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갈등 (5)
“가지.”
유현의 말에 일행은 아래로 향했다.
아까처럼 굳이 둘만 내려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사이에 뭐라도 오갔을 가능성은 없어서 그랬다.
“괜찮으니까, 가.”
유현은 비록 이순규처럼 감각이 예민하진 못하지만 꼼꼼한 사람이었다.
기억력도 유별나다 할 정도로 좋았고.
그런 그가 살펴본 결과, 입구는 변화가 없었다.
적어도 바닥은 그랬다.
‘변이가 일어나도……. 사람이 날 수는 없을 테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런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겠나.
날아다니는 라드라니.
차라리 포기하고 그냥 빨리 물려서 어떻게 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저벅
해서 유현은 총을 쥔 채, 일행의 뒤편에서 걸었다.
병사를 제외한 모두는 탄창에 총알이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뭐가 다가와도 대응이 가능했다.
물론 초거대 개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오가면서 느낀 건데…….
아까 이순규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쪽도 가능성은 0이라고 보면 되었다.
-개체에 따라 냄새가 살짝 다른 거 같기도 해.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하여간 덩치가 클수록 냄새가 진해지는 것 같단 말이었다.
그리고 여기엔 뭐가 없을 거라 했다.
이게 딱히 비밀은 아니었기에 모두의 앞에서 말해서 그런가. 일행은 빠르게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음.”
그러나 아까 그들이 음식물을 챙겼던 곳에 도달했을 땐 분위기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비단 유현이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누가 보더라도 양이 줄어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이걸 먹은 걸까?”
그렇다고 해서 겁을 집어먹지는 않았다.
여전히 상대는 숨어 있었으니까.
또 함부로 낙담하지도 않았다.
입구엔 출입한 흔적이 없었으니.
“아니, 아무리 라드라고 해도……. 이걸 다 먹지는 못했을 거야.”
“그렇겠지?”
유현의 말에 이순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신중한 사람이니만큼 예외를 두긴 했다.
“뭐……. 개체 수에 따라 다를 수는 있을 텐데. 이 정도면 적어도 열 개체 이상이어야 해. 그럼 우리를 그냥 둘 리가 없어. 제일 작은 개체들이라고 해도 열 개체면…….”
“그렇지. 아무래도.”
탁 트인 곳이라면 열 개체도 총으로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늘 그런 양상의 전투만 진행되었다면 군이 당하는 일도 없지 않았겠나.
이것들은 지형지물을 아주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특히 좁으면 좁을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라드는 빠르고, 힘이 강하고, 무엇보다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냥 여기저기 흩어 놓은 거 같은데. 일단은 남은 거 챙겨서 가자고.”
“응, 그게 좋겠어.”
유현은 남은 음식을 배낭에 담으며, 바닥을 살폈다.
발자국이 이따금 보였다.
대략 280mm 정도였다.
가늠할 수 있는 크기는 180가량?
이상한 것이 있다면 발자국이 딱 한쪽만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다리가 하난가.’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폭격에 의해 다리를 잃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물론 전투 손상에 의해 다리를 잃을 경우, 의학적인 처치가 없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목숨을 잃겠지만.
그런 식이면 의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죄 죽지 않았겠나.
‘아니면 다리가 없는 상태에서 라드가 되었을 수도 있어. 뭐 이건 쓸데없는 생각이지.’
연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상대는 그리 강하지 않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 음.”
딱히 입 다물고 일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해서 유현은 본인의 추론을 털어놓았다.
이순규는 짐을 든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예리 형사는 그보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찾아볼까요? 한 다리만 있다면…….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게, 음식은 저것들한테도 중요하잖아요.”
“그렇지. 열심히 움직였을 거야. 근데……. 이것밖에 옮기지 못했다면 한 개체, 많아야 두 개체야. 그것도 둘 다 몸이 성치 않을 가능성이 커.”
“음.”
대화를 듣고 있던 병사가, 그로서는 퍽 드물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소리에 기이한 열기가 뒤섞여 있었다.
아니, 살기라고 해야 할까?
“그럼…… 찾아서 죽일까요? 그게 좋을 거 같은데요.”
원래 인간은 강한 사람에게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 강하기 십상이지 않나.
그런 인간을 볼 때마다 욕은 하지만 본성과 더 가까운 모습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리고 병사는 그런 본성을 딱히 숨길 생각이 없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뭐……. 뭐가 되었건 일을 하려고 하는 건 좋은 일이지.’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머지를 돌아보았다.
죽인다는 말에 이순규는 거부감을 보였으나, 그렇다고 반대를 하진 않았다.
적어도 라드는 치료가 불가능한, 인간이 아닌 적이라는 사실에 반대하는 이는 이 중에서는 없었다.
“그럼……”
“찾아볼까요.”
짐을 옮겨 담던 손을 멈추고 대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런 일행을 향해 유현이 말했다.
“쏘는 건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해. 우선은 대검으로 상대하자고.”
“네.”
병사에게는 딱히 탄창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적이 예상되는 상황이 아니지 않나.
아니, 그 전에 그의 심리가 불안했다.
나약한 인간이지만, 총은 누가 쏘든 사람을 죽일 수 있지 않나.
일을 좀 더 시켜 보면서 처분을 내릴 생각이었다.
‘죽는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병사는 다른 이들이 먹는 음식을 아까워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모르는 이가 먹는 음식을, 유현이 아까워하는 것 또한 합리적인 일 아닌가.
잔인한 일이되, 결코 비합리적인 일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유현은 다시 한번 자신의 선택을 마음속에 다진 후, 지하를 돌기 시작했다.
아까 다시 오면서 일부러 손전등을 더 챙겨 왔기에 훨씬 밝은 상황에서 돌 수 있었다.
“저기.”
이순규는 코를 벌름거리며, 또 동시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적을 찾았다.
“아, 아니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작정하고 숨은 이를 찾는 건, 원래도 어려운 일 아닌가.
막상 집에서 해 봐도 꽤 오래 걸리는 것이 숨바꼭질이었다.
하물며 불도 안 들어오는 지하라니.
이게 쉽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잠시.”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순규가 있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저들과 동류인 자.
사실상 사람이 아닌 자.
일행은 답도 없이 기다렸다.
그사이 이순규는 코를 킁킁댔다.
냄새를 맡았다.
‘살짝 달라……. 근데 난다.’
평소 라드들에게 맡던 냄새가 아니었다.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하여간 이순규는 냄새가 나는 곳을 알아보았다.
개체는 많아야 둘이었다.
머리가 좋지는 않은지, 아니면 하나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는지 몰라도 둘은 붙어 있었다.
“저기.”
이순규는 마트의 구석 어딘가를 가리켰다.
불을 비춰 보니 문이 보였다.
철문.
휴게실로 썼을까?
알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라드의 피난처일 뿐이었다.
“문 다른 데는 없나?”
“없어요.”
유현의 말을 딱 알아들은 오예리가 벽 근처에 빛을 뿌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지능이 있는 개체는 아니네.”
“음.”
좀 더 똑똑했다면 저 알량한 철문이 아니라, 오히려 트인 곳에 있었을 터였다.
그래야 일행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피할 수 있을 테니까.
불 비추며 이동하는 일행을 피하는 건 아무리 다리가 불편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겠나.
그러나 저들은 철문 뒤를 택했고, 일행은 철문 앞에 섰다.
총과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채였다.
“그래도 방심은 안 돼.”
“네.”
“이 수라장에서 살아남은 놈들이고……. 또 라드들이니까.”
“네.”
유현은 그 앞에서 바로 쳐들어가는 대신 한 번 더 장비를 점검했다.
장비라고 해 봐야 무기 말고는 보호대 등이 다였다.
강화 플라스틱으로 된 오토바이용 장구들.
실제로 오토바이를 탈 때는 플라스틱보다는 다른 걸 쓰라고 하지만 걸어 다니는 데 철제 보호판을 쓰는 건 무리였다.
유현 정도로 체격이 좋다면 모를까 다른 이들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앞장선다?”
아니, 이순규도 가능했다.
다만 너무 거대해진 탓에 보호대를 찼음에도 불구하고 가려진 부위보단 드러난 부위가 더 많았다.
“응. 내가 바로 붙을게. 여차하면 쏴야지 뭐.”
유현은 마트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에다가 공동이어서 총 쏘면 아마 잔뜩 울릴 터였다.
주변에 있던 놈들도 듣기는 하겠지.
그럼 어떻게 될까?
‘일단은 앞에 있는 놈들한테 집중하자.’
유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붙었고, 이순규는 몽둥이 대신 옆에 있던 소화기로 문손잡이를 내리쳤다.
쾅그 소리를 들으면서 유현은 총 쏘는 것을 단념했다.
그냥 후려치는 것도 이렇게 시끄러운데 총을 쏴?
천지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 같았다.
해서 총구에 낀 대검을 확인하고 총을 고쳐 잡았다.
쾅하여간 이순규의 괴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곧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문을 왈칵 열고 안으로 들어선 이순규와 유현은 의외의 광경을 목도할 수 있었다.
“으…….”
확실히 라드는 둘이었다.
하나는 여자.
다리를 다친 쪽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애……? 애 맞지?”
“어. 애야. 애인 거 같아.”
어떻게 봐도 어려 보였다.
라드화 되면서 키도 덩치도 커진 것 같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애였다.
얼굴이 지나치게 앳되었다.
“가, 가!”
다리 다친 라드는 간절해 보였다.
덩치가 거의 유현만 한, 그러나 얼굴로 미루어 짐작할 때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싶은 라드는 여자 라드 뒤에 숨어 있었다.
‘시발.’
문 안에 들어서면서 이런저런 상황을 상정했다.
최악의 최악까지도.
그러나 이건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었다.
“뭐예요? 왜 그래요?”
안이 조용하자, 나머지 셋이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이순규, 유현이 그랬던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형태가 흉악하긴 했다.
라드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엄마와 아들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시발!”
움직인 것은 병사였다.
그는 우선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그러나 장전이 되기는커녕 헛돌기만 했다.
총알이 없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듯했다.
그냥 이게 왜 이래? 하는 얼굴이었다.
“죽, 죽여야지! 뭐 하는 거야!”
그는 당황한 얼굴로 외치고는 대검을 앞세워 달려 나갔다.
“크아!”
그러자 엄마 쪽이 대응에 나섰지만, 다리가 다친 수준도 아니고 한쪽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여의치가 않았다.
배 쪽에 길게 상처가 남았다.
“으아아아!”
비명을 지르고, 뒤에 있던 라드가 나섰다.
라드라기엔 크기가 작았다.
얼굴 생김새 정도로 분간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그 흉포함은 확실히 인간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억…….”
병사는 단 한 방에 나뒹굴었다.
제압한 것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아니면 공포에 지배를 당했는지는 몰라도 라드는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저대로 두면 죽을 게 뻔했다.
아니, 이미 죽기 직전인가?
“망할.”
병사가 자초한 상황이기는 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그는 인간이고, 라드는 라드였다.
유현은 이순규와 함께 라드를 막기 위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