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스트 팬데믹-120화 (120/323)

120화 상실 (1)

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

은신처에 있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반가운 것도 잘 없었다.

고작해야 한 달 좀 넘게 문명이 멈춘 마당이었지만, 오염되었던 대기는 무척 깨끗해져만 가고 있어 바로 식수로 사용해도 무방해서 그랬다.

그러나 밖으로 나와 보니, 반갑기는커녕 껄끄럽기만 했다.

“이거…… 괜찮나?”

유현부터가 밖으로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이순규와 그가 들고 있는 쥐 사이를 맴돌았다.

‘냄새……. 비가 오면 어떻게 되지?’

확실히 냄새.

호르몬인지 페로몬인지, 뭐라 부를지 모를 것이 비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았다.

“음……. 시각적인 자극에 더 의존하게 되려나?”

이순규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는 한창 감염이 진행되고 있을 때조차 어느 정도 이성을 지키고 있지 않았나.

그런 그가 밖에 나돌아다니는 새로운 타입의 라드들을 완전히 이해하길 바라는 건 좀 무리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방금 그가 말해 온 것은 꽤 신빙성 있는 주장이었다.

“망할.”

유현은 쥐를 내려다보았다.

가뜩이나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아니면 흉포함에 의해서인지 철사로 만든 철장을 마구 물어 대고 있었다.

입 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았다.

넘치는 아드레날린으로 인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망할.”

그 와중에 비까지 맞으면 어찌 될까?

‘가다가 죽으면…….’

쥐가 죽는다.

냄새가 비에 가리어지는 와중에 더 흐려진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 근방은 그나마 라드가 거의 없지만, 은신처 주변은 어떠한가.

가뜩이나 적지 않은 것들이 있었는데 폭격 이후로 수가 더 늘어 버렸다.

“어쩌죠?”

오예리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그저 유현의 망설임을 읽었는지 몰라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이진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초에 병사 김병규의 목숨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의견까지 냈다.

“차라리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 있는 건 어떨까요?”

“음.”

마침 유현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다.

‘가다가 쥐가 죽으면……. 아니면 냄새가 아닌 시각 자극에 의해 몰려오면…….’

몰살?

그건 모르겠다.

총도 있고, 이순규도 있으니.

대략 비슷한 규모의 라드에게는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라드 또는 초거대 개체가 온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어. 그리고…….’

좀 건방져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일행이 잘못되고 나면 지금 은신처에 남은 이들은 파멸이었다.

우식이가 있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 외에 가용 전력이 너무 부족했다.

아니, 이순규의 부재는 치명적이었다.

“쉽게 그칠 거 같진 않은데.”

유현은 어두워진 낯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지금이야 추적추적 내리는 수준이지만, 곧 쏟아질 것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그래도 저 멀리, 드문드문 보이던 라드들조차 종적을 감추고 있었다.

이성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놈들이니만큼 비가 오면 비를 피해 달아나기에 그랬다.

‘그 와중에 식수를 찾아 나오는 놈들도 있기는 해.’

그럼 도망가기에 적합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생각하기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

종잡을 수 없는 놈들도 많아서였다.

게다가 종적을 감추었다고 해 봐야 거리에서 없어졌을 뿐, 건물 안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 뻔했다.

“일단……. 좀 기다려 보죠.”

결국, 유현은 안정을 택했다.

“어쩌지, 이 친구는?”

이순규도 반대를 하진 못했다.

홀로 갇혀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밖을 관찰하지 않았나.

그 결과 이순규는 놈들의 폭력성을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혹여 냄새가 지워지기라도 한다면, 너무 위험했다.

그러면서도 이진호나 유현과는 달리 병사를 포기한 건 아니었다.

“어쩌긴. 일단 여기서……. 어떻게든 해 봐야지. 사실 가 봐야…… 약이랑 도구가 있을 뿐이야. 달라지는 게 많지는 않아.”

“하지만 마취가…….”

“국소 마취제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까 거기 다시 가 보자.”

“아, 그래.”

유현도 어찌 되었건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었다.

‘외과……. 이런 처치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연습이라고 하면 너무 잔인하지만.

하여간 더 소중한 이를 치료해야 할 때, 도움이 되지 않겠나 싶었다.

“아, 그리고……. 오예리 형사님. 이진호 형사님.”

유현은 이순규와 더불어 들것을 들어 올렸다.

올리기 전에 맥박을 확인했더니, 아직 살아 있었다.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네.”

“네, 교수님.”

유현은 주변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칼……. 과도가 제일 적당할 거 같아요. 그리고 깨끗해 보이는 바구니나 이런 거 있으면 다 주세요. 포크도 좋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술. 술은 독한 걸로……. 아니, 이건 지하에 있나?”

“아마도요.”

“네, 그럼. 아래에서 보죠. 혹 이상한 낌새 느껴지거나 하면 바로 오세요. 비가 와서……. 근처에 있던 놈들이 들어올 수도 있어요.”

유현은 입구 쪽을 가리켰다.

막을 수 있었으면 벌써 막았을 텐데.

정문은 무너져 있었고, 옆에 난 쪽문은 문이 그냥 죄 깨져 있었다.

혹시 몰라 카트 같은 걸 가져다 놓긴 했지만 마음먹고 쳐들어오려고 하면 바로 뚫릴 터였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좋았다.

“아, 네. 주의할게요.”

“네, 교수님.”

오예리도 이진호도 그런 경고를 허투루 넘기진 않았다.

얼굴에서 진심을 읽어 낸 유현은 곧장 아래로 향했다.

“넌 여기서 환자 좀 보고 있어.”

“응.”

이순규에게 환자 보는 걸 맡기고서였다.

뭘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건 아니었다.

외과 의사도 아닌 정신과 의사가 이런 상황에서 뭘 하겠나.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낫겠지.’

사실 유현 본인이 남는다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약 없고 시설 없는 내과 의사가 뭘 할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유현은 지하로 향했다.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은 벌레들이 비산하는 게 보였다.

다행인 것은 쥐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마……. 두 모자가 다 먹어 치우지 않았을까?

‘그래도……. 다행이지.’

병사가 다치고, 비가 오면서 모자 라드의 최후는 어느 정도 지워진 듯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 누구도 둘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지 않을 터였다.

‘제일 좋은 건……. 일단 목숨을 붙여 두는 건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선 두 라드가 숨어 있던 곳으로 들어갔다.

두 라드는 아까 엎어져 있던 그대로 죽어 있었다.

‘흠.’

확실히 좀비는 아니었다.

머리가 깨진 것도 아닌데, 죽었으니까.

이런 건 또 다행이지 않나?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내 양호실 비스무리 한 곳으로 향했다.

‘들것도 있었으니까……. 약도 있을 거야.’

응급할 때 쓰는 약들이나 있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다음에는 국소 마취제 포함해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춰서 들고 다녀야겠어.’

유현은 안쪽을 뒤적거렸다.

이제 보니 양호실로 쓰이는 게 아니라, 그냥 창고로 쓰인 모양이었다.

뭐가 있긴 한데 쓸데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칼도 없고……. 약이라고 해 봐야…….’

스테로이드나 항히스타민제 그리고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 진통제만 있었다.

그마저도 언제 넣어 놨는지 알 수도 없었다.

부스러진 항히스타민제는 처음 봤다.

‘망할.’

이 이상 뒤진다고 해서 뭐가 나올까?

안 나올 것 같았다.

차라리 위로 올라가서 뭐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자.’

해서 유현은 위로 향했다.

다행히 그사이에 뭐가 들어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오예리, 이진호 둘 다 칼과 그릇 그리고 바구니 등을 가지고 와 있었고.

이순규는 병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그사이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해, 이제 와서 뭐가 더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덕분에 유현은 병사에게 아니,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옷 자르자.”

“응.”

벗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괜히 어디 잘못 누르기라도 하면 죽을 것 같았다.

뭐라도 하는 모습은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둘에게……. 내가 있으면 살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간다는 것 정도만 어필하자.’

하여간 유현은 이순규의 보조를 받아 옷을 잘라 냈다.

“너 손이…… 진짜 크구나?”

“어? 어. 커졌지. 이런 거 하려니까 불편하네.”

“응. 그럴 거 같아. 당기기만 해 줘. 그건 진짜 잘하겠다.”

“그렇지. 이제 자신 있어.”

“좋아.”

하나도 좋지 않았다.

옷을 잘라 내고 다시 보니, 배가 더 불러 오고 있었다.

아까는 그나마 눌렀을 때, 뭔가 느껴지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차 있는 느낌이었다.

물일까?

‘피겠지, 시발.’

피가 터져 나오면 어쩌나.

어쩌지?

아니, 그 전에 너무 아파하면 어쩌지.

어쩌냐고, 이걸.

유현은 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침착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새끼……. 자신 있나?’

이순규마저 유현의 태도에 넘어갈 지경이었다.

때문에 이진호나 오예리는 아예 유현을 구세주처럼 보고 있었다.

둘 다 병사에 대해 딱히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치료에 나서니 그저 불쌍해 보였다.

아직 뭘 어쩐 건 아니었으니.

찰칵

그 와중에 오예리는 사진을 찍었다.

“응?”

나머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돌아보자, 오예리는 별거 아니란 투로 답했다.

“이래야 소위님이 의심할 때 보여 줄 수 있죠.”

“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손에 준비해 온 알코올을 부었다.

양이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소독 젤이어서, 소독이 얼마나 될지 알기도 어려웠다.

혹시 몰라 준비한 술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후.”

유현은 그렇게 소독을 마친 후, 장갑 낀 손으로 과도를 집어 들었다.

‘메스도 아니고……. 이걸로 될까…….’

유현은 잠시 망설이다 일단 푹 하고 찔렀다.

“읍.”

병사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움직임이 격렬하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죽어 가고 있었으니.

“눌러 줘.”

“응.”

이순규는 그런 병사를 한쪽 팔로 눌렀다.

어깨 쪽이라 거의 움직임이 멎었다.

다리는 눈치 빠른 오예리와 이진호가 눌렀다.

‘무슨 19세기도 아니고.’

환자의 상태도, 현재 상황도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과도로 피부를 더 찢었다.

“으으읍.”

신음은 새어 나왔지만 움직임이 더 커지진 않았다.

그보다 유현을 방해하는 건, 피였다.

안에 고여 있던 피가 주르륵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니, 콸콸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경련이 시작되었다.

“어!”

“잡아! 출혈성 쇼크야! 괜찮아!”

괜찮을까?

그럴 리는 없었다.

하지만 유현은 일단 그렇게 지르고, 핏속을 더듬었다.

비장.

아마도 거기서 피가 새어 나오고 있을 터였다.

그걸 묶을 수 있을까?

무리였다.

그냥 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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