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갈등 (6)
팍이순규가 우선 들고 있던 몽둥이로 라드의 어깻죽지를 후려쳤다.
“으억!”
치명상은 아니었으나 균형을 빼앗기에는 충분한 일격이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뒤에 유현이 있었으니까.
‘어쩔 수 없어.’
이순규는 사실 기회가 있어도 라드의 목숨을 대번에 취할 깜냥이 없는 사람이었다.
총으로 쏘면 또 모르겠지만, 후려쳐서는 무리였다.
원래 총보다는 칼이, 칼보다는 둔기가 마음의 장벽을 높이지 않나.
특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존재를 망가뜨리는 건 어지간히 강하게 마음을 먹지 않는 이상 어려웠다.
푹반면 유현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검을 쓰러져 가는 라드의 목에 쑤셔 박았다가, 돌려서 뺐다.
달려들면서 찔렀기 때문에, 또 라드는 목에도 근육이 많아서 발로 차듯이 밀어 빼야만 했다.
“음.”
그러곤 유현은 뒤로 피했다.
피를.
뿜어져 나오는 피를.
이순규는 잠시 얼빠진 얼굴로 거기 서 있다가 바지가 젖었다.
“뭐 해?”
“아, 아니.”
유현은 여상한 얼굴로 이순규를 뒤로 당겼다.
그러나 이순규는 여전히 라드를 보고 있었다.
“끄…… 끄아아.”
죽어 가는 쪽이 아니라, 옆에 있던 라드를.
다리가 다친 라드는 신음하고 있었다.
“으, 으으으.”
죽어 가는 라드를 보면서.
저건 분명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딱히 정신과 의사라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니었다.
포유류는 같은 류에 속하는 동물의 감정을 얼마간 공유할 수 있지 않나.
하물며 동물들 간에도 그러할진대 라드는 같은 인간이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뿌리는 같았다.
“저건…….”
“아들이었나…….”
“제기랄.”
이순규뿐만 아니라, 오예리, 이진호 등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 분수처럼 솟구치던 핏물은 가라앉았으니까.
뿐만 아니라 라드의 눈에서 빛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그저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적으로 상정한 이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지 않나.
‘몰랐던 건 아니잖아.’
움직이는 건 오직 하나, 유현뿐이었다.
감정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건 거짓말일 터였다.
이들도 총구를 들이밀면 공포를 느꼈고, 누군가 죽어 나가면 흥분하고 달려든다는 걸 여태 너무도 많이 보지 않았나.
단지 이것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슬픔도 있다는 걸 지금 목도했을 뿐이었다.
“으으으!”
이제 라드는 유현을 보면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복수를 꿈꾸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푹한쪽 다리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려든 그녀 아니, 라드를 슬쩍 피한 유현은 이번에도 목을 꿰였다.
“으악!”
단말마의 비명이 방 안에 울렸다.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유현이 칼날을 돌려 빼면서, 성대 부근을 망가뜨려서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순식간에 찾아오진 않았다.
그그그
라드는 고통에 바닥을 벅벅 기고 있었다.
이게 육신의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의 고통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다지 오래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걸 이들이 보면 안 돼.’
유현은 괜찮았다.
그의 마음은 단단하니까.
이런 걸 본다고 해서, 마음에 남는다고 해서 마주한 라드를 두고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다른 이들은 어떨까.
‘안 돼. 이건 일반적이지 않아.’
암만 병원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해도, 모두가 유현처럼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십수 년을 넘게 의대에서 또 병원에서 보내는 동안 사무치도록 알았다.
푹해서 유현은 꿈틀거리는 라드의 목을 한 번 더 뚫었다.
그러고 나서도 자꾸만 죽은 라드에게로 돌아가려는 목을 발로 밀어 고정했다.
그렇게 조금 있고 아니, 드디어 움직임이 멎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시선도 멎어 있었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차라리 유현을 보며 욕을 했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다만 라드를 동정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 안 돼. 그럼 죽어.’
그러나 바라기만 한다고 일이 되던가?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대학 병원에서 죽어 가는 환자가 하나도 없어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무슨 수라도 써야만 바라는 대로 일이 조금이라도 진행되는 법이었다.
“이봐, 괜찮아?”
시선을 일단 돌리자.
그럴 생각으로 유현은 병사에게 다가갔다.
평소에는 군복을 입지 않더니, 나가는 날이라 그런가. 군복을 입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군복엔 피가 번져 있었다.
김병규라고 쓰여 있던 명찰까지도.
“으…….”
들려오는 건 답이 아니라 신음뿐이었다.
당연했다.
지금 죽은 라드가 어리든지 아니든지 뭔 상관이란 말인가.
라드는 라드.
호르몬에 의해 강화된 개체이지 않나.
그게 온 힘을 다해 휘두른 철제 의자에 맞았다.
“으……. 으으…….”
“가위 있나?”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가방에 있던 간단한 기구 통을 꺼냈다.
말 그대로 간단한 기구 통이었다.
들어 있는 건 그냥 절개 배농이나 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그 사실은 유현도 모르지 않았지만 뭐가 되었건 손을 내밀었다.
‘살릴 수 있을까?’
유현은 가위를 받으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과 의사지, 외과 의사가 아니었으니까.
시술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나마도 어깨너머로 보아 온 걸 흉내 내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그나마 신체적인 질환을 다루던 의사는 그뿐이었다.
지이익
유현은 가위로 병사의 옷을 잘랐다.
‘살릴 수 없어도…….’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야 라드의 시신에 턱 하니 박혀 있던 시선들이 풀려나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잔상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최대한 지워야 했다.
그러려면…….
‘최선을 다한다.’
가짜는 안 될 일이었다.
눈치가 있다, 없다를 떠나 사람이라면 눈앞의 행위에 진심이 담겨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법이었다.
다행인 것은 유현이 냉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 전에 의사라는 점이었다.
아픈 사람을 마주했을 때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음.”
옷을 자르고 내려다보니 배가 잔뜩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덜거덕거리는 느낌도 있었다.
갈비뼈 골절 탓이었다.
“이런…….”
이순규 또한 알코올로 손을 닦고 옆으로 따라붙었다.
혀를 차면서였다.
비록 정신과 의사긴 하지만 인턴 때까지는 응급실을 돈 경험이 있지 않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학생 때 배운 지식만으로도 느낌은 왔다.
이건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음.”
유현은 가만히 배에 손을 가져다 대어 보았다.
꾸룩거리는 느낌이 일었다.
내부 출혈이 있는 듯했다.
어디서 나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다만 부러진 갈비뼈로 유추해 보면 비장일 것 같았다.
설마하니 간을 찌르진 않았을 테니.
‘열어?’
연다.
상처를.
살 수 있을까?
절대 무리였다.
‘내가 외과 교수라 해도……. 이건 안 돼.’
실력은 나중에 생각할 문제였다.
일단 마취가 불가능했다.
주변은 더러웠고.
피가 나면 또 어쩐단 말인가.
“여기서는 안 되겠는데.”
“음.”
유현의 말에 이순규는 돌아가서는 되는 건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굳이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가뜩이나 희망이 없는데 짓밟을 인격의 소유자는 아니어서 그랬다.
“근데 어떻게 데려가지.”
유현은 병사를 내려다보았다.
체격이 아주 큰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잠깐 업고 걷는 건 유현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은신처까지는…….
“내가 업지.”
“업는 거야 돌아가면서 해도 돼. 문제는…….”
피.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입 안에 피가 맴돌았다.
어떤 연유로 피가 맴도는 걸까.
내출혈?
장이 터졌나?
그렇다면 이미 희망은 없었다.
‘아냐, 그 정도는 아냐. 혈압이……. 압은 느껴져.’
만약 그렇다면 금방 죽었을 터였다.
그렇다고 지금은 괜찮은 건가?
그건 아니었다.
“피 냄새. 너는 어때? 괜찮아?”
“음…….”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코를 벌름거렸다.
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냄새는 역하기만 했다.
그리 반가운 냄새는 아니란 얘기였다.
하긴 당연했다.
제아무리 호르몬이 들끓고 있다고 해도 피가 당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이게 식욕을 당기게 하는 냄새는 아냐.”
“그렇겠지. 내 말은…….”
그러나 유현이 어떤 사람인가.
배경 지식이 풍부함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토대로 추론하는 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간이었다.
“피 냄새가 약화를 의미하지 않냐, 이 말이야.”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지?”
“응. 그리고 우리가 품고 있는 이 쥐들……. 쥐 냄새를 흐리게 할 수도 있고.”
“음.”
확실히 질문이 날카로웠다.
동시에 답하기가 어려웠다.
‘나도 모르지, 인마……. 나는 감염된 경험이 있는 거지……. 라드들에 대한 전문가는 아냐, 유현아…….’
이순규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 때문이었다.
‘아……. 너무 그렇게 고양이처럼 보지 말라고…….’
오예리도, 이진호도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망할.
그래서 모르겠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가능성이 없진 않은데……. 그래도 내가 데리고 있으면…….”
“전에 우리 집 앞에 사냥감 가지고 싸움 났던 거 기억하지?”
“음.”
“그렇게 될 여지는 없을까?”
“없다고는 할 수 없지.”
“하.”
유현은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병사는 처치 곤란인 존재였다.
심지어 안 좋은 생각도 품고 있었고.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유현은 지금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다.
‘버린다면……. 당장은 편해. 하지만 다음부터…… 이런 일에 나설 사람이 있을까?’
여기 있는 둘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바뀔 터였다.
불만을 품게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이 둘은 곤란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데……. 안 될 일이지.’
눈 가리고 아웅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죽을 사람일 가능성이 컸으니.
그러나 노력은 해야 했다.
“그래도 데려가야지. 같이 왔다가 다친 거니.”
해서 유현은 이렇게 말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차하면 업고 뛰더라도, 일단 이동은 넷이 각기 한쪽씩 들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다.
어차피 느리게 갈 생각이니 속도는 상관없었다.
“이 안에 응급처치실이 있기는 할 거야. 이 정도 규모의 마트면……. 그런 걸 누가 와서 가져갔을 거 같진 않고. 들것을 찾아보자.”
“아, 그렇겠네.”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의무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있긴 할 거라 그랬다.
생각보다 법이 빡세지면서 이런 마트는 이런저런 것들을 구비해 두고 있었다.
“제세동기도 있네. 이것도 챙길까.”
“굳이?”
“농담이야.”
“아니, 가져가 보자.”
“그래, 그럼. 일단……. 들것에 싣고.”
덕분에 일행은 때아닌 파밍을 한 후, 밖으로 나섰다.
맑았던 하늘에서는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추적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