직접 당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그럼 이 식량 조달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해.’
유현은 날이 밝으면, 우선 한 번만 더 먹을 것을 챙겨다 가자고 말할 다짐을 했다.
미친놈 같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에서 그런다는 게 정말 미친놈 같아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다시 오자고 하면 안 올 것 같으니까.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가져가야 하지 않겠나?
‘아까와 같은 놈들이……. 무리 지어 다닌다면……. 인적이 뜸한 곳으로 간다고 해도 어차피 위험해.’
세종의 특성상 한 블럭만 빠져나가면 시골길이 펼쳐지기 마련이었다.
아니, 그가 있는 은신처의 위치가 그러했다.
그래서 상권이 죽은 것도 있었다.
그 때문에 막연히 저쪽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래서는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망할.’
유현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나머지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못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