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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팬데믹-117화 (117/323)

117화 갈등 (4)

조용했다.

마트 지하 1층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처음엔 다들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으나, 종래에는 불안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진짜 아무것도 없네.”

“벌레도 다 저기에만 있고……. 쥐새끼 하나 없어.”

쥐.

작은 설치류.

생존력 하나만 따지고 보면 인간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종이지 않나.

실제로 일행은 여기까지 오면서, 폐허가 된 아파트 단지 등을 지나칠 때면 쥐 떼를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드들이 횡행하는 곳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놈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을 우선적으로 식량 삼아 공격하니까.

“확실히……. 쥐가 꼬일 만한 곳인데……. 뭐가 하나도 없네요.”

오예리 형사는 소총을 든 채 말했다.

목소리를 죽여 말했으나 지하라 그런가 웅웅 울렸다.

이순규는 그 소리에 반응이 있을 것 같아 귀를 기울였으나 아쉽게도 뭔가 찾지는 못했다.

대신 다른 걸 찾았다.

“킁. 아……. 이거 이상한 냄새 나는데.”

“냄새?”

“모르겠어?”

“난 저거 탄 냄새에 코가 마비된 거 같아.”

유현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으나 유현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랬다.

시체 탄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다른 냄새는 하나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순규의 예민함을 다들 익히 잘 알고 있었던지라 귀를 기울였다.

“변 냄새야.”

“변……. 사람?”

“응.”

“아.”

그리 듣기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이순규는 냄새가 나는 쪽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다른 이들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아, 지독하네.”

이것도 만만치 않았다.

“양이 많아. 혼자 싸지를 만한 양은 아닌데.”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꽤 많은 양의 배설물이 쌓여 있었다.

주변으로 파리며 뭐며 하는 것들이 잔뜩 꼬여 있어서 면밀히 살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특히 감각이 예민한 이순규는 본인이 끌어온 주제에 딴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각과 후각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다.

반면 유현은 애써 그쪽을 살폈다.

‘색이 다르다고 해서 개체가 다르다고 볼 수는 없지. 하지만 확실히 양이 많아. 아무리 많이 먹는다고 해도……. 순규 감염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놀라울 정도로 높은 효율로 소화를 시키지 않았나.

먹는 건 몇 배를 먹는데 싸는 건 비슷했다.

그만큼 아나볼릭 효과가 엄청나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소비되는 에너지의 양도 어마어마했던 것 같았고.

“근처에 있나?”

“아니, 인기척은 없어.”

이순규에게 물으니, 그렇지 않아도 좀 다른 이유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이순규가 답했다.

하긴 뭐라도 있었다면 알려 왔을 터였다.

이순규는 그런 사람이니.

“음……. 아무래도 숨은 거 같은데…….”

유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도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애초에 손전등이 가진 광량의 한계로 시야가 좁기도 했거니와 유현의 시력으로는 이 깜깜한 곳에서 무언가를 찾기가 어려웠다.

“저, 저기. 그럼 돌아가면 어때요? 어차피 숨었으면……. 우리가 무서워서 숨은 거 아니에요?”

그렇게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병사가 조심스레 말했다.

뭐 이 의견 자체는 그리 문제 있을 만한 의견도 아니고 꽤 타당해 보이기까지 했기에 유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일단 각기 가방에 넣은 거 잘 챙겨서 나갑시다. 그렇다고 너무 빨리 움직이지는 말고요. 뒤에서 습격당했다가는……. 큰일 나니까.”

“네.”

“네, 교수님.”

일행은 그렇게 천천히 지하 1층을 빠져나왔다.

유현의 말을 따라 주의해서 나왔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병사는 겁먹은 얼굴로 아래쪽을 살피고 있었다.

뭘 본 건 아니지만, 정황상 무언가 있을 것이 틀림없어서 그랬다.

“이 안에 있는 물자만 온전히 가져올 수 있으면……. 우리 한 달은 더 버틸 수 있을 거야.”

유현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이동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밑을 바라보고 있는 건 병사와 마찬가지였으나 품고 있는 생각은 전혀 달랐다.

‘배설물을 그냥 지들 생활 공간에 쌓아 둔 것도 그렇고……. 불에 탄 시신을 밖에 버리지 않은 것도 그렇고……. 아주 지성이 있는 개체들은 아닐 거야.’

적어도 이순규가 연구소에서 봤다던 지성체들과는 차이가 있을 터였다.

그것들은 냉장고를 이용했다고 하니까.

심지어 도망 나올 땐, 다른 개체를 사냥했다고도 했고.

어마어마하지 않나?

그에 비하면 여기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개체가 겁을 먹었다면……. 아마 폭격 당시에 엄청 다쳤거나…… 아니면 개체 수가 몇 안 될 거야. 하지만 시간을 끌면……. 불리한 건 우리야.’

라드는 먹으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지금이야 겁먹어서 숨었을지 몰라도 성장한 후에도 그럴 리는 없을 터였다.

당장 초거대 개체가 안에 있었다면, 단 한 개체만으로도 일행은 초토화되지 않았겠나.

이순규가 있어도, 총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와 같은 약점을 치는 게 아니라면 총은 그저 전진을 잠시 막는 용도로밖에 쓸 수 없었다.

“다행히 오는 길에 뭐가 없었지.”

“네, 교수님. 근데 무슨 말을 하시려고…….”

유현이 말을 하는 중에도 주변을 살피고 있던 오예리가 물었다.

그녀가 아는 유현은 괜한 말로 시간 끄는 이가 아니어서 그랬다.

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우선은 그것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집 안도 아니고 밖에서 괜히 떠들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수고스럽겠지만……. 저것들이 회복하거나 더 커지기 전에…… 오늘 그냥 가져갈 수 있는 건 다 가져가야 할 거 같아서요.”

“아…….”

반응은 떨떠름했다.

오는 길에 이렇다 할 위협은 없었긴 했다.

지하 1층에서도 뭐가 있을 거란 정황상 증거는 있었지만, 직접적인 위협은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없을까.

무엇 하나 장담하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당장 이 건물 자체의 안전도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주변을 보라.

“그…… 무너질 수도 있잖아요?”

제일 먼저 나선 것은 병사였다.

그는 이제 지하 쪽이 아니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 구멍이 뚫린 천장 사이로 불에 탄 차량이 을씨년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가 아래로 비추고 있어서 망정이지, 좀만 더 어두웠으면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을 터였다.

천장에 난 구멍이 마치 거대한 괴물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걸 걱정한다면 더욱 서둘러야지.”

그러나 결정을 내린 유현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합리적인 선택이긴 해. 근데……. 우리들로만 하나?”

이순규도 유현을 거들었다.

다른 의견을 내는 듯했지만 보완의 느낌일 뿐, 반대는 아니었다.

“쥐가…… 모자라.”

“더 만들면 되잖아.”

“그거 주사하고 호르몬 분비 유도하려면 시간이 걸려. 그사이에 이 안에 있는 라드가 더 강해질 가능성이 너무 커.”

“강해진다……. 하긴. 먹을 것만 있으면 강해지겠지.”

제아무리 라드라 해도 감자 칩 같은 것만 먹어서는 강해지기 어려울 터였다.

사상 초유의 뚱보 라드가 발생하기는 할 텐데, 글쎄.

그게 그렇게 위협이 될까.

아주 근거리에서라면 몰라도, 원거리라면 달려오는 동안 총으로 정리할 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있을 것 같았다.

“물자만 생각하면 서두르는 게 좋겠는데.”

“일단 얘기는 가면서 하지. 큰 소리는 내지 말고. 혹시 저놈들이 말소리에 반응하면 안 되니까.”

유현은 해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정오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몇 번 왕복할 생각을 하면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었다.

“네, 교수님. 아무래도 딴 데 또 뒤져 보는 거보다는 여길 뒤지는 게……. 나을 거 같긴 해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다행히 유현의 리더로서의 권위는 어마어마했다.

오예리와 이진호는 일행 중에서도 유현의 충복들이기도 했고.

‘안 돼……. 여길 또 온다고……?’

때문에 병사는 차마 앞에서 더 안 된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

‘가서 난 못 오겠다고…… 해야겠다.’

그렇다고 죽을 위험을 더 무릅쓰기는 싫었다.

이미 긴장한 나머지 손에 땀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지 않나.

등도 다 젖은 지 오래였다.

날씨가 쌀쌀해져 오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울 지경이었다.

“쉿.”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앞장서고 있는 이순규가 걸핏하면 입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면 안 그래도 조용히 걷던 일행은 숨소리마저 주의해야 했다.

여기 어디엔가 놈들이 있다는 뜻일 테니.

다다닥

거리가 가까워질 때 더 활발해지는 건 쥐들뿐이라는 걸, 돌아오는 길에서야 알았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쥐들도 저들의 냄새를 맡고 흥분하는 듯했다.

차이가 있다면 저들은 호의를 갖거나 적어도 동질감을 갖는 데 반해 쥐들은 공격성이 강해지는 듯했다.

“후.”

위험 구간을 지나자 이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일행 중에서도 유독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주변만이 아니라 병사도 살펴야 하기에 그랬다.

위험하다 판단이 되면 배제하도록, 그런 명령을 받았다.

“그럴 겁니다. 원래 수컷끼리는 싸움을 통해 서열을 정하는 법이니까요. 얘들은 지들 냄새에 취해서 과대망상에 취해 있다고 보면 돼요.”

그 긴장감을 읽어 낸 이순규는 일부러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봐야 성대가 더 길어진 탓에 낮은 목소리만 튀어나오긴 했지만.

이진호는 이미 이순규의 목소리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럼 이게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을까요?”

“그렇죠. 음.”

“얘네 괜찮을까요?”

“아직은 괜찮아 보여요.”

이진호의 말에 이순규는 코를 벌름거려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유현은 그런 이순규를 보며 개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기특하지 않나.

냄새로 쥐의 무사함을 읽어 낼 수 있다니.

“다행이네. 일단 가자. 가서 내려놓고 가자고. 따지고 보면 며칠간은 괜찮을 거야. 아무리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해도…….”

“그거야 그렇지만. 안전하게 가려면 내일이 마지노선이라고 봐야지. 하여간 가자고.”

일행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끝내 은신처에 도착했다.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일행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나가기 싫다…….’

유현조차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바깥을 나돌아다니는 건 스트레스 심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에겐 여러 생명이 달려 있었다.

무엇보다, 유현은 죽기 싫었다.

고작 먹을 것이 없어서는 더더욱.

‘순규가 있다는 건……. 진짜 하늘이 도왔단 증거야. 거기에 이 쥐까지. 저을 수 있을 때 노를 저어야 해.’

해서 유현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오예리, 이진호도 따랐다.

“저는…….”

“따라와요. 한 번만 더.”

“아…….”

“길도 알고 안에도 알잖아요. 여태 가만히 있었으면 뭐라도 하긴 해야지.”

병사도 하릴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하 입구에 도달했다.

당장 보기엔 아까와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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